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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평점 :
2011년 한국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처음 프랑스에서 출판된 후 7개월 만에 200만 부를 돌파하여 프랑스 사회에 ’분노 신드롬’을 일으켰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맞섰던 레지스탕스 투사이자 외교관을 지낸 93세 노인이다. 그가 이 책에서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화두는 ’분노’이다. 저자는 전후 프랑스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레지스탕스 정신이 반세기 만에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프랑스가 처한 작금의 현실에 ’분노하라!’고 일갈한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사회 양극화, 외국 이민자에 대한 차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금권 등에 저항할 것을 주문한다.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이며, 인권을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찾아가 기꺼이 힘을 보태라는 뜨거운 호소다.
[분노하라]의 원서는 표지 포함 34쪽의 소책자다. 이 책의 출발은 나치에 맞섰던 레지스탕스의 성지(聖地) 글리에르 고원이었다. 저자는 2009년 ’레지스탕스의 발언’ 연례 모임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젊은이들에게 ’분노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의 즉흥 연설을 했다. 그 자리에 있던 앵디젠 출판사의 편집인들(실비 크로스만, 장 피에르 바루)은 깊은 감명을 받았고, 곧장 에셀에게 달려갔다. 이 책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이 책이 프랑스 사회에 던진 충격은 대단했다. 2010년 10월 초판 8,000부를 찍어낸 책은, 불과 7개월 만에 200만 부가 팔려나갔다. 프랑스 남부의 작은 출판사로 저자 인터뷰와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 프랑스 언론은 100년 전 <드레퓌스 사건>으로 프랑스의 인권 문제를 제기한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에 버금가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흥분했다.
2010년 프랑스의 현실은 한국에 비해 거의 ’천국’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사법, 언론, 학계, 교육, 복지 등 모든 부분에서 한국의 수준을 뛰어넘는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프랑스의 ’민주주의’를 조금 위협하는 상황에서 93세의 노인은 쉬고있던 집에서 박차고 일어나 프랑스 국민들에게 ’분노하라’고 외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상황인가? 저자의 시각에서 한국을 바라보면, 한국의 사회 전반적인 상황은 ’분노’를 넘어 참여와 행동으로 나가도 한 참 나갔어야 할 상황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프랑스에 ’레지스탕스’가 있다면, 한국에는 ’87년 6월 항쟁’이 있다. 비록 ’레지스탕스’에 조금 모자란다고 비웃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감히 주장할 수 있다. ’87년 6월 항쟁’이 침몰하는 ’대한민국호’를 살려냈고 한국의 사회 각 분야에 민주주의와 국민의 권리를 되찾기 시작한 계기라고...
--------------------------- * 저자 스테판 에셀은 누구인가 ? -----------------------------------
1917년 독일 출생. 유대계 독일인 작가인 아버지, 화가이자 예술애호가인 어머니는 트뤼포의 영화 [쥘과 짐](Jule et Jim)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7세에 부모를 따라 프랑스로 이주하여 20세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다. 1939년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 선배 사르트르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으나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입대한다. 드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에 합류해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활약하다가 1944년 파리에 밀입국해 연합군의 상륙 작전을 돕던 중 체포된다.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으나 극적으로 탈출한다. 전쟁이 끝난 후 외교관의 길을 걷는다. 1948년 유엔 세계 인권 선언문 초안 작성에 참여하고, 유엔 주재 프랑스 대사, 유엔 인권위원회 프랑스 대표 등을 역임한다. 퇴직 후에도 인권과 환경 문제 등에 끊임없는 관심을 갖고 사회운동가로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세기와의 춤](1997), [국경 없는 시민 - 장 미셸 엘비그와의 대화](2008), [참여하라 - 질 반데르푸텐과의 대담](2011) 등이 있다. -----------------------------------
그렇다면 이 책의 무엇이 프랑스인들의 심장을 뛰게 만든 것일까? 프랑스 [르몽드] 지는 서평 1면에 ’전달의 몸짓으로서 더욱더 관심을 끄는 책’이라고 이 책을 소개했다. 레지스탕스의 노투사의 호소가 21세기의 젊은 세대에게로 70년 전 레지스탕스 정신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1943년 프랑스의 주요 레지스탕스 단체들은 반나치 투쟁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프랑스 레지스탕스 평의회’를 결성했다. 이 평의회에서는 1944년 3월 15일 프랑스 해방에 대비하여 새롭게 구성될 정부의 개혁안을 채택했다(본문 40쪽). 에셀은 이 개혁안이야말로 "자유 프랑스가 지켜나갈 원칙과 가치, 곧 프랑스 현대 민주주의의 토대가 될 가치"였다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이 시기에 구축된 것이 사회보장제, 퇴직연금제도, 공공재의 국영화, 대재벌의 견제, 언론의 독립, 교육권이었다. 그런데 반세기가 지난 시점에서 레지스탕스가 얻은 성과가 토대부터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불법체류자’들을 차별하는 사회, 이민자들을 의심하고 추방하는 사회, 퇴직연금제도와 사회보장제도의 기존 성과를 새삼 문제 삼는 사회"가 그의 눈에 비친 오늘날의 프랑스다. 저자는 선대 레지스탕스들이 나치에 저항하여 싸웠던 것처럼 젊은 세대가 "이런 모든 일들에 암묵적인 찬동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분노할 것을 주문한다.
그는 레지스탕스의 동기는 ’분노’였다고 규정했다.
에셀은 이 책에서 "분노하라!"고 외치고 있지만 그의 본의는 "참여하라!"다. 그는 자신에게 "분노의 이유들은 어떤 감정에서라기보다는 참여의 의지로부터 생겨났다"고 말한다. 그는 현대 사회로 오면서 분노의 대상을 찾기가 매우 힘들어졌다는 점은 인정한다. "분노의 이유가 오늘날에는 예전보다 덜 확실해 보일 수도 있다. 아니면 세상이 너무 복잡해진 것일 수도 있다. 누가 명령하며, 누가 결정하는가." 자신이 나치와 싸울 때처럼 투쟁 대상이 명확하지 않음은 이해한다는 것. 그렇더라도 그는 "이런 세상에도 참아낼 수 없는 일들"이 있으며, 각자 분노할 대상을 찾고, 그 분노를 밑거름 삼아 행동할 것을 주문한다. 집시들을 추방하는 프랑스 정부의 야만, 자본에 종속된 언론, 가자 지구를 포격하는 이스라엘 정부가 그 예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수밖에......" 이런 무관심이야말로 가장 나쁜 태도라고 나무란다. 세상에 대한 무관심이란 우리 "인간을 이루는 기본 요소"인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에셀이 ’분노’와 ’참여’를 말할 때, 그것은 폭력적 봉기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비폭력이라는 길을 통해 인류가 다음 단계로 건너가야" 하며, "비폭력의 희망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로 든 인물들은 넬슨 만델라와 마틴 루터 킹. 이렇게 보면 그는 평화주의자에 가깝다. 물론 그도 사르트르처럼 우리가 폭력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점은 수긍한다.
"자신이 지닌 무기와 비교도 안 될 만큼 우월한 무력적 방법에 의해 점령당한 쪽의 입장에서 보면, 민중의 반응이 꼭 비폭력적일 수만은 없다는 것"도 인정한다. 어떤 타격도 주기 힘든 로켓포를 끝내 이스라엘군에 발사한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몸짓’을 이해 못할 행위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테러리즘을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심정을 이해는 하지만 폭력으로는 어떤 희망적인 결과도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에셀이 여기서 말하는 비폭력이란 "속수무책으로 따귀 때리는 자에게 뺨이나 내밀어주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정복하고, 타인들의 폭력성향마저 정복하는 적극적인 행위로서의 비폭력이다."(p 27~34) 폭력적인 희망이란 없다." 이것이 폭력으로 얼룩졌던 20세기의 8할을 살아낸 인물의 결론이다.
한국 사회는 어떨까? 비정규직 비율 세계 최고, 청년실업, 갈수록 커져만 가는 빈부 격차,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급감하는 출산율, 치솟는 생활물가와 대학 등록금....... 이것이 프랑스보다 분노할 게 훨씬 더 많은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이 책의 한국어판 추천사를 쓴 조국 교수는 이 소책자가 한국 사회에도 큰 메시지를 던진다고 말한다. "1970~1980년대 (......) 민주화운동의 기본 동기는 실로 분노였다. (......) 당시 우리는 무엇을 꿈꾸었는가.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대통령,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등 대표자를 직선으로 뽑는 것, 시민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 야당과 자유로운 언론의 존재가 보장되는 것, 국가권력이 시민의 인권을 자의적으로 박탈하거나 제약하지 못하게 하는 것 등이 당시 우리들의 절박한 꿈이었다."(p.72~73)
우리에게도 4·19 민주항쟁, 5·18 광주민중항쟁, 그리고 6·10 민주항쟁처럼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분노의 역사가 있다. 긍정적인 ’분노’란 시대를 건강하게 지켜줄 수 있는 힘이다. 2000년대 들어서도, 그리고 지금도 우리 사회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 도저히 권력자의 오만을 두고만 볼 수 없을 때 시민들은 촛불시위의 형태로 분노를 표출했다. 분노 유전자는 우리 몸속에 흐른다.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 저자의 마지막 문장이다. 청년시절 나치에 분노했고, 그 분노의 힘으로 역사의 한 흐름에 참여하는 운동가가 된 에셀. 그는 마지막으로 젊은이들이 분노와 변혁의 중심에 설 것을 주문한다. "오로지 대량 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輕視),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만을 앞날의 지평으로 제시하는 대중 언론매체에 맞서는 진정한 평화적 봉기"를.
현대 자본주의 체제의 ’대량 소비’와 ’지나친 경쟁’을 경고하는 저자의 외침이 결국 지구 전체 구석구석을 침투하여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자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를 우리에게 묻고 있는 듯 하다.
’분노(憤怒)’라는 단어를 보면 학생시절의 나와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1980년대 당시 우리 세대들은 선배건, 동기건, 후배건 간에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분노’할 수 밖에 없는 일은 끝이 없었다. 일제 앞잡이들이 한국현대사를 주물렀던 역사에 대해, 군화발로 시민들을 학살하고 국가권력을 찬탈한 정치군인데 대해, 소련/중국과 대결하기 위해 한국을 자신들의 동북아 군사전진기지 겸 식민지처럼 삼아 광주학살에 동참한 미국에 대해, 노동자와 농민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재벌과 ’가진자’들의 배를 부르게 해주는 정부관료에 대해, 아무런 양심과 자책 없이 목숨을 연명하는 지식인들에 대해,...
소위 ’486세대’가 1980년대 군사정권과 목숨을 걸고 대학생이라는 기득권을 걸고 싸울 수 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동력은 조국과 민중에 대한 애정과 아픔, 새세상에 대한 희망도 있었지만 가슴 밑바닥에는 모두 ’분노’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 분노가 오랜 기간에 걸쳐 쌓이고 시민들도 함께 하면서 ’87년 체제’를 수립하는데 도움이 된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분노’와 열정은 어설펐고 제도적이거나 장기적이지 못했다. 우리 세대들은 1987년 항쟁의 열기가 지나고 그해 대통령 선거에서 ’양김’이 분열하면서 급속하게 사그라졌다. 우리 세대의 대부분은 ’직선제’와 몇 가지 정치적, 절차적 민주주의만 이루어 놓은채 다시 ’자신의 기득권’을 향해 나아갔다.
유럽의 ’68세대’들처럼 80년대 세대들은 그 ’분노’와 적극적으로 실질적 민주주의로, 경제 민주화로, 사회문화 등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정치권을 비난하고 비하하고 조롱하는 것으로 자기 역할을 다한다고 생각해 버렸다. 우리는 해방 후 40년 동안 한국을 망쳐놓은 온갖 과거사를 바로잡고 부정,부패,불법,불의한 세력을 일소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미래를 기약하면서 조직적으로 그 구조에 참여하지도 못했다.
결과는 그 뒤 10년 동안 정치계, 경제계, 언론계, 관료계, 법조계, 학계 등 각 분야에 진보와 민주주의를 심지 못했고 소중하게 얻은 결과물을 함량미달의 정치인들이, 탐욕스러운 재벌들이, 저널리즘도 모르는 조중동이, 보신주의와 무책임성으로 일관하는 관료들이, 자신들이 잘난줄 만 아는 법조인들이, 본분도 모르는 학자들이 가져가도록 방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요구에는 아랑곳 없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에 바빴고 재벌과 경제인들은 탐욕을 주체하지 못했고 관료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결국 그 10년의 결과는 정치에서는 ’보스정치’와 ’명사정당’의 확대재생산을, 경제에서는 IMF를, 언론에서는 조중동의 ’언론권력화’를, 관계에서는 ’극심한 관료주의’를, 법조계에서는 ’검찰권력’을, 학계에서는 부패하고 무능한 학자와 교수들을 양산했다.
그나마 이룩한 절차적 민주주의는 1997년과 2002년에 극우, 보수, 기득권 세력의 대표가 아닌 김대중 전대통령과 노무현 전대통령을 당선시키는데 기여했다. 그나마 그것도 아주 어렵게 만들어야 했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김종필이라는 보수반동 세력과 노무현 전대통령은 정몽준이라는 재벌, 기득권 세력과 손을 잡아야 했다.
그리고 80년대 세대와 그 전후 세대들, 노동계와 농민계, 빈민계와 여성계는 뿔뿔히 흩어져 각각 개별적인 단체와 정당을 조직하였고 자본과 기득권세력의 공세에 대응하는데 급급하기만 하였다. 기층 민중들과 시민들을 광범위하게 결집하지 못한 정당과 시민단체는 80년대에 만들어낸 소중한 권리를 20년 동안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고 국민들은 계속 양극화와 소득감소, 부동산 버블, 사교육 확대, 물가상승 등 수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했고...
한국의 헌법 체계에서 국민들, 민중들의 일상사와 주요 이해관계를 결정하는 것은 국가의 권력과 의사결정 구조다. 즉, 정치에서 멀어질수록, 무관심할수록 국민들, 민중들은 더욱 고통받을 수 밖에 없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진보개혁세력의 대변자라고 생각한 것은 우리의 착오였고 자기기만이었다. 수 천년의 인류 역사는 "조직되어 상호작용하지 않는 사람은 대변자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자신이 노력하지 않고, 싸우지 않고는 정부와 정치권에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두 분이 한국에서 1,2위를 다투는 정치지도자였다고 인정하더라도 그들 역시 부족한 부분이 있고 잘못한 것도 많다. 특히 정치조직, 시민조직과 호흡을 함께하지 않은 것은 매우 치명적이었다. 다시 말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국민들의, 민중들의, 486세대의, 노동자와 농민의 대변자가 되기 위해서는 같은 정치조직 안에 함께 묶여 있어야 했고 강력한 시민조직의 견제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유언이다시피 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는 절반은 맞고 절반을 부족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틀린 부분은 시민은 아무리 많이 조직되어도 스스로 국회에서 법령을 만들거나 바꿀 수 없고 정부정책을 만들고 집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조직과 시민조직을 함께 발전해야 하고 서로 긍정적인 작용을 하며서 필요할 때 견제해야 하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
* 책 속의 문장 :
-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는 분노였다. 레지스탕스 운동의 백전노장이며 ’자유 프랑스’의 투쟁 동력이었던 우리는 젊은 세대들에게 호소한다. 레지스탕스의 유산과 그 이상(理想)들을 부디 되살려달라고, 전파하라고. 그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총대를 넘겨받으라. 분노하라!"고. 정치계·경제계·지성계의 책임자들과 사회 구성원 전체는 맡은 바 사명을 나 몰라라 해서도 안 되며, 우리 사회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국제 금융시장의 독재에 휘둘려서도 안 된다.(p.15)
[ 2011년 6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