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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의 조건 - 나눔과 희망의 전도사 박원순 에세이
박원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6월
평점 :
이 책의 부제에서 나타나듯이 박원순씨는 지금으로부터 1년 전만 해도 "나눔과 희망의 전도사"를 자처했다.
세계 최초의 직업이라는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 : 한 사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사회의 설계 및 디자인 방법을 고민하는 직업)의 명함을 들고 다니던 박원순이 제시하는 바람직한 사회상은 아주 단순하다. 모두가 함께 행복한 사회이다.
그리고 이것을 이루기 위한 첫발을 ‘기부와 나눔’이라고 단언했다. 기부와 나눔을 21세기 키워드라고 믿는 그는 이성적인 기부를 권했다.
그러던 저자는 지난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다음 날부터 서울시장으로서 공직을 시작했다.
왜 그는 공직에 출마했을까?
2010년 6월 전국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시 야당으로부터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를 권유받고도 거절했던 그가 1년이 조금 지난 후 마음을 바꾼 것이다.
언론기사에 나타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주변에서 문제제기한 것이 크게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당신만 편하게 지내고 시람들의 절망에 대해 왜 몸을 던지지 않느냐", "강연때마다 사회변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면 '왜 그걸 실천할 수 있는 공직으로 가지 않느냐'는 질문을 수천번 받았다", "이명박 정부들어 정부와 시민사회의 균형과 협력관계, 감시 시스템이 완전히 깨졌다", "무상급식 문제만 해도 야당과 시민사회와 논의해 풀 수 있는데 쓸데없이 정치쟁점화되면서 어마어마한 경비가 낭비됐다"고 직접 말했다.
또한 2009년에 불거진 국정원의 사찰과 MB정권의 아름다운재단과 희망제작소에 대한 외압도 한 원인이 될 것이라는 애기도 전해진다.
사실 개인적으로 나는 박원순이라는 사람이 살아온 길을 되짚어보면, 그가 정치인이나 관료보다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로 이어지는 삶의 궤적을 따라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중간지대, 즉 NGO 쪽에서 한국사회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1% 기득권들과 그 대리인인 MB정권, 관료기관, 우익언론, 우익정당은 기본적으로 작동되는 사회시스템마저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 연장선 상에서 박원순의 NGO 활동도 불편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앞으로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장직을 잘 수행해 나갈 지, 3년 후 서울시장 선거에 재선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스스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할 지 그렇지 않을 지도... 본인 스스로 재선하여 서울시를 "시민이 시장이 되는 지자체"로 만들겠다는 다짐만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3년이 지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고 유권자들이 판단하겠지...
이 책은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던 저자가 서울시장에 나선 이유보다 그 전에 국정원 사찰까지 받아 자신의 활동과 단체의 활동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박원순이 계속 가고자 했던 길에 담겨있는 속마음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를 통해 자신이 실천하고자 했던 '나눔과 기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여러가지 사례들 속에서 발견한 희망을 이야기...
그는 "사실 우리가 지금 가난해서 불행하거나 힘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마음이 가난한 탓에 불행하고 힘든 것이지 않을까"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삶의 가치를 외형과 물질에 두기 때문이다. 물질과 상품은 행복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요소일 수는 있지만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역으로 우리들 스스로가 정작 잘 사는 것이 무언인지,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소중했던 가치들, 나눔과 배려, 콩 한 쪽도 나누어 먹는 마음, 따뜻한 이웃 간의 정, 형제애, 부모에 대한 공경과 존경, 공동체 정신, 농부들이 정성들여 키워 열매를 맺은 쌀 한 톨과 배추 한 잎까지도 귀하게 생각하는 그런 마음들을 다 잃어버렸다는 것... 그리고 자기를 희생해서 사회와 공동체를 위하는 헌신, 세상에 바른 목소디를 내고 기꺼이 좋은 사회를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용기도 사라졌다...
그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편하고 든든한 직장이라고 공무원과 교사가 인기라고 하는데, 이런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이 많은 사회가 희망이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더 인간적인 사회, 더 합리적인 사회, 더 민주적인 사회, 국민과 지구촌 시민들이 더 행복한 사회, 지속가능한 미래가 담보되는 사회, 누구나 자신의 인격과 삶을 풍요롭게 실현하는 사회, 누구나 절망하지 않고 좋은 세상을 꿈꿀 수 있는 사회, 이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어야 한다.”
미국의 부자들이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이유도 부자들이 갖고 있는 기부의 습관에 있다. 빌 게이츠도 4년 동안 자기 자산의 60%인 20조원을 기부했다고 한다. 박원순은 스탠포드 대학을 방문했을 때, 미국의 기부 문화를 직접 보고 깜짝 놀란다. “도서관 건물에서부터 그 안의 장서에 이르기까지 큰 대학건물에서부터 작은 벤치에 이르기까지 기부되지 않은 것을 찾는 게 어려울 지경이었다”는 것이다.
기부의 형식은 다양하다. 돈일 수도 있고, 시간일 수도 있고, 물건일 수도 있으며, 자신이 가진 재능일 수도 있다. 소리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오태양 군은 틈틈이 무료 공연을 기부한다. 나눔의 습관이 어릴 때부터 몸에 배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생각 때문이다. ‘사랑의 고물상’이라는 별칭이 있는 아름다운가게는 기부 받은 물건을 팔아 나온 수익을 전부 공익을위해 쓴다.
지금은 상당히 널리 퍼진 1% 나눔운동은 자기 수입의 1%를 기부하자는 운동이다. 가게에서 나오는 수입의 1%, 책 판매 수입의 1%, 강연료의 1% 등 전국에 106개의 점포가 있는 아름다운가게에 1%씩 기부하는 사람은 4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어떤 것이든 자신이 가진 것 가운데 1%를 이웃과 나누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훨씬 더 따뜻해지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실제로 무엇이든 기부한 사람은 보람과 즐거움을 얻는다.
“눈앞에 굶주리는 사람을 보고 돈을 내는 즉자적이고 감성적인 기부보다는 어느 쪽에 돈을 내는 것이 사회의 풍요와 발전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인지 잘 판단하는 이성적인 기부로 바뀌어야 한다. 상속 관행도 바뀌어야 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보람 있고 훌륭한 삶이며 삶의 성취인 자산을 어떻게 정리하는 것이 가장 보람 있는 삶인지 철학적으로 성숙해야 한다.”
저자는 정부의 예산만으로는 빈부격차의 양극화를 해소할 수 없다고 본다. 일반인의 힘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해 100억대를 모금하고 매출하는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가 100개, 1000개가 되면 그 과정에서 고용이 창출되고 또 수많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사회마저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헌 물건을 거래하다보면 일자리뿐만 아니라 서로 소통을 하게 되기 때문에 지역 공동체의 사랑방 구실을 하고 지역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는 장까지 된다.
저자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재단법인제도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한낱 물질에 지나지 않던 돈이 재단법인에 출연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재단들이 편법 상속의 수단으로 많이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 발전에서는 재단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토크빌에 따르면 19세기 NGO가 활성화했는데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NGO의 역할이 필수적인데, 이를 뒷받침한 게 시민들이 자벌적으로 참여하여 재정적 기원을 아끼지 않은 재단이었다는 것이다. 15년 전에 이미 미국의 재단은 4만 개가 넘었고 자산도 300조가 넘었다 하니 어마어마하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이 재단들이 개인재단이라는 것이다. 재단 재원의 90% 가까이를 개인이 기부한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에는 재벌의 재단이 지배적이고 이들은 NGO 지원에 인색하다. 향후 한국이 질적으로 도약하려면 개인재단이 많이 만들어지고 이들이 NGO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게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이 책은 강조한다.
우리가 바라는 대안적 사회, 좀 더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사회를 위한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기업은 기업이되 일반기업처럼 이윤만 추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기업처럼 수익과 효율성을 추구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회적 기업은 공공의 이익이나 사회적 목적을 기업이라는 형식을 통해 추구하고 달성하려는 것이다. 사회적 목적 실현을 위해 이윤의 대부분을 재투자한다.”
새로운 기업 정체성의 모델로 사회적 기업은 그만큼 중요하다. 결국 21세기에는 어떻게 하면 기업이 공동체와 자신의 지역에 공헌할지 생각하는 않으면 기업의 성장과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현장 그 자체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저자는 2006년부터 지금(2010년)까지 지역투어를 계속하고 있다.
우리나라 농촌과 지역을 구석구석 돌며 리더들을 만나 지역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발전을 위한 과제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인 것이다. 지역을 살려 전체를 살려가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동일 건물 건축금지 조례에서 보듯 개성 있는 도시 만들기, 지역 특산물 사업, 다랭이마을에서 보듯 단점이었던 환경을 오히려 장점으로 되살리는 사업 등이 좋은 사례라고 지적한다.
은퇴한 사람들의 제2의 삶을 돕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96세까지 산 피터 드러커는 “60세 이후 30년 동안이 내 황금기였다”고 말한다. 희망제작소에서는 전문직 은퇴자들에게 사회공익을 위해 일하는 비영리단체에 일자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호스피스 운동을 오랫동안 해온 능행 스님은 사람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죽음을 미리 준비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매우 안타까워했는데 특히 재산을 미리 정리하지 않는 것은 남은 사람들에게 큰 짐을 지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만 제2의 갑부이며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던 왕융칭의 유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유언한다. “돈은 하늘에서 잠시 빌린 것이니 내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라”고. “자식이 능력이 있으면 물려줄 필요가 없고, 자식이 무능하면 물려주더라고 간수할 수가 없다”는 이유다.
이 책에는 세계의 구두쇠 할머니들 이야기도 등장한다. 라디오 한 대도 없이 살거나, 남루한 아파트에서 살거나 한겨울에도 전혀 난방도 하지 않고 살다가 생의 마지막에 자신의 전재산, 많게는 수백억에서 수십억원을 공익을 위해 쓰라며 사회에 돌려주고 간 사람들.
말 그대로 ‘개미같이 벌었지만 거지같이 살다가 정승같이 기부한’ 사람들이다.
나눔의 길에 동참했던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도 만날 수 있다. 가게의 수익 중 1%를 기부하다가 여덟 형제 남매 모두 아름다운재단의 기부자로 이끈 사람, 택시 승객에게 기부하라고, 좋은 일에 돈을 쓰라고 쉼 없이 권하는 택시 기사, 저소득 지역 공부방 아이들에게 산타클로스가 되어 해마다 선물을 하는 기업, 생명나눔실천회를 만들고 안구와 장기 기증운동을 벌이다 운명하자 자신의 몸마저 의과대학 실험실에 남기고 간 스님, 엄혹한 시절 변호사로서 모범을 보여주었던 선배의 이야기까지.
“운동은 늘 마이너리티 운동이다. 사람들이 반대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일을 가지고 온갖 고난 끝에 마침내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지지하도록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사회운동의 본령이다.”
참여연대, 아름다운가게,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까지 어찌 보면 무모하고 사회를 바꾼다기에는 ‘너무 낭만적일 것 같은’ 비전과 방식으로 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박원순은 이 책에서 보듯 우리사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사회의 설계 방법과 디자인 방법을 얻고 함께하기 위해 발로 뛰고 있다. 희망제작소에서 벌여오거나 벌이고 있는 작은 지자체에 대한 컨설팅, 지자체 공무원에 대한 교육, 조례연구소, 주민자치 클리닉, 간판문화연구소, 공원연구소 사업 등도 그런 실험들이다.
‘21세기 실학운동’의 일환인 희망제작소의 모험이 어디까지 갈지 어떤 결과를 얻어갈지 많은 사람들이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박원순 변호사의 서울시장 출마를 내 맘대로,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싶었다. 한 사회의 거대한 시스템과 문화가 일부의 노력만으로, 특정 집단만의 힘으로 바꾸어질 수 없기 때문에 시민사회단체의 자발적인 '나눔과 기부' 문화와 더불어 정부,정치권의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어야 하기 때문에 박변호사가 출마한 것이라고...
박변호사 말대로 정부 예산만으로 빈부격차를 해소할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반대로 정부의 노력 없이 민간의 자발적인 운동만으로 빈부격차를 해소할 수 없는 것은 더욱 당연한 사실이다.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장으로서 지자체의 정책을 통해 새로운 거버넌스와 '나눔과 기부'를 구현할 정책을 선보이고 민간에서 자기 역할을 수행하여 변화된 사회문화를 만들어내기를 기대해본다...
사실 박원순이라는 인물이 떠난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가 지금까지의 발전과 성과를 계속해서 만들어낼 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책 속에 들어있는 박변호사의 NGO 활동이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것으로 나는 아주 모범적인 일이라 평가하고 싶다. 특히 다른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이 지지부진했던 지난 날을 돌아보면... 그는 '나눔과 기부'라는 키워드로 한국사회에 조용한 파문을 일으킨 것이다.
그럼에도 시민사회단체에서의 그의 노력은 아직 크게 결실을 맺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2010년 기준으로는 '나눔과 기부'를 시작한 지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았고(7년 정도?) 한국사회의 문화와 정서가 제대로 그의 문제의식을 받아주지 못하는 형편이었던 것이다. 나 역시도 주변에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럴 정도로 한국인 1%에게까지 영향이 확대되지 못한 상태였다.
물론,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한 '나눔과 기부' 운동을 공권력을 악용하여 방해한 현 정권과 집권당, 기득권 세력은 정말이지 무지몽매하고 악질이었다.
저자가 서울시장이 되어 정책으로 구현하고 여전히 시민사회단체에서 '나눔과 기부' 운동을 펼치고 있는 와중에도 애초에 저자가 가졌던 문제의식, 즉 "잃어버린 가치의 회복"은 아직도 남아 있다. 그것은 단순히 '나눔과 기부' 운동을 활성화하는 것으로도, 빈민구제정책을 펼치는 것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
사회의 문화와 시스템, 소통과 참여, 개방과 공유가 어우러져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하고 또 진행해야 할 지 막막하기는 하지만...
[ 2011년 12월 0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