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지음 / 푸른숲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내가 읽은 류시화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자 그가 세상에 처음으로 내놓았던 시집이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을 읽어본 후 류시인의 시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이 시집은 그가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을 중단한 후 8년 만에 외부에 드러낸 자신의 생각이며, 지난 13년 동안 썼던 시들이 망라된 것이라 한다. 그는 그 사이 전세계 주요 명상서적을 번역하면서 명상가로 거듭나고자 했다.
 
1989년 처음 이 시집이 문단에 발표되고 출간되었을 때, 독자들에게는 적지않은 호응을 받은 반면 문단에서는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민중적이고 저항적 작품을 지향했던 당대의 문단과는 달리 신비주의적 세계관의 작품세계로 인해 문단으로부터 비판을 받았고 외계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한국사회에서 419 혁명 후 다시 뜨거운 자유와 평등의 물결이 몰아쳤을 때, 그는 세상을 등지고 자신의 내부로 향했던 것이다.
 
[벌레의 별]
사람들이 방안에 모여 별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문 밖으로 나와서 풀줄기를 흔들며 지나가는
벌레 한 마리를 구경했다.
까만 벌레의 눈에 별들이 비치고 있었다.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나는
벌레를 방안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어느새 별들은 사라지고
벌레의 눈에 방안의 전등불만 비치고 있었다.
나는 다시 벌레를 풀섶으로 데려다 주었다.
별들이 일제히 벌레의 몸 안에서 반짝이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생각으로는 지식과 관념, 도그마와 이데올로기에 오염된 사람들은 자연과 우주에 대한 감성이 퇴화되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인간들도 죽은 사람들이며 노예들이었다. 그는 80년대의 또 다른 절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소통이 불가능하고 커뮤니케이션이 왜곡되고 차단된 상실의 시대...
 
시인 이문재는 그의 작품과 당시 문단이 바라보는 시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의 시들은 거의 변하지 않고 초기의 시세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얼핏 중요하지 않아 보이지만, 그가 세상과 격절된 상태로 20대 중후반을 지내왔기 때문이라는 근거를 댈 수도 있지만, 저 들끓던 80년대에서 자기를 지키며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은 큰 변화 못지 않은 견딤으로 본다... 일상언어들의 직조를 통해, 어렵지 않은 보통의 구문으로 신비한 세계를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그의 시의 주요한 미덕이다.
낯익음 속에 감춰져 있는 낯설음의 세계를 발견해내는 것이 시의 가장 큰 역할은 아닐까."
 
문단의 혹평 속에서도 이 시집은 1989년~1998년 동안 21번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그는 [시로 여는 세상] 2002년 여름호에서 대학생 5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인에 윤동주, 김소월, 한용운과 함께 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무려 20여년전에 발간된 시집이다. 시인은 그 사이에 여러 시집을 또 발표했다. 이 시집 이후 시인은 또 많이 변화되고 성숙되었을 것이다. 내 눈으로, 내 손으로 음미해보고 느껴볼 일이다.
 
이 시집의 대표작이기도 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물 속에는 물 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물체와 미생물체가 함께 들어있다. 하늘에도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구름도 있고 달과 별도 있고 바람도 있고 새도 있다. 하늘만 있는 하늘은 우리에게 삭막함으로 다가올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내부에는 나 뿐 만 아니라 내가 관계한 수 많은 인연과 사건과 관념과 생각이, 꿈과 추억이 함께 들어 있다. 그 인연이 무엇이냐에 따라, 어떻게 받아들이고 체화시키느냐에 따라 사람의 삶을 어둡게 하기도 하고 화나게 하기도 하고 기쁘게 하기도 하고 슬프게 하기도 한다. 

사람의 안에서 사람을 흔드는 것은 무엇이며,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것은 누구일까? 그것은 사람에 따라 신이 될 수도 있고 또는 스승, 신념, 애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 안에서 나를 흔들고 내 꿈과 만나는 이는 누구일까...
 
[ 2011년 2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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