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랜드
스티븐 킹 지음, 나동하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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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물하나의 어린 애새끼가 겪은 여름날의 추억인지 아니면 살인 사건을 다룬 스릴러인지 갸우뚱하게 되지만 나는 전자의 손을 들어준다. 그렇게 하고 싶다. 킹의 작품을 많이 읽어 본 것은 아니지만 『조이랜드』는 은근히, 손에 쥐었다고 설명하기 힘든 흐릿한 서사로도 독자의 집중력을 끌어올리고 있는데, 이 소설은 이렇게만 끝을 맺어서는 말이 되질 않는다. 이시다 이라의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시리즈>를 읽은 사람이라면 『조이랜드』가 풍기는 냄새를 어림짐작할 수 있을까. 좀 알려주길 바란다. 서지정보에 의하면 어쩐지 비스름한 느낌일 것 같으니. 즐거움을 판다는 다소 키치한 슬로건으로 무장한 놀이공원 조이랜드에서 파트타임을 시작한 데빈 존스는, 흔히 '성장소설'의 ㅡ 나는 『조이랜드』를 성장소설로 보지 않지만 적어도 몇 편을 이어 더 쓴다면 그렇게 말해줄 용의가 있다 ㅡ 주인공이라 불릴 법도 하건만 그렇기엔 너무나도 짧은 편이다(그러니 킹이여, 더 쓰라!). 갓 스물을 넘긴 남자애가 파트타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어디 있겠나. 내가 보기엔 막노동을 하지 않는 이상 서비스업에 치중되기 십상이지만 반대로 이야깃거리가 풍부해서 좀처럼 바닥을 드러낼 기미가 없다. 그만큼 사람과 사람이 만나기 쉬운 까닭이다. 내가 도일(渡日)해 초밥가게에서 일하던 때ㅡ 게살을 빼어 먹으려 안간힘을 쓰는 아이에게 스테인리스로 제작된 기다란 도구를 건네자 그의 부모가 흐뭇하게 바라보던 일, 멀리 시골에서 놀러 온 커플에게 하나 둘 셋을 외치며 기념사진을 찍어 준 일, 한국에서 쓰는 통화라며 5백 원짜리 동전을 카운터 옆 게시판에 붙여놓았던 일, 스태프 전용 흡연실에서 같은 층 편의점 아가씨와 눈인사를 주고받던 일, 근무 마지막 날이 되었을 때 일요일마다 들르는 단골로부터 캔 맥주 한 봉지를 건네받던 일, 함께 일하던 중국 여자애의 옆구리를 건들며 되지도 않는 농을 치던 일…… 그리고 폼 좀 잡아 보겠다는 선배로부터 「차차 알게 될 거야」라는 말 따위를 들었던 일까지. 정식 사원으로 근무하지 않는 이상 이십대 어린 청맹과니들에게 조이랜드와 같은 곳에서의 한때는 정말이지 소중한 경험이 된다. 물론 킹은 여기에 살인 사건이란 간섭 물질을 넣어버렸다. 개인적으로는 엄청나게 긴 연작이 될 수 있었다는 생각에 참으로 아쉬움을 느낀다. 그럼에도 공포의 집과 유령 이야기는 좋았다고 여겨진다. 사실을 써냈다고 해도 그것이 지역적이고 극히 개인적인 일이라면 독자는 호응하기보다는 남의 일로 판단해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느낄 테지만, 놀이공원과 공포의 집 그리고 유령을 덧붙임으로써 자연스레 관용어구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소설의 시작부터 찬찬히, 꼼꼼하고 자상하게 위로 떠오른다. 「자신 있으면 들어와 봐.」 조이랜드에서 자랑하는 어둠의 놀이 시설에 내걸린 문구이지만 이 소설은 공포의 예상보다는 즐거움의 세계로 가득 차 있다.



덧) 킹 아저씨의 입담의 원천은 얇은 윗입술이기라도 한 걸까. 바라건대 『조이랜드』 후속편도 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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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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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나 미라빌리스, 기적의 저수지. 도시 한 블록 정도의 길이에 반 블록 정도의 폭을 지닌, 낮고 평평한 지붕의 붉은 벽돌 건물로 연녹색의 담쟁이덩굴이 덮인 거대한 지하 저수조.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렇기 때문에야말로) 언제나 부패에 노출되어 있는 수로교는 ― 살베 루크룸! 루크룸 가우디움!(수익이여, 어서 오라! 수익은 기쁨이다!): 이는 「토할 때까지 먹고 먹을 수 있을 때까지 토하자」는 세네카의 말과 궤를 같이하는가? ― 다종다양한 군상을 탄생시키며 폼페이를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렸다. 아니, 실로 후자의 경우는 자연이 내린 메시지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은 짧은 생이다. 감각이 둔해지고, 팔다리가 마비되고 시력, 청력, 걸음걸이는 물론 치아까지, 우리 몸의 영양기관들은 우리보다 먼저 죽어버리지만, 그러한 시기까지 인생의 일부로 간주해야 한다.(p.113)



리좀 같은 수도관들이 복잡다단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에 비해 인간의 모양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임자의 부정부패, 몰지각한 졸부, 전세가 역전된 주인과 노예. 그리고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수도기사 아틸리우스가 있다. 그가 수도관에서 유황 냄새를 맡은 것은 폼페이가 소멸되기 바로 이틀 전이다. 해리스가 본문에 인용한 화산학 연구 자료에 의하면, 마그마의 움직임은 해당 지역의 지하수면을 막을 수 있으며 그럴 경우 지하수의 흐름 및 온도의 변화가 감지될 것이라 했다. 말 그대로 폼페이를 집어삼킨 것은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이지만, 여기에는 산에 올라 이상 현상을 추적하려는 아틸리우스와 그를 구워삶거나 훼방을 놓으려는 자들이 간섭한다. 바로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만 같던 ‘물’로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 ― 그 중심에 있는 것이 폼페이의 관료 포피디우스 그리고 그의 노예였다가 귀족으로 변모한 암플리아투스다. 암플리아투스는 과거 지진 피해를 입은 마을의 주인을 잃은 집들을 이용해 사업을 벌여 부를 축적한 전력을 지녔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닥칠지도 모르는 재난에 이번에는 포피디우스도 한몫하여 부패 관리의 전형을 보여준다. 불[火]의 신 불카누스는 이들의 더러운 기대에 분노로 대답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서기 79년 8월 24일, 화산 쇄설물 등에 의해 폼페이는 뜨거운 가스 구름에 휩싸이고 만다. 파괴된 건물과 압사하거나 질식사한 사람들, 화산암 더미에 파묻힌 거대한 도시. 무엇보다 『폼페이』가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그날의 재앙만을 다룬 것이 아닌 까닭이다. 앞서 언급했듯 욕심 많고 가련한 업자 암플리아투스는, 화산 폭발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물이 나와야 한다며 물만 끌어올 수 있다면 당장에라도 장사를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을 지껄인다 ― 더군다나 아틸리우스에게 사업 제안을 하기까지 한다. 사람 사는 곳에 없어지지 않고 늘 있는 것이 폭력의 무리라던 원술의 말처럼(《공공의 적 1-1 강철중》),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과 불가피하게 보이는 그 무엇은 늘 인간의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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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12년
솔로몬 노섭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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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동안 '인간에 대한 인간의 잔인함(man's inhumanity to man)'이 무엇인지를 노예 플랫은 분명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자유인이었으나 꾐에 넘어가 납치되어 노예가 된, 칼과 포크를 대신해 제 검은 손가락으로 음식을 취해야만 했던 플랫. 그는 워싱턴의 윌리엄 노예수용소, 리치먼드의 구딘 수용소, 뉴올리언스의 프리먼 수용소 ㅡ 제 소유의 동물들 앞에 나와 명령하는 운영자들 ㅡ 를 거쳐 드디어 자신을 구입한 이에게 '팔리게' 된다. 공식적인 첫 주인 윌리엄 포드를 비롯해 존 M. 티비츠, 그리고 난폭하고 무례한 힘, 교양 없는 머리, 탐욕스러운 정신의 결함으로 무장한 에드윈 엡스까지(채찍, 등을 홧홧하게 만드는 그 빌어먹을 채찍!). 그나마 상냥하고 다정했던 포드에게 칭찬을 받으려 열심히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비록 그가 노예의 신분이 되었다 해도 인간적인 대우에 어쩔 수 없이 발현된 합당한 반응이다. 그의 기쁨의 원천은 지시한 것보다 많은 성과를 내어 제 주인을 놀라게 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러나 이내 무자비한 농장 경영주 엡스에게 팔려 가며 그의 10년에 가까운 고난은 비로소 시작되고 만다. 노예라는 것이 그를 도울 능력은 전혀 없었으나 외려 그를 고자질할 가능성이 있었고, 그는 자유에 대한 권리를 선언하는 것이 오히려 어리석은 행동이었을 것이라 단정한다 ㅡ 주인의 지시가 씌어있지 않으면 편지조차 보낼 수 없고 통행증 없이는 밖을 나다닐 수도 없으며 행여 순찰대의 눈에 띄기라도 하는 날에는 개에게 쫓기고 채찍에 맞기 십상이다. 솔로몬 노섭이라는 온전한 이름 대신 플랫이라 불린 이 남자 역시 몰래 종이 한 장을 훔치고 펜을 만들어 자신을 구해내 줄만한 편지를 쓰긴 하지만, 그것은 곧 부탁을 받은 자의 배신으로 인해 불속에서 활활 타오르며 생명을 잃고 말 뿐이다. 플랫의 부치지 못한 편지는 그로 하여금 희망의 빛이 흔들거리다 못해 실망의 한숨 한 번으로도 쉬 꺼지게 만든다. 그는 한밤의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삶의 끝으로 가야 할 것이었다.(p.227) 노예들이 꿇었던 무릎을 펴고 일어서는 날은 눈앞에 당도할 수 있을까. 플랫이 두 번째로 점찍은 구원자로 인해 마침내 제 주인을 떠나면서, 물론 그는 기뻤겠으나, 엡스의 농장의 노예들 ㅡ 엉클 에이브럼과 보브, 윌리, 피비…… 이제 솔로몬 노섭의 삶에서 영원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이 남겨진 자들이 두 발로 자유로이 직립할 날 말이다. 「안녕히 계십시오, 주인 나리.」 자신의 소유주에게 남긴 마지막 인사, 끝내 과감히 한 방 차주지 못하고 허리를 굽히는 작별의 제스처를 취했을 때 자유인 솔로몬 노섭의 표정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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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아송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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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는 아내 자오루핑이 리 씨 성을 가진 그 빌어먹을 작자와 몇 번이나 잠자리를 했는지, 집뿐만이 아니라 그의 거처에 가서도 일을 치렀는지, 그는 나보다 나이도 많은데 어떻게 절정을 느끼게 해주었는지, 그 오르가즘은 어떠한 유형이었는지 따위를 걱정한다. 그는 공자가 채록했다고 알려진 『시경』을 연구해 그 성과를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양커의 그러한 노력과 정신은 곧 강탈당하고 오래 지나지 않아 모래먼지 폭풍 사건에 휘말려 정신 이상자로 몰리고 만다. 하지만 정신병원 원장실에는 올라타면 쉬지 않고 달려야만 하는 특수 전기치료기, 환자를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끔 고안된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으므로 양커는 한 번 더 무릎을 내어주며 ㅡ 아내의 간통을 목도했을 때 쏟아내었던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해요. 인기척을 먼저 하고 들어왔어야 했나 봐요.」 그리고 (아주 힘차게) 무릎을 꿇고서 호소했던 「지식인으로서의 명예를 걸고 말하건대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ㅡ 두려움을 내비친다. 이에 원장이 제안하는 것은 양커가 병원 환자들을 상대로 『시경』을 강의하는 것이다. 환자들이 강의를 듣기 싫어하면, 강의에 박수와 환호성을 보내지 않기만 하면 그의 병은 완치될 것이고 곧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양커를 어른다. 그렇지만 이미 그의 머릿속은 미로 같은 후퉁(胡同)이 되어버린 지 오래인데 웬걸, 엉뚱하고 조리가 서지 않는 강의 내용에도 불구하고(그렇기 때문에야말로) 병원 안 환자들로부터 원치 않는 박수 세례를 받고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나 그는 병원을 탈출한 뒤 이번에는 진짜 정신 이상자로 변모한 것이나 다름없다(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그가 6년 만에 돌아온 고향은 황폐하기 그지없을뿐더러 옛 애인 링쩐은 그저 과거에 머물러있는 여인에 불과하다. 그런 와중 링쩐이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의 어린 소녀 씽얼에게 들려 보낸 목합 속 세 겹의 비단에 싸인 것은 무엇이었을까. 붉은 비단을 걷어내자 노란 비단이 나오고, 그것을 치우자 드러난 또 하나의 초록 비단. 빨갛고 노란 중국 국기 속에 담긴 인간들의 정신적 방탕이기라도 한 것일까 ㅡ 중국에서 '초록색 모자'는 배우자의 외도를 의미한다고들 한다.



「지식인들도 이 나무랑 똑같은 것 같아요. 뿌리는 남몰래 돼지우리 밑에 숨기고 몸통과 가지, 잎은 돼지우리에서 십만 팔천 리나 떨어진 곳으로 피해 있거든요. 교수님 같은 지식인들은 가짜로 절개를 지키는 척하는 나무예요, 맞죠?」



소위 인텔리겐치아를 까발리고 짓밟으려는 시도는 씽얼의 말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녀는 교수님처럼 학식 있는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며, 자신과 잠자리를 갖지 않을 거라면 링쩐에게 잘 얘기해달라는 부탁을 할 뿐이다(고작 다음 날의 낮잠을 구걸하는 것이다). 80년대 끝자락 부패 척결과 자유 쟁취를 주장하며 민주학생운동을 벌였던 사람들처럼 모래먼지 폭풍이라는 상징적 악에 대항했던 모교의 학생들은 어떨까. 과거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들 역시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거나 논문이 통과되지 못해 사과 봉지를 들고서 지도교수의 집 앞을 두리번거리는 존재가 되었다 ㅡ 죄다 '나쁜 놈들'만 살아남았다(혹은 양산되었다). 양커도 다를 바 없다. 사창가가 즐비한 거리에 파묻히고 온 뒤에도 그것을 들킬까 저어해 속으로는 인정하면서도 짐짓 위선을 떨며 재차 절개를 지키는 척하는 나무 흉내를 낸다. 처음에는 '머리 쓰다듬기'의 효력을 의심하다가도 이내 자신은 교양 있는 지식인이라는 굴레에 (또다시!) 편입되는 것을 보면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을 지경이다. 물론 그 진중한 의식은 훗날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지만 지칠 대로 지친 지식인 양커의 정신 이상자로서의 사유는 링쩐의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내가 널 춥게 만들어주지. 아주 춥게 만들어주겠다. 더 추워졌다가는 하느님마저도 이 도마 위에 얹어놓고 잘게 썰어버리고야 말겠어.」 출상 음식을 준비하며 고기와 뼈를 자르던 조리사의 중얼거림만이 양커에게 내려진 유일한 저주일 터이지만, 우리의 고매하신 지식인 선생이 제 손으로 돼지우리를 파헤쳐 스스로의 뿌리를 걷어내기라도 할 것인가 ㅡ 「씨발, 누구든지 지식인을 쉽게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란 말이다.」 곰곰 생각해보면 말미의 오줌 갈기기 시합(「이곳에 오기 전 우리는 오줌도 함부로 갈기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이라는 배설 또한 무장된 식자층의 단단한 기제에 조소를 끼얹는 행위이건만, 양커라는 작자의 계획은 그가 발견한 『시경』 고성이라는 공간에 모인 여러 남녀로 하여금 불평 없이 원하는 상대를 골라 밤을 보내기 위해 마련한 게임에 불과하다. 이 오줌 갈기기 시합은 끝까지, 정말이지 끝내 한 번 더 양커로 대변되는 이들을 미화할 수 있는 여지로 둠으로써 손창섭의 「잉여인간」처럼 결말까지 박무를 깔아놓은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그러나 언제 걷힌 적이라도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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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일기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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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당신은 그런 일이 당신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일어날 리 없다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나도 당신에게만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에 이어질 내용으로 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든 바 있다. 「겨울철 빙판이 되어버린 2차선 도로에서 한바탕 신 나게 구른 뒤, 기어 봉에 눈두덩을 찧어 의안을 착용하게 된 달갑지 않은 사건만 하더라도 어떤가. 보라, 결국 그렇게 될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우습지만, 당연하게도 『겨울 일기』에 이러한 잔인함은 없다. 사실 잔인한 묘사가 없을 뿐이겠지만. 이것을 쓰는 것이 여타 소설에 손을 대는 것보다 몇 갑절은 더 힘들었을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ㅡ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던 우연이란 것을 버리고서(완전히 소거하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존재했던 과거를 끄집어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을 고통이라 부르든 쾌감이라 부르든 문제될 것이야 없겠으나, 오랜 시간 퇴적된 땅끝을 향해 달리다가 문득 기암괴석이라도 하나 툭 튀어나올라치면 조금의 여유도 없이 소스라치게 되질 않던가. 이 감각, 정서적 반응, 신체 일부분이 기억하고 있는 것, 규정할 수 없는 잊힌 관계 들이 스스로를 사로잡게 되는 순간 그것이 제 주인으로 하여금 치명상을 입게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수백 개의 편린이 모인 능숙한 작가의 이 차분한 일기는 차라리 소설이라 불러도 좋을는지 모른다(나는 이것을 자서전으로 위장한 소설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당신'으로 내세우고 몰아붙여 거리 한복판으로 던져서는, 스스로가 난자당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구태여 1인칭 기술을 택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설득과 변명의 여지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리라. 지치지 않는 성적 흥분으로 매달 북미의 자위 기록을 갱신했던 어린 날의 폴 오스터는 ㅡ 로베르토 볼라뇨 왈, 「들어 보라. 음경이 발기했을 때 길이가 적어도 30센티미터는 되는 사람들이 자기 얘기를 쓰는 한, 나는 자서전에 대해서는 어떤 반감도 갖지 않는다.」 ㅡ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크기는 차치하고라도 상상과 사유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의 표현대로 ㅡ 마루 위에서 점프하는, 따뜻한 욕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호우 속을 우산도 없이 걸어가는, 공책에 글을 쓰면서 책상과 탁자에 발을 올리고 의자를 뒤로 젖히고 앉은, 타자기 위로 웅크린, 이제 자신에게 몇 번의 아침이 남았을까 하고 자문해보는, 작가 폴 오스터의 한평생. 그가 말한 몸의 음악이 이제 겨울 악장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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