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3 - 더 깊고 풍부해진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만화 상상력 사전 3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수박 그림 / 별천지(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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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은 ‘일리히의 법칙’을 나타낸 것인데, 그 속뜻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활동은 어떤 한계를 넘어서면 효율이 감소하며 나아가서는 역효과를 낸다.」 어느 정도까지는 노동의 양을 늘리는 만큼 생산량이 증가하지만, 어떤 한계를 넘어서면 노동의 양을 늘려도 생산량이 증가하지 않는 까닭은 바로 이 법칙을 통해 설명될 수 있겠다. 이와 딱 맞는 사례는 우리 자신에게서도 찾을 수 있는데, 바로 한국의 노동시간이 세계 2위 수준이면서도 그 노동생산성에 있어서는 세계 최하위권인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올해 초 OECD가 회원국 및 기타 경쟁국의 노동생산성 동향을 비교 분석한 결과 한국의 2011년 기준 연간 근로시간은 2,090시간으로, OECD 전체 국가 중 2위로 조사된 것이다. 반면 그에 따르는 노동생산성은 OECD 회원국 34개 나라 가운데 23위,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8위였다……. 나는 이 『만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전3권)』의 원작이 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책들, 2011)을 통해 이미 그의 백과사전과도 같은 이야기에 홀딱 반한 적이 있기에(움베르토 에코가 보여 주었던 또 다른 백과사전식 흥미로움은 잠시 뒤로하고) 김수박의 만화는 그것의 재탕쯤이라고만 여겼었다. 그런데 첫 장을 펴 들면 일단 원작과 순서부터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름대로 구성을 달리한 것이다.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기존의 텍스트를 단순히 만화화한 것뿐만이 아니라 여기에 스토리를 버무려 넣었다는 것이다 ― 나름대로의 유사성에서 출발한 이 비틀림은 종국에 가서는 멋진 재구성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김수박은 여기에 비단 베르베르 본인만이 아니라 역자 이세욱 선생까지 등장시킨다). 활자화되어 있는 종이와 이미지화되어 있는 종이 두 장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궁극적인 기호는 다를지언정 사람의 눈이란 한눈에 들어오는 쪽을 먼저 선택하기 마련이다. 지금도 학교에 가면 만화책을 숨겨야만 하는 살풍경을 볼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면 책상 밑에서 꼼지락거리는 학생에게 훈계조로 말하는 선생조차도 읽어봄직하다. 내용 중 ‘1 + 1 = 3’이라는 주제를 한번 보자. 나는 이것을 베르베르와 김수박의 책과는 달리 영국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인도 사람 사이먼 싱이라는 사람의 책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나온 방식으로 설명해 보겠다. 먼저 이것은 다음과 같이 단순 명료한 등식에서 출발한다.


a = b

양변에 a를 곱하면

a2 = ab

다시 양변에 a2 - 2ab를 더하면

a2 + a2 - 2ab = ab + a2 - 2ab

이제 양변을 정리하여 간단히 하면

2 (a2 - ab) = a2 - ab

끝으로 양변을 a2 - ab로 나누면 다음과 같은 황당한 결과가 초래된다.

2 = 1




처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단순한 등식에서 출발했으나 논리의 전개과정에서 간단하고도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기 때문에 이런 터무니없는 결과에 봉착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마지막 단계, 즉 양변을 a2 - ab로 나누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애초 a = b라는 명제에서 출발했으므로 양변을 a2 - ab로 나누었다는 것은 양변을 0으로 나눈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페르마가 장난을 친(!) 그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기 위해 제정된 ‘볼프스켈 상’에 응모했던 수많은 증명들 중, 상당수의 아마추어들이 이와 비슷한 오류를 범하여 심사대상에서 제외되었다고 하니 수학에는 문외한일지도 모르는 우리로서는 그저 입만 벌리고 있을 뿐이다……. 어찌 됐든 베르베르가 각종 상상력을 동원해 인간 흥미의 필요충분조건을 만족시켰다면 이번에는 한국의 만화가가 그 상상을 그러모아 원작의 매력을 배가시켜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베르베르를 묘사할 때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는 ‘베르베르는 7살에 단편 소설을 썼고 14살 때부터 혼자만의 비밀스러운 노트를 기록해 왔으며……’와 같은 것일 텐데, 최근 국내에서 출간된 그의 『제3인류』만 보더라도 그의 상상력, 특히 과학적이고 문학적인 탐구에 기인한 흥미로운 발상은 바로 지금이 그 전성기라고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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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도조 겐야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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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에 '고립', '민속 신앙'과 같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지라 도조 겐야 시리즈는 꼭꼭 찾아 읽고 있다. 번역된 시리즈 중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다음으로 흥미롭다고는 생각하나, 끝까지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는 것들이 꽤 많다. 끝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의 행방, 표지를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어 놓은 것(첫 번째 의문과 이어져 있기라도 한 것일까), 소후에 시노가 느낀 '무엇'의 정체…… 만약 이것들이 단지 독자된 입장에서만 느낀 다소 비약된 것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부러 의도된 것이라면, ㅡ 전작에 이어 재등장한 소재 또한 있으니 ㅡ 그렇다면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의 속편은 반드시 나오고야 말리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은 없다). 어쨌든 이 소설은 '미즈치'를 키워드 삼았다. 일단 미즈치란, 뱀 비슷한 생물로 네 발이고 입에서 독기를 뿜어내 인간에게 해를 미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뱀이란 것은 불사의 생물로 여겨짐과 동시에 불경과 외경의 이미지 모두를 가지고 있는데, 앰뷸런스에 뱀이 그려져 있는 것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줄로 안다(이쪽에는 서양의 종교, 신화 등이 얽혀 있긴 하지만).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에서는 미즈치를 물의 신으로 받들어 지내는 마을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비가 많이 오거나 가뭄일 때 바로 이 미즈치 님을 위한 제의를 지낸다. ㅡ 거기에 바칠 큼직한 호박은 머리, 대량의 미역은 머리털, 크고 윤기 흐르는 조롱박은 몸통, 가느다란 무 두 개는 양팔, 둥글고 모양이 고른 순무 두 개는 좌우 유방, 멧돼지 간은 내장, 전복은 여성의 성기, 실 뭉텅이는 음모, 굵은 무 두 개는 양다리를 상징하는 제물인 것으로…… ㅡ 물론 이것 역시 농경생활이 바탕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일종의 신앙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주민들은 홍수와 가뭄으로 인해 자신들이 입을 피해를 심리적으로나마 그쪽에 기대게 되고 만다. 그렇다면 이에 뒤따르는 것은 일반 주민들 위에 서는 자, 즉 제의를 집전할 소위 신관의 필요성과 그의 권위가 대두되기 마련이거니와, 이것은 차후 제의의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자그맣고 편벽한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굴절된 사고방식을 낳을 수 있음에 다름 아니다. 소설에는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자신이 행할 제의에의 성공과 결코 실추되어서는 안 될 권위를 지키려는 ㅡ 혹은 그 무소불위함을 이용하여 사사로운 이득을 취하려는 ㅡ 추악하다고 해도 모자라지 않을 인물이 등장하고, 한창 제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신남(神男)이 죽는 것으로 이야기는 비로소 시작된다. 그러나 죽음은 폭포가 쏟아지는 호수 위 배에서 일어난 것이며, 곁에 있는 자라고는 신남을 제외하곤 배를 젓는 사공밖에는 없는데다가 그마저도 집배 바깥쪽에 있어 제의 동안에는 안쪽에 자리한 신남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출판사의 보도 자료처럼 '호수 밀실 살인'인 것인데, 이래서야 일반의 것들과 다를 바가 없겠으나 그럼에도 민속적 · 지역적 특색이 더해지다 보니 꽤 기묘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이 도조 겐야 시리즈를 설명하라면 개인적으로는 다소 SF 냄새를 풍기려는(그런 의지가 보인다) 교고쿠 나쓰히코와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물 그 사이쯤에 위치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어째 기술하려는 것 하나하나가 헤살이 될 지경이어서 약간의 조바심과 근질거림에서 주춤하고 있는 중이다…… 아아, 나는 이 소설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수가 없다…….


덧) 이 시리즈 중 처음으로 일본 단행본판 표지를 그대로 가져온 것은 그간의 표지들이 너무 기괴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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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페어웰 지음, 김용재 옮김 / 비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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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먹을. 나와 내 책. 엿이나 먹어라. 그는 자신의 말에 반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에 대해 짜증이 나고, 많은 책을 읽을 수 없다면 성경과 셰익스피어를 보라는 교수의 말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인생에 있어 모든 것을 반복이라 여기며 스스로가 재수라곤 찾아볼 수 없는 포레스트 검프라고 단정 짓는가 하면, 도저히 진척되지 못하는 원고뭉치와 씨름하면서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포르셰를 잡고 매달린다. 또 언제나 예술의 이름으로 삶을 양보해야 하는지를 궁금해 한다. 「그런 예술은 개나 줘버리라고 해라.」 물론이다. 그러나 '그런 예술' 또한 예술이며 그 예술을 받아먹는 자 또한 예술가이다. 그자가 평범한 예술가이냐 개 같은 예술가이냐 하는 것만이 문제로 남을 것이므로. 그는 인간들이 끝없이 타락하는 광경을 떠올리면 대부분의 경우엔 토하고 싶어지지만 또 다른 어떤 때는 기뻐서 울고 싶단다. 그런 곳에서 진짜 삶을 만날 수도 있지 않느냐고. 진짜 삶이란 게 어디 있단 말인가. 오직 개 같은 삶과 개 같은 예술만이 난삽하게 어울리고 있을 뿐인데 ㅡ 그는 자신이 소설을 제대로 끝마칠 수 없을 거라 의기소침한 감정에 빠지기도 하나 스트록스와 카이저 칩스를 듣는 것으로 보건대 끝에 가서는 멋지게 매조질 수 있을 것이다(그처럼 인생에서 괴로운 것들이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 느끼는 공허한 감정이라면 저 두 밴드를 충분히 들을 이유가 있다). 영원히 채울 수도 비울 수도 없는 것을 어떻게든 바꾸고 싶다면, 또 다른 기회라는 행복을 느끼려면 개에게 던져줄 것은 예술이 아니라 바로 그 값싼 행복감일 테니까. 거리를 싸돌아다니다가 문득 추워지기 시작하면 비싼 술집에 들어가 비싼 술을 마시다가 자신의 이름을 헤밍웨이라 소개하며 예쁜 여자애에게 술을 보관해달라고하면 되는 것이다.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다. 그러고 난 뒤 살갗보다 마음이 더 추워졌다면 스스로를 좀 더 따뜻한 삶의 장소로 옮겨달라고 신을 향해 기도라도 한 자락 읊어라. 아예 그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니. 이렇듯 그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불분명한 미래, 자신이 쓴 글에 대해 성공을 확신하지 못하는 것, 애초 글을 쓰는 동기의 부족, 포기…… 그가 집에 가서 잠을 청하며 차라리 내년에 깨어났으면 하고 바라게 하는 유발 물질은, 결국엔 이 세계에서 이물감으로 여겨지는 그 자신이다. 어떤 불리함도 상쇄시킬 수 없으니 스스로를 향해 기습을 감행해야만 하는 것이다. 자신을 포함한 여러 사람을 놀라게 할 만한 타이밍에. go. 가서 계획을 실천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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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데이션 완전판 세트 - 전7권 파운데이션 시리즈 Foundation Series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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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독트린에 따르지 않더라도, 역사적인 변화가 그 궤도를 벗어날 가능성이 아주 적다는 것은 언제나 분명하게 여겨지곤 한다. 단 이 땅덩어리 자체가 증발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유일하고(the only), 가장 오래되었고(the oldest), 버려진 세계(marooned world)로 묘사될 것임에 틀림없는 바로 이 행성. 물론 현미경의 배율을 조금만 높여 들여다보면 인간에게는 의식과 자유 의지가 있어서 각각의 행위가 복잡하게 전개된다고 결론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획기적인 역사의 행위가 이루어지고 소위 돌고 도는 패턴을 따라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그때에 그들을 볼 수 있는 공간은 어두워지고 상(像) 자체가 거꾸로 보일 공산이 커진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개인에 타자가 간섭하거나 그들이 무리를 이루게 되면 자유 의지는 완전히 사그라지고 말 것이다. 일반 대중은 실패의 굴욕을 겪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해서 설사 견해가 다를지언정 승리하는 편에 가담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별문제 없이 가동될 때조차 그것은 준안정 상태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것이고,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린다 한들 종국에는 다시 아래로 되돌아오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 의지라. 우리가 자유 의지를 경험한다는 것은 대단한 미스터리이며, 히친스와 더불어 잘(혹은 덜) 알려진 샘 해리스에 의하면 자유 의지란 것은 단연코 환상일 뿐이다. 그는 자유 의지를 두고 그것을 개념적으로 일관성 있게 만들 수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환상 그 이상 또는 그 이하라고 규정한 바 있다. 대부분의 환상들이 이보다는 근거가 튼튼하다는 말을 덧붙여서(샘 해리스, 『자유 의지는 없다』).


부도덕과 추악함. 이방인에게 주어지는 맹목적 불쾌감. 종교. 케케묵은 논쟁. 집단 우월주의. 시민 혹은 대중. 또는 목적 없는 군중. 건설. 파괴와 붕괴. 어쭙잖은 피라미드 싸움. 모난 돌. 아귀다툼.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 잘된 정부(政府)와 잘못된 정부. 잘된 지도자와 잘못된 지도자. 군부. 기득권(층). 명예에 들뜬 과학자. 굶주린 예술가. 동맹 혹은 연합. 맹동주의. 무지 속에서의 의미 없는 탐람. 권위. 내부의 위기. 히스테리. 불안. 실속 없는 사유. 신념. 예기치 못한 변수. 배신. 상식 밖의 요소. 어이없는 농담. 고갈. 부패. 낫지 못할 약을 파는 자들. 자본(가). 달콤한 유혹. 탁상공론(빌어먹을 테이블!). 제3세계. 부질없을 게 빤한 섭동의 제스처. 변이. 복종과 불복종. 복종에의 회귀. 올바르지 못한 무역. 시위. 거짓 자유. 탈주. 저항. 반란과 혁명. 복수(復讐). 갑론을박. 정치는 없고 정치적인 것만 있는 현상. 암약. 모종의 거절 못할 제안. ㅡ 이러한 것들은 놀라울 정도의 은근한 상징과 쉬 알아차리기 힘든 은유로 현현된다. 현실에서든 소설에서든 지구에서든 우주에서든. 인간이 지어낸 극적인 허구가 지루한 사실에서 나온다 하더라도 이 '지루한 사실'이란 앞서 나열했던 모든 것에 플러스알파일 터이고, 진실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거짓이 더 나아 보이기 마련이며 또한 진실이 통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은 최상의 거짓이 될 게 빤할 것이기에 그렇다(설사 그 진실이나 거짓이 교조적일지라도) ㅡ 제수알도의 소설 따위를 보라. 어쩌면 파운데이션 자체가 이중적인 의미를 띠고 있는 동시에 셀던 또한 악마적 이중성을 지니고 있는 까닭에, 이 매트릭스의 원형이라 해도 좋을 이야기는 실은 해리 셀던보다는 에토 데머즐, 체터 휴민, R. 다닐 올리바의 돌고 도는 역로라고 인지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A circle has no end.」). 파운데이션은 일견 미래를 위한 노력에 예찬을 보내는 것 같으나, 주체성에 대한 관심이 실종되고 그 문제의식이 독점과 비독점 혹은 중심부와 주변부 간의 갈등으로 등치되어 있는 상태를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의 문제 설정은 스스로의 한계에 갇히게 되고 사람들은 능동성이나 자기가치화 능력을 갖지 못한 희생자 또는 피동적 동원인으로 묘사된다.


클릭


대체 심리역사학이 무엇이기에 마뜩잖은 상황에서 도망할 때조차 그들은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을 암호 따위로 들먹이는가 ㅡ 「우리는 심리요.」 「나는 역사요.」 ㅡ 이것은 흡사 저 옛사람 분트가 수행한 실험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어떤 사람에게 개의 그림을 보여주고는 묻는다. 「이게 무엇입니까?」 그런 다음 피실험자가 「개입니다.」라고 대답하기까지의 걸리는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다……. 인간이란 종이 사라지면 다른 모든 생물과 무생물이 하나로 합쳐져 공동 지성체를 형성하게 되는 것일까. 인간의 정신은 다른 모든 것과 질적으로 다르며, 만약 그것이 사라진다면 다른 모든 의식체를 하나로 합한다 해도 그 역할을 대행할 수는 없는 것일까. 과연 인간은 특별한 존재이며 따라서 여전히 특별한 존재로서 대접받아야 하는 것일까. 더군다나 인간이 어느 특정한 계층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모멸감을 느껴야 한다면? 여기 있는 이 모멸감을 느끼는 존재는 또 다른 모멸적 존재가 창조한 것이고, 결국은 이자들 서로 간의 증오가 인간성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자명해질 텐데도? 위에서 언급했던 복잡한 일련의 항목들이 그들을 순순히 방목해 주기는 할는지. 인류는 그러는 건 고사하고 아주 자그마한 충격만 가지고도 적대하는 그룹으로 나뉘곤 하는데 말이다. 셀던은 이것을 일거에 정리하고 있질 않나 ㅡ 「인간은 '나는 너보다 낫다'는 흥미진진한 게임에 너무나 쉽게 빠져들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아.」 어떤 경우든 한쪽의 갈등을 줄이게 되면 다른 쪽의 갈등이 늘어나므로 동일한 단체 내부에서의 갈등의 총량은 동일하다. 전체적으로 갈등을 줄이거나 늘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가면서 겪는 끊임없는 규율, 악덕과 미덕, 자유와 안정의 갈등의 개념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들의 이중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뿐 갈등 자체를 해소시키는 역할은 하지 못한다.


문명의 진보란 사적인 비밀의 제한과 같은 말일 것이다. 아니면 그 사적 비밀의 한계를 실험하는 것에 불과한 것일는지도. 그러면 그럴수록 거의 모든 사람이 이러한 가정(假定)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여서 나중에는 전혀 문제 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무서운 논리가 아닐 수 없다. 터무니없이 큰 파이프 그림을 보면서 '이것은(ceci, 글씨 형식의 파이프, 그리고 그려진 텍스트로 구성된 이 총체) 파이프가(une pipe, 담론과 이미지에 동시에 속함으로써 그 모호한 존재가 드러나게 된 이 혼합적 요소) 아니다(n'est pas, …과 등가일 수도 없고 대체될 수도 없다, 적절하게 …을 재현할 수 없다)'라고 찢어발긴들 누가 신경이나 쓰겠나. 그러니, 총은 훌륭한 무기이나 그 총구는 어느 쪽이든 향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적인 것을 말살하는 것보다 그 정치적인 것에 대한 솔직한 태도를 말살하는 편이 더 심각할 테니까. 카뮈가 바위를 굴리는 시시포스 이야기를 하면서 마지막에 '우리는 시시포스를 행복하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과연 어떤 의미로 추측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우리 삶은 결코 성공할 수 없으나 계속해서 바위를 굴려야 한다는 것을 ㅡ 돔(dome) 안에 갇혀 살고 있는 그들을 맞이했던 것은 역시나 돔(dom; enDOMandiovizamarondeyaso……)이었다. 허나 우스꽝스럽게도 소설에서 묘사된 제2파운데이션의 황금률은 다음과 같다. 「절대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어쩔 수 없는 경우라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 그럴지도. 아닐지도.


덧) 나는 총 일곱 권의 파운데이션을 한 줄로 늘어놓은 채 제1발광체의 빛남 혹은 파스타(far star)호에라도 탄 기분이 되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샘솟는 과도한 충성과 과잉된 금속의 고집 그리고 예상을 뛰어넘는 확대 지향적인 도덕의식으로 말미암아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갈채로 심장에 소름이 돋을 것만 같이 연결된 책등으로부터 저 옛날 가면을 바꾸어 심리변화를 나타내던 변검스러운 기묘한 맥놀이가…….」 이제는 책등과 표지가 뇌리에 박혀서, 나는 그것들을 보지 않고도 하얀 종이에 똑같이 그려낼 수 있을 정도의 감각을 체득했다(는 건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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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제3인류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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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든 이야기(혹은 그 이전의 모든 이야기)는 가이아가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냉동 보관된 가장 맛있는 고기들'을 뱉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젤룩스 냉동식품 로고가 박힌 옷을 입은 고생물학자 둘과 카메라맨은 약 17m의 신장을 가지고 천 년 가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과거의 인류를 발견하자마자 냉동 인간이 되어 돌아온다 ㅡ 베르베르 자신의 책 『개미』에 나왔던 에드몽 웰즈의 후손이 재등장한다는 점(여기저기서 이런저런 방식으로 제 소설을 여러 번 차용하고 있다)에서 어쩌면 이를 통해 '제3인류'라는 것의 정체를 가늠케 하기도 하나, 내가 읽고 있는 것은 1부에 지나지 않으므로 시일을 두고 찬찬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이따금씩 간섭하는 가이아의 독백이 있다. 에드몽 웰즈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인용하고 있긴 하지만 그중 시작하자마자 들어서게 되는 '아포칼립스' 항목은 가이아를 1인칭으로 따로 떼어놓은 연유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싶다. 말인즉슨 아포칼립스는 '감추다'라는 동사 '칼립테인'에 부정을 뜻하는 접두사 '아포'를 붙인 아포칼립테인에서 나온 것이며, '감춰진 것을 드러내기', '장막을 걷어 내기'라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훗날 이것은 '계시'나 '진리를 드러냄'으로 번역되어 '세상의 종말'과 뜻이 같은 말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가이아의 독백이야말로 그/그녀가 의식을 지닌 존재인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자신(지금 내가 딛고 있는 이 행성)의 역사를 뚜렷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진리를 드러내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과정에서 가이아가 뱉은 냉동 인간으로 촉발된 먼지 한 자밤이 아포칼립스, 즉 세상의 종말에 가까운 재앙을 불러일으키기에 이른다. 크게 여성화와 소형화를 골자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자본주의의 본색, 종교에 바탕을 둔 전체주의, 유전 조작 등과 맞물려 얽히고설키는데, 다비드 웰즈는 묵시록에 등장하는 네 명의 기사를 떠올리고는 털을 자르고 모근을 뽑아 준다는 면도기 광고와 오버랩시켜 그들이 인류의 4중 날 면도기일 거라고 중얼거린다. 그야말로 그가 읽은 묵시록의 네 기사에 관한 글은 장차 인류 문명에 닥칠 일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일을 들추고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이아 혹은 그들 스스로가 인류를 쳐내는 이유의 섬뜩함이다. 그에 맞설 준비의 일환인 것인지 결국 다비드를 위시한 몇몇은 17cm의 초소형 신인류를 창조해내고야 만다. 최초의 난생 인간 에마슈. 어쩌면 『제3인류』는 『개미』를 모티브 삼아 『파피용』의 과정을 거칠 심산인 것일는지도 모른다. 겨끔내기로 『신』과 충돌할지도 알 수 없는 일이고(사실 나는 『카산드라의 거울』 쪽에 한 표를 던지고 있다). 사실이 그렇다면 이것은 그저 그런 클리셰에 지나지 않겠으나 우리는 아직 베르베르의 새로운 소설을 절반도 읽지 않은 것 같다. 가이아가 자신을 위해 싸워 줄 챔피언으로 인간을 만들어낸 것이 과연 잘한 일일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 채이므로. 그/그녀가 만든 인간들, '실험실에서 탈출한 그 못된 소인들'에게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은 것이 큰 실수라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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