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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떠나기 ㅣ 법정 스님 전집 2
법정(法頂) 스님 지음 / 샘터사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아름다운 마무리>와 <산방한담>,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오두막 편지>, <산에는 꽃이 피네>, <서있는 사람들>, <무소유>에 이어 여덟 번째 법정스님의 저서를 읽었다. 이 책은 1992년 초판이 발행되었고 법정스님이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쓴 글을 모은 것이다. 1992년은 스님이 홀연히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오두막에 기거하시기 시작한 때이다.
이 책에는 눈을 뜰 때마다 새롭게 다가서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비롯해 명예와 편안함을 버리고 혼자서 살아가는 구도자의 청빈한 삶이 잘 드러나 있다. 시종일관 욕심을 버리고 떠나라는 가르침과 사람은 혼자일 때 자기 내면의 목소리와 진실되게 만날 수 있다는 스님의 참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특히 강원도 오두막에서 나무, 새, 바람, 달, 들짐승을 벗삼아 사는 구도자의 속깊은 대화를 엿들을 수 있다.
스님의 생애는 책의 제목처럼 몇 차례의 [버리고 떠나기]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출가(出家)다. 외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책 읽고 사색하는 것을 좋아했던 청년은 1954년 싸락눈이 내리던 날 홀연히 집을 나서 머리를 깎았다. 평소 흠모했던 등대지기의 꿈을 접고 ‘진리의 빛’을 찾아 나선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과 세속적 욕망을 버리는 대신 그는 진리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었다.
두 번째는 1975년 10월 1일 서울 봉은사 다래헌(茶來軒)에서 전남 순천 조계산 자락 불일암(佛日庵)으로 들어간 일이다. 글 잘 쓰고 의식 있는 40대 초반의 촉망받는 중진 스님이었던 그는 “시국 비판이나 하며 글재주만 부리다가는 중노릇 제대로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모든 것을 내던지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한 칸 암자에서 혼자 밥 짓고 밭을 매며 17년을 지내면서 <무소유>, <산방한담(山房閑談)>, <텅 빈 충만> 등 10여 권의 산문집을 펴냈다. 승속(僧俗)의 명예를 과감히 떨쳐 버린 덕분에 사색의 자유와 자연과의 교감을 얻게 된 것이다.
세 번째는 1992년 4월 19일 강원도 산골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오두막으로 다시 거처를 옮긴 일이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산중 암자에 방문객이 늘어나고 글 빚도 지게 되면서 수행에 지장을 받게 되자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지인들은 물론 몇 안 되는 상좌조차 아직 스님의 거처를 몰랐다. 스님이 “누군가 내 거처를 알게 되면 나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큰스님’으로 불리며 절 집의 높은 자리에 앉는 대신 자신만의 수행 공간과 절대 고독의 희열을 얻게 된 것이다.
네 번째는 2003년 12월 21일 한 여신도가 오랜 간청 끝에 스님에게 시주한 서울 성북동 길상사의 창건 6주년 기념 법회에서 회주(會主·절의 원로 스님) 자리를 미련 없이 내놓은 일이다. 주지 한 번 맡지 않았던 스님이 떠밀리다시피 맡았던 자리였다. 하지만 차츰 틀이 잡혀 가자 “수행에는 정년이 없으나 직위에는 반드시 정년이 있어야 한다”는 평소의 소신을 주저 없이 실천한 것이다. 많은 이가 아쉬워했지만 스님은 큰 짐을 벗어던진 듯 편안한 모습이었다. 스님은 이날 법회 후 차 한 잔을 따라 주며 “때가 되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육신을 벗어버리고 싶다”고 지나치듯 말했다. 법정 스님이라면 능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님은 이후 봄가을 두 차례만 길상사에서 공식 법회를 열 뿐이었다.
이 책 속에는 중생들의 삶과 애환을 달래지 못하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발언이 몇 가지 들어있다.
[화전민의 오두막에서]는 199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병'에 걸리지 않은 부드럽고 국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할 수 있는 정치인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나의 휴식 시간]에서는 어려서부터 책벌레였던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의 휴식 시간은 좋은 책을 읽는 시간임을 이야기한다. 그 중에는 다이호우잉의 소설 <사람아 아, 사람아!>, <닥터 노먼 베쑨>,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 리처드 바크의 <소울 메이트>, 장 그르니에의 <지중해의 영감> 등을 소개한다. 그러면서도 스님은 괴테의 <파우스트>의 주인공 메피스토텔레스의 말을 통해 책의 함정을 경계한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생명의 나무는 푸르다."
그리고, [개울가에서]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서로가 창조적인 노력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오고가며 만나는 친구관계에 대해 충고한다. 무가치한 일에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소중한 삶을 쓰레기더미에 내던져버리는 거나 다름이 없다고...
[입시에 낙방당한 부모님들에게]는 교육히 참으로 해야 할 일은 그럴듯한 직업을 얻도록 준비싴키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과정을 이해하도록 도와 무엇인 진리이고 삶의 진실인지 스스로 찾아내도록 거드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무엇이 전쟁을 일으키는가]에서는 1991년 걸프전쟁을 바라보면서 종교간의 갈등의 본질에 대해 탐구한다. 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 신들이 존재하는 것은 인간들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 것이다. (중략) 종교가 생기고 나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람이 있고 나서 그 사람이 만들어놓은 여러 가지 문화현상 중의 하나가 종교임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통일을 생각하며]에서는 조금 의외의 이야기도 나와 있다. 1989년 평양을 방문한 전대협 임수경씨가 평양에서 개최한 기자회견 석상에서 "김일성 1인 독재의 우상화와 남조선 해방의 허구적 논리를 위대한 주체사상이라고 떠받"들었다는 것. 생소한 이야기라 인터넷을 한참 뒤져보았는데도 평양에서 진행된 2차례의 기자회견 관련 기사에서는 비슷한 내용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당시 정부측 인사나 보수 언론 등에서 확대 포장한 내용을 들은 것인지, 아니면 내가 관련 내용을 못찾은 것인지...
[아직 끝나지 않은 출가]에서는 1975년 인혁당 사건 이야기가 나온다. 스님은 당시 박정희 군사독재자가 인혁당 관련자 8명을 사형은 선고한 다음 날에 죽여버린 사건이 반정부 인사들이 인혁당 사건을 정치적인 조작극이라고 몰아붙인 것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크게 자책하셨다고... 스님은 이 사건을 계기로 출가 수행자가 마음 속에 적개심과 증오심을 품는 것에 대해 되돌아보고 자신이 무엇 때문에 출가하였는지 다시 헤아리기 위해 불일암에 들어가셨다.
* 책 속의 문장 :
- 세상에 거저 되는 일도 없지만 공것 또한 절대로 없다. 그만한 보상을 치르지 않고는 그 어떤 결과도 가져올 수 없다. 안이한 직업적인 중 노릇이 편한 것 같지만, 거기에는 곰팡이균처럼 부패와 타락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니 편하고 한가함을 즐길 게 아니라 독사를 피하듯 멀리 해야 한다. 특히 수행자를 병들게 하는 것은 이 편하고 한가한 안일임을 명심하고 명심할 일이다.
-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그러므로 차지하고 채우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침체되고 묵은 과거의 늪에 갇히는 것이나 다름이 없고, 차지하고 채웠다가도 한 생각 돌이켜 미련없이 선뜻 버리고 비우는 것은 새로운 삶으로 열리는 통로다
[ 2011년 2월 2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