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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과 지식인
한완상 / 정우사 / 1989년 12월
평점 :
품절
공부모임 100회 특집 ’내 인생의 책’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때는 1985년 6~7월 경이었다. 대학 신입생이 된 후 처음 맞이한 방학 기간이었다. 본디 6월 하순에 과학생회에서 진안군으로 농촌활동을 떠나는 일정이 있었고 나는 먼저 고향에 내려간 후 시간에 맞추어 익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함께 농촌활동에 참여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농촌활동에 참가하지는 못했고 고향에 틀어박혀 시간만 때웠다. 그 와중에 읽은 것이 선배로부터 선물받은 이 책이었다.
당시의 내 지적 수준이라는 것이 형편 없는 상태였기에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한 것으로 기억한다. 책을 1/3 가량 읽은 후 머리가 복잡하여 덮어버렸다. 어렵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단어와 개념 하나하나가 생소하고 낯설었다. 그래도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성미였는지 책을 선물해준 선배에게 무엇인가를 물어보기 위해 엽서를 보냈다. 답장은 오지 않았고. 그렇게 책을 덮고 나서 나중에 3학년이 되어서 다시 읽었다.
이 책은 ’엽서’라는 매개를 통해 그 선배와 나를 엮었다. 나는 선배에게 엽서를 보낸 사실도 까마득하게 잊어버렸고 선배 역시 한 동안 책과 엽서에 대해 나에게 아무런 애기도 하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난 후, 어느 술자리에서 선배는 엽서 이야기를 꺼내며 나를 나무랐다. 내가 보낸 엽서의 내용은 조금 구구절절한 이야기인데, 가장 핵심적인 질문 중 하나가 "민중이 무어냐?"였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회과학적, 역사적 의식이 전혀 없던 신입생으로서는 저자가 정의하는 ’민중’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무튼, 1985년이면 전두환 군사정권이 시퍼렇게 눈을 번득이며 사상과 양심의 자유,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압살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입생 하나가 선배에게 공개된 엽서 뒷장에 ’민중이 무어냐?’라고 써서 보냈으니 선배가 잔뜩 쫄아서 기가 막혔을 것이다. 당시 이 책은 ’금지도서’ 리스트에 올라 있었고 ’민중’이라는 단어도 ’금지된 단어’였다. 그것도 그 엽서의 수신처는 선배 집이 아니라 과사무실이었다.ㅋㅋ
그렇게 이 책과 인연을 맺었고 민중, 지식인, 지식기사, 자유, 평등, 노동자, 자주, 통일, 종교 등에 대한 개념은 나에게 1학년 내내 화두이자 고민거리였다. 그렇게 개념을 터득하고 배우고 익히며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배워야 할지에 대한 나 스스로의 가치관을 세우고 살아나가는데 있어 이 책도 큰 역할을 한 셈이다.
-------------- * 한완상(韓完相, 1936년 3월 5일 生)은 누구인가? ----------
사회과학자, 행동하는 양심, 자원봉사자의 본보기가 되는 한완상. 그는 교육계, 정치계, 학계, 종교계를 넘나들며 참 지식인상을 보이고 있으며, 한국 사회와 교계의 환부를 예리하게 진단, 처방하는 소명을 다하고 있다. 엄혹했던 현대사의 격랑으로 두 번의 해직과 수형 생활을 겪어야 했지만, 힘의 논리 위에 서 있는 ‘평화 지키기’보다 나눔과 비움을 통해 세우는 ‘평화 만들기’를 끝까지 주창한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6.25 전쟁을 경험하고, 껍데기뿐인 민주주의로 말미암아 독재와 비리, 사회의 부조리를 일찍부터 경험했기에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치료하는 예수 같은 의사’ 곧 소셜 닥터(social doctor)의 길이 그에게는 거역할 수 없는 소명이었다. 그 이력은 높고 범상치 않으나 지향점은 항상 ‘낮은 곳’이었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에모리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유니온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서울대 문리대 교수, 한국방송통신대학교와 상지대 총장,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대한적십자 총재를 역임했다. 저서로 <예수 없는 예수 교회>, <현대사회와 청년문화>, <지식인과 허위의식>, <대학생이 된 당신을 위하여> 등 다수가 있다. ------------
이번에 중고책으로 구해서 다시 읽어보니 대학생 시절에 내가 제대로 책을 읽지 않았던 것 같다. 책 내용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전체 4개의 장 중에서 첫 번째 장에 불과했다. 책은 그동안 내가 어렴풋하게 기억하는 것보다도 훨씬 깊이도 있고 내용도 충실하다. 국가와 사회, 시대와 역사, 민중과 지식인, 대학과 대학생, 학문과 교육, 종교와 교회, 젊은이와 문제의식, 제국주의와 제3세계, 여성과 차별 등 1970년대에 한국이 처해있는 모든 사회적, 시대적 문제와 과제들에 대해 저자가 풀어놓은 문제제기와 방향은 놀라운 수준이다.
제1장. [민중과 지식인]에서 저자는 민중, 지식인, 사회과학 등 중요한 개념을 정의한다. "정치적 통치수단과 경제적 생산수단과 사회문화적 군림수단으로부터 소외되어 부당하게 억압받고 빼앗기고 냉대받는 사람들이 바로 ’민중’이다."(p.14) 따라서 민중의 대립개념은 지배엘리트다. 민중을 성격으로 분리해보면 즉자적 민중과 대자적 민중이 있다. 그리고 저자는 지식인을 ’유토피아’의 정열을 가진 대자적 민중으로 정의하면서 민중에 포함시킨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의 창조와 분배와 보급을 하는 사람은 둘로 나뉜다. 그것은 지식인과 지식기사다. 지식기사는 지식의 분석과 관찰에 그칠 뿐 인간과 사회의 아픔에는 무관심하다. 사실은 말하되 진실을 증언하지 않는 비겁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지식기사는 지배집단의 조역이나 주역으로 자리하게 된다. 지식인은 일상성의 세계의 두꺼운 뚜껑을 열어보려, 꿰뚫어 보려고 한다. 따라서 지식인은 민중과 사회의 아픔을 공감하고 진실을 증언하며 의식화되지 못한 즉자적 민중을 의식화된 대자적 민중으로 승화시키는 일을 사명으로 생각하는 대자적 민중이다. "오늘을 사는 한반도의 지식인들은 민중의 사람들로서 민중이 주체가 되는 역사를 만드는 일에 온갖 힘을 다 바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민중이 주인이 되는 사회, 정치, 경제구조를 엮어가는 일에 마음과 뜻을 다 바쳐야 할 것이다."(p.31)
제2장. [이 땅의 젊은이와 문제의식]에서 저자는 편지글의 형식을 빌려 젊은이들에게 주어진 현상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질 것을 주문한다. 중고등학교의 군사적,제국주의적 시스템, 사회 전반의 전체주의적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호연지기를 기르고 상대방의 이견을 경청하고 이성적으로 비판할 것을 당부한다. 그러면서 지도자가 될 젊은이들은 민중과 여론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하며, 여론의 심판보다 역사의 심판이, 역사의 심판보다 진실의 심판이 더 무섭다는 것을 강조한다.
젊은이들을 무자비한 경쟁자, 영악한 개인주의자, 호연지기나 의분심을 상실한 창백한 기능주의자, 원칙 없이 적응만 잘 해나가려는 요령주의자로 변질시키고 있는 현실에서 내일의 엘리트가 되어야 할 젊은이들이 옳으냐 아니면 그르냐의 도덕적 질문을 던질 것을 당부한다. 또한 역사 이래 한국의 여성들이 억압받고 길들여져온 현실을 깨닫고 여성들이 ’현모양처’의 허위의식에서 벗어나 민중을 중심으로 여성의 지위향상과 여성해방을 위해 나설 것을 주문한다.
저자는 또한 학생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그 방향은 학생운동이 기성세대의 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 남북 분단 상황에서 스스로 오해받을 구실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 조국통일에 대한 뜨거운 정열과 날카로운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 민주화와 사회적,경제적 평등을 중심으로 삼아야 하는 것 등이다.
제3장 [학문, 교육, 사회]에서 저자는 한국 교육의 부조리와 대학의 이념이 실종된 상황에서 사회에 필요한 학문과 교육의 방향을 제시한다. 한국의 교육현장이 학생들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파괴하고 있고 이타주의적이고 공동체적인 것을 파괴하고 경쟁위주의 이기주의자를 양성하고 있다. 자유, 정의, 진리 등을 이념으로 삼고 연구, 교수, 사회봉사를 기능으로 삼는 대학이 스스로의 이념과 기능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공동체마저 파괴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에 따라 대학이 연구만 하는 연구소로 전락하거나 교육이 아닌 교수만 하는 강습소로 전락하고 국가에 통제되어 이데올로기나 PR 제조공장이나 사회인력조달소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저자는 대학이 자신의 상황을 수정하고 개선 발전시킬 자유를 지녀야 하고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인력을 길러야 한다. 저자는 또한 한국 사회가 뿌리깊게 가지고 있는, 척결해야 할 병폐로 이분법적인 사고양식과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관용의 부족, 권위주의의 횡행, 주체성과 유연성의 상실, 체면 치례와 허위의식 등을 지적한다.
제4장 [이 시대와 이 상황의 의미]에서 저자는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30년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압축적인 개발과 성장을 지상구호로 삼아온 것에 대한 폐해를 먼저 지적한다. 그러한 폐해는 사회 전반적으로 속도 지상주의와 능률 지상주의, 외형적 성장으로부터 발생하고 있으며 비극으로 향하고 있음을 우려한다. 성장의 달콤한 열매는 전체적인 민중이 아니라 소수의 지배 엘리트와 기득권자에게 돌아가고 있음이 명백하다.
TV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있던 1970년대의 사회상황에 대해 저자는 크게 우려하고 있다. TV가 대중적인 소비욕구를 결정적으로 자극하고 있고 지배엘리트가 공중파 언론을 독점하여 대중을 우민화하고 상대적 불행감을 자극하여 사회불안을 조성하고 각종 비행과 범죄를 유발시키고 가족안의 인간관계를 둔화시키고 사회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인간의 가치관을 혼란시킨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한국이 나아갈 길로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함을 주장하면서 그 중심 주제가 민족주의와 민주주의, 사회적 평등의 가치를 제창한다.
이 글이 1970년대 폭력적인 파시스트로 널리 알려진 박정희 군사정권의 유신시대에 쓰여졌기에 저자가 단어와 문단을 풀어나가는데 있어 많은 애로가 있었음이 행간마다 읽힌다. 그럼에도 책 속에는 저자가 사회와 대중에게 발언하고 싶은 내용, 젊은이들에게 문제제기하고 제시하고 싶은 내용을 모두 담고 있다. 그동안 후배들에게 꾸준히 이 책을 소개하지 못한 것이 부끄럽고 아쉽다.
저자가 처음 이 책을 발간한 시점이 1978년이고 발간한 이유를 "민중이 역사와 구조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의 문제를 생각하면서 틈틈히 썼던 글을 모아 하나의 책으로 만들어 보았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판매 금지 도서 목록이 사라진 후 어느 정도 서점에서 판매된 다음에 현재 절판되었다. 그렇다면 저자가 책을 발간한 이유가 한국에서 사라졌을까? 민중의 한국사회의 주역이 되었는가? 아직 그렇지 않다. 저자가 소박하게 정의하고 문제제기한 민중을 둘러싼 사회적, 역사적 상황은 크게 변하지 못한 상태다. 한 때는 민중보다는 계급이 더 앞서기도 했고 이제는 민중이라는 개념과 정의보다 시민이나 국민이 사용되고 있다. 그만큼 한국 사회의 사회적, 역사적 의식은 아직도 전근대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라는 뜻일 것이다.
어제 광주 518 민중항쟁 기록에 대한 책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서평을 썼다. 광주민중항쟁은 518 사건이라는 단일한 역사의 주인이 민중임을 증거하고 있는 책이다. 극우보수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 분단 이데올로기를 넘어 민중이 역사의 주인이 되기 위해 먼저 ’민중’이라는 단어가 사회적, 역사적인 제자지를 찾는 것도 우선 과제라고 생각한다.
[ 2011년 6월 09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