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
박홍규 지음 / 필맥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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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민의 불복종> 등과 함께 2011년 두 번째 공부모임 교재였다.
오늘 공부모임에서는 소로 및 소로의 저서와 관련되어 많은 의미있는 이야기와 논의가 있었다.
공부모임에서는 특히 개인과 개인의 자유에 대하여, 국가에 대하여, 불합리하고 부도덕한 권력에 대한 저항에 대하여, 저항의 근원적 이유와 방식에 대하여, 정치철학에 대하여, 소로의 영향에 대하여, 소로의 자유와 저항정신이 현대에 어떻게 이어지는지에 대하여, 21세기 한국의 현실에 비추어 비교에 대하여, 국가보안법과 국기에 대한 맹세에 대하여 모두가 공감하였다.
 
어떻게 보면 소로의 정신과 주장은 작금의 한국 현실에서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이어야 한다는 소로의 선언이 한국사회에 널리 퍼져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저자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처음 접한 것은 1983년이었고 내가 처음 그를 접한 것은 2010년 가을이었다.
저자는 당시 유학하던 일본의 대학 교수를 통해 그를 접했고(저자는 그 교수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나는 법정스님을 통해 그를 접했다(나는 법정스님의 삶과 글이 인상적이어서).
소로는 만45년 동안의 삶에서 남긴 것은 <월든>, <산책>, <시민저항>, <해방자>, <존 브라운 대장을 위한 변호>, <원칙없는 생활>, <메인 숲>, <낙엽>, <야생의 열매>, <씨앗의 확산> 등 수 십권의 책과 일기였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는 인물을 속속들이, 그리고 전체적으로 이해하게 해준다.
그동안 여러 관련 서적들이 소로를 이해하는 데 있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듯한 선입견을 주었다면, 저자는 남산 위에서 4대문 안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저자는 소로가 여러가지 문헌과 자료를 통해 한국에 소개될 때, 자연주의자나 자연애호자, 환경보호자나 '숲 속의 성자', 그리고 동식물연구가, 박물학자, 시인, 금욕주의자, 비폭력주의자로 불리우는 것을 정정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저자에게 소로가 성자이기는 커녕 반역자이고 성인은 커녕 무법자다.
소로는 그가 살던 당시에 불법이었던 노예의 탈출을 도왔고 국가가 노예를 해방시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납세를 거부했다가 감옥살이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부정(不正)한 국가나 정부에 대해서는 폭력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부정(不定)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돈에 미쳐 싸우는 짐승들'이 가득한 세상을 경멸하고 또한 부정했다.
그는 매우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았고 결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독신주의나 금욕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몇 번 연애를 하기도 했고 육식보다 채식을 좋아했지만 그것은 인간이 입고 먹는 것의 노예가 되면 자유를 상실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로는 당시 19세기였음에도 기계 같은 나날을 보내는 노동자의 삶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개탄하고 그런 기계같은 생활로부터 탈출하고자 했다.
그가 월든 호숫가에서 2년 넘게 살았던 것은 자연주의자로서나 환경보호자로서가 아니라 "'자발적 빈곤'이라고 부를 만한 고지에 오르지 않고서는 누구도 인간생활을 공정하고 현명하게 관찰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고 그런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콩코드 주민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또한, 스물 여덟 살에 세상을 떠나 숲 속 호숫가에 오두막을 직접 짓고 그곳에서 살면서 2년 동안 지낸 그것은 소로에게 본질적으로 '자기 탐구 여행'이었다.
하지만, 내가 작년 가을에 <월든>을 읽었을 때, 나는 소로를 단순히 자연주의자 그리고 생태주의자 정도로 이해하였다.
 
저자는 소로가 '반지성주의자'라고 단언한다.
소로는 당시의 일반인들의 삶과 전혀 동떨어진 방식으로 '자기 멋대로' 산 사람이며 노동의 타락을 개탄하고 국가의 권력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라고...
소로는 대학교육에 의해 형성되는 지성에 의문을 던지고 '삶의 예술'을 존중했다.
"오늘날 철학교수는 있지만 철학자는 없다."라는 말로 대별되는 그의 주장은 단지 19세기 미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대학에 넘쳐나는 교수들 중에 몇 명이나 진정한 학자이고 예술가이고 지성인일까?
 
저자는 소로가 소비사회가 추구하는 욕망의 논리를 철저히 부정하고 최소한의 노동으로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만 갖추고 살면서 남는 시간은 자연을 관찰하고 독서를 하는 데 쓰며 지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소로는 진정한 독서인, 자연인, 학자였고 무엇보다 먼저 순수한 인간이었다고...
게다가 소로는 권력과 권위를 거부하거나 대체로 무시하며 살았지만, 노예제와 같이 정의롭지 못한 제도나 법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저항했다.
 

즉, 저자가 보기에 소로는 우리가 우러러봐야 할 위인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보통사람이자 우리의 친구다.
소로가 우리의 친구라 함은, 물질문명을 모두 거부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물질문명의 지배를 받게 되지 않을 정도로는 그것을 거부해야 힌간 본연의 순수함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로는 하버드대학 출신의 자발적인 비정규직 노동자였고 자본주의에 대한 반항자이며 자유인이자 자연인이었다.
"법률을 존중하는 마음을 키우는 것보다 인권을 존중하는 마음을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나의 권리로 자신에게 스스로 부과하는 유일한 책임은 언제 어떤 경우라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다. 집단 자체에는 양심이 없다는 말은 정말 옳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에 살았던 소로의 삶은 그 이후 마틴 루터 킹과 간디, 이반 일리히, 톨스토이,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게리 스나이더 등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처음 내가 <월든>을 읽었을 때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많이 혼란스럽고 복잡했다.
소로가 자연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반자본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저항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지금 되돌아보면 <월든> 안에는 <시민저항>이나 <산책> 등 그의 저서와 글에서 꾸준하게 거론되어온 내용들도 들어있다.
다만, 내가 사전에 소로에 대해 알지 못한 채 내 식대로 <월든>을 이해하려 했고 특정한 무언가를 책 속에서 찾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내용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은 것이었다.(그것은 법정스님이 소개한 책이기 때문에 무소유나 소박한 삶이라는 관점에서만 내용을 읽으려 했던 것...)
<월든>을 읽으면서 어렴풋하게 이해했던 소로의 삶과 생각을 이 책을 통해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그는 지금의 내 나이에도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그는 삶은 지금의 나에게도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내가 인정하는 가장 매력적인 삶은 '일관성'과 '철학'인데 그는 그 두 가지를 모두 겸비했다.
과연 나는 앞으로 소로와 같은 삶의 자세와 태도, 행동방식을 취할 수 있을까 자문해 본다.
 
[ 2011. 01.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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