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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홀로 깨어 - 최치원 선집 ㅣ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7
최치원 지음, 김수영 엮음 / 돌베개 / 2008년 1월
평점 :
「 물시계의 물방을 아직 떨어지건만 / 은하수는 벌써 기울었네.
어렴풋이 산천은 점점 변해 가고 / 갖가지 물상이 열리려 하네.
높고 낮은 희미한 경치가 눈에 보이며 / 구름 사이 궁전을 알아보겠네.
이곳저곳 수레들 일제히 움직이니 / 길 위에 먼지가 이네.
저 하늘 끝에 먼동이 트고 / 푸르스름한 빛이 감도네.
새벽별은 먼 숲 나무끝에 반짝이고 / 묵은 안개는 넓은 교외의 빛깔 감추네.
화정(華亭)의 바람 속에 / 끼룩끼룩 우는 학 울음소리 들리는 듯하며
파협(巴峽) 달 밝은 밤에 / 멀리서 들려오던 원숭이 울음소리 이미 그쳤네.
주막집 푸른 깃발 어슴푸레 보이고 / 닭 울음소리 아스라한 마을의 초가에서 들리네.
희미하게 보이는 단청 기와집에 / 새 둥지 텅 비었고 제비는 들보에서 지저귀네.
군영(軍營) 안에서 조두(?斗) 소리 그치자 / 계전(桂殿) 곁에서 벼슬아치들 옷매무새 고치네.
변방의 성에서 기르는 말 자주 울어 대고 / 너른 모래밭 아득하기만 하네.
멀리 보이는 강에 외로운 돛단배 사라지고 / 오래된 강 언덕엔 잡초가 무성하네.
어부의 피리 소리 청아하고 / 쑥 덤불은 이슬에 담뿍 젖었네.
온 산에 푸른 기운 높고 낮게 깔려 있고 / 사방 들에 안개가 깊고 옅게 펼쳐 있네.
뉘 집의 푸른 난간이런가 / 꾀꼬리 지저귀건만 비단 장막 아직도 드리워 있네.
화려한 몇몇 집은 / 사람들 깨어났으련만 발이 아직 안 걷혔네.
밤이 세상을 에워쌌다가 / 천지가 밝아 오네.
천 리 밖까지 푸르고 아득하며 / 온 사방이 희미하네.
요수(?水)에 붉은 노을 그림자 뜨고 / 이따금 들리는 종소리 자금성(紫禁城)의 소리를 전하는 듯.
임 그리는 아낙이 자는 깊은 방의 / 비단 창도 점점 밝아지네.
시름에 겨운 이가 누운 옛집의 / 어둔 창도 밝아 오네.
잠깐 사이 새벽 빛이 조금 뚜렷해지더니 / 새벽 햇살이 빛을 발하려 하네.
줄지은 기러기 떼 남쪽으로 날아가고 / 한 조각 달은 서편으로 기우네.
장사차 홀로 나선 사람 일어났으나 / 여관 문은 아직도 닫혀 있네.
외로운 성에 주둔하는 백전(百戰)의 용사들에게 / 호가(胡?) 소리는 아직 그치지 않네.
다듬이 소리 쓸쓸하고 / 수풀 그림자 성그네.
사방의 귀뚜라미 소리 끊어지고 / 먼 언덕에는 서리가 하얗게 내렸네.
단청 화려한 집에는 / 푸른 눈썹 그린 미인이 있고
잔치 끝난 누각에는 / 붉은 촛불만 속절없이 깜박이네.
상쾌한 새벽이 되니 / 내 영혼 푸른 하늘처럼 맑아라.
온 세상에 밝은 해 비치자 / 어둠이 바위 골짜기로 사라지네.
천 개의 문과 만 개의 창이 비로소 열리고 / 넓은 천지가 활짝 펼쳐지누나. 」
"새벽". 동트는 모습을 그려낸 최치원의 시(詩)의 전문이다. 물론, 최치원의 원문이 아니라 역자의 번역문이다. 원문은 아래와 같다.
이 시는 깊은 어둠이 사라지고 해가 동해바다 끝에서 떠오르는 모습을 갖가지 천태만상을 통해 비유하고 있다. 역자는 이 시를 최치원의 시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 중 하나로 꼽는다.
하늘 속 별빛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은하수가 기울어지는' 것으로, 동이 터오는 모습을 마치 담혀있던 '만물'이 열리고 숨어있던 '구름 사이 궁전'이 나타나는 장면으로 묘사하고 있다. 새벽이 열리면서 온 세상이 밝아지는 모습을 표현하면서 '임 그리는 아낙이 자고있는 깊은 방의 비단 창문이 밝아'오고 '시름에 겨운 이가 누운 옛집의 어두웠던 창이 밝아'오면서 마치 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하기 위해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그려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른 새벽은 '장사차 올로 나선 사람이 일어났지만 여관 문이 아직 닫혀' 있고 외로운 성에 주둔하는 군인들에게 호가 소리가 그치지 않은' 것을 통해 새로운 날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음을 노래하기도 한다. 결국 환하게 밝은 하늘과 햇빛은 '어둠을 바위 골짜기'로 몰아내고 천 개의 문과 만 개의 창이 열리면서 사람들의 활기찬 하루가 시작됨을 애기하고 천지가 환하게 밝아옴을 '활짝 펼쳐지는' 것으로 비유한다. 그 밖에도 최치원은 새벽이 우리 주변의 모든 자연과 생활에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을 시 구절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한글로 옮겨놓은 최치원의 시는 옛 인물과 고사(古事)를 제외하면 현대시로 보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이 책을 역자가 적절하게 수정, 편집하면 아마 현대 시인들이 놀랄지도 모른다. 그 만큼 최치원의 시는 탁월하고 1200년 가까이 지난 현대인에 이르기까지 감동받을 수 있는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원문을 보면 우리 같은 일반 독자들은 최치원의 원래 시를 알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역자는 뛰어난 실력으로 이를 한글로 번역해 냈다. 나는 원문이 훌륭한 것인지 아니면 역자의 번역과 한글 표현이 뛰어난 것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다. 한글로 번역해 낸 역자가 그토록 원문을 칭찬하니 나는 신라시대 한자로 쓰여진 원문의 뛰어난 표현과 구성을 알아보고 이를 한글로 다시 옮긴 역자의 실력을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되었든 내가 읽고 있는 것은 역자가 재구성해 낸 것이므로...
최근에 읽은 [열하일기]에 수록되어 있는 조선 정조 때 박지원 선생의 시 "총석정에서 해돋이를 보며(叢石亭觀日出)"와 최치원 선생의 시를 비교해보니 시대의 차이일지, 연륜의 차이일지 아무튼 색 다른 맛이 있다. 최치원 선생은 담담하게 자연과 일상의 모습을 통해 일출의 모습을 그려냈는데, 박지원 선생은 역동적이고 활기차게 일출을 표현하고 있다.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은 한국문학사의 맨 앞에 자리한 위대한 문학가라 한다. 시(詩)와 문(文)에 모두 능한 대작가이자, 유ㆍ불ㆍ선에 두루 통달했던 신라 말기 최고의 지성인이었다. 이 책의 제목 ‘새벽에 홀로 깨어’는 한국문학의 비조이면서, 역사적 격변기에 홀로 스러져간 외로운 존재인 최치원의 면모를 함축한 말이다.
내 기억에도 몇몇 임금을 제외하고 신라시대 인물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이 최치원이다. 그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친숙한 신라 시대의 문학가, 행정가라 할 수 있다. 열 두 살이란 어린 나이에 당나라에 유학을 떠나 7년 만에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한 일이라던가, ‘황소의 난’을 일으킨 황소에게 격문을 써 보내 그를 두려움에 떨게 한 일, 또 귀국 후 말년에 세상을 등지고 은거하여 종적을 알 수 없게 된 일 등은 비교적 잘 알려진 일화들이다. 또한 나는 아무리 애를 써봐도 기억나지 않지만,「비 오는 가을밤」(秋夜雨中)이나 「가야산 독서당에 적다」(題伽倻山讀書堂)와 같은 최치원의 한시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되어 누구나 한 번쯤 접해 보았을 것이라고 한다.
역자는 앞서 거론한 작품들이 최치원의 한시 중 주목되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최치원의 작품 세계는 흔히 알려져 있는 것보다 훨씬 방대하고 심오하며 다채롭다고 말한다.
(최치원은 884년 음력 10월 당나라에서 신라로 귀국했다. 885년 시독 겸 한림학사(侍讀兼翰林學士), 수병부시랑(守兵部侍郞) 지서서감(知瑞書監)이 되었으나 문란한 국정을 통탄하고 외직(外職)을 자청, 태산(太山 : 지금의 전북태인) 등지의 태수(太守)를 지냈다. 894년 진성여왕에게 시무(時務) 10여 조(條)를 상소해서 아찬이 되었다. 그러나 귀족들의 거센 반발로 인하여 그후 관직을 내놓고 난세(亂世)를 비관, 각지를 유랑하다가 가야산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 최치원은 부산 동백섬 일대의 경관에 반하여 자신의 호 '해운'을 따서 그 지역 지명을 해운대라고 붙였다고 한다. 최치원이 직접 새겼다는 '海雲臺' 석각도 동백섬 절벽 한켠에 남아있다. 이러한 이유로 최치원의 동상과 시비가 동백섬 언덕에 생겼으며, 해운대구와 최치원이 벼슬을 하며 토황소격문을 지었던 양저우시구는 자매결연을 맺게 됐다.)
최치원의 저서로는 중국에 있을 때 쓴 글을 엮은 책인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이 전하며, 후인이 편찬한 책으로 「사산비명」(四山碑銘)과 「고운선생문집」(孤雲先生文集)이 있다. 또 「수이전」(殊異傳)의 일부 작품들이 현재 다른 문헌을 통해 확인된다. 지은 저서로는《금체시》,《계원필경》,《상대사시중장(上大師侍中狀)》,《잡시부》,《중산복궤집》,《오언칠언금체시》,《제왕연대력(帝王年代曆)》,《부석존자존》,《법장화상전》,《석이성전》,《쌍녀분전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이상 최치원의 작품들, 특히 산문 작품은 한문학 전공자들도 어려워하는 글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인지 최치원의 문학에 대한 연구가 이미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상당한 성과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와 문을 골고루 엮어 우리말로 쉽게 풀이한 선집은 여태 나온 바 없다. 최치원이 한국문학사의 맨 앞에 우뚝 서 있는 대문학가임을 생각할 때, 실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최치원의 시와 문을 함께 뽑아 이를 쉬운 우리말로 풀어 일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첫 시도라고 한다.
책은 6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의 제목은 1부 '새벽에 홀로 깨어', 2부 '비 오는 가을 밤', 3부 '은거를 꿈꾸며', 4부 '밭 갈고 김매는 마음으로', 5부 '신라의 위대한 고승', 6부 '참 이상한 이야기'이다.
1부 ~ 3부 : 최치원의 시 가운데 수작들을 ‘새벽에 홀로 깨어’ ‘비 오는 가을밤’ ‘은거를 꿈꾸며’ 등 세 가지 제목 아래 뽑아 놓았다. 매 작품마다 간단한 해설을 붙여 시 감상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4부 : 최치원 산문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는 열 편의 작품들을 뽑아 놓았다. 「역적 황소에게 보낸 격문」과 같은 명문(名文)을 보다 쉽고 유려한 우리말로 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이른바 ‘동북공정’이, 중국 측의 명백한 역사 왜곡임을 밝혀 주는 이른 시기의 중요한 사료들도 뽑아 놓았다. 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 발해와 신라, 중국 간의 미묘한 외교관계와 신라의 입장에서 발해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알 수 있는 문서도 들어있다.
5부 :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의 하나로, 일반 독자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사산비명」(四山碑銘) 가운데 세 작품을 뽑아 놓았다. 이 세 작품은 최치원이 왕명을 받고 신라의 위대한 고승의 사적을 기리기 위해 쓴 비명(碑銘)으로, 최치원 문장의 정수로 꼽히는 작품들이다. 다만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난해하여 일반 독자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못해 왔다. 이 책에서는 세 작품 각각에서 중요하고 감동적이며 재미있는 부분만을 발췌하여, 자세한 주석과 함께 쉬운 우리말로 번역, 소개하였다.
6부 :「수이전」(殊異傳)의 열 작품을 실었다. 「수이전」은 신라 시대 민간에 전해지던 이야기가 최치원의 붓을 만나 탄생될 수 있었던 소중한 작품들이다. 특히 「호랑이 여인」은 한국 고전소설사의 첫머리에 놓이는 단편 소설로, 최치원의 소설가적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책은 출판사 돌베개가 내 놓은 <우리 고전 100선>의 7번째 작품이다. 돌베개는 간행사에서 '우리 고전' 시리즈를 새롭게 준비한 이유를 "세계화에 대한 문화적 방면에서의 주체적 대응"이라고 표현했다. 지금 전세계에 몰아치는 '세계화'가 단지 '자본'의 문제 뿐 아니라 '문화'와 '정신'의 부분에서도 거센 파도처럼 몰아치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세계화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인가가 우리의 생존이 걸린 사활적 문제'라고 규정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단순화, 획일화, 상품화를 강요하면서 생물 다양성이 파괴하는 것처럼 문화다양성 역시 위협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동아시아인, 그리고 한국인으로서의 문화적 정체성은 인권, 즉 인간권리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 고전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관심의 확대가 절실히 요망된다"고 주장한다.
출판사는 그동안 '고전'이 사람들에게 가져다 주었던 '따분함'과 '재미없음'이라는 편견을 없애기 위해 현대 한국인이 부담 없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품격과 아름다움과 깊이'를 갖춘 우리 고전을 발간하는 것을 <우리 고전 100선>의 취지라고 설명한다.
그동안 우리의 고전을 별로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최치원의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를 힘들었다. 나는 신라가 실제로 크게 의존했던 당나라 등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문외한이고 최치원의 사상적 기반인 유교, 도교, 불교에 대해서도 교과서적인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책과 지난 번 읽은 박제가의 [발해고], 그리고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앞으로 수 년, 수 십 년 동안 우리 고전을 더듬더듬 익혀야 하는 숙제를 안겨주었다. 그래서 고맙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 2011년 9월 0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