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라는 것, 어떻게 생각하세요. 낯설지 않을 정도로 쓰이는 말이지만, 실은 잘 모르겠더라구요. 이런 건 우연인 건지, 아닌 건지.

 

 왜 내가 여기에 얼굴을 내밀었는가 하면, 과거에 내 신상에 일어났던 몇 가지 '신기한 일'에 대해 직접 말해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종류의 일들이 내 인생에서는 자주 일어났다. 어떤 것은 의미를 가진 사건이었고 내 삶의 존재방식에 적잖이 변화를 몰고 오기도 했다. 또 어떤 것은 별 볼일 없는 소소한 사건이어서 그것에 의해 내 인생이 딱히 영향을 받는 일은 없었다...... 아마 없었을 것이다. (페이지 9)

 

 지나가다 갑자기 마주치면, 그럴 때 우연이라는 말을 써요. 오래 전에 같은 학교를 다닌 사람을 어쩌다 만나면 우연이라고 하고, 나랑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지나가다 만나도 우연이라고 할 거고, 그것 아니고도 생각해보면 많겠죠. 그렇게 겹쳐진 우연이 반복되면 조금은 생각이 달라질 때도 생겨요. 이건 우연이 아닐거야, 하고요.

  

 

  분명 놀랄 만한 우연이었다. 평일 아침, 한산한 쇼핑몰의 한산한 카페에서 나란히 옆자리에 앉은 두 사람이 완전히 똑같은 책을 읽고 있었다. 그것도 여기저기 유행하는 베스트셀러 소설이 아니라 찰스 디킨스의, 그다지 일반적이라고 할 수 없는 소설을. 두 사람은 이 신기한 우연에 놀랐고 그 덕분에 첫 대

면의 어색함이 사라졌다. (페이지 23)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이, 우리가 만나는 사건들이, 모두 우연이라면. 우리는 언젠가 만날 수도 있고, 만나지 못할 수도 있겠죠. 반대로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면, 우리는 언젠가 어디서 만날 예정이거나, 아니면 만나지 않을 예정이겠죠. 그러니까 만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아닐 수 있겠군요. 만날 수도 있고, 만날 수도 없고.

 

 

 " 형태가 있는 것과 형태가 없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형태가 없는 것을 택하라." 그녀가 되풀이해서 말했다.

 "그렇죠."

 그녀는 한바탕 생각에 잠겼다. "그런 말, 지금의 나는 잘 모르겠어요. 무엇이 형태가 있는 것이고, 무엇이 형태가 없는 것인지."

"그럴 거예요. 하지만 그건 아마도 어딘가의 시점에서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것이에요."

"당신은 그걸 알 수 있어요?" (페이지 31)

  누군가에게만 그런 일들은 일어나고, 누군가에게는 일어나지 않고. 그런 것은 누가 고르는 것일까요. 누군가에게는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우연히도 일어나지 않는 것.  그런 걸 확률로 설명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병이라면 가족력이나 원인이 될만한 것들을 유추해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다 설명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런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일어날 것임을 알지만, 그것이 내게 일어난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걸요.

 

 

 "계기가 무엇보다 중요했어요. 나는 그 때 문득,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연의 일치라는 건 어쩌면 매우 흔한 현상이 아닐까라고요. 즉 그런 류의 일들은 우리 주위에서 그야말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거예요. 하지만 그 대부분은 우리 눈에 띄는 일도 없이 그대로 흘러가버리죠. 마치 한낮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희미하게 소리는 나지만 하늘을 올려다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건 분명 우리 시야에 일종의 메시지 로서 스르륵 떠오르는 거예요. 그 도형을, 그 담겨진 뜻을 선명하게 읽어낼 수 있게. 그리고 우리는 그런 걸 목도하고는, 아아,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참 신기하네, 라고 화들짝 놀라죠. 사실은 전혀 신기한 일도 아닌데. 나는 자꾸 그런 마음이 들어요. 어떻습니까, 내 생각이 지나치게 억지스러운가요?"(페이지42)

 누군가에게는 보이는 것, 누군가에는 보이지 않는 것. 그래서 신기한 일일 수도 있지만, 알고 나면 별 일 아니었던 것일 수도 있었던 것들. 그럼에도 그런 것들이 크고 작은 일들 사이를 오가면서 일어나는 것만 같아요. 모든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만 같아도,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렇지는 않으니까요.

 

 나한테 그런 일이 있었어, 하면 "설마 그럴리가!" 하고 말해줄 수 있는 일들이 있고, 나한테도 그런 일이 있었어, 하면 "너도!" 그렇게 말하게 될 일들도 있고. 누군가로부터 비슷한 누군가를 떠올릴 때가 있는 것처럼, 소설 속의 이야기라는 걸 알면서도 소설 밖의 이야기를 생각했어요. 이 순간의 누군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라는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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