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법정 스님 전집 7
법정 지음 / 샘터사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아름다운 마무리>와 <산방한담>에 이어 법정스님의 저서를 세 번째로 읽었다.
이 책도 서점에 나온 스님의 책 중에서 초창기(1993년~1996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아래와 같은 스님의 말씀으로 요약할 수 있다.
"새가 깃들지 않은 숲을 생각해보라.
그건 이미 살아 있는 숲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연의 생기와 그 화음을 대할 수 없을 때,
인간의 삶 또한 크게 병든 거나 다름이 없다.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스님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우리들 각자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적 현상의 그림자'라고 이야기한다.
즉, 우리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바로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 세상의 상태라는 것...
'우리 시대(근대 이후)에 이르러 물질적인 풍요만을 추구한 나머지 인간의 심성과 생활환경이 말할 수 없이 황폐화 된 것은, 누구의 탓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 저지른 재앙이다.
흙과 물과 나무와 공기와 햇빛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들이 그와 같은 고마운 자연을 끊임없이 허물고 더럽힌다.'고...
 
예전 같은 경우, 큰스님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시면 으레 동양적인 철학으로서 '그런 마음과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이구나'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이제는 그 말들이 구체적으로 느껴지곤 한다.
예를 들어, 나 뿐 아니라 내 주변을 둘러보아도 돈에 대한 생각, 차에 대한 생각, 아이들이나 어른들에 대한 태도, 생활질서, 쓰레기 버리기, 물적인 욕심과 낭비, 편리함만의 추구, 단기간의 이익추구, 사회와 이웃에 대한 무관심 들이 일상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과 태도들이 결과적으로 무모한 권력에 눈이 먼 정권과 정치인이 나타나도록 하고 전사회와 계층이 황금만능주의에 물들게 되고 도로에 차가 넘치고 차도를 중심으로 하는 도로교통체계가 수립되고 아이들을 입시교육에 내몰고 어른들을 무시하고 방치하고 시내 곳곳에 쓰레기가 넘쳐나고 책보다 게임이 대중화되고 무궁화열차가 사라지는 대신 KTX 밖에 탈 수가 없고 한 쪽은 흥청망청, 다른 쪽은 밥먹기도 벅찬 삶이 존재하고 온갖 비리와 부조리가 판을 치게 하는 뿌리가 되었다.
이명박과 같은 대통령을, 안상수와 같은 국회의원, 공정택같은 교육감, 땅투기 선수인 장관 후보, 4대강 망치기 등등...
이 모든 말도 안되는 현실이 누구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자문해 본다.
 
스님 말씀대로 일찍이 동양의 신앙은 산하 대지를 신성한 존재로 여겨 귀의의 대상으로 삼았었다. 그래서 인간과 환경과의 조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서양의 백인들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고 환경의 지배를 추구했다. 그 결과 과잉 소비와 포식 사회를 이루어 오늘날과 같은 온갖 질병과 환경 위기를 불러들인 것이다.
삶의 원천을 망각한 채 도시화와 산업화로 줄달음치면서 날로 인간의 설자리가 사라져가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가 새삼스럽게 삶의 질을 문제 삼을 만큼, 그 동안 우리들이 추구했던 그 풍요가 한낱 허구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현재와 같은 우리들의 잘못된 생각과 생활 습관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지구는 황량한 사막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봄이 와도 꽃이 피어나지 않고 새들도 찾아들지 않을 것이다. 그런 곳에서는 생물인 인간도 살아갈 수 없다.
 
제레미 리프킨이 <엔트로피>나 <수소혁명>, <육식의 종말>, <유러피안 드림>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법정스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서구적인 언어와 표현으로 변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리프킨이 작년에 <공감의 시대>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이론에 대한 정립을 시도해보지만 그다지 여의치 않았던 것은, 동양적인 철학과 사고방식이 부재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가 스님처럼 모든 인연을 끊고 홀로 산속에 들어가 자연과 벗하며 자연 속에서 살아갈 자신은 없다.
하지만, 스님의 말씀처럼 작은 부분에서부터 점차 소유와 소비를 줄이고 육식과 포식을 줄이고 자연과 벗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담배가 제일 문제...ㅋ)
 
또, 스님은 '무엇을 읽을 것인가'에서 나의 독서 태도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하신다.
'우리가 책을 대할 때는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자신을 읽는 일로 이어져야 하고, 잠든 영혼을 일깨워 보다 값있는 삶으로 눈을 떠야 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펼쳐 보아도 한 글자 없지만 항상 환한 빛을 발하고 있는 그런 책까지도 읽을 수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스님은 음악에 대해, 존재에 대해, 종교에 대해, 책에 대해, 직업에 대해,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도록 안내한다.
 
* 책 속의 문장
- 좋은 음악은 무디어지거나 녹슬기 쉬운 인간의 감성을 맑고 투명하게 다스려준다.(p.32)
-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인지, 그리고 순간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는 저마다 자신이 선택해야 할 삶의 과제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들 가자가 이 세상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독창적인 존재라는 사실이다. 단 하나뿐인 존재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지라도 자기 자신답게 사는 일이 긴요하다. 개체의 삶은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삶과 조화를 이룰 때에만 그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p.34)
- 우리는 굳어진 고정관념 때문에 기왕에 알려진 것만을 받아들일 뿐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험과 인식이 부족하다.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맑은 눈으로 찬찬히 살펴보면 아름다운 생명의 신비가 바로 우리 곁에 수없이 깔려 있다.(p.64)
 
- '양관 화상 良寬和尙'의 시
  욕심이 없으면 모든 것이 넉넉하고
  구하는 바 있으면 만사가 궁하다
  담백한 나물밥으로 주림을 달래고
  누더기로써 겨우 몸을 가린다
  홀로 살면서 노루 사슴으로 벗하고
  아이들과 어울려 노래하고 논다
  바위 아래 샘물로 귀를 씻고
  산마루의 소나무로 뜻을 삼는다.(p.66)
 
- 관세음觀世音이란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뜻. 다시 말해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임이다. 바깥 소리가 자기 내면의 소리와 하나가 되도록 자극하게 귀를 기울이다 보면 마침내 귀가 활짝 열린다.(p.79)
- 절이나 교회에 종교가 있다고 잘못 알지 말아라. 어떤 종교든지 일단 조직화되고 제도화되면 종교 본래의 길에서 벗어나 위협적인 존재가 되고 만다. 그때 그 종교는 더 이상 신이나 진리로 가는 길이 아니라 독선과 아집에 대한 변명이 되어 버린다. 종교의 틀 속에 갇힌 사람들은 어떤 의식이나 상징을 종교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종교가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다투고 싸우고 죽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신은, 부처와 진리는 이런 곳에는 없다.(p.82)
- 무엇이든지 많이 알려고 하지 말라. 책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 성인의 가르침이라 할지라도 종교적인 이론은 공허한 것이다. 그것은 내게 있어서 진정한 앎이 될 수 없다. 남한테서 빌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겪은 것이 아니고, 내가 알아차린 것이 아니다. 남이 겪어 말해 놓은 것을 내가 알은체할 뿐이다. 진정한 앎이란 내가 몸소 체험한 것, 이것만이 참으로 내 것이 될 수 있고 나를 형성한다.(p.84)
- 공부가 됐건 일이 됐건 전적으로 하라. 어중간한 것은 사람을 퇴보시킨다. 하다가 그만두지 말라. 안 한 것만 못하다. 남에게 폐가 되지 않는 한 무슨 일이든지 전력을 기울여 하라. 그때 자기 안에서 어떤 변혁이 일어난다. 그 변혁의 과정에서 참된 자기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p85)
 
- 분수 밖의 욕구인 탐욕은 목마른 허욕일 뿐 근원적으로 내 것이 될 수는 없다. 본래 내 것이란 없는 법이니까. 어떤 개인의 소유라 할지라도 크게 보면 이 우주의 선물이다. 개인의 소유란 그 사람이 한 때 맡아 가지고 관리하는 것이다.(p.130)
- 우리가 행복하고 보다 뜻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불필요한 것인지, 그때 그때 자신의 분수와 처지에서 냉정하게 생각을 가다듬어야 한다. 불필요한 것들에서 벗어나 소유를 최소한의 것으로 제한하는 것은 정신생활을 보다 자유롭고 풍요롭게 하는 요체다. 자신의 분수를 망각한 채 소유에 마음이 빼앗기면 눈이 흐려져 인간적인 마음이 움트기 어렵다.(p.132)
- 어떤 직종에서 무슨 일에 종사하건 간에 자신이 하는 일을 낱낱이 지켜보고 자신의 역할을 자각하는 것이 곧 명상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으면 자기 자신을 안팎으로 냉철하게 살펴보면 된다.(p.139)
- 꽃은 단순히 눈요기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곱고 향기롭고 부드러운 우리 이웃이다. 생명의 신비와 아름다움과 조화를, 거칠고 메말라가는 우리 인간에게 끝없이 열어 보이면서 깨우쳐 주는 고마운 존재다.(p.143)
 
- 아이들은 텅 빈 물통이 아니라 하나의 씨앗, 한 개의 도토리다. 어떤 식물학자나 정원사도 도토리에게 참나무가 되는 방법을 말해 줄 수는 없다. 그 작은 씨앗 속에서 거대한 참나무로 자라서 수백 년을 살고 수백만 개의 도토리와 나뭇잎과 줄기를 만들어 낼 그런 힘이 들어있다.(p.163)

- 자연은 부처나 예수, 모하메드나 간디보다 더 위대한 스승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자연의 제자이기 때문이다.(p.163)
- 꿀벌은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다니면서 어느 꽃에도 해를 입히지 않고 조금씩 꿀을 모은다. 그러나 사람들은 땅에서 무엇을 얻어내려고 할 때, 계속해서 빼앗기만 하여 그것이 소진되고 고갈되어 자원이 끝장날 때까지 간다. 우리는 꿀벌한테서 조금만 얻어 오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p.163)

- 삶에는 이유도 해석도 붙일 수 없다. 삶은 그저 살아야 할 것, 경험해야 할 것, 그리고 누려야 할 것들로 채워진다. 부질없는 생각으로 소중하고 신비로운 삶을 낭비하지 말 일이다. 머리로 따지는 생각을 버리고 전 존재로 뛰어들어 살아갈 일이다. 묵은 것과 굳어진 것에서 거듭거듭 떨치고 일어나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시작을 통해서 자신을 새롭게 이끌어내고 형성해갈 수 있다.(p.174)
- 작은 것과 적은 것이 귀하고 소중하고 아름답고 고맙다. 귀하게 여길 줄 알고, 소중하게 여길 줄 알고, 아름답게 여길 줄 알며, 또한 감사하게 여길 줄 아는 데서 맑은 기쁨이 솟는다.(p.196)
- 자기가 낳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그 아이는 부모의 것이 아니다. 그럴 만한 인연이 있어 그 부모를 거쳐서 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동물이건 식물이건 간에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신성한 우주다.(p.202)
 
- <삼국유사> 5권에는 혜통 스님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혜통이 출가하기 전 세속에 있을 때, 그의 집은 남산 서쪽 기슭인 은냇골 어귀에 있었다.
어느 날 집 근처 시냇가에서 수달 한 마리를 잡게 되었다.
고기는 끓여서 먹고 그 뼈는 뜰가에 버렸다.
이튿날 아침 뜰가에 나가 보니 그 뼈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기고 자세히 살펴보니 웬 핏자국이 띄엄띄엄 나 있었다.
그 핏자국을 따라가 보니 전날 수달을 잡았던 그 근처 보금자리에 수달의 뼈가 고스란히 다섯 마리 새끼를 안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 그는 크게 놀랐다.
자신의 행동을 자책한 끝에 그는 마침내 속세를 등지고 출가 수행자의 길로 떠났다."(p.204)
이것은 지극한 모성애와 영혼의 작용을 의미하는 이야기라 한다.
 
- 인간끼리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에 천한 직업은 없다. 다 필요에 의해서 벌어진 일들이기 때문이다. 직업에 귀천은 없지만 천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이웃과 사회에 덕이 되는 것은 좋은 직업이고, 해독을 끼치는 것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천하게 만든다.(p.244)

- 자기 자신이 참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면, 그는 그 일을 통해 삶의 기쁨과 보람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그러나 하기 싫은 일을 마지못해 생활의 한 방편으로 하고 있다면, 그의 삶은 날로 생기를 잃어갈 것이다.(p.245)
- 근원적으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변화하는 세계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미 우리 곁을 떠나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들은 다른 이름으로 어디선가 그답게 존재하고 있다고 눈 밝은 현자들은 말한다.(p.251)
- 우리를 지금의 우리로 만든 것은 다름아닌 바로 우리 마음이다. 내 마음이 악한 일에 머물면 그것이 곧 지옥을 만들고, 내 마음이 착한 일에 머물면 그것이 곧 천국을 만든다. 누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그렇게 지어서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이라 한다.(p.264)

- 마하마트 간디가 말했다. "이 세상은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우리의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다."(p.296)
- 힌두교 성전인 <우파니샤드>에 이런 가르침이 있다. "인간의 욕망이 바로 그의 운명이다. 왜냐하면 그의 욕망이 다름아닌 그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의지가 곧 그의 행위이며, 그의 행위가 곧 그가 받게 될 결과물이다. 극섯이 좋은 것이든,나쁜 것이든"(p.304)
- 현재 우리가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한 생각이나 입에 담는 말, 그리고 몸으로 하는 행동은 지금 한때로 그치지 않고 이 다음의 나를 형성한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내 삶은 내가 선택하고 결단한 의지력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지 누가 대신해서 해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마다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질 수밖에 없지요.(p.307)
- 삶을 충만케 하는 길이 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을 넘어서서 어디에도 의존함이 없이 독자적인 사유와 행동을 쌓아감으로써, 사람은 그 사람만이 지니고 누릴 수 있는 독창적인 존재가 된다.(p.321)

[ 2011년 1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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