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의 속삭임 - 내가 자연을 사랑하는 이유 자연과 인간 12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김욱동 엮음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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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미국 사회의 이단아 헨리 데이비드 소로...
최근 몇 권의 그의 저서와 글을 읽고 나서 나는 그가 간디나 크리슈나무르티, 공자나 버트런드 러셀 정도로 위인으로 칭송받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그가 살았던 짧은 삶과 그의 사상과 행동은 여전히 우리에게 적지않은 감동과 깨달음을 전해줄 수 있다고 인정한다. 
 
저자 역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소로를 접한 다음 그의 사상을 좀 더 쉽게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심한 사람 중의 하나다.
저자는 결국 소로의 작품 가운데서 주옥같은 글을 뽑아 그것에 대하여 짧은 해설을 덧붙이는 식으로 진행했다.
저자의 소개와 설명이 소로를 생태주의자와 저항인 정도로 '격하'시키는 감도 없지 않지만, 소로를 한국에 소개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어느모로 보나 긍정적인 현상이라 생각한다.
 
많은 소로의 작품 중에서 주옥같은 글들을 모아 해설을 더하는 저자의 방식도 소로를 이해하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 잡초에 대한 소로의 글은 인간이 다른 피조물을 무시한 채 얼마나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말해 준다.
북아메리카 인디언 추장 '구르는 천둥'의 말처럼 "문명인들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식물을 잡초라고 부르는데, 이 세상에 잡초라는 것은 없다. 모든 풀은 존중받아야 할 이유를 지니고 있고 쓸모없는 풀이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똑 같은 말을 윤구병선생도 하셨고 법정스님도 하셨다.
어디 잡초에 대한 생각 뿐이랴...
서구에서 시작된 인간 중심주의, 인간 이기주의는 인간 이외의 대상 뿐 아니라 이제는 인간들 사이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되어버렸다.
 
- 나무와 낙엽에 대한 소로의 예찬은 '삶과 죽음'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도록 만든다.
낙엽은 소로에게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는 그 화려한 빛깔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나무에게 영양분을 공급하여 열매가 맺도록 하고 그 열매로 사람과 동물들이 먹고 살도록 해준다.
또 땅에 떨어져서는 그 위에 자라는 온갖 식물에 자양분을 공급한다.
낙엽과 비교하면 인간은 어떠한가?
살아 있을 때도 온갖 방법으로 자연과 동식물을 괴롭히고 파괴하더니 죽어서도 '우아'하게 육신의 옷을 벗지 못한다.
장례가 사회적 신분이나 재산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사회...
 
- 육체적 노예와 정신적 노예...
소로는 육체적 노예 못지않게 심각한 것이 정신의 노예라고 주장한다.
21세기 현대사회에서도 '경제적 노예'보다 더 심각한 것이 정신의 노예일 것이다.
아니, 경제적 노예가 '정신의 노예'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돈이든, 권력이든 많이 가진 사람은 더 가지기 위해서, 어느정도 가진 사람은 '많이 가진 사람'의 대열에 끼기 위해서, 부족한 사람은 부족한 사람대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을 가질 것인가, '무엇'이 인생의 목표가 되고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가라고 소로도 이야기하고 법정스님도 이야기한다.
 
그 이외에도 이 책 속에는 자유에 대해, 부정한 정부에 대한 시민의 저항에 대해, 육식에 대해, 철학과 철학교수에 대해, 교육에 대해, 종교에 대해 많은 글을 써냈다.
 
소로는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에 이미 미래를 내다보고 '올바른 삶과 정신'을 앞서 주장하고 실천한 사람이니 당연 '위인'으로 인정받아 마땅할 것이다.
 
물론, 마지막 결론은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로 귀착되지만...^^
 
[ 2011년 2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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