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15 - 로마 세계의 종언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5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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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15권의 부제는 ’로마세계의 종언’이다.

15권은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병사하고 아들들이 즉위한 서기 395년부터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서기 476년까지의 81년간을 다룬다.
이 기간 동안 로마제국에는 테오도시우스의 자손 8명이 황제로 군림했고 가장 큰 특징은 15권이 시작되자마자 동,서로 통치구역을 담당하던 방식에서 제국 자체가 동,서로 분리된 것이다.
분리된 서로마 제국은 이민족으로부터 끊임없이 이탈리아 반도와 로마를 침탈당하게 되고 수도마저 로마에서 라벤나로 옮긴 후 더 이상 황제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멸망한다.
제국이 동,서로 분리되었으니 당연히 동로마 제국은 서로마 제국이 어떻게 되든 동로마 제국의 안위에만 급급한 상태였다.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로마 제국의 멸망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서기 476년과 동로마 제국이 마지막으로 멸망한 서기 1453년년이라는 의견이 엇갈린다고 한다.
작가는 도시국가에서 시작된 로마제국의 경우 로마를 더 이상 로마인 이외의 이민족이 통치하지 않게 된 때, 로마와 이탈리아 반도에 로마시민으로서 황제가 다스리지 않게 된 서기 476년을 로마제국의 멸망으로 판단한다.
실제 동로마 제국은 19세기부터 ’동로마 제국’이라는 명칭보다 ’비잔티움 제국’이라는 명칭이 잘 사용된다고 한다.
당시 동로마제국(비잔티움제국)의 황제나 관료들은 스스로를 ’로마제국(Imperium Romanum)’라고 불렀으며 ’문명 세계 모두를 지배하는 대제국’이며 ’하느림에 의한 최후의 심판이 일어날 때까지 계속 되는, 지상의 마지막 제국’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동로마제국은 대부분 그리스인들이었으며, 서기 610년에 공용어를 라틴어에서 그리스어로 바꾼 시점을 동로마 제국과 비잔티움 제국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로마제국은 이미 ’왕권신수설’과 ’카톨릭’이 정치와 사회,문화 전반을 지배했기 때문에 더 이상 ’로마’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뿐만 아니라 ’로마’를 ’로마’로 규정지을 수 있는 많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동로마제국에는 사라져 버렸으니까...




아무튼, 로마제국의 마지막을 간략하게 더듬으면
395년 서로마제국 황제에 호노리우스, 동로마제국 황제에 아르카디우스 즉위. 동서분할.
          알라리크를 수령으로 하는 서고트족이 발칸 지방에 침입하여 총사령관 스틸리코가 이끄는 로마군이 맞서 싸움.
          동로마제국은 군대를 철수시킴.
397년 서로마제국 영토인 아프리카 담당사령관 길도가 동로마제국 황제에게 충성을 선언하고 북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로 식량 수출을 금지.
398년 길도의 친동생 마스케절이 반란군을 토벌하러 파견. 길도는 항복하고 살해됨.
401년 도나우강 북쪽의 야만족이 라이티아 속주에 침입. 알라리크가 서고트족을 이끌고 이탈리아 북부를 침공
402년 스틸리코 장군이 알라리크와 전투에서 승리.
404년 서로마 제국 황제의 거점이 밀라노에서 라벤나로 옮겨감.
405년 라다가이소가 이끄는 동고트족 포함한 야만족이 서로마제국 영토에 침입
406년 스틸리코 노예 징병법 성립. 이탈리아 중부에서 스틸리코 장군이 야만족에게 승리.
          게르만계 야만족이 라인강을 건너 갈리아에 침입
407년 콘스탄티누스 3세를 자칭하는 병사가 브리타니아 주둔군을 이끌고 갈리아에 진입.
408년 스틸리코 장군이 게르만계 야만족 및 반란군 진압을 위해 서고트족장 알라리크와 동맹 교섭.
          호노리우스 황제가 서고트족과 동맹을 불신하여 스틸리코 장군을 반역죄로 처형.
          알라리크가 이탈리아로 쳐들어와 로마 봉쇄. 원로원이 많은 금품을 지급하고 봉쇄 풀림.
          동로마제국 황제 아르카디우스 사망. 아들 테오도시우스 2세가 즉위. 어머니 에우독시아가 섭정 실시
410년 또 다시 알라리크의 서고트족이 로마를 포위 공격하여 시내에 침입. 닷새 동안 ’로마 겁탈’
          호노리우스 황제 속주 방위 포기



415년 서고트족장이 연이어 사망, 살해된 후 갈리아 서부를 서고트 정착지로 결정

423년 호노리우스 황제 사망.
425년 발렌티아누스 3세 황제로 즉위. 어머니 갈라 플라키디아가 섭정 실시
427년 북아프리카 사령과 보니파키우스가 명령을 거부하고 반달족에 지원 요청함.
          겐세리크의 반달족 전체가 에스파냐에서 북아프리카로 이주. 보니피키우스는 이탈리아로 달아남.
432년 갈리아 담당사령관 아이티우스가 북이탈리아에서 보니피키우스에 승리.
439년 카르타고가 반달족에 함락되어 북아프리카 전역이 반달족의 지배를 받음.
442년 서로마제국과 반달족이 강화를 맺어 반달족이 북아프리카 영유가 공식 인정
450년 동로마 제국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 사망. 원로원 의원 마르키아누스가 황제로 즉위.
451년 아틸라의 훈족이 라인강을 건너 갈리아로 침입.
          아이티우스 장군이 서고트족 등 게르만족과 연합하여 아틸라의 훈족과 전투에서 승리.
452년 아틸라의 훈족이 북이탈리아를 기습 침입, 약탈
455년 발렌티아누스 3세가 군열병식 중 살해됨.
          원로원이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를 후임 황제로 선출
          북아프리카 겐세리크의 반달족이 이탈리아에 상륙하여 오스티아 점령 후 ’로마 겁탈’
          막시무스 황제 살해됨.
456년 갈리아에서 황제에 옹립된 아비투사가 이탈리아에 들어가다가 살해됨.
457년 야만족 군인 마요리아누스가 황제로 선출
          동로마 제국의 마르키아누스 황제가 사망. 군인 출신 레오가 황제로 선출
461년 마요리아누스 황제가 살해되고 세베루스가 후임 황제로 선출
465년 세베루스 황제 사망. 안테미우스가 황제로 즉위
468년 동,서로마 제국이 연합하여 북아프리카 반달족을 제압하기 위해 군대를 파병하였으나 겐세리크의 전술에 넘어가 로마군이 카르타고에서 궤멸됨.
          레오 황제가 겐세리크와 강화 맺음.
472년 궁정관료 리키메르가 올리브리우스를 황제에 앉힘.
          안테미우스 군대가 올리브리우스, 기키메르 연합군과 로마 시내에서 전투하여 승리.
          올리브리우스 암살.
474년 동로마제국이 율리우스 네포스를 서로마제국 황제로 지명
475년 재상 오레스테스가 네포스를 ?아내고 아들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가 황제에 오름
476년 야만족 출신 장군 오도아케르가 반기를 들고 제위에 복귀한 네포스 황제의 군대에 승리.
         오레스테스는 살해되고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는 퇴위당함.
         오도아케르가 이탈리아 왕을 자칭.
   이로써 서로마 제국 멸망.



 
그 뒤에 오도아케르는 17년 동안 이탈리아 왕으로 군림하고 오도아케르와 전투에서 승리한 동고트의 테오도리크가 493년부터 526년 죽을 때까지 33년간 이탈리아 왕으로 군림.
동로마제국은 518년 유스티누스가 황제로 즉위하고 527년부터 외조카 유스티니아누스가 황제로 즉위다.
유스티니아누스는 즉위한 해부터 <로마법 대전>을 편찬하기 시작.
536년에 동로마제국은 사령관 벨리사리우스 군대에 힘입어 아틸리아 반도를 장악.
이후 벨리사리우스 군대는 여러번 고트족, 반달족, 랑고바르디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그의 후임인 나르세스도 고트족과 다른 야만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함.
568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벨리사리우스 장군과 나르세스 장군이 연이어 사망하고  랑고바르디족이 남하하여 이탈리아 반도를 제패.
예언자 무하마드가 613년 포교를 시작하여 이슬람군이 636년 시리아, 642년 이지비트, 650년 소아시에까지 장악.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오스만 투르크의 공격에 함락되어 동로마제국이 멸망.





젊었던 시절인 1985년 가을인가 겨울 무렵....
소설가 조정래씨가 <태백산맥> 1,2,3권을 처음 출간했다.
그 때 나는 신림사거리에 있는 ’백두서점(맞나?)’ 안에 앉아서 내리 3권을 읽었다.
그리고 조정래씨는 1986년에 4,5권을 1987년에 6,7,8권을 1988년에 9,10권을 차례로 출간했고 나는 책이 신림동 서점에서 발견할 때마다 그 서점에 앉아서 다 읽었다.
그 자리에서 읽지 않으면 궁금해서 못 견딜 것 같았으니까...
작가 시오노 나나미씨는 1992년에 <로마인 이야기> 1권을 내면서 2006년까지 해마다 한 권씩 발표하겠다고 공언하였고 그것을 지킨 셈이다.
조정래씨는 소설을 쓰기 위해 미리 수 년간 자료를 구하고 발로 대상지를 찾아다닌 후 소설을 시작하는 스타일이고 시오노씨는 매년 준비해서 1권씩 발간하는 스타일인 셈이다.
시오노씨가 발간한 <로마인이야기>는 2000년 전의 자료와 현장, 과거 역사가들의 글들을 참고하여 약간의 소설적 재미를 덧붙인 ’인문서’이고 조정래씨가 발간한 <태백산맥>은 30~40년 전의 역사적인 상황을 바탕으로 하여 소설의 주인공을 끌어내고 글을 구성하였기에 글쓰기에 투입한 노력과 내공을 비교하기는 쉽지 않다.
조정래씨는 일간신문에 매일 연재하고 나서 묶어서 출간했으니 1년에 한 번 ’짠’하고 책을 출간하는 시오노씨보다 더 ’내공’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내 맘 속의 ’반일감정’으로 객관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쩝...
 
<로마인이야기>에 대한 인터넷의 서평 중에는 ’제국주의적 시각’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일본이 20세기 초에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동남아시아에서 제국주의의 만행을 저지른 것을 교묘하게, 또는 의도는 없었지만 일본인으로서 아주 자연스럽게 책 속에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읽는 가운데서도 그런 분위기를 전혀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처음 쓰기 시작하면서 의도한 것을 인정해주고 싶다.
작가는 <로마인 이야기> 1권의 서문에서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갈리아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투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것이 로마인인데,
왜 그들만이 그토록 번영할 수 있었을까?"라고 시작한다.
 
로마가 처음 건국한 기원전 753년을 동아시아 시대와 비교하면 춘추시대의 시작이 기원전 771년 경이었고 한반도의 경우 <삼국사기>에 의하면 ’마한’이 시작된 시기가 기원전 2세기 경이었다.
비슷한 시기의 중국지역과 한반도의 역사를 로마와 비교해보는 것도 여러가지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처음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왕국’으로만 일관했던 동아시아와 왕정-공화정-제정-제국으로 이어지다가 멸망한 후 중세시대를 거쳐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시민혁명을 거친 서구를 알아가는 것도...
어차피 인류는 오랜 시간 동안 생존과 번영을 위해 노력해 오면서 유전자에 그 과정과 결과를 입력해 놓았다.
최근 2000년 동안 서양과 동양의 역사적인 전개과정이 21세기의 동,서의 다른 민족성, 문화, 언어, 사상을 형성해 왔으니 그 과정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공통점과 차이점, 장점과 단점 등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기원 전에 카이사르가 말했다.
"보이는 것만, 보고싶은 것만 보는 사람과 그 이면을 보는 사람"에 대해...
  

[ 2010년 10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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