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한담 법정 스님 전집 5
법정 지음 / 샘터사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산방한담(山房閑談)]. 말 그대로 산 속에 있는 방 속에서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다는 의미다.
 
<아름다운 마무리>에 이어 법정스님의 두 번째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서점에 나온 스님의 책 중에서 초창기에 발간된 책이다.
스님은 1970년대 후반 조계산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佛日庵)이란 암자를 지어 홀로 20년을 정진하셨는데 이 책은 불일암에서 썼던 글들을 모아 발간한 책이다.
특히, 1978년 ~1983년까지 신문과 잡지의 고정칼럼에 내보냈던 글을 주로 모았다.
1983년 5월에 초판을 발행하였는데, 2001년 20여년 만에 개정판을 내신 것이다.
(그 당시는 스님이 말하시는대로 "암울했던 시절"이었고 "우리가 숨도 크게 쉬지 못하면서 겪어온" 시대였다.)
 
이 책에는 자연 속의 산천초목과 작은 동물들, 흐르는 물과 자갈을 벗으로 삼아 그들로부터 하나하나 배우는 스님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리고 불교의 경전 속에 들어있는 석가모니의 말씀과 그리슈나무르티 등의 성인들의 글과 말을 빌려 지구상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신다.
스님은 불교 경전이 어떻다고 교리가 어떠하다고 설명하지 않는다.
사람이 이승의 고통에서 헤어나고 성불하기 위해 ’출가’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땅의 사람들, 민중들, 백성들, 민족들이 처해있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하려 하지 않는다.
그 말씀의 방향이 도를 이야기하거나 부처를 이야기하거나 종교를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방향잃은 종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종교인이 취해야 할 태도와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제시한다.
삶의 구석구석, 생활 한가지씩, 마음가짐 하나하나, 정책과 제도 하나하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고 노력하고 변화시키려 하는지 이야기하실 뿐이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30년 전에 하신 이야기임에도 문장 한 줄, 글 한 묶움이 묵직한 바위처럼 내 마음 속에 깊숙히 자리잡는다.
나의 생각과 태도, 관점과 방식, 노력과 행동에 채찍질이 느껴진다.
’자기다운 얼굴을 가꾸어나가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자기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자기 얼굴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얼굴을 가리켜 ’이력서’라고 한다고...
’뒷 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그리고 뒷모습을 볼 줄 아는 눈을 길러야 한다’
그 이유는 앞모습은 허상이고 뒷모습이야말로 실상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수행은 없는 것을 보태는 일이 아니고 텅 비우는 노력이다.’
그 이유는 텅 비우기만 하면 그 안에 모든 것이 두루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래의 청정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으뜸가는 수행’이라고...
 
스님은 고전과 경전, 훌륭한 문학과 예술이 왜 인류에게 중요한 것이고 어떻게 현대 인류의 삶에 방향을 제시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한국의 학살’,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의 ’七不衰法(일곱 가지 쇠망하지 않는 가르침)’, 마하마트 간디의 자서전, 원오(圓梧) 극근(克勤)의 어록 ’생야전기현(生也全機現), 사야전기현(死也全機現)’, [선종사(禪宗史)], [육조단경(六祖壇經)], [광장], 사마천의 [사기(史記)], 크리슈나무르티의 [삶의 진실에 대하여], [삼국유사], [법구경(法句經)], [숫타니파타], 토머스 머튼 신부의 [관상 기도]와 [칠층산(七層山)], [일야현자경(一夜賢者經)], 서산대사 휴정의 [선가귀감(禪家龜鑑)], [장로게(長老偈)], [四分律(사분율)], [천수경], [금강경], [열반경], 장승업의 ’고사세동도(高士洗棟圖)’, 빅터 프랭클의 [인간의 의미 탐구], 버스카글리아의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 생야전기현(生也全機現), 사야전기현(死也全機現) : 삶에 철저할 때는 털끝만치도 죽음 같은 걸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또한 죽음에 당해서는 조금도 생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된다.
 
대장경 중 < 일야현자경(一夜賢者經) >

과거를 따라가지 말고
미래를 기대하지 말라
한번 지나가버린 것은 버려진 것
또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이러저러한 현재의 일을
이모저모로 자세히 살펴
흔들리거나 움직임 없이
그것을 잘 알고 익히라. 

오늘 할 일을 부지런히 행하라.
누가 내일의 죽음을 알 수 있으랴
진실로 저 염라왕의 무리들과
싸움이 없는 날 없거늘
밤낮으로 게으름을 모르고
이같이 부지런히 정진하는 사람
그를 일러 참으로 일야현자
고요한 분 성자라 한다. 

지나가버린 것을 슬퍼하지 않고
오지 않는 것을 동경하지 않으며
현재에 충실히 살고 있을때,
그 안색은 생기에 넘쳐 맑아진다.
오지 않은 것을 탐내어 구하고 

지나간 과거사를 슬퍼할 때
어리석은 사람은 그 때문에
꺾인 갈대처럼 시든다. 
 
책 속에 [옛 절을 찾아서]란 챕터를 보면 8개의 절에 대한 사연과 설명이 나타난다.
송광사, 해인사, 통도사, 운문사, 쌍계사, 화엄사, 대흥사, 직지사...
나도 건축과라는 대학 전공 출신이라고 20년 전쯤에 ’사찰기행’ 모임에 참석하여 여러 절을 둘러보았다.
대학에 재입학하여 건축계획과 설계, 고건축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내 나름대로 책도 좀 읽어보고 두서없이 수 십, 수 백장의 사진도 찍어대던 때였다.
운문사와 화엄사는 그 때 돌아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법정 스님이 이야기하는 그런 절의 이력이나 구체적인 경험이 없었고 ’관광’처럼 스쳐 지나갔기에 내 뇌와 가슴 속에는 그다지 남아있지 않다.
최근 올 겨울이 지나고 나면 선배와 함께 다시 그 절을 찾아 우리의 기억과 깨달음을 얻어보기로 했다.

스님 말씀이 "제정신을 차리고 살려면 무엇보다도 정신을 집중하고 몰입하는 일이 필요하다. 구개신기산(口開神氣散) 설동시비생(舌動是非生), 입을 열면 신기로운 기운이 흩어지고 혀를 함부로 놀리면 시비를 일으킨다는 뜻이다."
올 한 해 내가 명심하고자 하는 문구다.
 
* 책 속의 문장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람을 대하거나 사물을 보고 인식하는 것은 틀에 박힌 고정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알아버린 대상에서는 새로운 모습을 찾아내기 어렵다.
아무개 하면 자신의 인식 속에 들어아 이미 굳어버린 그렇고 그런 존재로밖에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건 얼마나 그릇된 오해인가..
사람이나 사물은 끝없이 형성되고 변모하는 것인데.... .(p.17)

집에서 몸만 빠져나온 것을 가리켜 출가라고 할 수는 없다.
온갖 집착과 모순과 갈등과 타성의 집에서도 미련없이 빈손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한다.(p.66)  

佛, 法, 僧울 삼보(三寶)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삼보 사찰이 있는데 통도사와 해인사와 송광사를 가리킨다.
통도사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 불보사찰이라 하고,
해인사에는 부처님의 설법을 판각한 대장경판이 봉안되어 있어 법보사찰이라 하며,
송광사는 부처님의 추가제자인 고승 대덕이 가장 많이 배출 되었다고 해서 승보사찰이라고 부르게 된것이다.(p.80)
중생이 어려운 재난을 당해 갖은 핍박을 당할지라도 관세음보살의 묘지력이 세상의 고통을 구한다.
묘지력이란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지혜와 사랑이다.
그러면, 관세음보살이란 누구인가?
지혜와 사랑을 구현하고 있는 현장의 사람, 바로 그들이다. (p.87)
 
현대의 우리들에겐 자기 언어가 없다.
날마다 우리들 귓가에 대고 호소하고 설득하는 정치인이나 경제인 또는 연예인들이 뱉어버린 말을 걸르지도 않고 그대로 입에 담고 있다.
이 일 저 일에 팔리면서 쫓기느라 자기 나름대로 생각할 여유가 없다.
자기 사유(思惟)를 거치지 않으니 자기 언어를 지닐 수 없게 된 것이다.
정신을 집중하려면 우선 불필요한 말을 안 해야 한다.
’구개신기산(口開神氣散) 설동시비생(舌動是非生)’, 입을 열면 신기로운 기운이 흩어지고 혀를 함부로 놀리면 시비를 일으킨다. (p.129)
 
에리히 프롬 왈 "생활궤도가 불쾌하고 음울한 자들, 육신은 살아 있으나 정신은 죽어있는 자들,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껄이고 있는 자들, 생각하지도 않고 상투적인 의견을 주장하고 있는 자들은 나쁜 친구이고 피해야 한다."
타인이 아니라 내 자신 속에 이런 요소가 있다면 나 또한 나쁜 친구다. (p.131)
 
일을 할 바에야 유쾌하게 하자. 그래야 능률도 오르고 피로도 덜하고 살아있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중략)
일이 즐거우면 인생은 낙원이요, 일이 의무일 때 인생은 지옥이다.(중략)
진실한 내가 움직이고 있을 때는, ’나’를 잊어야 한다. 즉, 무아의 경지요, 창조적인 망각의 상태다.(중략)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일에 구애받지 안는 무애의 경지. 이런 때 일에나 삶에 그릇된 실수란 있을 수 없다.(p.135)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장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p.143)
 
사람은 순간순간 목숨을 소모하면서 살아간다. 기분 나쁜 표현이지만, 묘지나 화장터 쪽에서 보면 순간순간 죽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순간순간 사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일을 할 줄 알아야 하듯이 쉬고 놀 줄도 알아야 한다.
우리들이 여가를 어떻게 보내느냐는 문제는 곧 삶의 질을 결정 짓는다.(중략)
우리가 못사는 것은 경제적인 빈곤에만 그 원인이 있지 않다. 살 줄을 몰라서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p.149)
 
[금강경] 중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사물이나 현상은 모두가 허망한 것.
그러니 제상과 비상, 즉 현상과 본질을 함께 볼 수 있다면 비로소 우주의 실상을 바로 보게 될 거라는 뜻이다.
표현을 달리하면,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바로 인식하려면 드러난 단면만 보지 말고 그 배후까지도 함께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p.272)
 
사람을 본질적으로 감화시키는 것은 그럴듯한 말에 있지 않고 몸소 움직여 보이는 행동에 있다.
좋은 말을 한다는 것과 그 말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p.283)
 
일장일단. 무슨 일에나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고, 선이 있으면 그 그늘에 악도 있게 마련이다.
흔히 우리들은 좋은 쪽만 취하고 좋지 않은 쪽은 모른 체하거나 거부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건 너무 불공평하고 이기적이다.
대가 없이 거저 받아 쓸 수 있는 게 어디 있단 말인가.
그건 작건 간에 값을 치르지 않고 공짜로 지하거나 누릴 수는 없다. (p.288)
 
길을 떠나는 것은 새삼스레 구경거리를 찾아서가 아니다.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관계의 울타리에서 떠나봄으로써 자신의 실체를 보다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낯선 고장의 인정이나 풍물을 통해 가려진 내면의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p.291)

텅 빈 속에서.. 
우리는 한평생을 두고 수많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 계절이 내린 고마운 뜻을 몇번이나 우리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수 있었던가. 
어디 계절만이겠는가.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날에 대해서 또는 순간순간에 대해서 그 의미를 
몇 번이나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 
돌아오는 봄과 여름과 가을, 겨울을 우리는 기약할수 없다. (p.337)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그가 하는 행위에 의해 인간이 될 수도 있고, 혹은 비인간으로 타락할 수도 있다.
오로지 인간다운 행위에 의해서 거듭거듭 인간으로 형성되어 간다.
그러면 인간다운 행위는 무엇일까? 우선 나누어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타인과 함께 나누어 가져야 ’이웃’이 될 수 있고, 인간적인 관계가 이루어진다.
사람은 독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관계를 통해서만 비로소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들의 삶이 곧 관계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관계에 의존해서 존재하고 우리들의 관계는 인간을 심화시킨다. (p.343) 

 [ 2010년 12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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