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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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 리영희선생과 처음 대면한 것은 그분의 책을 통해서였다.
대학 2학년 때인 1986년, 어느 선배가 <전환시대의 논리>를 빌려주어 읽게 되었다.
나는 이미 대학 1학년 시절에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태백산맥 1,2,3>과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통해서 내가 20년간 듣고 배우던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기존 지식과 고정관념이 깨지기 시작했다.
<전환시대의 논리>는 중국혁명과 베트남 공산화,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모습, 일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한마디로 ’발상의 대전환’이었고 ’대오각성’ 그 자체였다.
그 뒤 <우상과 이성>을 또 읽게 되었고 그 당시 지독하게도 경멸해 마지 않던 기성세대, 교수, 지식인들을 대신하여 리영희선생은 나에게 ’본받고 싶은 어른’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대학 3학년, 4학년이 되면서 공부나 토론보다 집회와 시위가 잦아지고 서점을 비롯하여 나의 주변에는 수 많은 사상과 책들로 넘쳐나기 시작했고 나의 머리는 한 쪽으로 너무 빨리 굳어져 갔다.
그러면서 내 머리 속에서 그 분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인간은 누구나, 더욱이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이 이념에 따라, 나는 언제나 내 앞에 던져진 현실 상황을 묵인하거나 회피하거나 또는 상황과의 관계설정을 기권으로 얼버무리는 태도를 ‘지식인’으로서 책임져야 하는 사회에 대한 배신일 뿐 아니라 그에 앞서 자신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겨왔다.”
 
선생의 이 말씀은 나에게도 뼈아프게 들린다.
나 뿐 만이 아닐 것이다.
스스로 참다운 지식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자유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 분의 삶의 역정을 되돌아보면서 적어도 한 번쯤은 자신을 되돌아 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머리 속에서는 알고 있다.
남보다 많이 알고 많이 생각하는 만큼 실천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는 것 또한 안다.
 
리영희 선생은 고희를 맞이한 2000년 말 뇌출혈로 쓰러졌다.
뇌중추신경에 큰 손상을 입어 오른쪽 손과 다리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글을 쓰는 것이 곧 사회적 참여요 실천인 지식인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었다.
리영희 선생 본인도 ’지적 활동과 글쓰는 일’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고백한다.
오른손의 마비로 저술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구술을 녹취해 원고지 2,700매 분량의 자서전을 만드는 일은 그의 초인적인 인내와 끈기로만 가능한 일이었다.
리영희 선생의 기억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되살려내는 일은 민족문제연구소장 임헌영 선생이 맡았다.
기획과 원고 구성에 대한 협의가 끝나고, 대담을 완성한 후 녹취한 구술을 풀어내 다듬고 보완해 초벌 원고를 만드는 데에만 2년이 걸렸다.
리영희의 전작을 비롯해 한국 근현대사의 모든 자료들을 연구해 대담을 준비한 임헌영 선생의 혼고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질문 하나하나에 대해 수십 번씩 자료와 육필 원고, 사진 등을 찾아내 확인하고, 수십 년 전의 붕우들에게 때마다 연락을 취해 인명 하나까지 거짓 없이 전달하려 한 노학자의 모습은 존경을 넘어 벅찬 감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힘겹게 준비된 초벌원고에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꼭 부여잡고 한자 한자 교정을 보아 완성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은 그 자체로 한 편의 휴먼 드라마이다.
 
리영희선생이야말로 한국 현대사의 ’참다운 지식인’이라고 말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이다.
그는 오직 한국 현대사의 온갖 질곡 앞에서 진실을 있는 그대로 글로 옮겼다.
그는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을 거치면서 모든 글쓰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할 이것, 온전한 진실을 써내려간다는 이 기본적이고도 충실한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다.
 
특히 이 책에는 해방 후 미군정기 남한사회의 혼탁상에서 625전쟁의 비극과 한국군의 실상, 419 혁명과 516 쿠테타, 1212 쿠테타와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최근 국내외 정세에까지 개인사의 기록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소중한 증언으로 기억될 내용들이 가득하다.
푸에블로호 사건에서 1999년 서해교전까지 그의 엄정하고 예리한 분석은 여전히 무딘 우리의 역사인식을 벼린다.
625전쟁 당시 미군의 장교복을 끝까지 입지 않고 작업복만으로 군복무를 마친 일화를 두고 한국군의 정체성을 논하는 부분(173쪽), 박정희의 검은 안경을 통해 분석한 박정희 인물론, 박정희와 노무현이 미국 대통령을 대하는 태도를 비교하는 대목(280쪽) 등에서 자신의 경험을 날것으로 쉽게 일반화하지 않고 철저한 반성 속에서 녹여낸다.
한국 현대사의 주요 국면을 따라 풀어 놓는 그의 체험과 이야기는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이다.
선생의 어린시절과 일제 하의 성장과정, 분단과 전쟁 당시의 상황과 고민을 들어보는 것도 새롭고...
 
1970~80년대가 지나고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민주화를 거둔 1990년대 이후 리영희선생은 “내가 할 역할은 다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책이 더 이상 읽히지 않는 세상을 바란다고도 했다.
하지만 지식인으로서의 역할과 고통 앞에서 그가 보여준 정신의 크기는 왜 우리가 여전히 리영희를 읽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리영희선생과 임헌영씨의 대화이지만, 리영희 선생은 독자들에게 또 다른 대화를 제안한다.
“이제는 거의 지나가버린 그 시대를 인간적 고통과 분노, 상처투성이의 온몸으로 부딪쳐 살아온 기성세대나, 앞 세대들이 심고 가꾼 열매를 권리처럼 여기면서 아무런 생각 없이 맛보고 있는 지금의 행복한 세대의 독자에게 부탁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고민하고 자신이 그 상황에 직면했거나 처했다면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가치판단을 하고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생각해보기를.
그럼으로써 이 자서전의 당사자와 대담자가 책 속에서 진행한 것과 같은 자기비판적 대화의 기회로 삼기를.
그리고 기회가 있으면 나와의 비판적 대화도 가질 수 있기를....”
 
이 책을, 그리고 50년 넘게 그 분이 남긴 저서들을 차분히 다시 읽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분이 온몸으로 부딪혀서 깨우치고자 한 진실과 생각은 아직 이 사회에서 널리 퍼져있지 못하다.
우상은 여전히 다른 얼굴과 모습으로 전국을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고 폭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 땅에서 자행되고 있다.
 
* 이 책은 지난 1월 11일 새해 첫 번째 공부모임의 부교재였다.(주교재는 <리영희평전>)

책 속의 문장
- (해방 이후 남한에서는) 경찰총감과 총경 30명 중의 25명(75%), 경감 139명 중 104명(75%), 경위 969명 중 806명(83%)가 일제에 충성을 바쳤던 자들이었다. 심지어 해방 후 15년이 지난 1960년에도 일제 경찰 전력자 총경의 비율이 70%, 경감이 40%, 경위가 15%였다. (p.81)
 
- 전쟁을 한 번 겪고 나면 모든 것이 무효로 돌아가고, 뒤틀리고, 깨어지고, 그리고 무(無)가 되어버리게 마련이에요. 전쟁의 전투현장에서 전개된 인간 비극보다 오히려 전선 뒤 인민대중의 생활과 그 사회의 구조적,기능적 틀이 겪는 파괴가 더욱 혹독하지요. 전쟁은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짓이에요. 전쟁은 무슨 이유나 명분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고 합리화될 수 없어요. 통일을 가져온다 해도 나는 전쟁은 절대반대야.(p.170)
 
- 남한의 국가지도자들이라는 자들은 권력 장악과 몰락은 물론이고 집권기간 중 거의 모든 결정이 미국이라는 ’빅 브라더’의 손바닥에서 놀아온 것이오. 남한의 역대 권력자가 아무리 자기 딴에는 손오공과 같은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면서 날뛰어봐도 그 모든 그리고 낱낱의 행동은 미국 권력집단의 손바닥에서 노는 거예요. 그런 인식이 있으면 뒤에 숨어 농간을 부리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집권자들의 실태가 보이기 시작하지요.(p.260)
 
- 요컨대 박정희는 일제시대에는 천황 숭배자이면서 민족의 배반자였고, 해방이 되자 그 당시 남한의 사상적 주류였던 남로당에 재빨리 편승했는가 하면, 여수/순천 사건으로 형세가 불리해지자 자신의 사상과 충성을 맹세했던 남로당은 물론 자신의 책임으로 관리하고 있던 비밀당원의 명단까지 미국 군정에 팔아넘긴 자로서 철저한 기회주의자이고 변절자였지.(p.287)
 
- 박정희의 516 구테타에 앞서 1960년 케네디 대통령이 경제학 교수 월트 로스토를 백악관의 국가안보전략회의 고문, 대통령 특별보좌관으로 임명합니다. 로스토 교수의 소위 [독재개발이론]과 [경제성장의 5단계 : 반공산주의선언(1958)]이 케네디의 후진 동맹국가 운영정책의 기둥으로 채택된 거요. 이는 바로 후진/미개발 사회에서의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친미국적 군부의 강력한 독재체제로 우선 사회적 통합과 안정을 실현한 후, 그 바탕 위에서 후진 사회의 부정부패를 척결/개혁하면서 경제건설과 정치적 안정을 달성하는 개발이론이지.(p.293) 
  
[ 2011년 1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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