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의 집 - 건축가 1년생의 첫 작업
고시마 유스케 지음, 박성준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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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처럼 보이는 골조에 하나씩 살갗을 덧대고 외투를 씌운다. 흙을 빚는 소믈리에 미장 장인과 도편수에 의해 아무것도 없는 현장에 건물의 형태가 점점 드러나기 시작하고 기와장이 장인이 잘 구운 기와로 지붕을 올린다.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과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천양지차로, 즉 건축주, 설계자, 시공자의 트라이앵글이 잘 맞아떨어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차를 구입하고서 고사를 지내듯 먼저 건물을 지을 때도 공사의 안전을 기원하는 지신제를 지낸다. '첫 낫질의 예'로 작은 대나무가 심긴 모래산에서 건축가가 낫질을 하고, '첫 삽질의 예'로 건축주가 모래산을 허문다. 마지막으로 시공자가 '첫 곡괭이질의 예'를 다해 모래산을 파 공물을 묻는다. 『모든 이의 집』은 '가이후칸(凱風館)'이라 이름 붙여진 건물을 짓는 이야기다. 책에 의하면 '가이후'는 옛 중국의 말로 남녘에서 불어오는 초여름 바람을 의미하는데, 그 바람은 꽃을 피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열어준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가이후칸을 지은 사람은 건축설계 사무소에서 공부한 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집을 단 한 채도 지은 적이 없는 초짜 건축가 고시마 유스케. 그리고 그에게 설계를 맡긴 이는 우치다 다츠루. 『일본변경론』이란 책에서 잠시 이름을 들어 본 바로 그 우치다 다츠루다. '일본인 = 변경인'이라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었다는 기억만 있을 뿐 내 기억에서 잊힌 지 꽤 되었는데 이 『모든 이의 집』에서 다시 그의 이름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 책은 가이후칸의 건축주 우치다 다츠루가 아니라 그것을 지은 고시마 유스케의 이야기다. 첫머리에 썼듯 부지를 고르게 하고 골조를 꾸민 뒤 벽과 지붕을 올려 집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ㅡ 고시마는 자신의 첫 작업물에 이러한 수많은 괴물들이 관여했다며 존경의 마음을 담아 적고 있다. 건축주의 발주와 그에 따른 수주의 딱딱한 메커니즘이 아닌ㅡ 약 280제곱미터가 되는 부지에 사람이 들어가고, 앞으로 어떤 장소가 되어갈 것인지 알 수 없는 묘한 기대감, 매력. 책 말미에는 고시마 유스케, 우치다 다츠루 그리고 『슬램덩크』와 『배가본드』로 유명한 이노우에 다케히코와의 이야기도 실려 있는데, 처음엔 왜 난데없이 그가 등장하는 걸까 하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작업실에 농구 코트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치다 다츠루는 합기도 6단의 무도가이기도 해서, 언젠가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본 농구 코트에서 가이후칸 1층에 마련된 도장의 힌트를 얻었다는 것이다. 도(道)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으며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는 다소 심오한 이야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찌 보면 가이후칸은ㅡ 초짜 건축가 고시마 유스케의 첫 작업은, 『슬램덩크』에 빚을 지고 있다고 해야 할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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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퍼스티커로 철학하기 - 소신 있고 위트 있게
잭 보웬 지음, 이수경 옮김 / 민음인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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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티커에서 정말로 철학이나 현학의 증거를 찾고 싶지는 않다. 그걸 유심히 쳐다본다고 한들 내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떠오를 리 없고 다른 차들에 어떤 장식이 되어있는가 따위에도 신경 쓸 시간이 없다. 행인 중의 하나인 나 역시 갈 길이 바쁜 사람이다. 더군다나 횡단보도에서 녹색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이때도 매한가지로 어떻게 생긴 차에 어떻게 생긴 운전자와 동승자가 탑승하고 있으며 저것이 어떤 회사의 엠블럼을 붙이고 있고 또 어떤 내용을 담은 범퍼스티커를 붙이고 있는지 따위에는 하등의 관심이 없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슬쩍 고개를 돌리는 수고로움을 감수한다고 치자, 우연찮게 어떤 범퍼스티커가 내 눈에 들어왔다고 해도 영 재미없는 것들 뿐이다. 깨진 유리 무늬, 총알에 박힌 뒤쪽 범퍼, 밴드 모양의 스티커, 초보 운전(어서 와, 초보자 뒤는 처음이지?), 아이가 타고 있어요……와 같은 흥미 제로의 문구들밖에는 볼 수가 없다ㅡ 확실치 않은 내 기억력에 의하면 「아이가 타고 있어요!」는 지금 이 차에 어린아이가 있으니 전방주시 의무를 위반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만일에 발생할 사고에 아이부터 구해 병원으로 후송해 달라, 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하여간 어쨌든 간에, 한국에서는 '아이가 타고 있어요'처럼 후방 또는 마주오는 차량의 운전자가 '읽어서 의미를 파악해야 하는' 범퍼스티커를 별로 본 적이 없다. 선거 때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도, 문화예술의 각성을 촉구한다는 문구도, 동물학대를 반대한다는 의미의 스티커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의미심장하게 여겨질 법한 것들도. 내가 『범퍼스티커로 철학하기』를 읽기 전 다소 오해한 것이 있는데, 이 책은 범퍼스티커의 역사나 그것이 우리의 사회문화를 어떤 식으로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 기술한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 『헝거 게임으로 철학하기』, 『영화로 철학하기』, 『나꼼수로 철학하기』 등과 같이 다종다양한 '철학하기'의 문맥에서 읽으면 될 것 같다. 재미? 재미야 물론 있다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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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십이국기 2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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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중요한 것은 천제의 뜻이다. 열두 나라의 이야기를 하나씩 돌아가며 그린다손 치더라도, 종국에는 일체를 아우르는 하늘의 뜻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마무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단 설정은 천제가 열세 나라를 만들어 그중 하나를 황해(黃海)와 봉산(蓬山)으로 삼아 여신(女神)과 여선(女仙)의 땅으로 만들고 남은 열두 나라에 각각의 왕을 내려 국가의 기틀을 이룬 것에서 출발하는데, 천제가 내린 궁극적인 뜻은 만민의 안녕이 곧 국가의 행복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오노 후유미가 불교학을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니 이 십이국기 시리즈는 일견 불교의 세계관과 닮아있다고 할 수 있을는지도. 그도 그럴 것이 소설 말미에 드러나는 십이국의 탄생에 앞서 천제가 염려하고 있던 것, 즉 천지의 섭리를 업신여기고 인도를 소홀히 하여 비탄에 잠긴 세상을 바로잡아 태곳적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함인 까닭이다. 이와 비슷한 불교의 존재 인식 역시 현세의 삶이 모두 고통이라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불유쾌한 세상을 다스리는 열두 나라의 왕은 선출직이 아닌, 기린(麒麟)이라는 순결무구의 존재에 의한 임명직이다. 기린의 입장에서 보면 왕은 용병이나 매한가지인 것이다. 언제나 왕 옆에서 그/그녀를 보좌하며 복종하지만 도를 벗어나면 직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왕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면 기린은 병들어 죽게 되고(실도, 失道) 기린이 죽으면 왕의 목숨도 함께 사라진다. 이를테면 국민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이 통치를 잘못하게 되면 국민이 병을 얻게 되고, 그렇게 되면 대통령 또한 시름시름 앓게 되는 것이다. 이는 현실에서라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이다. 최근 시리즈 첫 번째로 출간된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를 시작으로 느끼게 되듯, 이 십이국의 세계가 지금의 현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는 것일지 아니면 그럼에도 이런 세계라면 오늘날의 그것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호소와 더불어 대리만족을 느끼게 할 심산인 것인지가 조금씩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나 더, 이 십이국의 세계와 인간세계를 가로막는 것으로 허해(虛海)라는 바다가 설정되어 있는데 이는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잇는 일종의 웜 홀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딘지 모르게 현세와 내세 ㅡ 현실과 이상(더불어 이 둘의 괴리) ㅡ 를 끊임없이 연결하고자 하는 '유(有)의 부정'이라는 생각도 든다. 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바로 '아무것도 없음(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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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마니아 - 과거에 중독된 대중문화
사이먼 레이놀즈 지음, 최성민.함영준 옮김 / 작업실유령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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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없이 해와 달을 보며, 또 하늘의 색이 변하는 것을 보며 시간을 감지하던 아날로그 시절이 있었다.
그런 때가 있었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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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체를 묻어라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김연우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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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작 『냉혹한 이야기』를 읽지 않았다면 소용이 없을 듯하다. 분명히 그때 올리비에는 살인죄를 선고받은 뒤 복역하고 있었으나 가마슈가 새삼 그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 때문이다. 『네 시체를 묻어라』는 새로운 사건과 함께 그 올리비에 사건을 재수사하는 이야기가 중첩되어 있다. 차갑고 새하얀 이미지의 퀘벡과, 그와 비슷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폐쇄적 기운이 감도는 문예역사협회. 바로 거기서 사람이 죽는다. 퀘벡, 나아가 캐나다를 기초한 인물로 알려진 샹플랭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괴짜 하나가 죽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야기ㅡ 루이즈 페니의 소설들은 원주민과 이주민이라는 사회배경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그리고 가마슈의 부하 보부아르가 과거 사건이 벌어졌던 마을을 다시 찾는 장면이 이따금 간섭하고 있다. 루이즈 페니의 작품을 몇 권 읽어나가고, 또 이 『네 시체를 묻어라』까지 오게 되니 코지 미스터리란 수식어는 이제 떼어버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런' 느낌의, 그러니까 따뜻하게 데운 우유와 샌드위치처럼 차분히 가라앉은 고요한 분위기는 유지되고 있지만 조금씩 조금씩 가마슈의 발길이 넓어지고 있는 기분이다. 특히 샹플랭을 찾는 여정과 더불어 진행되는 올리비에 사건(『냉혹한 이야기』에서 완벽하게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서의 반전에 이은 반전, 계속해서 가마슈의 머릿속을 맴도는 과어 어느 날의 실수와 악몽, 이 모든 것을 두고 이미 늙수그레한 가마슈의 성장담이라고 해도 좋다. 개인적으로 루이즈 페니의 서술에 박력이 부족한 것을 안타까워하고는 있으나ㅡ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재미있으며, 작가 스스로도 뭔가 생각을 달리한 부분이 있는 것인지 작품이 더해질수록 이전 소설들보다 한 걸음은 더 나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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