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칼레의 시민이 될 것인가?
이계안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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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그림은 스위스 바젤 시립미술관에 있는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The Burghers of Calais)’이란 작품이다. 로댕은 아래와 같은 실제 사건의 교훈을 기리기 위하여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1347 도버해협 양쪽의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 때의 . 1 가까이 영국의 공격을 막던 프랑스의 북부도시 칼레는 원병을 기대할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백기를 들지 않을 없었다. 칼레시의 항복 사절은 도시 전체가 불타고 모든 칼레의 시민이 도살되는 운명을 면하기 위해 영국 에드워드 3(Edward II)에게 자비를 구하였다. 완강한 태도를 보이던 영국왕 에드워드 3(Edward II) 항복의 조건을 놓았다

"좋다. 칼레시민들의 생명은 보장하겠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동안의 어리석은 반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한다. 도시에서 가장 명망이 높던 대표적인 시민 대표를 골라 목에 교수형에 사용될 밧줄을 목에 걸고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로 영국군 진영으로 가서 도시의 열쇠를 건넨 목을 처형받아야 한다." 

시민들은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다. 누군가 6명이 그들을 대신해 죽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용감하게 6명이 선뜻 나섰다. 모두 도시의 핵심 인물이며 절정의 삶을 누리던 부유한 귀족이었다. 칼레에서 가장 부자였던위스타슈 피에르(Eustache de Saint Pierre)’ 가장 먼저 자원했다" 칼레의 시민들이여...나오라...용기를 가지고..."

그러자 시장이 나섰다. 상인이 나섰다. 그의 아들도 나섰다. 드디어 일곱 명이 되었다. 사람은 빠져도 되었다. 제비를 뽑자는 말도 있었지만 그렇게 없었습니다. ’위스타슈 피에르(Eustache de Saint Pierre)’ "내일 아침 장터에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을 빼자" 제의했고 이에 모두 동의했다. 그들의 고통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이튿날 이른 아침 여섯 명이 모였다. 그러나위스타슈 피에르(Eustache de Saint Pierre)’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궁금했다. 모두 나와도 그는 나올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죽음을 자원한 사람들의 용기가 약해지지 않도록 칼레의 생존과 명예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처형되려던 마지막 순간 에드워드 3(Edward II) 당시 임신 중인 왕비의 간청을 듣고 용감한 시민 6명을 살려주었다. 그로부터 550년이 지난 1895 칼레시는 이들의 용기와 헌신을 기리기 위해 피에르에 조각상을 제작하기로 하고 조각가 로댕에게 의뢰했다. 작품이 바로칼레의 시민(The Burghers of Calais)’이다

비장한 슬픔으로 얼룩진 이 조각상은 오늘날 사람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Nonlesse Oblige)’의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노블레스(Nonlesse)란 ’고귀한 사람들’ 또는 ’귀족’이라는 뜻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혈통, 문벌, 공적 등에 의하여 일반 민중과는 다른 특별한 정치적, 제도적 특권을 부여받은 사람이나 집단’을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제도적 지위가 높고 제도적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이면 ’노블레스’라 지칭할 수 있다. ’오블리주’는 ’의무’를 뜻한다. ’제도적 지위’라 할 때의 제도에는 공공기관 뿐 아니라 학교, 언론, 기업, 종교 등도 포함한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Nonlesse Oblige)’는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다.

역사적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고대 로마의 원로원,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이튼 칼리지의 학생들, 미국의 카네기멜론 대학과 존스 홉킨스 대학 등이 유명하다. 한국의 경우에도 과거에는 조선 정조시대 제주도 식량 기근을 위해 전 재산으로 쌀을 분배한 거상 김만덕, 군수산업으로 번 막대한 재산을 독립운동에 사용한 최재형, ’백리 안에 굶는 이가 없게 하라’는 신념으로 사회복지를 실현한 경주 최부잣집 등이 존재했다. 한국 전쟁 이후 한국에서는 더 이상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볼 수가 없으며, 오히려 ’노블레스’들이 병역기피, 이중국적, 부동산투기, 불법상속, 정경유착 등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저지르고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UN에서 발표한 2009년 <세계인구현황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1.22로 내전에 휘말려 있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제외하면 세계 1위의 저출산국이다. 왜 한국인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일까?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단순히 개인적 문제 때문일까?
 
저자는 그 근원적 원인을 한국이라면 누구나 통과해야 할 4가지의 ’개미지옥’에서 찾는다. 10대에는 사교육, 20대에는 청년실업, 30대와 40대에는 내집 마련, 50대와 60대는 노후 불안이라는 개미지옥이 순서대로 한국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개미지옥만으로도 벅찰 텐데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그날까지 4개의 개미지옥을 통과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세계 최고의 저출산율은 이렇듯 한국인의 인생이 그만큼 고달프고 절망적이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4개의 개미지옥을 중심으로 현재 우리나라가 직면한 사회 분열과 초양극화의 양상에 대해 파헤친 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방위적 측면에서 개미지옥을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1부. [90까지 살면 어떡하지?] 4가지 개미지옥에 대한 진단과 분석을 거친 후 각각의 지옥에 대한 몇 가지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1. 사교육 
 - 요지 : 저자는 사교육의 원인을 IMF 이후 고용불안정(일자리 부족), 성장 잠재력 약화, 교육정책(과외 및 학원교습 허용 등)으로 분석한 후, 사교육의 진짜 주범을 학부모들(대부분 486세대)의 자식에 대한 과도한 안정희구 성향과 성장율 부족으로 일자리 창출 여력 약화, 그리고 위험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을 뒷받침해 주는 사회복지 시스템의 부족으로 꼽고 있으며, 사교육을 해결할 교육정책으로는 평준화 틀의 유지, 중고등학생의 과목 선택권 보장, 교원평가제도 도입, 프랑스식 대학 공립 시스템 도입, 국가 관리형 대학 졸업시험제도 도입 등을 제시한다.
- 평가 : 사교육 원인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타당하지 않아 보인다. 일자리 부족과 성장 잠재력 약화는 사교육 광풍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없으며, 과외와 학원교습 허용을 문제삼는 것은 사교육 시장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시대착오적인 인식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학부모들이 안정희구 성향을 발동하여 사교육 광풍에 뛰어든 것을 두고 그들을 주범으로 규정하는 것은 과도하다. 그들은 스스로 참가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일 뿐이다. 낮은 성장율을 사교육의 주범으로 지목하게 되면 유럽이나 일본의 낮은 성장율과 사교육 시장 규모를 설명할 수 없다. 사교육 광품의 핵심 원인은 무한 경쟁과 학벌체제, 불공정한 경쟁과 사회복지 체계, 공교육의 붕괴 등이지 않을까... 저자가 제시한 해결방안은 자신이 분석한 원인과 연관되지 않을 뿐더러 원인분석이 부실함에 따라 해결방안 역시 검토해볼 여지는 있지만 사교육 문제를 해결할 주요 방안으로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2. 청년실업 
- 요지 : 저자는 원인을 청년들의 안정추구형 태도, 부실한 창업지원 정책 등을 지적하면서 해결방안으로 청년들의 마인드 전환과 강력한 벤처 지원 정책을 제시한다.
- 평가 : 청년실업과 대학의 ’취업학원화’는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 1차적 원인이라 생각한다. 벤처 지원 정책은 일자리 정책이기도 하지만, 더 연관성이 큰 분야는 산업정책일 것이다.
3. 내집 마련 
- 요지 : 저자는 주거불안의 원인을 부동산 인플레이션, 세입자 보호의 부족, 부자 위주의 뉴타운 개발정책 등을 거론하고 있으며, 해결방안으로는 저소득층에 대한 영구임대주택 확대, 재개발과 재건축의 용적율 인센티브 제공과 임대주택 확보, 전세가 수준의 환매조건부 주택 공급 등을 제시한다.
- 평가 : 거시적인 정책방향은 타당해 보이나 현실적인 단기 및 중기정책으로서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고, 재원조달과 관련한 정부 재정 및 공기업 재정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며, 부동산 버블과 조세정책에 대해서도 검토하여 서로 연관되는 부분을 고려한 종합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4. 불안한 노년
- 요지 :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재정과 혜택이 부실한 현실과 노인 복지를 가정 단위로 부담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현재와 같이 사교육비, 주거비 등을 감안하면 30~40년 후 노년이 불안해질 수 밖에 없음을 이야기한다.
 
2부. [초양극화의 길목에서] 부와 가난이 대물림 되면서 미래의 희망이 사라지는 현실을 안타깝게 보여준다.
1. 대한민국의 워킹 푸어 : IMF 이후 한국의 사회경제에서 ’괜찮은 일자리’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으며, 대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면서도 경제력을 독과점하고 있는 가운데 이에 따라 국민경제에서 갈수록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소득세 강화, 저소득 직종 취업자에 대한 전업 교육 프로그램 강화, 임대주택 확대, 무상보육시설 확대, 차상위 계층을 위한 장기저리 재산형성 자금 지원을 제시한다.
2. 무너져버린 벤처의 꿈 : 저자는 대기업들이 모든 산업분야를 잠식하는 가운데 중소기업 발전의 토양이 전무함을 지적한 후 위기를 가중시키는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개편하여 벤처기업을 육성해야 함을 주장한다.
3. 거꾸로 가는 부자 정책 : 소득세와 법인세 감세, 상속세 인하 등 친재벌, 친부자 정책의 현황을 지적한다.
4. 로또, 마지막 희망 티켓 : 1,000원으로 살 수 있는 ’로또’라는 희망마저 20억원(당첨금 한도)으로 제한되는 현실은 실업율과 이혼율, 범죄율과 자살율을 끌어올리고 있음을 지적한다.
 
3부. [누가 칼레의 시민이 될 것인가?] 21세기 들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탈바꿈해야 하는 한국은 사람들의 의식이 선진국 수준으로 바뀌지 않고서는 더 이상 경제가 앞으로 나갈 수 없음을 지적하면서 ’가진 자의 의무’와 ’서로 나누는 노와 사’, ’신뢰와 포용의 사회 문화’와 ’국가의 일 : GLP(Great Living Place)를 만들자’를 제안한다.
  
저자의 요지는 결국 단순히 국가의 부(富)가 늘어나거나 GDP와 경제성장률이 높다는 사실 만으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며, 아무리 부자 국가라 하더라도 그 국민 중 소수만이 풍족함을 누리고 대다수 국민은 가난에 허덕인다면 그 나라는 여전히 후진국임을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한국전쟁 직후의 절대적 빈곤 상태에서 기적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지만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양극화는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저소득층 비율이 1990년 7.6퍼센트에서 2007년 14.4퍼센트로 거의 두 배나 늘어난 수치는 이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무한경쟁과 불공정 경쟁, 학벌주의, 대기업 위주의 경제 정책, 가진 자들의 더 갖고 싶은 욕망은 한국 사회를 초양극화로 치닫게 하고 있으며 ‘부의 대물림 현상’은 이제 익숙한 말이 되고 있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제 단순히 국가의 부를 늘리거나 경제성장률을 올리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 이전에 급속한 경제성장이 초래한 부작용, 즉 초양극화와 사회 분열을 치유해야 하며, 그 한 방법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칼레 시민의 정신’을 강조한다. 서민보다는 부자가,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이, 비정규직보다는 정규직이 먼저 나서서 모범을 보이고 자신이 더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주는 정신과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한국사회의 대부분 중산층과 서민들의 고충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4대 지옥', '4가지의 개미지옥'이라는 개념을 통해 한국 사회의 초양극화와 구조적 문제를 정확하고 적합하게 드러내고 있다. 비록 불공평한 소득 분배의 원인을 분석하고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데 부족함이 있지만, 따듯한 마음과 변화를 바라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는 한국의 역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사회 통합과 공동체 정신에 필요한 개념을 강력하게 주문하는 자신감도 보여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가진 자들만이 지녀할 자세는 아닐 것이다. 중산층이라 하더라도 자신보다 자산이나 소득이 적은 사람이 주변에 수 없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그 정신은 모두가 발휘할 수 있는 것이며, 지금도 많은 이들이 시민단체 등을 통해 그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문제는 시민단체를 통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뿐 아니라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직장과 조직에서, 국가정책으로 드러나는 정치행위에서 구체적으로 발휘해야 할 정신인 것이다. 
 
* 책 속의 문장 :  
- 우리 사회 전체가 괜찮은 일자리를 향해서 만 달려갈 때 생기는 악순환, 개미지옥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진정한 창업가가 배출되지 못하는 왜곡된 구조다. 대기업들이 일자리를 만들어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창업가를 양성하지 못하면 일자리가 늘어날 여지가 없다. 그러면 취업의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한 개미지옥은 더 악화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깨뜨려야 한다. (p.63)

- 그 동네에 살던 사람이 다들 부자가 되어서 자연스럽게 빈민촌이 사라졌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그 뉴타운의 입주자들은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아니다. 원래의 입주자들은 모두 어디론가 떠나고, 다른 사람들이 그 안을 채우고 있다. 예컨대 길음 2지구의 경우 개발이 완료된 시점의 원주민 재정착률이 10.3퍼센트에 불과하다. 원래 살던 사람들이 떠날 수밖에 없다면 도대체 뉴타운을 개발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또 그 뉴타운이 살기 좋은 곳이 될 수 있을까? (p.63)

- 40~50대는 수명 연장의 꿈을 왜 불안감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 그들 모두가 노후 대비가 안 돼서일까? 꼭 그런 것 만은 아니다. 나름대로 국민연금이나, 사적연금도 조금씩 가입해 두었다. 퇴직금도 얼마간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만에 하나 불행한 사태가 생긴다고 해도 정부가 지켜준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에서 90세까지 사는 것은 노년의 행복이 아니다. 60세까지 열심히 배우고 일한 사람이면 나머지 30년 인생은 즐기면서 마무리할 권리가 있는데 우리 모두는 노년에 대한 불안감으로 떨고 있다. ‘90세까지 살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감 말이다. (p.96)

- 우리 경제가 세계경제에 맞물려 돌아갈수록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중국, 인도와 경쟁하는 저임금 노동집약적 산업에서는 저임금 일자리밖에는 만들어내지 못한다. 또한 그들을 상대로 하는 서비스업에서도 저임금 일자리만 양산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성장하고, 또 그만큼 일자리의 수는 늘어나는데, 괜찮은 일자리는 줄어만 가고 저임금에 허덕이는 ‘워킹 푸어’들만 양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워킹 푸어가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윤택한 생활을 향유하도록 하려면 선심성 공약 만으로는 안 된다. 시장이나 둘러보는 서민 행보만으로는 될 일이 아니다. 비록 쥐꼬리 만한 월급에 의지해서 어렵게 살아가더라도, 작은 부에 대한 희망의 끈은 놓치지 않고 내일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줘야 한다. (p.119)

- 우리나라에는 부자는 있으나 제대로 된 상류층 또는 지도층이 없다.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가진 것이 많다고 해서 상류층이나 지도층이 되는 건 아니다. 잘살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 모두의 희망 사항이지만, 잘산다는 것이 가진 것이 많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서는 곤란하다. 마음을 나누고 배려하며 더불어 사는 것이 진정으로 잘사는 것이 아닐까? 많은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소수만이 부자가 되는 것은 잘 사는 길이 아니다. 탈법적이고 불법적인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부를 축적하고 또 그것의 대물림이 일반화된 것도 좋은 사회는 아니다. (p.184) 
 
[ 2011년 5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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