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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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에 따르면,
천지창조 초기에는 남녀가 오늘날과 전혀 달랐다고 한다.

하나의 몸, 하나의 목, 그리고 각자 반 방향을 바라보는 두 개의 얼굴이 있는 남녀 양성의 존재들만 있었다.
마치 두 피조물의 등이 붙어있는 것처럼 성기가 둘이고 팔 다리는 네 개씩...
그런데 질투심이 많은 신들이 그 피조물은 팔이 네 개라 일을 훨씬 많이 하고 얼굴이 두 개라 번갈아 잠을 잘 수 있는 바람에 몰래 공격할 수 없고, 다리가 넷이라 큰 힘을 들이지 않고서도 오래 서 있거나 먼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보다 그 피조물이 양성(兩性)이어서, 어느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번식할 수 있었다.
올림푸스 신전의 최고 주인 제우스는  ’나에게 저들의 힘을 빼앗을 방도가 있다’고 말하고는 벼락을 던져 그 피조물을 둘로 쪼개 남자와 여자로 나누었다.
이렇게 해서 지상의 인구는 훨씬 늘어난 반면, 그들은 힘을 잃고 방황하게 된다.
이제 그들은 잃어버린 반족을 되찾아 다시 결합해야만 예전의 힘, 습격을 피하는 능숙함,피곤과 일을 견뎌내는 지구력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두 개의 육체가 서로 뒤섞여 하나가 되는 결합, 그것을 ’섹스’라 한다.
 
하지만 그 피조물 중 일부는 재결합을 통해 에너지를 증가시키기는 커녕 빼앗기만 하는 다른 일들과 똑같은 일로 느겨지도록 했을까...
책 속 주인공은 이런 재결합을 ’매춘’이라고 한다.

주인공은 ’매춘’의 역사가 두 가지라고 했다.
하나는 통상적인 매춘...
어떤 아가씨가 자신이 선택한, 또는 다른 누군가가 그녀 대신 선택한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몸을 파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
고전 텍스트에도,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에도, 고대 수메르의 기록에도, 구약과 신약에도 창녀가 언급되어 있다.
직업으로서의 매춘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입법자 솔론이 국가에서 관리하는 공창(公娼)을 설치하고 ’살의 매매’에 대한 세금을 거두어들이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조직화되었다.
또 하나의 역사는 성(聖)스로운 매춘이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바빌론에 대한 글에서 ’수메르에서 태어난 모든 여성을 적어도 평생에 한 번은 사랑의 여신 이슈타르의 신전으로 가서 환대의 표시로 상징적인 돈만 받고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몸을 바친다’라고 했다.
이 여신 이슈타르의 영향은 중동 전역으로, 사르디니아, 시칠리아, 지중해의 항구까지 이루었고 로마의 여신 베스타는 철저히 순결을 지키거나 아니면 누구에게든 몸을 줄 것을 요구했다.
베스타 신전의 무녀들은 성스러운 불을 유지하기 위해 청년들과 왕들을 성(性)에 입문시키는 역할을 했고...
그 성스러운 매춘은 2000년 동안 지속되다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고 한다.
 
이 책은 작가의 이전 작품과 사뭇 다르면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있다.
다른 점은 기존의 작품들이 자아나 사랑, 성령 등에서 희망이나 신화를 찾고자 했지만 이번 작품은 아주 통속적인 소재인 성(性)을 주제로 한 점이고
비슷한 점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세상과 삶을 바라보고 영적인 삶과 고민을 주제로 했다는 점이다.
 
작가는 브라질 태생의 10대 후반 처녀의 성 입문과정을 통해 몸과 마음의 화해, 영적 자기 발견을 내밀하게 표현했다.
이 책은 2003년에 출간되어 유럽, 남미 등에서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을 누르고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제목 ’11분’은 성 행위의 평균 지속시간을 의미한다.
인간에게 사랑과 성이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성에 성스러움이 담길 수 있는가, 그 성스러움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오래 전부터 성에 대한 소설을 구상하고 있었지만, 늘 실패로 끝났다고 한다. 그러다가 2000년에 젊은 시절 창녀라는 직업에 종사한 적이 있는 한 여성과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이 소설이 구체화되었다고...
 
출판사의 책 자랑은 "사랑을,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이만큼 내밀하게 담은 책은 없었다"로 요약된다.
작품의 줄거리는,
브라질의 한 시골도시에 마리아라 불리는 한 젊은 처녀가 있다.
열한 살 때 이웃 남자아이를 짝사랑했지만 소년이 건넨 말을 마음에도 없이 외면해버린 후 그와 다시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한 채 떠나보내고 만다.
이후 10대 시절 남자친구를 사귀지만 가장 친한 친구에게 빼앗겨버린 후 사랑이란 고통만 줄 뿐이라고 여기게 된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 직물 가게 점원으로 일하다 리우데자네이루로 짧은 휴가여행을 떠난 그녀는 그곳에서 한 외국 남자로부터 유럽에서 연예인으로 성공하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부와 모험을 위해 스위스 제네바로 떠난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일은 몸을 파는 일.
마리아는 새로운 세계 앞에서 비틀거리는 대신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서 자신을 지켜나가면서 자신이 깨달은 것을 기록해나가기 시작한다.
몇 개월이 지난 후 우연히 들른 한 카페에서 그녀는 그녀에게서 ’빛’을 보았다는 한 젊은 화가를 만나게 되는데...
 
이 작품 속에서의 주인공의 어렸을 때 성(性)에 대해서는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고 교육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열려있는 사회구조와 문화 속에서 성(性)에 대해 이런 작품을 쓸 수 있고 그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상황은 서구의 장점이라 하겠다.
서구와 달리 동양이나 한국에서의 성(性)은 아직 ’금기’스러운 주제이기 때문에 깊이있게 다루는 작품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문화가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지만, 점점 성 범죄가 늘어만 가는 사회분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소유하지 않은 채 가지는 것"
작가는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진정한 자유라고 말한다.

[ 2010년 10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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