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시대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경남 옮김 / 민음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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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서평의 제목을 '사랑은 두뇌를 키운다'에서 '작지만 소중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해주다'로 변경했다.
어제(7일) 저녁 독서모임에서 이 책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 내가 책에서 얻은 것을 그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책 값은 무지 비쌌지만 그나마 리프틴은 내가, 그리고 우리가 행하거나 느끼는 소소한 것들에 대해 합리적, 이데올로기적, 공감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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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프라인 독서모임에 참여한 후 <행동경제학>, <지도로 보는 중동이야기>, <제국은 무너졌다>에 이어 네 번째이자 올해 마지막 교재다.
독서모임 교재라는 부담감을 크게 느끼지 않고 일주일 정도 만에 완독했다.
(아마, 저자가 전에 발간한 책 대부분을 읽었기 때문에 책장을 넘기기 수월했으리라...)
 
이 책에서 저자는 인류의 공감적 특성이 진화해 온 과정을 들여다보고, 역사적으로 공감이 우리의 여정을 어떻게  꾸려왔으며 앞으로 우리의 운명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 살펴봄으로써 인류문명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틀을 제시하려고 한다.
 
몇 개 단락으로 요약하면,
1. 인간이라는 종의 본성은, 서구의 역사에서 종교를 비롯한 인문사회과학이 정의해온 ’물질’, ’타락’, ’탐욕’, ’경쟁’, ’이기심’과 ’공격성’이 아니라 ’이해’, ’공감’, ’협력’과 ’이타성’이며,
2. 인류의 역사가 진보, 발전하는 과정은 엔트로피가 증가함과 동시에 ’공감’이 확대되어 가는 과정이고(신화적 의식 -> 신학적 의식 -> 이데올로기적 의식 -> 심리학적 의식)
3. 21세기에는 3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공감의 시대’로 전환하면서 등장하는 새로운 의식은 에너지 민주화와 분산 자본주의, 생물권 정치 등의로 모든 생활 방식과 경제 기반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이 책은 그동안 저자가 발간한 모든 책 - <노동의 종말>, <육식의 종말>, <소유의 종말>, <수소혁명>, <유러피안 드림> -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저자는 15년 동안 인류사회의 주요한 환경과 정세, 흐름을 고찰한 후 ’공감’을 자신의 결론으로 내린 셈이다.
이 책이 전세계의 과학자들과 인문학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으면 아마도 20세기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 이어 현대 인류사에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21세기 세계적인 내노라하는 학자들 중에서 아마 손꼽히는 공부량을 자랑할 것이다.
저자는 ’공감의 시대’를 풀어내기 위해 생물학과 인식과학, 두뇌과학에 이르는 자연과학과 더불어 아동발달학과 사회심리학, 철학과 종교학, 문학 등의 인문학, 그리고 경제사와 경제사상까지 학문 분야 대부분을 거론하고 있다.
토머스 홉스, 존 로크, 제러미 벤담, 프로이트, 윌리엄 페어베언, 하인츠 코후트, 도널드 위니콧, 에리히 프롬, 루소, 괴테, 마르크스와 엥겔스, 도프토예프스키, 제인 오스틴, 석가모니에 공자까지...
인류의 고전과 지성을 모두 망라한다. 

우선, 저자의 관점과 제안에 ’공감’하게 된다.
지구에서 인류가 탄생한 이후 수 천년 동안 이어져온 ’동종상란의 비극’과 17~18세기 이후 산업사회에 들어서면부터 시작된 생물종에 대한 무차별한 살상에 대해 극복할 수 있는 철학적 기초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리스 철학 이후 서구 지성사와 사상사에 꾸준히 이어져 온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서구의 학자가 부정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또한 서구사회에 뿌리깊게 남아있는 ’분석적’인 문제해결 방식, ’A 아니면 B’식의 극단적 사고방식, ’피아’를 가르는 대결의식을 지양하고 관계론적 관점에서 개인과 집단을 생각하는 것에 크게 기대를 하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자의 담론이 전세계인들에게 ’공감’을 얻으려면 ’공감’에 대한 좀 더 분명한 정의와 개념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저자는 책 속에서 ’공감’이나 ’공감의식’에 대해 엄밀하게 정의하지 못한다. 
여러 학자들의 개념에 대해 소개하다가 ’우애적 유대감’, ’동료의식, ’애정’, ’친밀함’, ’애착’ 등 ’공감’의 성격이나 특성으로 대신할 뿐이다.
’공감’에 대한 여러 정의와 의견은,
- E. B 티치너 :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의 정서적 상태로 들어가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인 것처럼 느끼는 것
- 마틴 L. 호프먼 : 자신의 상황보다 다른 사람의 상황에 더 잘 맞는다고 느끼게 만드는 심리적 과정의 엮임.
- 우리가 다른 사람의 삶의 일부가 되어 의미 있는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심리적 수단
저자가 단어를 ’언어학’적이거나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정의하지 않기 때문에 책을 모두 읽은 후에도 ’공감’이나 ’공감의식’이 구체적인 정의나 개념보다 상식적인 느낌 수준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저자는 ’공감’을 이야기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가는데 있어 ’공감’에 내재되어 있는 본질적 속성, 즉 ’상대적이고 상호적이고 관계적인’ 사고방식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이 그의 한계일 수 있다.
단순하게 정리하면, 저자는 인류사상사에서 인간의 본성이 지금껏 ’악하다’라고 정의,전제하고 문제를 다루어 왔는데 이제 보니 ’선하다’고 정의,전제하고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800쪽에 걸쳐 설명하고 정리한 내용을 다르게 해석하여 접근할 수도 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은 원래 ’백지’ 상태이거나 ’혼합’ 상태인데 인간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사회를 이루고 관계를 맺는 가운데 ’악’한 쪽이나 ’선’한 쪽이 더 주요한 측면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즉, ’선과 악’, ’경쟁과 협력’, ’사익과 공익’, ’개인성과 집단성’, ’이기심과 이타심’, ’공격성과 평화본능’이 인간 본성의 동전의 양면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동양적 철학과 사고방식이고 21세기에 인류가 ’공감’해야 할 사상적 조류이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모든 저서와 주장에 줄곧 ’자본주의 경제방식’을 당연하고 필연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실제로 ’자본주의 체계’만으로는 인류에게 주어진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를 전면적으로 폐기할 수는 없을지라도 ’피에르 라비’식, 그리고 ’라다크’식의 공생과 생명중심의 소규모 자립경제가 지구 곳곳에서 광범위하게 자리잡는 것이 ’자본주의’를 분산시키고 정화시키고 미래지향적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 본문 주요 문장
- 애정의 변수로서 양육의 일차적 기능은 아기와 엄마의 빈번하고도 친밀한 신체 접촉을 보장해주는 기능이다. 사람이 젖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p.28 해리 할로)
- 내가 나 자신에 관해 알아낸 것이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너에게서 나의 일부를 확인하고 너는 내 안에서 너의 일부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p.55, 찬궉번)
-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가부장적 심리학이어서 여성의 본성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고, 실제로도 그 자신이 그렇게 고백했으며, 이런 이유로 그는 엄마와 아기의 관계의 진정한 의미, 즉 사랑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p.67, 애슐리 몬태규)
- 아이가 한 인간으로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거나 그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느낄 대, 아이는 성숙을 멈추고 비정상적인 관계를 만들면서 강박관념, 편집증, 히스테리, 공포 등의 병리적 증상을 보인다. 이런 모든 행동은 버림받았다는 느낌에서 나온다. (p.73, 윌리엄 페어베언)
- 아기는 엄마의 뱃속에서 만들어지지만, 하나의 개인은 관계를 통해 만들어진다.... 즉, 개인이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개인을 만든다.(p.77, 도널드 위니콧)
- 인간의 아이나 동물 새끼들은 유별날 정도로 호기심이 많고 묻기 좋아한다. 그래서 보통 애착 대상에서 자주 떨어지려 한다. 이런 의미에서 탐구적 행동은 애착행동과 정반대이다. 건강한 개인이라면 보통 이 두 가지 행동이 번갈아 나타난다. (p.90, 존 보울비)
- 적응을 잘하고 신뢰를 주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가 되려면 안전한 느낌을 갖고 독립심을 갖추고 다른 사람과 의미 있는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공감해주는 감성이 서툰 부모는 결코 그런 아이를 만들 수 없다. 일관된 부모상이 없는 아이는 시작부터 의미있는 사회관계를 수립할 수 없다.(p.91)

- 타자가 타석에서 삼진아웃을 당해서 답답해하는 모습을 볼 때, 뇌의 ’거울뉴런’은 그 타자의 스트레스를 시뮬레이션한다. 관중은 저절로 타자와 공감한다. 관중은 타자가 느끼는 것을 그대로 느끼기 때문에 그 기분을 알 수 있다. (p.104, 마르코 야코보니)
- 유아발달의 각 단계에서 보다 복잡한 몸짓을 활용하는 의사소통의 유형은 거울 뉴런을 자극하고 보다 정교한 공진회로를 만들어 가장 복잡한 형태의 공감적 커뮤니케이션, 즉 언어를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 다시 말해 언어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p.128)
- 우리가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의 전체로 작동하는 생화확적 신경 규제 회로라는 복잡한 편성체계이다. 결국, 정신 현상은 일정한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유기체의 상호작용이라는 맥락에서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p.184)
- 자유는 인생의 충만한 잠재력을 최대화할 수 있는 것이고 충만한 삶이란 우정과 애정과 소속감의 삶이며, 보다 깊고 보다 의미 있는 개인적 경험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의해 가능성을 찾는 삶이다. 공감적 기회를 보장해 주고 격려하는 사회에서 양육되고 성장할 때 인간은 자유를 누릴 수 있다. (p.197)
- 확장된 공감은  사람들을 진정으로 평등한 위치에 올려놓는 유일한 인간적 표현이다. 다른 사람과 공감할 때 구별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의 고군분투를 자신의 것처럼 동일시하는 바로 그런 행동이 평등 의식의 궁극적 표현이다.(p.201)
- 공감의식은 존재와 당위의 간극을 극복한다. 공감적 행동은 실체적이고 경외감으로 차 있으며 이성에 호소한다. 공감 의식은 설명적이면서도 동시에 규정적이다. 실제의 모습과 마땅히 그래야 하는 모습 사이에 어떤 구분이 없다. 그 둘은 하나이고 같은 것이다. (p.221)

- (문자 이전의 선사시대) 구두문화의 생활은 공개적이어서 사생활은 별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공감적 표현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친밀함이란 개념을 사실상 존재할 수 없었다. (p.256)
- 문자언어는 일반적으로 수십만 개의 어휘를 갖는 것이 보통이다. 그만큼 문자언어는 느낌이나 마음 상태나 관계 등을 포함하여 현실의 모든 면을 묘사하는 용어를 훨씬 더 광범위하게 제공한다. 문자언어는 거대한 은유와 용어의 도서관이며, 이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을 설명하고 다른 사람의 느낌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 (p.257)
- 커뮤니케이션이 개성화되고 표현적이 될수록 공감도 더욱 확장되고 보편화되기 때문에, 공감적 감수성의 진화과정에서 문자 문화의 탄생은 하나의 분수령이 된다.(p.259)
- 공감의 물결이 처음 태동한 것은 수메르,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등 문명의 탄생이라는 산고가 초래한 인간의 깊은 고통 속에서였다. (p.266)
- 관개문명(이집트,바빌로니아,인더스,황하등)의 흥망성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몰락을 설명할 수 있는 많은 해석이 가능하지만, 무엇보다 토양의 염분과 퇴적 작용의 변화에서 비롯된 엔트로피 수치의 증가를 가장 유력한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p.276)
- 그리스도 이야기는 최초의 그리고 최고의 감정적인 평등의 스토리이다.(p.292)
- 르네상스 시대의 부모들은 아이를 티없이 맑고 순수하고 죄가 없는 존재로 보았다. 반면에 프로테스탄트 부모들이 보여 준 새로운 차원의 야만성은 당시의 혼란스러운 사회적 분위기에도 많은 원인이 있다.... 그들은 아이들을 집안에 들어앉은 악의 대행자라고 경계하며 심지어는 미워하기까지 한다. (p.358 로렌스 스톤)
- 민족국가는 결함도 많았지만 공감의 감수성을 크게 확장할 수 있는 온실이 된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p.376)
- 사해동포주의적인 세계관과 보편적 공감의 감수성을 누구보다 더 치열하게 몸으로 직접 구현한 사람을 꼽으라면 당연히 괴테를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 200여 년전에 괴테가 가졌던 세계관과 자연과 인간 의식의 궤적에 대한 견해는 21세기의 매우 국제화된 세상을 사는 요즘의 밀레니엄 세대의 견해와 비교해도 스케일과 깊이에서 조금도 손색이 없다. (p.385)
- 돈키호테는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테마를 보편적으로 표현해 낸 최초의 설화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돈키호테>는 하나의 문학 장르로서의 ’소설’을 만들어 냈다. (p.391)

- 기독교 신앙이 초월성으로 향하는 길목을 열여주고 이성이 계몽철학자들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면, 낭만주의자들에게는 상상력이 그 역할을 맡았다.(p.427)
- 낭만주의자들의 여정은 인간 본성의 뿌리를 찾는 여정이었다. 그들은 그런 본성의 핵심으로 존재의 감정을 생각했고 그 감정을 모든 생명과 연결되고 단합된 느낌으로 정의했다. 그들이 찾아낸 것은 ’공감 충동’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오류는 그런 충동이 문명과 거리를 둘수록 더 잘 보존되리라고 믿은 점이었다. (p.456)
- 1848년 3월 혁명은 유럽사회에서 유일한 대륙적 규모의 혁명이었다. 혁명은 짧은 수명과 함께 실패로 끝났지만, 이후의 반세기 동안 유럽과 세계 대부분의 생활상을 산업적 방식에 어울리도록 재편하게 될 새로운 정치적 담론과 행동 강령을 세웠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이었다.(p.459)
- 석유로 가동하는 내연기관과 함께 전기가 발명되면서 새로운 에너지-커뮤니케이션 체계가 탄생했고 인간의 인식이 또 한 번 비약하는 순간이었다. 세계는 바야흐로 ’심리학적 의식의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했다.(p.462)
- 상업적 교환은 사회적 신뢰를 먼저 세워 주는 공감의 확장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상업적 교환의 공리적이고 도구적이고 착취적인 본성은 바로 그것의 작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적 자본을 고갈시킬 수 있고 또 실제로도 고갈시킨다. 글로벌 경제가 붕괴된 직후에 지금 미국과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 바로 이런 경우이다.(p.541)

-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대통령 후보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1위는 ’공감’이었다.(p.558)
- 일부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 최소 수준의 경제적 요건 이상으로 부의 추구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p.621)
- 서열을 하찮게 여기고 네트워킹 방식으로 사람이나 세상과 관계를 맺고 협력이 체질화되어 있고 자율과 배척보다는 접속과 포함에 관심이 있고 인간의 다양성에 감수성이 강한 밀레니엄 세대는 역사상 가장 공감적인 세대가 될 확률이 크다. 분산적이고 협동적이고 비위계적인 사회가 곧 공감 사회이다. (p.674)
- 삶의 질을 중시하는 사회를 만들려면 두 가지 차원에서 협력적 참여가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는 민간 차원의 공동체 참여이고 또 하나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도록 개인의 세금을 공적 창의력과 서비스를 추진하는데 투입하겠다는 의지이다.(p.680)
- 인터넷은 개인에게 ’진정한 자아’를 연기할 기회를 주어 연극적 의식에 참여할 수 있는 가상의 무대를 제공한다. 현실적인 자아나 이상적인 자아를 연기하는 것처럼 진정한 자아를 연기하는 것은 하나의 역할이자 평생의 역할이다. (p.718)
- 생물과 지구화학 내용물과 주기 사이의 꾸준한 상호작용과 피드백은 통합 체계로 작용하면서 지구의 기후와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여 생명을 보존해 준다.(p.739) 

[ 2010년 12월 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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