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보름 전인가... 친구와 점심을 먹다가 전날 화장실에서 잠시 읽으려고 이 책을 들고 갔다가 결국 꼴딱 밤을 세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책을 읽기로 마음 먹었다.
내가 이 책을 보고싶다고 Facebook에 메시지를 남기자 대학선배가 즉시 선물해주어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작가의 ’작가정신’이 이루어낸 작품이다.
여러 문학평론가와 언론에서는 이 작품을 극찬하지만, 나는 이 작품이 많이 아쉽다.
내가 아쉬웠던 것은 이 작품이 한 권으로 끝나서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내가 작가의 전작 [태백산맥]과 [아리랑], [한강]에 대한 기억이 강렬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쉼이 큰 진짜 이유는 작가가 담고자 하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처럼 한 권으로는 절대 끝날 수 없는, 장구하고도 깊숙한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 때문이다.
 
"인간의 인간다움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하는 문학은 이제 그 물음과 응답 앞에 서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작가의 ’작가정신’과 ’시대정신’은 작가의 초기 작품인 [불놀이], [대장경]에서부터 대하작품인 [태백산맥]과 [한강]까지, 그리고 그 이후 작품인 [인간연습]과 [오, 하나님]까지 초지일관 이어진다.
이런 작가정신은 김지하씨와 같은 다른 문인, 작가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지이자 정신이다.
한국이 낳은 최고의 작가, 세계 어느 작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명품’이라 할 수 있다.
 
조정래씨에 앞선 세계적인 문인들 역시 작가와 비슷한 정신을 간직하고 있었던 듯 하다.
톨스토이는 ’진정한 작가이길 워하거든 민중보다 반발만 앞서가라. 한 발은 민중 속에 딛고.’라고 했고
타고르는 ’진실과 정의 그리고 아름다움을 지키는 것이 문학의 길이다’,
빅토르 위고는 ’작가는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해야 한다’,
노신은 ’불의를 비판하지 않으면 지식인일 수 없고, 불의에 저항하지 않으면 작가일 수 없다.’
다산 정약용은 ’나랏일을 걱정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요, 어리저운 시국을 가슴 아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료, 옳은 것을 찬양하고 약한 것을 미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다.’라고 했다.
 
동시에 작가는 21세기 한국의 새로운 화두에 나섰음을 선언한다.
그는 정치의 민주주의 뿐 아니라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경제 민주주의 역시 실현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책을 통하여 작가는 대한민국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천민자본주의와 기업비리들을 고발한다.  

작가는 연재 시작 전 계간 [문학의문학](2009. 여름호)과 한 인터뷰 대담 자리에서 차기작에 대한 계획을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이 세상의 모든 문학 작품은 모국어의 자식이다. 따라서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그 시대, 그 사회의 모순과 비극을 써야 할 책임이 있다. 그것이 모국어의 나라에 빚 갚음하는 작가로서의 책무이다. …… 자본주의의 천박성에 전 세계가 휘말리고 있다. 돈에 환장하는 인간들의 작태를 스케일 크게 집필할 계획이다. 각 분야 지배 계층들의 조직적 결탁과 그들의 위선, 그리고 그 횡포와 돈을 쫓는 각축에 대해 구상 중이다.”라고..
이 책은 그런 약속 끝에 세상에 나왔다.

작가도 책의 서문에 이야기했듯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도 ’우울’하였다.
이 책 속의 이야기는 마치 ’삼성그룹’과 ’현대그룹’이나 ’SK그룹’을 빗대어 말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태봉그룹의 비밀조직의 핵심인 박재우를 일광그룹에서 그의 대학 후배인 강기준을 통해 영입한다.
그동안 태봉그룹은 치밀한 조직과 년간 1조원 가량의 비자금으로 언론계, 정계, 법원, 검찰, 국세청, 정부, 학계 등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탈세와 비자금 조성, 불공정 거래 등을 법과 언론의 화살을 피했다.
일광그룹의 남회장은 자신이 태봉그룹 수준이 아닌 통상적인 로비 정도에 그쳤기 때문에 자신이 검찰에 구속되어 구치소에 들어갔다 온 것으로 생각하여 태봉그룹을 넘어서는 대대적인 작전을 계획하게 된다.
대략적인 스토리는 일광그룹이 박재우에 대한 스카우트를 성공시킨 후 박재우의 전략에 따라 국정원, 국세청, 검찰, 정부, 언론계의 주요 인사들을 추가 스카우트하고 년간 1조원이 넘는 비자금을 조성하여 뿌려댄 결과, 시민단체와 정의로운 교수들의 고발과 문제제기를 피해나가게 된다.
재벌가의 주요 등장인물로 일광그룹의 남회장, 비서실장이자 ’문화개척센터’ 총본부장 윤성훈, 기획총장 박재우, 실행총무 강기준, 김종석 실장, 검사 출신 신태하 팀장, 국세청 서기관 출신의 정민용 팀장 등이 등장한다.
이들의 생각과 태도, 전략과 방식, 말과 행동에서 썩어빠질대로 썩은 재벌가의 역사인식과 사회의식, 황금만능주의와 결과만을 중시하는 무한경쟁, 태연한 부도덕과 불법행위는 한편으로는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을 확인시켜 줌과 동시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돈과 지위 앞에 신뢰나 의리를 휴지처럼 내팽켜치는 재벌가의 구성원들 모습은 이야기의 마지막에 강기준이 다른 재벌그룹으로 이직하는 것으로 극단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다행히 작가는 아무리 재벌과 정치권, 법조계와 언론계, 관계와 학계가 썩어있을 지라도 그 속에 남모르게 순리와 정의, 진실과 인간중심주의, 신뢰와 의리를 지켜나가고 불의와 싸우는 사람들을 등장시킨다.
그들의 자그마한 노력 하나 하나가 모여 사회의 썩은 웅덩이를 치우고 암과 같은 폐해를 도려낼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작가의 말...
"우리의 자본주의는 60년이 넘었고, 경제발전의 역사는 50년을 헤아린다. 우리는 세계를 향하여 ‘정치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룩해 냈다’고 자랑한다. 세계 또한 ‘2차 대전 이후에 제3세계 중에서 정치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룩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며, 그건 20세기 기적 중의 하나다’라고 평가한다.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성취한 것은 분명 우리 모두의 긍지이며, 맘껏 자랑해도 자만일 것 없는 우리들의 떳떳한 자존심이다."
 
* 새로 배운 한글
- 두물머리 : 두물머리[兩水里]는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북한강과 강원도 금대봉 기슭 검룡소(儉龍沼)에서 발원한 남한강의 두 물이 합쳐지는 곳이라는 의미이며 한자로는 ’兩水里’를 쓰는데, 이곳은 양수리에서도 나루터를 중심으로 한 장소를 가리킨다.
- 가직하게 : 거리가 조금 가깝다.
- 땅띔 : 무거운 물건을 들어 땅에서 뜨게 하는 일.
- 보비위 : 남의 비위를 잘 맞추어 줌.   

[ 2010년 10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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