사람만이 희망이다 - 박노해 옥중에세이, 개정 복간본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12월 7일 밤 대방동 '서울여성프라자' 1층에서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회단체 '나눔문화(www.nanaum.com)'의 11주년을 기념하는 '후원의 밤'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약150여명의 회원들과 '나눔문화 '연구원들이 함께하는 자리였고 나 역시 회원 자격(1년 밖에 안됐지만..)으로 초대받았다. 2000년 설립 후 11년 동안 정부나 대기업의 후원 없이, 언론이나 기타 매체를 통한 홍보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회원들의 회비로만 운영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박노해씨가 단체의 설립자고...

단체의 활동 중에서 내가 직접 참여한 것이라고는 1년에 두 차례 진행되는 '평화나눔아카데미'라는 강연에 참여하는 것.. 광화문 근처에 있는 '나눔문화'에 도착하면 마음은 푸근하다. 그 이유는 젊은 연구원들이 한결 같이 상냥하고 친절하고 즐겁게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눔문화는 연구원들이 대부분의 단체 활동을 주도하고 있고 사회문제에 대한 참여도 열심히 진행한다. '희망버스'에서 연구원들을 만나면 반가울 수 밖에 없다. 박노해씨는 단체 설립 이후부터 자금까지 주로 해외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고 있다. 레바논, 팔레스타인, 아프카니스탄, 아체, 캄보디아 국경 등 주로 소외되고 탄압받는 소수민족과 소통하고 희망을 나누기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다닌다. 그래서 나는 박노해씨의 진정성에 대한 갚은믿음이 있다.

사실 '후원의 밤' 행사에 참여했지만 행사 기간 내내 '회원'으로서 깊게 공감하지는 못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단체의 설립 취지와 활동에는 기본적으로 공감하고 있지만 단체의 여러 활동에 참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인지, 아니면 연구원이나 다른 회원들과 공감,소통하는 자리가 부족하게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아무래도 나 스스로가 단체와 더 밀집하게 다가가지 않았던 태도가 가장 크겠지만...
 
이 책은 여름에 나눔문화는 놀러가는 연구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단체에서 선물로 받은 것이다. 1997년 출간된 박노해씨의 옥중에세이인『사람만이 희망이다』는 2002년 절판된 후, 10년 만에 재발간된 것이다. 처음에 1997년 ‘무기수’로 수감 중이었던 박노해 시인의 옥중 구술과 메모를 토대로 출간된 책이기에, 2011년 개정 복간본에서는 박노해씨가 직접 문체를 다듬고 편집과 디자인을 변화해 새롭게 펴냈다.
 
 이 시집은 1997년 출간 다음날 전국 서점의 베스트셀러를 기록, 30만부 가까이 읽히면서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수많은 독자들과 진보인사들은 물론 주요 보수 인사들과 대선주자까지 암송하며,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단 한 문장은 이념과 세대를 넘어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1990년대 사회주의 붕괴 이후, “이념에서 사람으로”라는 급진적이고 근원적인 화두를 던졌기 때문이다. 나 역시 처음 출간 당시 이 시집을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면. 그렇지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시'나 메사지는 거의 없었다.
돌아보면 박노해, 그는 언제나 “최초의 목소리”였다. 1980년대 군사독재와 노동탄압의 시대에 ‘노동해방’을 화두로 던졌고, 이 땅에서 금기였던 ‘사회주의’를 최초로 공개 천명했으며, 1990년대 낡은 이념과 시장 만능에 대항하며 다시 ‘사람’이 중심이라는 새로운 주체 선언을 한 것이다. 나아가 ‘삶의 일치’라는 새로운 진리의 거울을 제시함으로써 ‘불편한 진실’의 책이기도 했다.

물론,박노해라는 인물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극단적이기도 하다. 내 주변의 어떤 친구들은 1990년대 초 박노해씨가 체포될 당시 언론에 보도된 온갖 추문들이 사살이라고 주장하가도 한다. 당시 상황이 노태우 군사정권 시절이었고 여전히 정보와 사실이 통제된 시절이었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기 어렵다. 다만 나는 소문과 전언을 전후하여 그 사람이 보러온 모습을 통해서, 내가 사실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것들만 가지고 그를 평가하고 싶다. 내가 감히 그를 평가할 입장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가 “사회 모순이 절정에 달했던 시대의 고통과 꿈과 투쟁을 기적처럼 한 몸에 구현했던' 투사였음을 나는 부정할 수 없다. 당시 그의 삶은 곧 시대 정신의 표상이었다. 이름 없는 현장 노동자에서 해고자, 수배자, ‘얼굴 없는 시인’, 사회주의 혁명가까지. 격동의 역사를 정면으로 뚫고 나온 그는, 1991년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건으로 안기부에 구속되어 사형을 구형 받고, 무기징역형에 처해졌다. 가슴에 777번을 새긴 푸른 수의를 입은 서른네 살 젊은 혁명가는, 그로부터 7년 동안 1평 남짓한 감옥 독방에서 침묵 절필 삭발 정진의 삶을 살아낸다.
자신이 ‘인간해방의 길’임을 믿고 온몸을 던져 밀고 온 사회주의 붕괴 앞에, “죽더라도 정직하자. 결과에 대한 책임을 다하자”며 “실패한 혁명가”로써의 삶을 살아낸 것이다. 불가능한 이상을 향해 한 시대의 끝 간 데까지 밀고 나간 젊은 혁명가의 투쟁과 묵상의 기록, 그것이 1997년 출간된 『사람만이 희망이다』이었다.
 
 2011년 올 한 해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앞으로의 세계가, 한국이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할 때가 많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희망이 없다, 대안이 없다’는 2011년 오늘, 오직 돈과 권력만이 희망이라는 듯한 이 시대에, 왜 다시 사람만이 희망인가?
그래도 "이 시집을 통해서 실낱같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시집을 읽는 동안 내내 머리 속에 맴돌던 생각이었다.

박노해시인은, 희망의 주체가 사라진 시대 사회를 향해서는 누구나 옳은 말을 하지만, 자신이 믿는 진리를 직접 살아내는 ‘희망의 주체’가 보이지 않는 지금, ‘세상을 혁명할 것인가 나를 먼저 혁명할 것인가’ 그 처절한 떨림 위에 피어난 뜨거운 외침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아니, 오늘 더욱 절실하다고...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지금 내가 딛고 선 자리, 내 삶의 모습을 정직하게 돌아보는 것으로부터 희망은 시작될 것이라고 말한다. “오늘 비록 앞이 안 보인다고 / 그저 손 놓고 흘러가지 마십시오 // 현실을 긍정하고 세상을 배우면서도 / 세상을 닮지 마십시오 세상을 따르지 마십시오 // 작은 일 작은 옳음 작은 차이 / 작은 진보를 소중히 여기십시오”(「길 잃은 날의 지혜」), “천지간에 나 하나 바로 사는 것 / 이 지구 위 60억 인류 모두가 / 나처럼 먹고 쓰고 생활한다면 / 이 세상이 당장 좋아질 거라고 / 떳떳이 말하며 살아가는 사람 // (…)그것이 진리의 모든 것이다 / 그것이 희망의 모든 것이다 / 그것이 혁명의 시작과 끝이다 // 천지간에 나 하나 바로 사는 것”(「나 하나의 혁명이」).
지극히 단순하나 큰 깨달음이다. 이것이 바로 박노해씨가 제시하고 있는 ‘21세기 새로운 해방 주체’의 시작 지점이다. 물론,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남아 있다.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어선 순간부터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던 또 다른 질문... 좋은 삶이 사라진 시대 지금 우리 사회에는 좋거나 나쁜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를 말하고 '나쁜 삶과 행위'를 말하지만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과 내용이 빠져 있다. 그 결과 생각은 진보일지라도 생활은 보수로 분열되어 괴롭게 헤매고 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불의한 사회 체제에 저항하는 ‘사회 혁명’과 동시에, 그 적들이 나의 욕망으로 실핏줄처럼 이어진 ‘생활 속의 진보’를 이뤄가는, “안과 밖의 동시 혁명”을 제시하고 있다. “이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제의 가혹한 일상의 광기는 / 우리 몸과 생활과 관계와 내면의 구석구석까지 / 쉴새없이 파고들어 치밀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사는 데 도움이 안 된다면」).

우리 삶의 억압의 실체들을 구체적으로 지목하면서도, 그 적을 닮아가는 나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에 죽비를 치고 있다. 나아가 신세대 문화에서 농사마을까지, 몸철학에서 마음살핌까지, 적은 소유로 기품 있는 삶에서 나눔의 삶까지를 생생하게 그려 보이고 있다. 박노해가 말하는 ‘지구 시대의 새로운 삶’의 모습에서 우리는 지금 바로 좋은 삶을 희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이념이 사라진 시대 ‘이익’과 ‘실용’이라는 가장 타락하고 가장 강력한 이념만이 남은 지금, 『사람만이 희망이다』에서 제시하고 있는 사상, 과거 ‘유일주의’를 넘어 삶 전체를 품어 안는 온전성의 사상은, 10여 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짙은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아직도’ 이렇게 묻습니다 / “아직 사회주의자입니까?” / 나는 정직하게 대답합니다 / “예!” “아니오!” / 사회주의는 삶의 당연當然이 아닌가요 / 삶의 본연을 긍정하지 않는 사회주의가 진보할 리 있겠습니까 / 삶의 당연을 품에 안지 못한 자본주의가 진보할 수 있겠습니까 / 이상을 갖지 못한 현실이 허망하듯 / 현실을 떠난 이상도 공허한 거지요 / (…)나는 ‘아무 주의자’도 아니고 동시에 ‘모든 주의자’입니다 // (…)나는 흑이면서 백이고, 흑과 백의 양극단의 떨림 사이에서 / 온몸으로 밀고 나오는 까마귀의 세 번째 발입니다 / 중간 잡기가 아닙니다 흑백 섞은 회색이 아닙니다 // (…)세 발 까마귀 / 다시 시작하는 발, 또 하나의 발, 우리 희망의 발이여!”(「세 발 까마귀」).
여기서 자본주의는 19~20세기의 자본주의가 아니고, 사회주의는 20세기에 멸망한 사회주의를 말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돈과 권력이 삶의 전부인 듯해도, 이 사회가 우리를 그렇게 강제할지라도, 한사람 한사람 저마다의 깊은 곳에 선함과 사랑과 정의가 숨쉬고 있다. 그것이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믿음을 끝내 놓지 않는 이유이다. “길 찾는 사람은 / 그 자신이 새 길이다 // 참 좋은 사람은 /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 사람 속에 들어 있다 / 사람에서 시작된다 // 다시 / 사람만이 희망이다”(「다시」), “저마다 지닌 / 상처 깊은 곳에 / 맑은 빛이 숨어있다 // 첫마음을 잃지 말자 // 그리고 성공하자 / 참혹하게 아름다운 우리 / 첫마음으로”(「첫마음」)라며 “길 잃은 날의 길 찾는 그대”를 다시, 간절히 부르고 있다.
새로운 억압과 불안 속에서도, 늘 새로워진 사람과 사람들의 물결은 존재했고, 우리에게 남은 희망이 있다면 그 빛나는 사람의 등불을 믿는 것이다. 희망은 결코 그대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대가 끝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우리는 오직 나 자신에게만 속삭이듯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년초에 박노해씨의 최근 시집인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감명 깊게 읽었다. 그 시집에는 그의 어린 시절의 향수와 배움, 2000년대에 그가 보고 느꼈던 한반도 밖의 또 다른 진실과 희망을 담고 있다. 그리고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작은 풀잎 하나에서부터 희망의 씨앗을 찾는다. '나눔문화'를 시작하고 10년이 지난 후에 담담하게 그려낸 시에는 그가 희망을 싹틔우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보다 이 시집 <사람만이 희망이다>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박노해씨가 1997년에 부딪혔던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타락하지만 강력한 이념과 이데올로기 속에 놓여진 나, 담론과 거대흐름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목소리만 높이는 나,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나, 희망보다 무력감을 쉽게 느끼고 믿음 보다는 불신이 뿌리깊은 나...
이런 나에게 이 시집이 무언가 자그마한 깨달음을 던져주고 있다.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어야, 시 속에 파묻혀 느껴야만이 그 속에서 나의 믿음과 희망과 시작을 더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겠지...
 
사람에 상처받고 사람에 눈물짓고 사람에 절망하면서도, 그가 그래도 끝내 포기할 수 없는 꿈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10년을 훌쩍 거슬러 오늘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길 잃은 날의 길 찾는 그대”를 다시, 간절히 부르고 있다.
 
<< 기억에 남는 시 >>

'아직'에 절망할 때 / '이미'를 보아 / 문제 속에 들어 있는 답안처럼 / 겨울 속에 들어찬 햇봄처럼 / 현실 속에 이미 와 있는 미래를 //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 때 /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보아 / 아직 피지 않은 꽃을 보기 위해선 / 먼저 허리 숙여 흙과 뿌리를 보살피듯 / 우리 곁의 이미를 품고 길러야 해 // 저 아득하고 머언 아직과 이미 사이를 / 하루하루 성실하게 몸으로 생활로 / 내가 먼저 좋은 세상을 살아내는 / 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 / 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 ('아직과 이미 사이 」 p.23)

희망찬 사람은 / 그 자신이 희망이다 // 길 찾는 사람은 / 그 자신이 새 길이다 // 참 좋은 사람은 /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 사람 속에 들어 있다 / 사람에서 시작된다 // 다시 / 사람만이 희망이다 (「 다시 」 p.63)

큰 것을 잃어버렸을 때는 / 작은 진실부터 살려가십시오 // (...)오늘 비록 앞이 안 보인다고 / 그저 손 놓고 흘러가지 마십시오 // 현실을 긍정하고 세상을 배우면서도 / 세상을 닮지 마십시오 세상을 따르지 마십시오 // 작은 일 작은 옳음 작은 차이 / 작은 진보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 작은 것 속에 이미 큰 길로 나가는 빛이 있고 / 큰 것은 작은 것들을 비추는 방편일 뿐입니다 (「 길 잃은 날의 지혜 」 p.67)

천지간에 나 하나 바로 사는 것 / 이 지구 위 60억 인류 모두가 / 나처럼 먹고 쓰고 생활한다면 / 이 세상이 당장 좋아질 거라고 / 떳떳이 말하며 살아가는 사람 // 내가 먼저 적게 벌고 나눠 쓰면서 / 덜 해치고 덜 죄짓는 맑아진 얼굴로 / 모두 나처럼만 살면 좋은 세상이 되고 / 푸른 지구 푸른 미래가 살아난다고 / 내가 먼저 변화된 삶을 살아내는 것 // 그것이 진리의 모든 것이다 / 그것이 희망의 모든 것이다 / 그것이 혁명의 시작과 끝이다 // 천지간에 나 하나 바로 사는 것 (「 나 하나의 혁명이 」 p.69)

(...)곧은 길 끊어져 길이 없다고 / 주저앉지 마십시오 / 돌아서지 마십시오 / 삶은 가는 것입니다 / 그래도 가는 것입니다 /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건 /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 // 곧은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 빛나는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 굽이 돌아가는 길이 멀고 쓰라릴지라도 / 그래서 더 깊어지고 환해져 오는 길 / 서둘지 말고 가는 것입니다 / 서로가 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 생을 두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 굽이 돌아가는 길 」 p.106)

(...)사람들은 '아직도' 이렇게 묻습니다 / "아직 사회주의자입니까?" / 나는 정직하게 대답합니다 / "예!" "아니오!" / 당신은 쉽게 물을지 몰라도 / 나는 지금 온 목숨으로 대답하는 겁니다 // 자본주의가 삶의 본연本然이라면 / 사회주의는 삶의 당연當然이 아닌가요 / 삶의 본연을 긍정하지 않는 사회주의가 진보할 리 있겠습니까 / 삶의 당연을 품에 안지 못한 자본주의가 진보할 수 있겠습니까 / 이상을 갖지 못한 현실이 허망하듯 / 현실을 떠난 이상도 공허한 거지요 / 삶과 인간과 현실 변화를 있는 그대로 / 볼 수 있는 밝은 눈을 얻기까지 / 나는 '아무 주의자'도 아니고 동시에 '모든 주의자'입니다 // (...)나는 흑이면서 백이고, 흑과 백의 양극단의 떨림 사이에서 / 온몸으로 밀고 나오는 까마귀의 세 번째 발입니다 / 중간 잡기가 아닙니다 흑백 섞은 회색이 아닙니다 // (...)세 발 까마귀 / 다시 시작하는 발, 또 하나의 발, 우리 희망의 발이여! (「 세 발 까마귀 」 p.111)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변하는 게 숙명이어서 / 변치 않는 유일한 진리는 오직 /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뿐이어서 / 나는 진실로 경계하는 거야 // 자신을 변화시켜 미래 희망을 키우지 못하는 / 변하지 않는 그 노래 그 몸짓 그 목소리를 / 불변하는 것들 안에 든 치명적인 독소를 / 눈 맑게 뜨고 경계하자는 거야 // 이렇게 빠른 시대 변화 속에서 / 결코 변해서는 안 될 것을 지키기 위해 / 우리가 앞서 적극 변화하지 않는다면 / 스스로 변질되고 마는 거야 저렇게 // 우리가 먼저 날로 새로워지지 않는다면 / 스스로 무너지고 마는 거야 그렇게
(「 불변의 진리 」 p.117)

생명농사 지으시는 농부 김영원님은 / 콩을 심을 때 / 한 알은 하늘의 새를 위해 / 또 한 알은 땅속의 벌레들을 위해 / 나머지 한 알을 사람이 먹기 위해 / 심는다고 말씀하십니다 // 지금도 만주 들판에는 삼전 三田이 전해오는데 / 일제 때 쫓겨 들어간 우리 조상님들이 / 눈보라 속에서 맨손으로 일궈낸 논을 3등분해 / 하나는 독립운동하는 데 바치는 군전 軍田으로 / 또 하나는 아이들 학교 세우는 학전 學田으로 / 나머지 하나는 굶주림을 이겨내는 생전 生田으로 / 단호히 살아내신 터전이 바로 삼전인데 //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오늘 / 내가 번 돈 / 나의 시간 / 나의 관심 / 나의 능력 / 어디에 나눠 쓰며 살고 있나요 // 지금 나는 콩 세 알의 삶인가요 / 삼전의 뜨거움 삼전의 푸르름 / 셋 나눔의 희망을 살고 있나요 (「 셋 나눔의 희망 」 p.197)

한 번은 다 바치고 다시 / 겨울나무로 서 있는 벗들에게 // 저마다 지닌 / 상처 깊은 곳에 / 맑은 빛이 숨어 있다 // 첫마음을 잃지 말자 // 그리고 성
공하자 / 참혹하게 아름다운 우리 // 첫마음으로 (「 첫마음 」 p.245)

- 그 여자 앞에 무너져 내리다 - (p.8)
 
그 해 첫눈이 펑펑 내리던 밤
엉금엉금 기어가는 마지막 호송차는 만원이었지요
그 바람에 규정을 어기고 나는 그 여자 옆에 앉혀지게 되었습니다
눈송이 날리는 창 밖만을 하염없이 내다보던 그 여자는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검은 눈이 어느덧 젖어 있었습니다
자기는 아이 둘 가진 노동자인데 교통사고로 들어와서
합의를 못 보다가 오늘에야 나가게 되었다고
내 시를 노래로도 부르고 이야기 많이 들었다고
항상 죄송하고 마음 아팠다고...
 
눈이 내리니 어두운 세상도 참 고와 보이네요
아까 내내 창 밖을 내다보며 저 이런 생각 했어요
죄수복에 포승줄 묶인 내 모습이
차장에 비치는 게 그렇게도 싫었는데,
아니야 아니야 나야말로 이 모습 이대로 죄인이구나
난 지금까지 좋은 세상을 바라면서
노조에도 참여하고 가진 자들 욕도 하고
잘못된 세상을 확 바꿔야 한다고 원망도 많았는데
이제 생각하니 그게 다 도둑놈 마음이었어요
죄가 어디 홀로 지어지는 건가요
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죄짓고 사는 건데
저들의 큰 죄 속에는 제 자신의 죄가 스며들어 있고,
제 욕심과 비겁함과 힘없음이 저들을 더 크게
더 거칠 것 없이 죄짓도록 부추겨온 건데요
제 자신이 먼저 참되고 선하고 정의롭지 않고서
어떻게 세상 평화와 정의를 바랄 수 있겠어요, 도둑 마음이지요
가진 자들의 탐욕과 부정부패는 사납게 비판하면서도
왜 제 자신의 이기심과 작은 부정들은 함께 보지 않았을까요
왜 네 탓이오 네 탓이오만 외치고 제 탓이오가 없었을까요
'제 탓이오 제 탓이오 그리고 네 큰 탓이오!'
라고 해야 옳은 게 아닐까요
왜 저는 못 갖는 한이 아니라 안 갖는 긍지를 지닌
떳떳한 인간으로, 진실로 당당한 노동자로
사회 정의와 평등을 요구하지 못했을까요
첫눈 내리는 오늘 밤에야 제가 자유의 몸이 된다니까
지난 삶이 부끄럽게 돌아봐지네요
좋은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전 솔직히 공짜로 바란 거에요
좋은 세상, 좋은 세상, 하면서도 사실은
가진 자들의 부귀와 능력을 시샘하면서
좋은 세상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 몫의 행복을 훔치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훔치며 살아온 겁니다
선생님을 뵈니 더욱 죄송하고 자꾸만 눈물이 나네요
어디 좋은 세상이 저절로 오나요, 단번에 오나요,
우리 빼앗긴 게 한꺼번에 되찾아지나요
설사 빼앗긴 돈과 권리는 되찾을 수 있을지라도
빼앗긴 삶과 인간성과 제 상한 영혼은 어디에서 찾을까요
내가 먼저 좋은 사람으로 변하려는 노력 없이
가난한 제 돈과 시간과 관심을 쪼개서
참여하고 보태려는 구체적인 실천 없이
좋은 미래를 어디에서 누구에게 바랄 수 있겠어요
좋은 세상은 어찌 보면 우리 안에 이미 와 자라고 있는 건데,
지금 나부터 그렇게 살면 되는 건데, 좋은 사람으로 살면서
하루하루 생활 속에서 어깨를 맞대고 착실히 힘 모아나가면
사실 저들은 껍떼기에 지나지 않는데
선생님, 저 이제 나가서는 잘 살겠습니다
좋은 세상 함께 이루어가는 좋은 사람이 되도록
제 자신과도 싸우면서 그 힘을 보태겠습니다
 
마치 고해성사하듯 떨리는 목소리로 다짐하던 그 여자
서울 구치소로 가는 어두운 밤길에
함박눈이 가슴 미어지도록 흐득흐득 내리고
느리게 기어가는 만원 호송버스 안에서
오누이처럼 스스럼없이 어깨를 기댄 채
젖은 목소리로 속삭이던 순결한 연꽃송이 같은 말씀들.....
무기징역 선고받고 돌아오던 내 마음은
환하디 환한 슬픔이었습니다
 
운명의 그날 밤, 산처럼 무너져내린 그날 밤!
 
선생님, 제 마음 속에 품어온 꼭 묻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사회주의가 정말 우리가 바라는 그런 좋은 세상인가요?
그렇게 평등하고 경쟁 없이 편한 사회에서
누가 열심히 일하려 하겠습니까?
그렇게 정의롭고 도덕적인 사회에서
사람이 무슨 재미로 살겠습니까?
그렇게 좋은 사회가 누구 힘으로,
어느 세월에 이루어지겠습니까?
언제쯤 이기적인 우리 노동자와 서민들이
그런 성인으로 변화하겠습니까?
 
그 여자의 소박한 물음 앞에서
나는 산산이 무너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성실하게 땀 흘리며 살아온 한 여자가
온 삶으로 던져오는 화두 앞에,
태산처럼 육박해오는 준엄한 심문 앞에,
아아 나는 꼼짝없이 무너지고 깨어졌습니다
 
선생님 저는요, 선생님처럼 자신을
송두리째 바치며 살지는 못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한 남자의 아내입니다
맞벌이로 잔업까지 뛰지 않으면
매달 카드 결제와 시동생 학비 지불,
친정 어머님 병수발을 못하게 됩니다
이것은 제가 머리에 이고 살아가야 할 제 인생의 의무입니다
제 생활을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삶을 살고 싶어요
제가 어떻게 살아야 제 인생이 참되고 보람찰 수 있을까요
일 년에 한두 번 임금인상 때 반짝하고 마는
노조활동 같은 거 말구요 회비 잘 내고 서명하고
집회나 시위 있을 때 참여하는 그런 거 말구요
제 일상생활 속에서 제가 주인이 되어서
제가 살아있다는 느낌과 즐거움을 누리면서
나이 들수록 우리가 바라는 좋은 세상을 닮아가면서
생활 속의 작은 걸음들이 곧바로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큰 싸움으로 이어지는 그런 실천이 무엇인지요
정말 저는 인간답게 살고 싶어요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고 싶어요 선생님
 
눈은 내리고 눈은 내리고, 가슴 미어지게 눈은 내리고
나는 아무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날 밤, 나는 아무 변명도 비껴섬도 없이
그저 정직하게 산처럼 무너질 뿐이었습니다
무너지고 깨어지는 게 내가 할 일이고 남은 희망이었습니다
그랬습니다 나에게 희망이 있다면
산덩이만한 패배와 무너짐, 마지막 한 껍떼기까지
철저하게 깨어지고 쪼개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지난 7년 동안 나는 이 벽 속에서 죽음을 살았습니다
실패한 혁명가로서 '내가 왜 살아 있어야 하는가'를 찾는 것이
절박한 문제였습니다 참혹했습니다
그날 밤 그 여자가 내게 내린 화두가 나를
죽더라도 정직하라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다하라고,
이렇게 아픈 침묵 절필 삭발
정진의 삶을 살게 한 것이기도 합니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 이제야
내 안에서 싹이 트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제야 고요한 희망입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
그것이 나의 희망입니다
그날 밤 하늘이 내게 보내신 그 여자 앞에
자신 있게 다시 서는 날까지
나의 기다림과 정진은 계속될 것입니다
 
[ 2011년 12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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