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여행이라...........
나도 예전에는 ’여행’이라는 단어만 생각해도 살짝 흥분하곤 했다.
 
지금껏 여러차례 국내외를 여행해본 것 같다.
외국만 하더라도 개인적인 이유와 업무적인 이유로 가깝게는 중국과 베트남에서부터 멀리는 L.A와 벤쿠버까지...(유럽, 아프리카, 남미는 경험이 없고...)
그동안 여행 경험으로 내 의식 속에 자리잡은 일종의 ’선입관’은 막연히 "여행은 준비한만큼 즐길 수 있다"는 것.
업무적인 경우는 그렇다 하더라도 개인적인 목적으로 여행을 갈 경우, 내 여행의 주요한 동기아 목적은 대부분 ’사람’이었다.
목적지에 ’사람’이 있거나 어떤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린 여행...
국내를 제외하고는 나 자신만의 목적과 동기로 인하여 여행을 나선 경험은 없다.
그랬기 때문에 여행이 끝난 후, 사진 몇 장을 제외하고 내가 여행지나 여행과정에서 얻은 것은 별로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자처럼 여행에 대하여 개념이나 여정을 구분하거나 준비하지도 않았고 나의 무의식 속에 ’외국’ 또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 대한 무서움이나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적지않은 책을 읽고나서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 문화, 내가 거주하는 공간과 다른 냄새와 분위기, 막연하게 책 속에서 글로만 상상했던 여러가지 영상들을 직접 겪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빈치 코드>의 파리, <연금술사>의 튀니지와 사하라사막, <그리스,로마 신화>의 그리스와 테베, <군주론>의 베네치아, <오디세이아>의 트로이, <혜초>의 실크로드, <찬란한 천개의 태양>의 아프카니스탄 카불, <반고흐, 영혼의 편지>의 프랑스 파리와 아를, <소로우의 무소유, 월든>의 매사추세츠 콩코드, <샤르부크 부인의 초상>의 뉴욕, <오래된 미래>의 라다크, <무탄트 메시지>의 호주 사막, <로마인 이야기>의 로마와 지중해 도시국가, <비잔틴 제국>의 이스탄불...
오랜동안 기억에 남는 영화에서 본 이국적인 도시와 장소들도 늘 머리 속에 어른거린다.
<라스트 모히컨>의 라스트 씬, <씨네마 천국>과 <대부 시리즈>의 시칠리아, <파워 오브 원>의 남아프리카, <반지의 제왕>의 곤도르 성, <본 시리즈>의 쮜리히, 탕헤르, 베를린, 파리, 모스코바....
한동안 외국에 나가보지 못했고 최근 국내 정치경제 상황이나 국제적인 분위기 속에서 한국이 답답하기도 하고...
 
이 책은 여행에 대한 작가의 ’기술’이 궁금하여 읽게 되었다. 
저자는 출판계에서  "일상적인 주제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으로 철학의 대중화를 시도해온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직접 자신이 여행을 다니면서 책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여행방식을 제시한다.
여행을 떠나서 돌아오기까지의 단계별 여정 - 출발, 동기, 풍경, 예술, 귀환 - 을 유명 예술가(보들레르, 플로베르, 워즈워스, 반 고흐, 러스킨 등)들의 삶과 작품을 통해 짚어보면서 여행에 숨겨진 다양한 욕망의 실체를 밝힌다. 

[다시찾은 타히티 - 윌리엄 호지 ]

[알마르크의 전경 - 야콥 반 루이스달]

[자동판매식 식당 - 에드워드 호퍼]

[카이로의 비단시장 - 루이스 헤이그]

[숙소에 있는 알제의 여자들 - 외젠 들라크루아]

[베네수엘라의 알렉산더 폰 봄홀트 - 에두아르트 엔더]

[오리노코의 에스메랄다 - 찰스 벤틀리]

[틴틴사원에 면한 와이강 - 필립 제임스 드 루테르부르]

[로키산맥의 랜더스 봉우리 - 알레르트 비어슈타트]

[알프스의 눈사태]

[아를의 노란 집과 올리브 숲 - 빈센트 반 고흐]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경과 이국정취를 느끼게 하는 에드워드 호퍼, 반 고흐, 들라크루아, 루테르부르, 윌리엄 호지스 등의 그림 40여 점도 함께 실려 있다.

예술가들이 남긴 글과 그림이라는 발자국을 따라 런던, 바베이도스, 마드리드, 이집트, 시나이 사막, 암스테르담, 레이크디스트릭트, 프로방스 등으로 차근차근 걸음을 옮기며 ‘여행의 기술’을 탐구하는 여정 속에는 그들의 고독, 방랑, 고집, 반항, 초월, 깨달음, 예술가로서의 선택과 희망이 함께 녹아 있다. 

[프란시스코 엘 그란데 성당]

[스위스의 눈사태]

[실제 아를의 노란집]

[실제 올리브 숲]

[알랭드보통의 침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여행의 동기와 목적지 등 ‘여행’을 테마로 던질 수 있는 주요 질문들에 대해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자신의 생각을 제시한다.
여행의 동기나 목적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리고 하루하루 삶과 인생을 전쟁처럼 살아가는 보통사람들로서는 저자의 여행 동기가 ’배부른 자의 휴가’로 보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인류의 모든 개개인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여행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늘 자신에게 주어진 눈 앞의 한계와 조건만을 고려하여 인생을 설계하고 살아가는 사람과 주어진 한계와 조건을 넘어서기 위해, 그 너머에 숨어있는 또 다른 무언가를 찾아보는 사람은 문제를 보는 관점과 풀어내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자의 동기나 목적도 사람에 따라 충분히 여행을 떠날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훌쩍 짐을 싸서 떠나는 여행도 그 과정을 어떻게 겪어내고 받아들이냐에 따라 사람마다 느끼거나 얻는 것이 달라질 수 있다.
여행에서 무언가를 꼭 얻어내야만이 ’잘 갔다 왔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고 꽉 막힌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삶의 활력이나 아이디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여러가지 관계들 속에서 하나씩 배우고 돕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연이나 외부적인 것들이나 생소한 것들과 새롭게 관계를 맺어보면서 배우고 터득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그동안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나만의 관점과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다.
여행의 경우도 나만의 방식, 즉 ’사람’과 더불어 저자의 방식인 ’기술’도 활용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길을 떠나는 것에 대한 법정스님의 견해도 있어 소개한다.
스님은 <산방한담>에서, "길을 떠나는 것은 새삼스레 구경거리를 찾아서가 아니다.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관계의 울타리에서 떠나봄으로써 자신의 실체를 보다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낯선 고장의 인정이나 풍물을 통해 가려진 내면의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 책 속의 문장
-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우리가 가야 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하지만 실제로 여행의 기술은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고 또 그렇게 사소하지도 않은 수많은 문제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p.12)
- 어느날 문득 광고지에 수록된 화려한 사진..... 그것은 사람의 계획이 아주 단순하고 어설픈 행복의 이미지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였다.(p.18)
- 우리는 지속적인 만족을 기대하지만, 어떤 장소에 대하여 느끼는, 또는 그 안에서 느끼는 행복은 사실 짧다.(p.34)
- 중요한 인간관계 속에 흥건하게 고여 있는 몰이해와 원한이 갑자기 드러나면, 우리의 마음은 하려한 열대의 정원과 해변의 매혹적인 나무 오두막을 즐기려 하지 않는다. 아니, 즐길 수가 없다. (p.41)
 
-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를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p.46)
- 우리가 휴겟와 모텔에서 시를 발견한다면, 공항이나 열차에 끌린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 건축학적인 불안전함과 불편에도 불구하고 그 야한 색깔과 피로한 조명에도 불구하고, 이런 고립된 장소에서는 이미 터가 잡힌 일반적인 세상의 이기적인 편안함이나 습관이나 제약과는 다른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은연 중에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p.87)
 
- 여행의 위험은 우리가 적절하지 않은 시기에,즉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물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정보는 꿸 사슬이 없는 목걸이 구슬처럼 쓸모없고 잃어버리기 쉬원 것이 된다. (p.142)
- 괴테는 "나는 나의 활동에 보탬이 되거나 직접적인 활력을 부여하지 않고 단순히 나를 가르치기만 하는 모든 것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p.156)
 
- 도시의 ’떠들썩한 세상’의 차량들 한가운데서 마음이 헛헛해지거나 수심에 잠기게 될 때, 우리 역시 자연을 여행할 때 만났던 이미지들, 냇가의 나무들이나 호숫가에 펼쳐진 수선화들에 의지하며, 그 덕분에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의 힘들을 약간은 무디게 할 수 있다.(p.178)
- 우리가 관객으로서 어떤 화가의 그림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어떤 특정한 장면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특징을 그 화가가 골라냈다고 판단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9p.246)
 
- 아무런 재능이 없는 사람도 데생이 연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보는 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이었다. 즉 그냥 눈만 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피게 해준다는 것이다. (p.300)
- 한군데 가만히 않아 시속 150km로 달린다고 해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튼튼해지거나 행복해지거나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아무리 느리게 걸어 다니면서 본다 해도, 세상에는 사람이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빨리 간다고 해서 더 잘 보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귀중한 것은 생각하고서 더 잘 보는 것이다. (p.301)
- 러스킨은 여행을 하면서 스케치를 하라고 권했을 뿐 아니라,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인상을 굳히려면 글을 써야 한다고, 그의 말대로 하자면 ’말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p.313)
- 혼자 여행을 하니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함께 가는 사람에 의해 결정되어버린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도록 우리의 호기심을 다듬기 때문이다. (p.341)

[ 2010년 12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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