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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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에 오웰의 <1984>와 이 책 <동물농장>을 읽었을 때 그다지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 2008년 초 <1984>를 다시 읽어 보았고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한국사회의 전체주의적 경향과 최근 공부모임 세미나에서 20세기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에 대해 다루면서 다시 읽고 싶어졌다.
 
이 책은 스탈인 시대의 소비에트의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소설이다. 소설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농장주인 ’존즈’는 러시아 혁명 당시 러시아 황제였던 니콜라스 2세이고 미래의 동물 혁명을 제시하고 죽은 ’메이저’는 칼 마르크스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나폴레옹’은 스탈린, ’스노볼’은 트로츠키, ’돼지들’은 볼셰비키, ’복서’는 프롤레타리아트, 동물들의 반란은 러시아 혁명, ’개들’은 비밀경찰, ’스퀼러’는 공산당 기관지인 프라우다, ’필킹턴’은 영국, ’프레드릭’은 독일, 동물 학살은 스탈린 시대의 재판, ’외양간 전투’는 1928~1919년 연합군 침공, ’풍차 전투’는 1941년 독일의 러시아 침공, ’풍차’는 소비에트의 5개년 계획들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시대 상황을 보면 히틀러의 독일이나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도 <동물농장>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웰의 <동물농장>이 영국에서 처음 출간된 것은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사실상 끝나고 조선반도가 해방되던 1945년 8월 15일로부터 이틀이 지난 8월 17일 이었다. 실제 오웰이 이 책을 탈고한 것은 1944년 2월이었다고 한다. 오웰은 1년 6개월 동안이나 책을 발간해 줄 출판사를 찾지 못했다. 영국과 미국의 출판사들이 <동물농장>의 출판에 동의하지 않은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소련은 서방 연합국들에게는 사실상의 동맹이었기 때문에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통렬한 비판물(정치 풍자)이 출판된다는 것은 당시의 영국과 미국 정치사회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소설을 읽지 못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마르크스와 러시아 혁명, 소련 체제, 1950년대까지의 소련 역사를 대충이라도 알고 있다면 역으로 <동물농장>의 전개를 역으로 추측할 수 있을 정도로 오웰은 정확하고 분명하게 소련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정치풍자 소설로 <동물농장>을 쓴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인 조지 오웰은 소위 자본주의 찬양가이거나 자유민주주의 수호자였을까? 그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 책에는 <동물농장> 이외에 두 개의 오웰의 글이 실려 있다. 그 중 <나는 왜 쓰는가>를 읽어보면 오웰이 스스로를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밝히고 있다. 당시 유럽의 정치사상사를 돌이켜 보면, ’민주적 사회주의’라 함은 자본주의에 반대되는 사상으로 ’사회주의’를 추구하되, 그 방식과 주요 내용이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여러 정치사상과 비교해보면 ’사회민주주의’에 가까운 것이다.
 
* 저자인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누구인가? -----------------------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이고 조지 오웰은 필명이다. 영국인으로 1903년 인도 동북부 벵갈에서 태어났다. 인도 세관 아편과의 하급 관리였던 아버지처럼 식민지 관료의 길을 선택하여, 인도제국 경찰국 소속 경찰관으로 미얀마에서 5년 동안 근무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관료가 되어 피식민지 주민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그는 1927년 사표를 제출하고 그 뒤 몇 년 동안 런던과 파리를 떠돌아다니며 부랑아 같은 생활을 했다. 이 무렵의 생활을 기록한 책이 [런던과 파리에서의 밑바닥 생활]이다. ’에릭 아서 블레어’라는 본명을 버리고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1936년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며,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은 더욱 굳어졌으며 소설가로서의 역할과 임무를 새롭게 다짐하게 되었다. 그는 ’소비에트 신화’의 실상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줄 작품을 구상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동물농장]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BBC와 <트리뷴타임스>에서 일하며 창작에 몰두, 6년 만에 비로소 [동물농장]의 탈고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소비에트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탓에 책을 출판해줄 출판사를 찾을 수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18개월 뒤 ’세컨드 앤드 워버그’라는 작은 출판사를 통해 1945년 8월 17일 비로소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동물농장]의 성공 후 디스토피아 소설 [1984]를 탈고하나, 그 책의 출간 다음 해인 1950년 1월 유니버시티 병원에서 지병인 폐결핵으로 각혈한 뒤 갑작스레 숨을 거두었다. 4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그는 옥스퍼드셔 서튼 코트네이에 묻혔다.
조지 오웰은 정치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정치적 인물로 평생을 살아왔다. 그는 또한 진리가 아무리 불편해도 그 ’불편한 진리’를 서슴지 않고 말하는 용기 있는 도덕가이기도 하다. 그는 시대와 불화를 겪으면서 20세기 전반기에 양심을 용기 있게 대변한 작가였다. 더불어 [동물농장]은 그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출간된 지 5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 힘을 간직한 채 전 세계 68개국 언어로 출간되는 등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 작품은 소련 체제에 대한 풍자와 비판으로 받아들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 이유는 작품이 출간된 지 6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계속 독자들이 끊이지 않는 사실 때문이다. 왜 이 책이 지금까지 ’명작’이나 ’고전’의 대열에 끼어 있을까?
 
번역자인 도정일은 그 이유를 "소비에트 체제라는, 한 시대의 권력형식만을 재현대상으로 한느 역사적 정치풍자의 수준을 넘어 [독재 일반]에 대한 우의적 정치풍자로 넓어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소설 속의 ’나폴레옹(스탈린)’은 모든 시대에 있을 수 있는 독재자의 알레고리이고 돼지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을 수 있는 교활한 정예주의 권력집단의 알레고리라는 것이다. ’복서’나 ’클로버’ 같은 우직하고 성실한 동물들도 반드시 프롤레타리아트로 제한되지 않는 광의의 피착취 대중을 포괄하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즉, 소비에트 체제의역사적 실체가 소멸하고 없는 지금 이 시대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동물농장>이 강한 적절성과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 정치사회의 권력 현실을 부패시키는 근본적 위험과 모순에 대한 항구적인 알레고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웰의 알레고리를 현재로 확대하여 해석할 경우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한국도, 중동 아랍국가도, 중남미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어느 국가도 <동물농장>일 수 있고 앞으로 <동물농장>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물농장>의 가능성은 어느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고 어디에서 촉발되어 올 수 있을까?
여러가지 요소들이 있겠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대중의 각성과 참여 수준’으로 보았다. 소설 속으로 돌아가서 살펴보면, 동물 반란이 성공하여 ’동물 공화국’을 선포한 후 초기에 ’나폴레옹’이 새끼 강아지 교육을 자신이 책임진다며 골방으로 강아지들을 옮겨 격리한 것에 대해 동물들이 아무런 의문과 관심을 표하지 않은 것, 새끼들이 젖을 뗀 후 남은 우유들이 사라져 돼지들에게만 제공된 것과 과수원의 사과들을 돼지들에게만 분배된 것에 대해 ’스퀼러’가 동물들에게 논리 비약을 일삼고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며 윽박지를 때 동물들이 별다른 항의나 이의제기를 하지 못한 것을 말한다. 동물들이 자신들의 지도부인 ’나폴레옹’과 ’돼지들’의 일방적인 정책과 분배에 대해 대응하지 않은 것이 역으로 ’나폴레옹’과 ’돼지들’의 독재와 전횡을 점점 더 심하게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동물농장’의 전체주의는 그 독재를 추진한 ’나폴레옹’과 ’돼지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오와 책임이 있지만, 역으로 일반 동물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각성하고 참여하지 않아 스스로 자초한 측면도 크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나무가 ’저항의 피’를 먹고 자란다면 ’전체주의’라는 나무는 개인주의, 이기주의의 피를 먹고 자란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전체주의와 개인(이기)주의가 ’동전의 양면’이라 생각한다.
 
(한국사회의 처지를 <동물농장>과 일대일로 대응하는 것이 너무 확대해석이라 생각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등장을 전후로 한 한국사회의 흐름과 한국의 대중, 민중들의 생각과 대응도 비슷하게 전개된 개연성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2011년 작금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사회의 주류 문화로 자리잡게 되면, 언제든지 전체주의와 독재라는 암은 그 속에서 싹이 틀 수 있게 될 것이다.

* 오늘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31주년이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다시는 그와 같은 학살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앞으로 해야 할 과제들이 아직 산적해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 2011년 5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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