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 인디언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법
류시화 지음 / 김영사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나에게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한 인식은 일찍이 신석기~청동시 시대에 아시아에서 얼어붙은 북해 바다를 넘어 이주해간 사람들, 유럽의 이주자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하고 자신의 땅 거북이섬(아메리카)에서 쫒겨난 사람들, 소규모 공동체를 이루어 자급자족한 원시공동체 정도에 그쳤다. 미국을 중심으로한 서구의 책과 영화, TV 드라마 등 서구문화는 아메리카의 역사를 잘 모르는 우리들에게 '아메리카 인디언'은 '머리가죽'이나 '귀'를 잘라서 보관하는 흉폭한, 짐승같은 종족, 문화와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미개인이라고 주입시켜 왔다.
 
나 역시 어려서부터 [O.K 목장의 결투]류의 서부영화나 각종 오디오, 비디오물을 통해 그렇게 '의식화' 되었다. 대학에 들어간 후 내 눈에 보이고 들리는 것과 사실, 진실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고 유럽의 역사나 미국의 역사가 피로 점철된 정복과 만행의 역사임을 알아가면서도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지는 못했다. 영화 <늑대와 춤을>을 본 후에도 그랬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라스트 모히컨]을 10번 이상 보면서도 '서유럽 이민자들이 아메리카를 지옥으로 만들었다'라거나 '좋은 인디언도 있고 나쁜 인디언도 있다'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책은 나의 뇌 세포와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던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한 많은 선입관과 불확실한 생각들을 서서히 깨트려 주었다. 내가 어설프게 알고 있었던 상황은 대부분 서유럽과 미국 정치가들과 지식인들이 조작하여 퍼트린 거짓에 불과했고 원주민, 즉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지구상 어느 종족이나 민족보다 뛰어난 정신문명과 사회제도, 도덕과 문화를 이룩하면서 살고 있었다. 아메리카의 학살과 수탈을 거쳐 이룩한 서유럽 국가들과 미국의 '문명'은 그들 스스로 '반문명'과 '비문명'을 감추기 위한 허세와 선전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역사에서 가정을 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리석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유럽 이주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아메리카 원주민이 이주민들을 쫒아낼 수 있었다면, 서유럽 제국들이 원주민들의 문화와 제도를 받아들이거나 보호했다면 인류 역사는 지금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원 전 수 천년 전부터 20세기까지 동서양의 인류역사가 보여준 착취와 학살, 탐욕과 폭력, 전쟁과 정복, 계급과 노예, 빈곤과 부패, 거짓된 종교와 정치, 과잉생산과 자연파괴, 소외 등으로 점철되었다면,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그와 정반대의 생활과 문화를 보여준다.
 
그들의 정신과 문화는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 중 일부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제목은 "어떻게 공기를 사고 판단 말인가"...

 "우리가 어떻게 공기를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판단 말인가? 부드러운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또한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사고팔 수 있는가? 햇살 속에 반짝이는 소나무들, 모래사장, 검은 숲에 걸린 안개, 눈길 닿는 모든 곳, 잉잉대는 꿀벌 한 마리까지도 우리의 기억과 가슴속에서는 모두가 신성한 것들이다. 그것들은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다……."  

'인디언 연설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수콰미쉬족과 두와미쉬족의 대표인 시애틀 추장의 연설이다. 이 연설은 1854년 미국 땅을 점령한 백인들이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을 강요된 보호구역으로 밀어 넣기 위해 시애틀의 '퓨젓 사운드'에 도착했을 때 행해진 것으로, 세계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짐작케 해준다.(미국의 도시 이름인 시애틀 Seattle은 시애틀 추장의 원래 이름인 씨앨트 Sealthe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미국의 지명과 인명 중에는 원주민의 언어에서 따온 것들이 많다.) 그들에게 세계/자연이란 사고 팔거나 혹은 소유하는 대상이 아닌 함께 하는 존재였다. 
 
이처럼 이 책에는 인디언 추장들의 이러한 연설문 41편과 저자 해설과 어록 그리고 100여 점의 사진 등이 실려 있는데, 그들의 연설은 매우 단순한 반면 호소력 또한 강하다. 모두 몇 백년 전의 글들이지만 오히려 오늘날에 더욱 절실한 말들이기도 하다. 시애틀 추장, 조셉 추장, 앉은 소, 구르는 천둥, 빨간 윗도리, 검은 새, 열 마리 곰... 이들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운 위대한 인디언 전사들이다. 그들의 연설은 단순하면서도 매우 시적일 뿐만 아니라, 문명인임을 자랑했던 당시 백인들, 그리고 몇백년이 지난 지금에 사는 우리들의 위선에 찬 삶과 공허한 정신세계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또한 41편의 연설문 속에는 자신들의 세계와 생명의 근원인 대지가 여지없이 파괴되는 것을 지켜보던 인디언들의 슬픔과 지혜, 그리고 비굴하지 않은 당당한 종말이 그대로 녹아 있어, 읽는 이의 가슴에 진한 감동을 준다.
 
저자 류시화 시인이 15년 동안 매년 미국으로 날아가 도서관에 잠자고 있던 수백 점의 자료를 뒤져가며 완성한 920페이지라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인디언의 역사책이자 '대지는 곧 어머니'라는 그들의 믿음체계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날, 대지를 갈아엎은 오만한 문명들에 내쫓겨 그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은 인류의 희망이 그 만큼 멀어져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먼저, 사실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유럽에서 신세계를 찾아 떠나온 이주자들이 처음부터 북아메리카 대륙에 이르렀을 때 그들이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대륙에 이방인으로 표류하다 '도착'한 것이다. 거북이섬 아메리카에는 유럽만큼 오래 전부터 또 다른 인류가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학자들은 처음 서유럽 사람들이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무렵 수 천개의 부족으로 나누어진 500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서유럽 국가들의 학살과 전염병으로 1910년에는 그 수가 22여 만명으로 줄어들었다.
1620년 12월 21일, 왐파노그족 마을 폴리머스 해안으로 유럽에서 떠내려온 '메이플라워호'가 떠내려 왔다. 배 안에는 120명의 승객(청교도)이 발 디딜 틈도 없이 타고 있었다. 4개월간 배 안에서 살다가 절반이 죽었고 남은 일부 사람들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식량과 약초, 주거지와 경작지를 나누어주는 덕택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월등한 성능을 갖춘 무기와 군대가 아니라 인디언들이 면역력을 채 키우지 못한 전염병, 속임수와 거짓 덕분이었다.
운디드니 대학살(Wounded Knee Massacre) : 1890년 12월 29일 기관총 등으로 무장하고 있던 제7기병대 500여명은 수족을 무장해제하던 중 1명의 수족 용사가 칼을 놓지 않는다는 이유로 총격을 가해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 200명 이상의 수족을 죽이는 대량 학살을 감행했다.
이 이외에도 책 속에는 1500년대 이후 북아메리카 및 중남미 아메리카에서 실제로 일어난 많은 일화와 사건들이 속속들이 들어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많은 유럽인, 미국인들이 거짓을 일삼고 금과 피에 굶주렸는지, 얼마나 많은 원주민들이 고통을 당해왔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삶과 철학과 종교를 알았고 배웠다.
그들은 자연을 존중했다. 동물과 식물은 위대한 정령이 주신 선물이며, 인간은 감사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인간에게 음식과 옷이 되어주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약초를 캘 때도 먼저 그 약초의 추장인 그 지역의 가장 큰 약초에게 선물을 바치고 허락을 구했다. 만일 부탁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 지역을 떠났다. 허락을 받는다 해도, 처음 발견하는 일곱 개의 약초는 손대지 않았다. 약초들이 계속 번성하고 다음 세대가 그것을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자신이 믿는 신과 곧바로 얼굴을 맞대고 살았다. 그들에게는 자신들과 영적인 세계 사이에 따로 성직자가 필요 없었다. 누구나 홀로, 그리고 침묵 속에서 신과 만났다. 신이 주는 계시는 오직 그 사람 자신만이 받을 수 있다. 따라서 각자 신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해야 한다. 또한 누구도 다른 사람의 개인적인 믿음을 침범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음식은 신성한 것이지만,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는 것은 죄악이다. 사랑은 좋은 것이지만, 탐욕은 사람을 망치는 것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난 인디언은 모카신을 신고 물가로 걸어나간다. 그곳에서 맑고 시원한 물 한 웅큼을 얼굴에 뿌리거나 물 속에 몸 전체를 담근다. 몸을 씻고 난 후 밝아오는 새벽을 향해 똑바로 서서 지평선 위로 춤추며 떠오르는 태양에게 말없이 기도한다.
그들엑 침묵은 위대한 신비 그 자체이다. 성스런 침묵은 신의 목소리이다. 침묵의 열매는 자신을 다스리는 힘, 진정한 용기와 인내, 위엄, 그리고 존경심이다. 침묵은 인격의 받침돌이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강한 자기 존중과 함께, 가족과 부족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절제된 생활에 대한 훈련을 받는다.
그들은 소유에 칩착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믿는다. 물질적인 길을 뒤쫒으면 머지않아 영혼이 중심을 잃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자비심의 미덕을 가르치고 자기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남에게 주도록 가르침을 받으며, 그래서 일찍부터 주는 것을 기쁨을 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세계관은 한마디로 '미타쿠예 오야신'으로 정의할 수 있다.
"미타쿠예 오야신", 이것은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또는 모두가 나의 친척이다’라는 뜻의 다코타 족 인디언들 인사말이다. 매우 간결하면서도 심오하게 우주에 대한 이해를 표현하고 있는 말로서, 인디언들의 정신과 삶의 방식을 한마디로 잘 나타내주는 가장 핵심적인 말이다. 몇 글자밖에 안 되는 짧은 단어 속에는 생명 가진 모든 존재가 다 담겨 있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인디언들의 그 인사말 속에 포함되어 있다.
 
[ 연설문 목록 ]
- 어떻게 공기를 사고판단 말인가 : 시애틀 추장
- 이 대지 위에서 우리는 행복했다 : 빨간 윗도리
- 연어가 돌아오는 계절 : 시애틀 추장
- 미타쿠예 오야신 : 오히예사
-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 : 오히예사의 삼촌
- 고귀한 붉은 얼굴의 연설 : 조셉 추장
- 평원에서 생을 마치다 : 열 마리 곰
- 내 앞에 아름다움, 내 뒤에 아름다움 : 상처 입은 가슴
- 말하는 지팡이 :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추장
- 이 대지가 존재하는 한 : 테쿰세
-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 텐스콰타와
- 대지를 사랑한 것이 죄인가 : 검은 매
- 콜럼부스의 악수 : 쳐다보는 말
- 말과 침묵 : 서 있는 곰
- 우리는 가난하지만 자유롭다 : 앉은 소
- 당신들은 결코 만족할 줄 모른다 : 메테아
- 나비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 나비에 대한 인디언들의 이야기
- 나는 왜 거기에 있지 않고 여기에 있는가 : 어느 인디언 여자
- 이름으로 가득한 세상 : 느린 거북
- 우리는 언제나 이곳에 있어 왔다 : 샤리타리쉬
-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 붉은 구름
- 자유롭게 방랑하다가 죽으리라 : 사탄타
- 겨울 눈으로부터 여름 꽃에게로 : 구르는 천둥
- 시간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 제임스 페이티아모
- 부족의 어른이 말한다 : 방랑하는 늑대
- 나는 왜 이교도인가 : 붉은 새
- 내가 흘린 눈물만 모아도 가뭄은 없다 : 후아니타 센테노
- 나는 노래를 불렀다, 인디언의 노래를 : 단 조지 추장
- 집으로 가는 길 : 파란 독수리 깃털들
- 좋은 약은 병 속에 담겨 있지 않다 : 미친 곰
- 기억하라, 이 세상에 있는 신성한 것들을 : 토머스 반야시아
- 마음과 영혼과 육체 : 비키 다우니
- 나는 인디언이지 캐나다 인이 아니다 : 홀로 서 있는 늑대
- 꽃가루를 뿌리면 비가 내렸다 : 아사 바즈호누다
- 인디언들이 아메리카에 전하는 메시지 : 이로쿼이 인디언 선언문
- 아메리카는 언제 재발견될 것인가 : 브루키 크레이그
- 여기 치유의 힘이 있으니 : 라모나 베네트
- 야생이란 없다, 다만 자유가 있을 뿐 : 오렌 리온스
- 독수리의 여행 :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인디언
- 아메리카 인디언 도덕률 : 인터트라이벌 타임스
- 인디언 남자들의 일곱 가지 철학 : 아메리카 원주민 남자들 모임
- 인디언 달력 : 열두 번의 행복한 달들
- 인디언 이름 : '빗속을 걷다'와 '상처 입은 가슴 
 
연설문 모두가 하나 같이 가슴을 울리고 전율을 느끼게 한다. 오히려 문자와 문장이 말과 연설을 방해하는 듯 하다. 그들의 삶과 문화는 세계 어느 민족이나 종족보다 더 위대하고 심오하다. 우주는 무엇이고 인간이란 무엇인지, 왜 우리가 살아가는지, 어떻게 살아야할 지에 대한 질문과 의문들에 대한 대답과 깨우침이 들어 있다. 세계화와 빈부격차, 전쟁과 학살, 기후변화와 자연파괴 등 현대 문명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제기와 해답의 열쇠가 인디언의 삶과 세계관에 담겨 있는 것 같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의 품안으로 돌아가는 진정한 현자들인 얼굴 붉은 사람들(아메리카 원주민)은 우리에게 문명인 아니 인간들이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의 근본과 삶의 교훈을 가르쳐 준다. 또한 우리가 진정 누구이며 무엇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왜 이번 생에 왔는지, 이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도 주고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오랜 침묵의 목소리는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들의 오래된 지혜의 목소리, 대지의 그 소리 없는 목소리는 몇백 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우리 삶의 자연성을 회복시켜 줄 귀중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머리 맡에 두고 두고 자주 읽고 싶다...^^
 
* 인디언 언어의 뿌리 : 미네소타 - 하늘에 비친 물 / 토론토 - 만남의 장소, 토론 장소 / 나이아가라 - 천둥처럼 구르는 물 / 마이애미 - 학처럼 우는 자들 / 아이오와 - 졸린 친구들 / 오타와 - 물물교환하는 자들 /
 
* 책 속의 문장 :
- 형제여! 신은 당신과 나 모두를 만들었지만 우리 둘 사이에 큰 차이를 두었다. 얼굴도 다르게 만들고 관습도 다르게 만들었다. 당신들에게는 기술 문명을 주었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에 대한 눈을 틔워 주지 않았다. 형제여! 우리가 우리 아버지들의 삶의 방식을 따를 때 위대한 정령이 더 기뻐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축복을 받았으며, 사냥할 힘과 기운을 받아 왔다. 위대한 정령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베풀었다. 배가 고플 때 우리는 사냥감으로 가득한 숲을 발견할 수 있었고, 목이 마를 때면 주위 어디에나 흐르고 있는 순결한 시냇물과 샘물들로 갈증을 풀 수 있었다. 지쳤을 때는 나뭇잎사귀들이 우리의 잠자리가 되어 주었다. 밤이 되면 만족스런 기분으로 휴식했고, 아침에는 위대한 정령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깨어났다. 팔다리에는 힘이 솟고, 가슴에는 즐거움이 넘쳤으며, 언제나 축복과 행복을 느꼈다. 그 어떤 사나운 욕심도 우리의 평화와 행복을 방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위대한 정령이 얼굴 흰 자식들보다 우리 얼굴 붉은 자식들을 보면서 더 기뻐하리라는 것을 안다. 그분은 당신들보다 우리에게 몇 배의 축복을 더 내려 주셨다. 우리에게 평화와 풍요를 주었다.
형제여, 우리가 이 지상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라. 우리를 더 이상 혼란에 빠뜨리지 말라. 우리는 지금 숫자가 적고 약하지만, 우리 아버지들의 삶의 방식을 지킬 수 있다면 우리는 오랫동안 행복하리라. 우리는 당신에게 악수를 청하는 바이다. 그리고 당신의 형제들에게로 돌아가는 여행길에 위대한 정령께서 당신을 잘 보호해 주실 것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 빨간 윗도리(사고예와타)
 
[ 2011년 5월 22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