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5 - 1
신아인 지음 / 아이웰콘텐츠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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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살이 될 거라 생각하지는 않으니 '1535'의 뜻을 적어보자면, 이것은 쇳덩이가 불에 녹는 온도를 말한다(얼마 되지 않는 내 지식으로는 순수한 철을 기준으로 할 때다) 책에는 독립운동을 하는 한일단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신분 확인 암호가 바로 이 '1535'란 숫자다. 쇳물이 녹아드는 온도 1,535℃, 누군가는 그 쇳물로 피를 거두기 위한 칼을 만들었고, 다른 이는 그 칼끝으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산다(2권 p.455) ㅡ 그리고 그 중심에는 매일 쇳물을 붓고 두들겨 무기를 만드는 경성대장간이 있다.



① 만일 조선철도를 역행하는 지하통로가 존재했다면?

② 만일 자살권총으로 통하는 일본군의 94식 남부권총이 조선인의 철저한 계획에 의해 제작된 거라면?

③ 지배자 위에 선 조선인, 일본인들을 쥐락펴락하는 조선귀족이 존재했다면?

④ 총독을 암살하려는 일본인과 이를 저지하려는 독립군이 있다면?



작가가 말미에 써놓았듯 『1535』에는 크게 위와 같은 4가지의 가설로 이루어져있다. 그런데 여기 등장하는 '지배자 위에 선 조선인 정민석'이란 인물은 총독에 버금가는 권력을 가지고 있어 거의 슈퍼맨처럼 그려진다. 영웅담에서 빠지지 않고 나타나는 필수적 요소는, 히어로는 항상 고독해야 한다는 거다. 정민석 역시 매국노 아비를 둔 조선 최고의 친일귀족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주목했던 점은 네 번째 가설이다. 소설에서 총독은 책상에 앉아 결재나 하는 허수아비에 불과해서, 정민석의 헤게모니가 그들을 잠식함에 따라 일본 군부는 총독 암살 계획을 세워 정민석을 위축시키려 한다. 물론 암살의 배후를 독립군으로 몰아가면서 말이다(그럼 독립군의 입장은 어떠한가 하면, 이거야말로 헤살이므로 여기에는 적지 않는다). 이로써 다소 낡아보일 수 있는 시대극이 멋진 활극으로 변모해 이야기에 힘을 부여한다.



덧) 개인적으로 느낀 아쉬움이라면, 서사들이 파편적으로 그려져 너무 시나리오적 냄새가 난다는 것. 또 하나는 곳곳에 설치된 지하의 비밀 통로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같아서 다소 맥이 빠질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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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검은 안개 - 상 - 마쓰모토 세이초 미스터리 논픽션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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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어떤 사실이나 비밀이 밝혀지지 않을 때 우리는 '안개 속에 묻히다'와 같은 관용구를 쓴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이 논픽션은 패전 뒤 일본이 미국에 점령되었던 시대에 일어난 12가지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데, 하나같이 모두 미해결로 끝이 났다(그런데 마찬가지로 한국의 일제강점기 혹은 지금 이 순간에 빗대어도 이 '안개'는 역시 존재하는 것 같다). 이 사건들에는 모두 GHQ(연합국 총사령부)라는 존재가 버티고 있다고 추측되는데 이런 일련의 사건들에서 최대의 이익배당을 챙긴 것 역시 GHQ라고 생각된다(하권 p.360). 내가 보기에, 텍스트를 읽으면 읽을수록 어떻게 해도 결과는 '미해결'이라는 형태로 또는 '안개' 속에 묻힌 채로 끝났을 것만 같다. 그 배후는 마치 요술 망토로 모습을 감춰 우리 앞에서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출근길에 사라진 총재 _ 시모야마 국철 총재 모살론」을 예로 들어보자. 이것은 일본의 초대 국철 총재인 시모야마 사다노리(下山定則)가 출근길에 행방불명되어 이튿날 토막난 사체로 철길 위에서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일본의 국철은 미 점령군이 장악하고 있었고(당연하다) 전후(戰後) 귀환자들을 끌어안은 국철은 대규모 인원정리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시모야마 총재의 죽음은 자살설과 타살설을 두고 논쟁이 되었다. 이 사건에는 특이점이 있다. GHQ 산하의 CTS(민간수송부)에서 그를 총재로 위임했는데 원래 시모야마는 기술 분야 출신이었다. 그래서 무려 95,000명을 해고해야 하는 상황에서 연민을 가져 망설이게 되었다. 이에 CTS의 담당자 섀그넌 중위는 그것에 불만을 품고 한밤중에 시모야마의 저택에 찾아가 윽박지르며 소동을 피웠다. 또 하나, 실종되기 전 시모야마의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그는 실종된 당일 아침 출근길 운전기사에게 「A로 가라」고 했다가 다시 「B로 가야겠어」, 「아니야, 다시 A로」와 같은 이상한 언동을 했다. 그러다 결국 미쓰코시 본점으로 차를 돌렸는데 그는 안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비가 상당히 왔음에도 이후 그의 들어 올려진 몸통 밑으로는 땅이 말라있었다든가, 죽기 전의 그를 보았다는 목격자의 진술이 너무도 구체적이고 세세해서 오히려 만들어진 각본 같았다든가, 사체가 철길 위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옷에 기름이 묻어있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속옷에까지 기름과 검은 때가 묻어 더러워져 있었다든가, 사체에 이상하리만치 혈액이 적었다든가 하는 의문점이 발생했다…….



위에서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사건들 뒤에는 GHQ가 있을 것이라고 적었는데 이것은 저자 마쓰모토 세이초의 추리를 따라가다보면 알 수 있고, 또한 '추리'라는 표현을 썼기 때문에 '추측' 혹은 '추론'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논리를 「가능성이 있을 뿐 사실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병원에서 의사가 내리는 진단은, 이전까지 이러이러한 증상을 보인 환자들의 진단 경험이 쌓이고 쌓여 내리는 '추론'이다. 다시 말해 의사도 추리를 한다. 내 생각에 의사는 「당신의 병명은 100% 이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없고 그렇게 결론지어서도 안 된다. 단지 여러 가지 근거와 단서를 갖고서 환자의 병을 추측해 가능성이 가장 많은 쪽으로 진단을 내리는 것이다. 세이초도 마찬가지다. 그가 조사하고 추리하고 매듭을 풀어가는 과정은 대단히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픽션 이상의 전율이 느껴질 정도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고, 우리들 개개인이 언제 어떤 일에 이런 식으로 연루되어 '범인'이 될지 모른다는 조건 속에 살고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물론 이 12가지의 이야기는 전쟁과 점령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한정된 사건들이지만, 이와 비슷한 모략이나 모함이 오늘날이라고 해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다이아몬드를 사랑한 사람들 _ 정복자와 다이아몬드」를 볼까. 제2차 세계대전 무렵 일본은 전쟁의 승리와 전쟁 물자의 조달을 위해 국민들에게 각종 귀금속을 사들였다. 이렇게 접수된 귀금속 중에서도 다이아몬드의 양은 엄청났다. 이야기는 이 다이아몬드의 대부분이 사라진 사건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정부가 「다이아몬드는 목표의 아홉 배, 백금은 두 배가 걷히는 큰 성과를 올렸다」고 발표했는데, 그 목표액이 대체 얼마인지는 공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걷힌 다이아몬드는 전후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1945년 가을 GHQ의 ESS(경제과학국) 국장 크레이머 대령이 장갑차에 병사 30여 명을 태우고 중앙은행을 둘러싼 일이었다. 그는 감찰을 한다는 명목으로 은행 직원들을 모두 내보내고 초조하게 한 방씩 살펴보더니, 지하실에 내려가 네 개의 대형 금고를 열고 그 금고 속을 정밀하게 감찰했다. 그리고 그 후에 일본 정부에서 국민들로 부터 사들인 귀금속을 관리하고 있던 미국 측의 머리 대령이라는 사람이 본국에 소환되고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징역 10년의 판결을 받았다. 일본에서 대량의 다이아몬드를 반출했다는 혐의였다. 그런데, 대체 일본 중앙은행 지하실의 금고 속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있었을까?



GHQ는 점령했던 일본을 모든 면에서 무력화시키고 일본 정부의 힘을 '거세'했다. 상황은 조금 다를지라도 우리나라의 과거사를 떠올리면 더욱 이해가 쉬울 것이다 ㅡ 책은 「그들의 이상한 전쟁 _ 모략 한국전쟁」에서 남침설과 북침설, 한국전쟁을 둘러싼 미국의 '보이지 않는 손' 또한 적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자들이 어떤 일을 해도 일반 국민들, 서민들로서는 알 길이 없다. 이것을 세이초는 점, 선, 면을 이어 하나의 동체로 만들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얼마 전 미국에서 젖소 한 마리가 광우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텔레비전을 통해 접했다. 우리나라에서 조사단을 파견했지만 결과는 어떤가. 한국 정부가 과거 국민들에게 했던 약속과 달리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지 않았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우리가 미국에 가서 조사를 한다고 한들 무엇을 얻어올 수 있었나. 미국 측은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그들로서 보여주고 싶은 것만 우리에게 알려줄 뿐이다 ㅡ 꼭 미국(강대국)이 아니라 해도 한국 내에서만 벌어지는 일들을 생각해보라! 지갑 속에는 29만원만 있다는 전 씨의 '평화의 댐', 장영자 사건, 이승만 정부의 보도연맹 사건, KAL 기 격추 사건, 소설로도 잘 알려진 이휘소 박사의 죽음, 선거 때마다 발생하는 무효표와 개봉된 투표함…… 우리는 이렇게 '국가와 권력' 혹은 '국가의 권력'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 않은가? 뭐, 비단 이것 하나밖에 없다고는 생각하지도 않지만 말이다.



사족) 「출근길에 사라진 총재 _ 시모야마 국철 총재 모살론」의 현장은 기타센주(北千住) 역과 아야세(綾瀨) 역 사이인데, 그 바로 옆은 가메아리(龜有)이다. 그리고 시모야마 총재가 실종되기 이삼일 전부터 「시모야마를 죽여라!」, 「시모야마를 처벌하라!」는 전단이 신주쿠(新宿) 역 주변에 붙어 있었다. 희한하게도 나는, 가메아리와 신주쿠에서 각각 반년씩 살았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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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그늘 2012-05-17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작 이상의 리뷰'라고 달고 싶군요.

그레코로만 2012-05-17 11:0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사실 감상은 별로 없고 원문 발췌 내용이 많아서 좀 쑥쓰럽습니다..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
유키 쇼지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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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력 만점이다. 1960년대 베트남의 정치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스파이물인데 지금 읽어도 낡은 느낌이 전혀 없는 왕도라고 할까. 속도감도 대단해서 다 읽는 데에 한 시간이 좀 안 걸린 것 같다. 그만큼 텍스트를 읽는 것에는 불편함이 없다. 인물들의 개성도 잘 드러나 있고. 1차적인 발단은 동료의 실종이지만 그 후 주인공과 착각을 일으켜 대신 죽어간 남자의 한 마디가 소설을 이끈다.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 이제야 탁월한 타이틀이 빛을 발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마이너스 인간들의 배신과 배신, 또 배신. 외려 천진난만하게까지 보이는 리엔의 육체가 베트남이란 덩어리와 겹쳐질 정도로 모리가키를 위시해 죽은 가토리, 토, 훈, 득 등은 시스템(체제)에 휘둘린 인간들로 그려진다. 나(사카모토)는 「일생을 한 줄의 선에 비유한다면 죽음은 검은 색의 작은 종지부에 지나지 않으리라. 갑자기 찾아와, 선의 앞길을 막는다」며 극심한 정신적 금속피로를 겪지만, 얻는 것은 고작 '인간 불신'이란 것을 재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소설은 국제 정세나 활극에 의지하기보다는 스파이라는 인간상에 집중된다. ……좀 극적인 표현을 하자면, 국가는 수탈과 재분배의 기구이며 전쟁의 피 냄새를 먹고 자라나는 기구이다. 홉스의 만인의 투쟁으로 인해 국가가 만들어졌다기보다 강력한 힘의 논리에 의해 커다란 공동체가 작은 공동체를 짓누르는 형식으로 국가의 탄생과 출현을 보는 게 적당할는지 모른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은 존재」라 했고 알튀세르는 「주체는 이데올로기의 호명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했다. 고메스의 이름을 묻는 자들은 과연 어느 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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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홍신 세계문학 9
앙드레 말로 지음, 박종학 옮김 / 홍신문화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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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적으로 인간이란 고통으로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 고 하면 너무 무책임한 말이려나. 소설은 역사의 바퀴 속에서 버둥거리는 군상의 모습들을 보여주지만 초점은 나약한 개개인에 맞춰져 있다. '인간의 조건'에 어떤 존엄성이 있는가, 하는 질문은 끌어 안은 폭탄과도 같이 위험천만하게만 보인다. 역사책이 아닌 하나의 소설로 읽어야 하기에 인물들의 앙다문 입 속에 들어있는 테러, 인간, 고독, 탈출, 존엄, 노동자, 코뮤니즘 그리고 그(것)들의 조건은 비극의 끝자락에서 유령처럼 희끄무레하게 번지고 있다. 과거 장제스의 공산당 탄압을 묘사하고는 있지만 『인간의 조건』에서는 부차적인 것일 뿐이고, 오히려 '인간의 조건'과 '인간의 극복'을 막연하나마 잡으려 하기에 더욱 더 쓸쓸하다. 탈출하려는 쪽과 그것을 저지하고 단절시키려는 쪽 그리고 평행선과 교차되는 선 사이에서 그 난감하고 경직된 균열이 표시되기 때문에. 그런데 말하자면 그 선과 선의 틈새에 인간의 불안정성과 불완전성이 자리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생명을 초월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란 물음은 그래서 더욱 더 궁지에 몰린다. 크게 첸, 기요, 카토프 등 '이방인'들의 정체성 내지 동일성조차도 허용되지 않으니까. 각각의 변곡점을 통해 인간의 조건에 다가가려해도 힘들 뿐이다. 긴장과 공포, 고통과 희망이 사라질 땐 결국(비로소 그때야말로!) 인간의 조건이란 무의미한 것으로 종결되는 게 아닐까. 자그마한 총알 하나로 세상을 전복시킬 수 있을 리는 없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현존하는 것 ㅡ 인간 혹은 국가 ㅡ 과 그것의 변이를 수긍할 수 없게 될 때 인간은 죽음과 부정의 덫 안에 갇히게 된다…….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어야만 한다.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변용되는 순간, 하나의 인간은 세상과 아무런 상관도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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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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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불량에라도 걸릴 것처럼 무엇인가에, 어딘가에 이르려 하는 사람. 덴도 아라타는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실제로 '애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의 만남으로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하는 쪽이 중요한 게 아닐까.」 이건 죽음이라는 변수에 대한 솔루션도 아니고 사자(死者)에게 명복을 빌어줌으로써 스스로가 위안받으려 하는 것도 아니다. '애도하는 사람'인 시즈토에게서 자기위안적 의미부여에 대한 측면이 언뜻 비치기는 하지만 그게 궁극적으로 『애도하는 사람』이 시사하는 바는 아니라고 본다. 나는 오히려 일상(삶)의 패러디가 아닐는지,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왜냐하면 시즈토의 애도하는 행위 자체를 한마디로 딱 잘라 설명할 수 없거니와 특수한 상황에서의 마음의 동작이라는 것이 옳거나 그르거나 좋거나 나쁘다는 자문자답조차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ㅡ 일견 시즈토의 애도에는 이유 모를 선의만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약점을 보이며 어른 아이의 느낌을 자아내지만. 내 짐작으로 시즈토는 우선 자신을 위해 애도하고 죽은 이를 위해 애도한다. 그리고 살아있는 자에게는 철저한 무관심. 그럼으로써 이 세상에 부조리한 폭력이나 사고 등으로 죽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라는 논리가 아니라 사자에 대한 평등한 애도(시선)를 통해 그들을 기억하려 할 뿐이다. 줄곧 죽은 사람과 관계되거나 면식이 있는 사람(3인칭)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후 고인(2인칭)에게 말을 걸어 애도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인간의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오직 인간 실존과 그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가능하다면 그건 오로지 '나의 존재(살아있는 나)'만이 있다는 편협한 굴레를 벗어나야 가능할 것이다(3인칭에서 2인칭으로 · 2인칭에서 3인칭으로). 이것은 중반에서 마키노가 던지는 「무슨 기준으로 어떤 고인은 동정하고 어떤 고인은 내팽개치는가」 하는 물음에서 드러난다.


덧) 소설 속에서 시즈토(靜人)와 유키요(倖世)는 어느새 행동을 같이 하게 되는데, 의도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이름에는 모두 사람(人)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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