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매일매일 비슷하게 살아간다. 큰 변화가 가끔씩, 있다. 이렇게만 쓰면 무척 애매한 표현이라서, 이게 다행인건지, 나쁜 건지 모를 일이다. 변화는 우리를 다른 것으로 바꾸어 줄 것만 같고, 지금까지 살아가는 이 반복되는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켜줄 것만 같은 막연한 기대감을 부추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알 수 없다는 것이 또한 불안을 자극하기에, 우리는 변화 앞에서 때로 몸을 움츠리고, 때로는 변화만이 살 길인 것처럼 기대한다.

 이번 페이퍼는 만화가 강경옥의 <설희>이다. 이 책이 현재 시점에서 강경옥 작품 중에서는 가장 신작이라 해도 될 듯 하다. 최근 이전의 작품이 다시 재발매 되고는 있으나, <설희>는 지금 작가의 연재가 계속 중이라서 이야기도 진행중이다.  

 

 

 

 

 

 

 

 

 

 

 

 

 

 

 

 

 

 

 

 

 

 

 

 

 

 

 

<알고보니 엄친딸이 아니었어?>

하루하루 사는 게 고단한 대학생 세라 앞에, 갑자기 낯선 사람이 나타난다. 자신을 엄마친구의 딸로 소개하는 그녀의 이름은 설희. 차 수리비를 핑계로 대고 세라와 함께 살기를 원하는 설희는 알고보니 엄청난 거액의 상속재산이 있었다. 세라의 눈에 비치는 설희는 매우 특이하고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온 사람처럼 보이면서도, 또한 가까워질 수 있을 것만 같은 사람이었다. 설희를 만나게 되고부터 세라의 삶도 약간의 변화를 맞이하지만, 갑자기 주어진 선물 앞에서 세라는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이전에 살던 것처럼 이 선물에 대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머뭇거리면서 언제나 그래왔듯이 고민하면서 기회를 잡지 못하는데, 이런 세라를 잘 아는 것처럼 보이는 설희도 다시 한 번 더 선물하는 배려는 해주지 않는다. 때로는 자신과 비슷한 나이처럼 보이면서도, 때로는 오랜 시간을 살아온 것같은 느낌을 주던 설희는, 오랜 시간을 그 모습으로 살아왔던 사람으로, 세라의 친구에게서 무언가를 찾고 싶어한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람과 설희의 전생의 인연인데, 이 이야기를 통해서 세라도 설희가 살아온 시간을 조금씩 알게 된다.

 설희와 함께 지내면서 세라도 조금씩 이전과는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지만,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말처럼 급진적인 변화는 생기지 않는다. 다만, 이런 세라를 보고 있으면 생각나게 되는 건 이 책을 읽는 나다. 어차피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도, 설희처럼 영원한 젊음을 갖지도 않았고, 부유하지도 않으며, 그리고 오랜 시간을 살아오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하루하루 걱정거리와 고단함을 안고 살고, 이 생활이 지긋지긋하다 해서 오늘부터 이건 땡!이다 하고 집어치울 수 있는 그런 대단한 결단력도 없다. 그리고 내가 바뀌라고 해서 바뀔 것도 별로 없는, 뭐 그냥 소심하게 사는 그런 나를, 여기에서도 설희가 아닌 세라의 모습을 통해서 보는 걸지도 모른다.

 

 갑갑하던 일상에 어느 날 변화가 찾아온다고 해도, 그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 입이 채 떨어지지 않아서 좋다는 말도 할 수 없었고, 어쩐지 실감나지 않아서 망설이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 시간종료될 수도 있다. 타임세일만 만나도 시간내에 결정할 것을 고민하게 되는데, 갑자기 행운이 온다해도 믿기지 않으니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긴 할 것 같다. 그런데, 기회가 지나고 나서도 다시 친절하게 한 번 더 권해줄 지는 누구도 모른다. 어차피, 로또처럼 갑자기 나타나서 당황스러운 행운의 선물이었다면 더더욱 다음 기회를 약속하긴 어렵다.

 그래서 세라도 조금씩 바뀐다. 갑자기 설희를 따라 갈 수 있을 만큼, 무모해진 걸지도 모르고, 아니면 두 번은 권하지 않는 선물을 받기로 한 걸지도 모른다. 사실 현실적으로 생각하자면 어차피 이런 설희라는 사람의 설정부터도 소설과 만화속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나를 위해 찾아온 설희같은 친구는 대부분의 사람이 일생동안 거의 만나기 힘들다. 그러나 읽는 사람은 생각한다. 변화, 기회, 그리고 내 앞에 놓인 이 순간의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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