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
업튼 싱클레어 지음, 채광석 옮김 / 페이퍼로드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생활고에 세상 등진 여성 간신히 목숨 구해(청주)', '생활고에 시달리던 가출청소년 편의점 상습 강,절도(서울)', '고문 후유증에 생활고로 518 유공자 자살 잇달아(광주)', '생활고에 2층 난간에 목 매달아 자살(개봉동)', '생활고 비관 70대 할머니 자살(대구)', '생활고 비관 자신의 집에 방화한 40대(거제)', '보육원 퇴소 10대들 생활고 압박 강도(광주)'... 
 
3월 22일 다음 포털 사이트에서 '생활고'란 단어를 입력한 후 첫 번째 페이지에 나온 기사들이다. 청소년부터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 전반에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그에 따른 사건사고와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지난 2월 20일 통계청의 우리나라 상대빈곤율(가처분소득 기준) 발표에서 지난 2007년 14.8%, 2008년 15.0%, 2009년 15.2%로 높아지고 있는 수치가 사회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상대빈곤율이란 소득이 중위소득(전체 가구를 소득수준별로 나란히 세웠을 때 한가운데에 위치한 가구가 벌어들인 소득)의 50%를 밑도는 가구의 비율을 뜻한다. 월 소득이 최저생계비 미만인 가구의 비율을 나타내는 절대빈곤율도 2007년 10.2%, 2008년 10.4%, 2009년 11.1% 등으로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지원하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는 몇 년째 제자리 걸음을 계속하고 있다.(한겨레 기사 2011-2-20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464290.html)
 
지구상에서 가장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는 어디일까? 세상 사람들은 모두 미국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미국은 한국보다 더 잘 살까? 미국이 제3세계에 자신들의 자랑이라고 떠들어대는 자유, 평등, 기회는 얼마나 잘 보장되어 있을까? 20세기에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과 제3세계 국가들에게 미국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로서 자랑하고 전파한 자본주의, 자유시장의 모습을 이 책 만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도 없을 것이다. 한국은 이런 미국을 철저하게 따르는 중이다.
 
이 책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온 리투아니아 이민자들이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이 장악한 시카고에서 열악한 노동환경과 근로조건, 거주상황 등으로 인해 처절하게 무너지는 과정을 그려낸다. 그곳은 '정글'이었다.
 
1900년대 초 '황제의 숲'으로 알려진 리투아니아의 브렐로비치라는 산악지방에서 아무런 걱정없이 평화롭게 살던 20대 초반의 유르기스는 말 시장에서 처음 본, 아름다움 미소를 지닌 오나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오나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게된 유르게스는 미국이 리투아니아와 달리 자유, 평등, 기회의 땅이라는 소문을 듣고 부푼 꿈을 안고 모든 재산을 처분한 다음 오나, 그리고 오나의 가족들(모두 12명)을 데리고 미국 시카고에 도착한다. 시카고까지 오게된 동안 재산 대부분을 지출하였고 시카고에 자신들이 편하게 거주할 마땅한 집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시카고에서 처음 본 거대한 쇠고기 공장과 가축 수용장을 둘러보면서 유르기스는 "끔찍해라. 내가 돼지가 아니라서 참 다행이네."라고 속삭인다. 
 
유르기스와 일행들이 꾼 꿈이 헛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며칠도 걸리지 않았고 그들은 잠자리와 먹을거리를 위하여 직장을 구해야 했으나 당시 시카고는 유르기스 일행과 같은 이민자들과 실업자들이 넘쳐났기 때문에 취업은 쉽지 않았다. 가까스로 취업에 성공한 유르기스와 어른 몇 명은 지옥같은 공장에서 장시간 일해야만 했다. 추위, 악취, 먼지, 피, 기름, 땀이 범벅된 공장 안에서는 쉴 틈도 없이 기계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유르기스는 오나와 결혼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들은 한 때 무한경쟁 속에서도 자신들의 보금자리도 장만하고 돈도 모으는 등 희망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본가들과 그 하수인들이 쳐놓은 이중, 삼중의 그물망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처음 강철같은 체력으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유르기스는 오래지 않아 집도 빼앗기고 체력과 정신이 고갈되고 소중한 가족들을 하나씩 쓰러져갔다. 유르기스가 시카고의 구조적인 현실을 깨달은 것은 모든 것을 빼앗긴 후였다. 고통과 절망으로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방황하고 추위와 허기에 시달리다가 유르기스는 사회주의자들을 만나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
 

이 책은 출간된 이후 미국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당시 대통령이던 루스벨트의 조사와 후속조치를 통해 식품안전에 관한 법률,제도와 식품의약품안전청(FDA)가 설립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책을 발간했던 더 중요한 이유, 즉 열악한 환경과 처우를 당하고 있는 노동자와 빈민에 대한 관심이 식품안전에 대한 관심으로 변해버린 결과로 인해 허탈감에 빠져야 했다.
 
<정글> 속의 이야기가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된 아득한 과거의 이야기로 끝난 것일까? 책의 말미에 소설가 방현석이 '작품해설'에 쓴 것처럼 "시간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이 책이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과 존 로빈슨의 <음식혁명>에 다시 거론된 것은 아직도 자본가와 쇠고기 산업이라는 악마가 지구상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100년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자본, 자본가들의 추악함과 역겨움은 여전하다. 그리고 미국의 추악한 쇠고기 산업은 지난 2008년 한국에서도 '광우병 파동'을 일으켰고 다행이도 그 사건을 계기로 우리도 육식의 공포와 쇠고기 산업의 폐해를 알게되었다.
 
<정글>은 광우병 공포와 쇠고기 산업의 추악함 뿐 아니라 21세기 한국에도 여전히 열악한 취업기회와 근로조건, 물가상승과 불안한 보금자리, 자본주의적 욕망과 무한경쟁이 도사리고 있는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IMF 사태 이후 부익부빈익빈이 더욱 심화되면서 빈곤층이 늘어남과 동시에사회적으로 희망을 잃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공동체 의식이 무너지고 있다. 무엇이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들어 가는지, 몰아 가는지 <정글>을 통해 냉정하고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현실을 정확하게 알고 난 다음에야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 2011년 3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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