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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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에도 여러 곳에서 들었다. 특히, 작년 연말 공부모임 송년회에서 한 참석자가 '기억에 남는 책, 추천하고 싶은 책'으로 이 책을 소개했을 때 올해에 한 번 읽어보리라 마음 먹었다.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및 독일 동맹국 지역 내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진 약60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 학살'과 관련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대인 학살에 대해 '히틀러의 광기'나 '종족 우월주의의 폐해' 정도로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유대인 학살에 대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연구,분석한 결과물도 그다지 없다.
 
1940년대에 유럽인들이 나치즘과 파시즘으로 고통받고 유대인들이 대대적으로 핍박바다고 학살당할 때 동아시아에서도 일본에 의한 학살과 만행이 동시에 저질러지고 있었다. 특히 한반도의 경우 그보다 앞선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본이 전쟁에서 패망한 1945년까지 일본군의 침탈과 착취, 억압과 학살은 계속되었다.
1945년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패망과 한반도의 독립은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대한제국의 상해 임시정부는 연합국에게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따라서 임시정부는 한반도 남단을 점령한 미군정에게 탄압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일본이 한반도를 점령,속국화하면서 사전,사후에 미국, 영국과 이를 합의했기 때문이다.
1945년 해방 후에도 한반도는 외세로부터 남과 북으로 갈라졌고 남쪽의 대한민국은 36년간 일제의 만행과 학살에 동조하고 부역하고 독립군과 민중을 학살,탄압한  친일분자들을 처단하지 못한채 오히려 친일반역자들을 정부조직에 끌여들였다. 그 과정에서 친일과 반역은 유야무야되었고 친일반역자들은 대를 이어 지금까지 한국의 모든 권력과 기득권을 장악했다. 일제의 만행에 대해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질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어찌보면 우리나라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36년에 걸친 점령과 만행에 대해 조사와 연구가 턱 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운운하는 것이 한가로운 소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단순히 독일제국의 유대인 학살을 고발하고자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그녀는 천륜과 인륜을 저버리는 유대인 학살에 어떻게 정상적인 사람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독일이나 유럽만의 문제만도,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문제만도 아니다. 일제시대에 비슷한 유형의 일본군과 조선사람도 많았을 것이고 해방 후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 아래에서도 존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지난 뒤 유대인 학살 소식이 전세계에 알려졌을 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자도 그것이 진실이라고는 믿지 못했지만 결국 그 소식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는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의해 잡혀와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저자는 예정되었던 대학의 강의를 취소하고, 미국의 교양잡지 『뉴요커』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특파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참관하게 된다. 이로써 이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탄생한 것이다.
 
 
---------- * 한나 아렌트는 누구인가? ------------
1906년 하노버에서 출생하여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보냈다. 1924년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하이데거에게 수학하였으나 1926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옮겨 야스퍼스에게 수학하였으며 1928년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 개념」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나치체제의 등장으로 1933년 이후 프랑스와 미국에서 18년간 무국적자로 생활하였다. [전체주의의 기원]을 출간한 1951년 학계로부터 주목을 받았으며 이때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였다. 이후 정치철학자로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저서들을 출간함으로써 ‘진정한’ 정치, 정치의 고유성을 밝히는 데 헌신하였다. 만년에는 ‘정신의 삶’을 연구하는 데 전념하였다. 1975년 12월 ‘정신의 삶’ 3부작 중 마지막 저서를 구상하던 중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다.
주요 저작으로는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혁명론], [과거와 미래 사이],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폭력에 대한 성찰], [공화국의 위기], [정신의 삶 : 사유/의지], [칸트 정치철학 강의], [정치의 약속]등이 있다. ---------------
 
이 책은 서문과 에필로그, 그리고 1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독자들께 드리는 말 / 제1장 정의의 집 / 제2장 피고 / 제3장 유대인 문제 전문가 / 제4장 첫 번째 해결책: 추방 / 제5장 두 번째 해결책: 수용 / 제6장 최종 해결책: 학살 / 제7장 반제회의, 혹은 본디오 빌라도 / 제8장 법을 준수하는 시민의 의무 / 제9장 제국으로부터의 이송: 독일, 오스트리아 및 보호국 / 제10장 서유럽으로부터의 이송: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덴마크, 이탈리아 / 제11장 발칸 지역으로부터의 이송: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그리스, 루마니아 / 제12장 중부 유럽으로부터의 이송: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 제13장 동부의 학살센터들 / 제14장 증거와 증언 / 제15장 판결, 항소, 처형 / 에필로그 / 후기 
 
 

1906년 독일 졸링겐에서 태어난 아이히만은 1932년 비밀 나치당에 입당했고, 같은 해 하인리히 히믈러가 조직한 나치 친위대(SS) 정예부대에 들어갔다. 히믈러가 국가안전국(RSHA)을 창설했을 때 베를린에 있는 유대인 담당부서에서 일하게 되었다.
1942년 1월 베를린 근교에서 나치 고위관리들이 모여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책(대량학살)'에 필요한 계획과 병참업무 준비에 관한 회의를 열었는데, 아이히만은 이 문제의 책임을 맡음으로써 사실상 대량학살을 뜻하는 이 마지막 해결책의 집행자가 되었다. 그는 유대인을 식별하고 집결시켜 그들을 집단수용소로 보내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는 히틀러를 처음부터 끝까지 존경했고 히틀러와 제3제국의 법, 그리고 정부와 군의 명령에 충실했다.
그는 독일 내에서 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이탈리아,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그리스, 루마니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을 색출하여 주거지에서 추방하고 국적을 박탈시키고 수용소에 격리시킨 후 학살센터로 보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일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수행했다.

전쟁 뒤 아이히만은 미군에 붙잡혔으나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했다. 이후 몇 년 동안 중동지역을 전전하다가 1960년 5월 부에노스아이레스 근처에서 체포되어 이스라엘로 이송되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예루살렘의 특별법정에서 재판을 열었는데, 1961년 4월 11일부터 시작된 이 재판에서 아이히만은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저자는 재판 과정을 지켜보면서 살인자이자 반인륜 범죄를 일으킨 아이히만이 평범한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그것에 대해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에게는 어떠한 '특별한'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정상적이고 평범했던 것이다. 그는 '도착적이거나 가학적이지' 않았다. 따라서 아이히만은 "잘못을 행하려는 의도가 범죄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모든 현대 법체계에서 통용되는 가정"을 무시했다. 아이히만에 대해 진행한 이스라엘 경찰의 심문기록은 아이히만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저자의 보고를 지지한다.
유대 민족에 대해 자행된 그의 범죄의 엄청난 규모에도 불구하고 아이히만은 어떠한 후회도, 어떠한 가책의 감정도 표현하지 않았다.
 
저자는 아이히만을 '사유할 능력이 없는 존재'로 규정했다. 그는 '타인의 과점에서 생각할 능력'도 없었다. '사유'도 '의지'도 '판단'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초현실주의적이거나 몽상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아이히만의 타자의 관점에서 생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책임을 회피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아이히만의 재판에 대해 보고를 하면서 나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언급을 하였는데, 이는 어떠한 이론이나 사상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아주 사실적인 어떤 것, 엄청난 규모로 자행된 악행의 현상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었다.
이 악행은 악행자의 어떤 특정한 약점이나 병리학적 측면, 또는 이데올로기적 확신으로는 그 근원을 따질 수 없는 것으로, 그 악행자의 유일한 인격적 특징은 아마도 특별한 정도의 천박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행위가 아무리 괴물 같다고 해도 그 행위자는 괴물 같지도 악마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한때 자기가 의무로 여겼던 것이 이제는 범죄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그는 이러한 새로운 판단의 규칙을 마치 단지 또 다른 하나의 언어규칙에 불과한 것처럼 받아들였다. 그는 다소 제한된 양의 관용구에다 몇 가지 새로운 것들을 추가했던 것이고, 따라서 그가 그 관용구 가운데 어떤 것도 적용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는 전혀 어찌할 수 없었다."(p.37)

 
저자는 이 책을 발간한 후 유대인 공동체에 소동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자신의 가까운 친구들을 포함한 유대인 인사들로부터 엄청나게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그녀 자신도 유대인이었다.)
논쟁의 가장 초점이 되었던 것은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었다. 그녀의 보고서에는 아이히만이 저지른 흉악한 악행이 고의이거나 사전에 고안된 것, 즉 범죄의 의도를 미리 갖고 있거나 고려했던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은 아이히만을 '인류역사상 가장 극악한 악마'로 규정하고 싶은데 저자의 보고서가 전혀 다른 관점과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저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부은 것이다.
 
 
사실 아이히만이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법률적 문제, 유대민족 지도자들의 나치스에 대한 협조, 이스라엘과 유대민족과 저자간의 갈등, 이스라엘 정부의 불법성과 부도덕, 검찰과 법원의 무능과 무책임 문제 등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내가 이 책에서 강렬하게 반응하고 공감한 부분은 저자의 결론인 '악의 평범성'이었다. 그것은 사고와 말을 허용하지 않는 일상적인 '무사유'를 말한다. 다시 말해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무사유'와 '악의 평범성'이야말로 아이히만이 유대인의 대량학살을 '성실'하고 '충실'하게 감행하게 한 가장 근본적인 동력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무사유'와 '악의 평범성'은 아이히만의 문제일까? 전쟁시기만의 문제일까?
경쟁과 생존경쟁을 최고의 가치로 만들어내는 현대사회에서 기술, 특히 미디어 기술이 우리를 점점 더 일차원적으로, 심지어 전체저의적으로 만들고 있다. 미디어가 메시지가 되어감에 따라 미디어는 우리를 더욱 더 평범하게, 획일적으로, 그리고 생각 없이 만든다.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 역시 '무사유'에 빠지게 되고 '무사유'는 우리를 '악의 평범성'으로 인도할 것이다.
사유와 판단보다 '잡담'과 '농담'이 우리의 일상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TV와 인터넷, 스포츠와 정보와 미디어, 드라마와 연예프로그램이 아이들과 청소년, 대학생과 주부와 직장인들의 주된 대화 소재가 되어 있다. 무상급식과 비정규직 문제는 몰라도 되지만 '무한도전'과 '남자의 자격'을 모르면 대화가 안된다. 한나라당이 8월 국회에서 KBS 수신료 인상을 단독으로 추진하는 문제는 남자들의 술자리에서 절대 꺼내면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대신 프로야구 롯데의 성적과 월드컵 국가대표팀의 경기결과, 박태환과 김연아의 위대함, 소녀시대의 섹시함과  '하의실종' 패션이 안주거리로 삼아야 즐거운 술자리가 된다. 이것들은 결코 '사유'가 아니다.
 
아이히만의 '무사유'와 우리 시대의 '무사유'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리 세대들의 '무사유'가 어떤 '악'을 낳을 것인가? 아니 어떤 '악'을 낳고 있는가? 앞으로 또 어떤 '악'을 만들어내고 그것에 동참할 것인가?
(이미 한국인 대다수의 '무사유'와 '무행동'은 이미 부자감세와 4대강 죽이기,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축소, 빈부격차와 사회적 양극화, 재벌집중과 중소기업 피폐,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양산으로 나타났다.)
 
[ 2011년 8월 0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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