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인가? 정부인가?
김승욱 외 지음 / 부키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세종 공부모임]의 두 번째 세미나 교재로 선택된 것이다. 경제학의 두 가지 흐름 '보수'와 '진보' 각각의 세력이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거듭되고 있는 경제 문제에 대해 각각 어떻게 진단하고, 어떻게 처방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양자를 비교하면서 저자들은 우리 경제의 모습에 대해 일반인을 위한 총체적 전망을 제시하고자 한다.

두 가지 흐름 중에서 과연 누가 옳은 것인가? 이 책에서 저자들은 '직접적으로는 답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시장 기능을 중시하는 시장주의자의 '보수적' 시각과 정부 기능을 중시하는 정부 개입주의자의 '진보적' 시각이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거듭되고 있는 경제 문제에 대해 각각 어떻게 진단하고, 어떻게 처방하는지를 보여 줄 뿐이라고...
 
1부 [이론적 논의]에서는 시장을 왜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하는지, 정부를 왜 '보이는 손'이라고 하는지, 그리고 양자의 패러다임의 역사적 변천과정은 어떠했는지에 대해 다룬다. 지난 역사적 과정은 시장의 손과 정부의 손 중에서 어느 손을 중시할 것인지에 대한 관점에서 돌아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두 가지 견해 차이의 뿌리에는 세계관의 차이가 존재하며 그에 따라 이념과 정당이 갈리고 각각은 안정과 변화, 자유, 집단과 계층, 인간성, 경쟁, 경제학의 강조점에서 대립적인 시각과 정책을 가져온다고 분석한다. 결과적으로 시장의 손은 경제 논리를 내세우고 정부의 손은 정치 논리를 내세우는 것이며 상충하는 두 논리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것이 1부의 결론이라 할 수 있다.
 
2부. [부문별 비교]에서는 각 부문에 대한 두 가지 입장이 어떻게 대립되는지 살펴본다.
- 소득분배와 빈부격차의 원인에 대해서는 개인의 잘못인지 제도의 모순인지를,
- 복지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질 것인지를,
- 경제 안정에 대해서는 시장의 자기 치유 능력이 믿을 만한지를,
- 경제 성장에 대해서는 정부가 주도해야 하는지를,
- 구조 조정에 대해서는 정부가 나서야 하는지를,
- 금융 시장에 대해서는 이자율에 맡겨야 만하는지를,
- 노사 관계에 대해서는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지를,
- 공기업 민영화를 해야 하는지를,
- 환경 오염에 대해서는 규제만이 해결책인지를,
- 농업에 대해서는 포기할 것인지, 보호할 것인지를,
- 주택 문제에 대해서는 투자로 볼 것인지, 투기로 볼 것인지를 논의한다.
 
시장 논리와 정부 개입에 대한 이론적인 논의를 하는 것은 크게 문제삼을 필요는 없지만, 책 속에서 이미 전세계적으로 경제학자들과 정책담당자들, 그리고 시민들에게 자명하게 결론이 나버린 문제들에 대해서 논의를 이끌어내려는 것이 조금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경제 성장이나 구조조정, 노사관계나 복지문제 등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신봉했던 국가들마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지 오래된 상황이다. '시장의 자기 치유 능력'이 없음에 대해서는 이미 1930년대 세계적인 대공황에서 입증된 바이고 2007년 이후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금융 시장마저 정부가 깊숙하게 개입해야 함이 드러난 바 있다. 그 밖의 부문에 대해서도 자본주의 시장체제는 정부의 개입 없이 어느 하나라도 기업가들과 시장에만 맡겨놓았다가는 멀쩡하게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에 이르렀다.
 
특히, 한국의 경우 나는 '시장경제체제'라는 것이 도대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한국의 경제계와 기업은 정부의 개입과 육성 없이, 폭력적인 농촌 해체와 노동자들의 임금 동결과 착취, 대기업에 대한 불공정한 정책 집행, 세금과 재정의 일방적인 기업 편향, 법과 제도의 반민중적 적용이 없었더라면 현재의 한국 기업들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나마 자유주의와 자력에 의한 기업이 존재하는 서구가 아닌 한국에서 '시장의 손'과 '정부의 손'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허구적일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저자들이 '시장의 손'이 조금이라도 한국에 적용되도록 하려면, 이명박정부의 4대강 죽이기 사업과 무분별한 토건 국책사업, 동남권 신공항 건설, 친재벌적인 저금리-고환율-고물가 정책에 대해 벌떼같이 나서서 반대해야 하는데 전혀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어떤 정책 담당자도 정치인도, 재벌이나 기업가도, 경제학자도 한국에 '시장 중심주의'에 대한 주창자가 있거나 한국이 한번이라도 '시장 중심주의'적으로 경제가 운영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나마 '시장 중심주의'가 한국에서 거론되는 것은 한미FTA나 한EU FTA가 한국에 강제되면서 외국으로부터 거론되는 이야기일 뿐이고 독재자나 재벌, 기업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이나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필요할 때 외칠 뿐이지 않은가?
 
이 책은 한국 경제학계와 경제계 전반에서 나타나는  '시장 중심주의'와 '정부 개입주의'의 갈등을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비교 검토하겠다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한국 경제의 현실과 구조를 왜곡하고 결과적으로 '시장 중심주의'를 옹호하고 말았다. 당초 책을 발간한 취지를 달성하지 못한 것이고 그것은 저자들이 실력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고 표면적인 이유와는 달리 애초 의도가 달랐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들의 학문 배경을 들여다보면 저자들의 한계와 실력 부재라는 측면을 발견하는데 단초가 엿보이기도 하다. 저자들 중 다수가 '시장 중심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산실은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미국 유학파'들로 보인다. 시장 중심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물결치는 토양에서 배운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정부 개입주의와 비교하여 장단점을 분석하는 글을 쓴다는 것이 다소 아이러니할 뿐이다.
 
그리고 책 머리말 중의 '2. 목적'을 보면 저자들의 생각이 편협되어 있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낸다.
"한국 사회에서는 자본주의의 기초가 되는 기본 개념에 대해서조차 아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것 같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 경제의 제1원리는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것마저도 속물적이라고 생각하고 거부감을 보이기도 한다. (중략)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의 기초는 기업이고, 기업의 경쟁력은 경제 성장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다. 그런데 기업의 존립 목적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경우 매우 전자본주의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p.13)
 
이 문단을 읽어보면 저자들의 식견이 얼마나 구태의연하게 편협되어 있고 기업에 편중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 경제의 문제점은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과도해서 문제임을 저자들은 모르고 있다. 한국 경제는 시장의 원리와 신용, 공정거래, 기회균등 등 자본주의의 토대가 너무 취약하기 때문에 너무 많은 문제점과 모순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저자들이 모르는 것인지 무시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초는 국가, 기업, 가계임은 모든 학자들이 인정함에도 저자들은 '생산의 기초는 기업이고 기업의 경쟁력이 성장의 원동력'이라는 식으로 교묘하게 이론을 바꾸어 자신들의 생각을 내보인다. 생산의 기초가 기업이면, 소비의 기초인 국가와 가계, 그리고 개인은 어디로 갔는가? 저자들의 이론을 십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저자들은 기업의 경쟁력 뿐 아니라 국가의 경쟁력과 가계의 경쟁력은 왜 중요시하지 않는가? 왜 공정하게 다루지 않는가 말이다. 문단을 보면 결국 저자들이 목적이 자본주의 전체와 국가, 가정, 개인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기업만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을 백일하에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들은 기업들의, 그것도 재벌들의 하수인임을 자백하고 말았다.
 
이런 학자들이 각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정부와 기업에게 자문을 하고 학계를 구성하고 있으니 한국의 경제학계에 공정하고 공평하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논의와 학문이 불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든다. 다행하게도 공부모임 참석자들이 논의를 진행하면서 책을 발간한 본심과 저의를 알아챘다.
  
[ 2011년 4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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