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 선생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남진희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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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제국』보다 세련되고 직접적이지 않다. 그리고 그보다는 복잡한 구조를 띤다. 소설은 카렌 두베의 『폭우』만큼은 아니어도 시종일관 비에 젖어있는 축축하고 서늘한 기운이 지배적이고, 은밀하고 간접적이게 그리고 입을 열어 말하기보다는 은유를 통한 보여주기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더군다나 끈질기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살아있는/살아남은 모든 것에 저주를 내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ㅡ 팽 선생이든 누구든 ㅡ 볼라뇨는 그것조차 잘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죽어가는 것을 목도하고도 방관하려는 자와 묵살하는 자, 문제제기를 하였지만 나아가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는 자, 그것을 개선하려고 하지만 종국에는 외려 그 스스로가 죽어갈 뿐인 자. 어느 쪽도 재미없는 인간이며 유령 같은 인물들이다. 어쩔 수 없는 분노와 선험적 도발이 진득하니 밴 이 작품은 내전과 전체주의라는 배경을 지렛대 삼아 긴장된 고독감과 불안감을 그리고 있는데, 팽 선생은 시인 바예호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제 몸에 들러붙은 젖은 외투로 인식한 채 보수적이고도 자기 합리화적인 진구렁에 흔쾌히 발을 들이밀고 만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분명히 드러나는 점은 중간자적 위치에서 어슬렁거리는 것이 누군가를 호리는 엄펑소니와 크게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팽 선생은 떨어지는 빗방울을 그대로 맞으며 자신의 머리 위를 덮으려 하는 악의 근원에 대해 의문을 품고 심지어 그것을 쫓기까지 한다. 그러나 곧 닥친 체념과 혼돈, 암울한 날씨/무드, 비웃음, 공격, 손쉬운 타협의 문고리를 덜컥 잡아버린다. 최면요법가인 스스로가 도리어 이 세계가 내뿜는 불길하고도 음습한 최면에 힘을 잃는 것이다. 그의 자조처럼 ㅡ 뭔가 불분명한 것이, 알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고 무엇인지 확실하게 감 잡을 수 없는 것, 그 냄새가 잠자리까지도 쫓아올 것만 같은 불안함. 어딘지도 모르는 건물에 갇혔을 때조차 그는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바예호의 딸꾹질을 누군가가 꾸며 낸 거짓이라 추측하지만, 실은 그러한 단정조차 거짓의 산물이었을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나마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로 대변되는 것이 아마도 이 소설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부각되는 것일 텐데, 그마저도 차크몰(하필!) 옆에 선 인물이 쌍안경으로(고작!) 검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을 끝으로 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팽 선생』은 만질 수조차 없는 유령 같은 세계에서 지내는 유령 같은 사람들을 내세워, 방향성을 상실한 개체 하나와 그 개체들이 모인 다수의 또 다른 개체 덩어리 그리고 시작과 끝, 머리와 꼬리가 불분명한 모든 것들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시인이자 가난했지만 죽고 나니 유명해지겠다는 마지막 말은, 어쩌면 수많은 팽 선생들에 둘러싸인 볼라뇨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아 더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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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패밀리
토니노 베나키스타 지음, 이현희 옮김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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찮은 인간이여, 너를 지켜 주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너의 착각이다…… 게다가 너를 해치려고 하는 우리 수는 차고 넘친다…… 누가 너와 네 단란한 가족을 염려해 준단 말인가? ㅡ 만초니의 독백이거나 훗날 다시 쓴 회고록의 일부이거나. 나를 지켜 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건만 그렇다고 마피아들의 손 위에서 열심히 일해야만 하는가? 내가 보기에 『위험한 패밀리』는 당연할 정도로 그 형태를 바꾸었다. 누가 이것을 소설 속 텍스트로만 읽고 싶어 하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원작 쪽을 택했다. 영상에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가 있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마피아, 마피아…… 마피아(mafia)라는 단어의 유래는 애매모호하다. '대담한 사람'을 뜻하는 아랍어에서 찾는 이도 있고, 'Morte alla Francia, Italia anela' 즉 '프랑스에게 죽음을, 이탈리아는 외친다'라는 문장에서 찾는 이도 있다. 또 누군가는 프리메이슨 계열의 비밀 단체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마피아라고 하면 으레 시칠리아를 떠올릴 텐데, 마피아란 그곳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이며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기본 요소, 나아가서는 그들(만)의 도덕까지 아우르는 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그들은 가족(family)인 것이다. 본래의 제목 '말라비타(malavita, 소설 속에서 만초니가 키우는 개)'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올 때 '위험한 패밀리'로 바뀐 것이, '패밀리'라는 단어를 두고 단순히 한 가정을 이르는 의미로 해석한 것에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작품에서도 마피아를 가리킬 때 5대 패밀리 등으로 명명하고 있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오메르타(omerta)를 깼다. 오메르타란 무엇인가. 마피아 계율 중 하나로, 마피아들이 조직원이 될 때 하는 선서이다. 이 침묵의 계율은 어떤 상황에서도 법의 권위에 호소하지 않고 범죄 수사에 절대 협력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초로 하며 '어길 시 곧 죽음'이라는 절대 가치를 지닌다(p.109). 실제로 시칠리아에서는 사람들 간의 갈등이나 그로 인해 벌어진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경찰이나 관리에게 문제를 호소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만일 자기의 아버지가 피살되었고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하였다 하더라도 살인자를 당국에 고소하지 않았다. 직접 복수에 나서거나 그 마을의 권위 있는 자에게 도움을 호소한다. 여기서 권위 있는 자를 가리키는 단어가 바로 '마피아'다……(안혁 『마피아의 계보』 살림, 2003). 소설은 이 오메르타를 깨고 검찰 측 증인인 전향자가 되어 FBI의 보호를 받아 이주한 조반니 만초니 가족이 중심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리오 푸조의 소설들처럼 느와르나 스릴러의 빛을 띠지는 않는다. 거들먹거리는 배관공이 아니꼬워 그의 팔뚝을 망치로 뭉개거나 미국인들을 뒤에서 욕하는 슈퍼마켓 직원에게 복수하려 건물을 날려버리는가 하면, 마을의 식수를 오염시킨 공장을 통째로 없애버리는 등 그들을 보호해야 할 당국으로 하여금 보호는커녕 외려 달래야 할 지경으로 몰아간다. 그러던 중 만초니 가족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곳에서, 정말이지 어처구니없는 실타래를 줍게 된 조직원들의 눈에 띄어 위험에 처하고 만다. 『위험한 패밀리』에서 마피아는 총을 든 채 협박과 위협을 일삼는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단지 생활고에 찌들었을 뿐인 우스꽝스러운 가장으로 등장한다(영화 《간첩》의 남파 공작원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첫머리에도 썼듯 만초니의 낮은 독백, 부패와 비리가 만연한 사회에서 인간은 과연 폭력 없이 살아갈 수 있는가 ㅡ 그의 아들 워런마저 학교에서 소(小) 마피아가 되어가는 현실 ㅡ 에 대한 물음이라면 나로서는 적절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아마도 존 도커가 그러모은 『폭력의 기원』으로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싸움을 좀 했습니다. 말보가 이것이 쉽더라고요. 싸움을 하다 보니 따르는 놈, 비슷한 놈 몇몇이 생기지요. 그래서 그놈들이랑 같이 만나서 밥 먹고, 상의도 하고 싸움하기 전엔 작전회의도 좀 하고 그러지요. 그랬더니 그걸 보고 조직폭력배라고 그러데요. 깡패가 된 거지요……. 그런데 그거 아쇼? 인류가 시작되고 가장 오래된 학문이 군사학이고 싸움하면서 편을 나눈 집단이 가족보다도 먼저 생겼다는 거. 다른 말로 하면 조직깡패지요. 이조시대에도 있었고 로마시대에도 있었고요. 사람 사는 곳에 없어지지 않고 늘 있는 거…… 나 하나 제친다고 이것이 정리될 것 같아요?

ㅡ 『장진 시나리오집』 中 《공공의 적 1-1 강철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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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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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 무엇인지에 관한 농담 하나 말해주겠다. 데이트 약속이 잡힌 한 청년이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했다. 「아빠, 정말 긴장돼서 그러는데요, 갑자기 말이 막히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될까요?」 아버지는 말한다. 「아들아. 3F가 있단다. 음식(food), 가족(family), 철학(f(ph)ilosophy)을 말하는 거지.」 그러자 아들이 말한다. 「알았어요, 꼭 기억할게요.」 그렇게 아들은 데이트를 하러 나갔고, 저녁을 먹은 후 자동차 안에서 데이트를 즐기게 되었다. 그러다 정적이 찾아왔고, 아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궁리한다. 이가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아하, 아버지의 조언을 떠올려 보자. 「그런데 메리, 아스파라거스 좋아해?」 「글쎄, 별로 안 좋아해.」 「그럼 형제가 어떻게 돼?」 「형제는 없어.」 「좋아, 그렇다면 너에게 오빠가 있었다면, 그가 아스파라거스를 좋아했을까?」 이게 철학이다. ㅡ 팟캐스트로 진행된 대화를 엮은 『철학 한입』에 나오는 글이다. 고요한 해 질 녘의 바다 같은 산문집을 낸 이 상냥하고 도저한 선생의 것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나는 이것을 고종석의 글이 주는 것과 다른 쾌감이라 여긴다). 최근 들어 레비와 우엘벡이 주고받은 편지(『공공의 적들』)를 읽어서인지 『밤이 선생이다』는 조금 더 침착하고 가라앉은 느낌을 준다. 행동하는 철학이라 하기엔 조금 거리가 벌어져 있지만 책상머리 논고라 잘라 말하기에도 온당한 표현은 아닐 듯싶다. 데이트를 즐기는 청년이 아스파라거스와 형제만으로도 쉬 철학의 첫걸음을 뗀 것과 같이, 우리도 매한가지로 '모자 쓴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내는 갈림길에서 머뭇거릴 필요는 없을는지 모른다. 시작과 끝은 외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사이좋게 들러붙어 있는 까닭이다. 선생의 전공이 아닌 이야기를 모은 이 첫 산문집은 최근 꽤 입길에 오르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였는지 외려 읽고픈 마음이 들지 않았었다. 내키지 않은 것이다. 못된 습성이라 비꼬는 작자들이 있어도 부러 열기가 사그라질 때를 기다려 손에 넣었다. 물론 당분간은 이러한 분위기가 죽 이어질 것 같긴 하나 쓸모없을지 모르는 객쩍은 용기를 내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보건대, 이 책을 출간되자마자 읽었다면 멋모르고 빠져 앉은자리에서 끝장을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꾸준히 당기는 아침 커피 같은 글이다, 여러 모금 나누어 마셨다 ㅡ 일전에 이런 말을 들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책장 넘기는 것에 충분한 시간을 들인 것은 꽤나 잘한 일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선생이 실은 캐비어 좌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나 그것은 쓸데없는 우려로 그치고 말았다. C10H14N2라고 대문짝만하게 끼적여 놓아도 이것이 니코틴인 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도 그 정체를 알 수 없다. 인간과 사물에 천착한 이 산문들로 하여금 저 화학식이 설명하는 기본 성질과 빛깔만이라도 핥게 된다면 이로써 서툴 수밖에 없는 상념과 반성의 시간이 비로소 선생질을 하게 되지 않을까. ……그럼에도 나는 아직, 모자 쓴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한다.



책을 읽는 사람과 모자를 쓴 사람과 낚시질을 하는 사람을 함께 그린 그림이 있다. 문제는 이 그림에서 모자를 쓴 사람은 누구인가를 알아내는 것이고, 요구하는 답은 그 모자 쓴 사람의 그림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이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벌써 한글을 읽고 쓸 줄 알며, 간단한 셈도 곧잘 해내는 이 아이가 모자 쓴 사람을 못 알아볼 수는 없다. 그러나 아이는 매우 난감한 얼굴을 하더니 이렇게 되물었다. 「내가 어떻게 모자 쓴 사람의 이름을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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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사라지다 모중석 스릴러 클럽 13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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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히 말하겠다. 먼저 ‘유령’이 유령 짓을 하는 이유는, 책을 덮고 나면 다소 개연성이 떨어진다고도 생각된다. 거기다 주인공의 친구 스퀘어스도 무적의 인간으로 그려지고 있으니. 물론 반전의 맛은 좋다. 소설이 끝난 지 한 페이지도 되지 않았는데 곧바로 이어진 에필로그에서까지 놀라게 하는 재주에는 역시 할런 코벤이라는 말이 나온다. 「네 형은 살아 있단다.」 이 한마디. 이 한마디가 모든 사건의 시발점인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얌전히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게 만든다. 옛 애인은 죽고 형과 현재의 애인마저 사라지지만 주인공 윌에게는 거리의 만물상 같은 조력자가 있다. 그 조력자는 셜록 홈스의 노숙자 친구들처럼 정보원을 이용하는가하면 어찌된 일인지 FBI 부지국장에까지 연줄이 닿아 있는 모양이다. 어찌 됐건 윌은 스퀘어스라는 든든한 친구와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 가는데…… 사실 지금 나는, 입을 조금만 잘못 놀렸다간 헤살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조마조마한 심정이다. 도대체가 이 민머리 작가는 언제나 독자로 하여금 제대로 된 감상을 쓸 수 없게 만들고 있다. 한두 문장이라도 실수하면 아직 소설을 읽어 보지 못한 이들에게 야유 섞인 질타를 받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최소한의 줄거리를 섞어가며 써 보겠다. 윌의 형 켄은 어릴 적 이웃 소녀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가족으로부터 사라진다. 그 소녀는 다름 아닌 동생 윌의 여자 친구. 시간이 흘러 11년 후 윌은 새로운 여자를 만나지만 그녀 역시 어느 날 훌쩍 그의 눈앞에서 증발되고 만다. 어릴 적 만났던 동네 친구들은 이제 어른이 되어 다른 방식으로 윌의 인생에 간섭하는데, 만화 『20세기 소년』의 살인마 버전이랄까, 물론 그쪽에서는 좋든 궂든 찾고 싶어 했던 ‘친구’였으나 할런 코벤의 소설에서만큼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윌이 두려워했던 친구는 이제 ‘유령’이 되어 나타났으니까. 더군다나 이 일련의 이야기는 상당한 복잡성을 가지고 진행되는데다가 초반에 꽤 많다 싶을 정도의 인물이 등장하니, 일단 읽기 시작하면 그 자리에서 끝장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담배 한 개비 피우고, 커피 한 잔 마시고, 화장실 한 번 다녀오고, 과연 이럴만한 여유가 생길까? 이것은 비단 나만의 감상이 아니리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리뷰랍시고 애초에 졸필이건만,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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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216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강훈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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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조이스 자신이 도피자이고, 더블린과 떨어져 있으면서도 더블린 사람들이여야만 했다. 그 스스로가 '더블린이라는 도시가 마비의 중심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에 더블린을 배경으로 선택했다'고 밝힌 것은 다른 의미 없이 문자 그대로이다. 『더블린 사람들』을 관통하는 것은 종교적이며 비종교적이고, 허무적이되 허무만을 좇지 않았으며, 도시를 보여주고 있지만 도시의 세련됨은 찾아볼 수 없는 마비라는 안개에 둘러싸인 은밀한 상징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더블린 사람들』의 주인공은 사람들이 아니라 더블린 그 자체일 것이다 ㅡ 더군다나 이는 「위원회 사무실의 담쟁이 날」에서 하인스가 암송하는 <파넬의 죽음>만 보더라도 쉽게 알아챌 수가 있다. 조이스가 고독과 허무에 익숙했던가? 그가 발광한 적이 있었나? 아니면 두 다리가 결박되어 정신적으로 더블린을 벗어날 수 없었을까? 무엇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이든 간에 그는 일단 고통과 번민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초로 시행되어야만 할 병의 자각을 충실히 한 셈이다. 적어도 환상에 매달려 욕망이나 환멸 자체를 무너뜨리지는 않았으니.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 더블린의 한 독자가 초판 부수를 모두 사들여 태워버리는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는데, 그것은 아마도 조이스가 자신의 조국을 떠나 망명했다거나 가톨릭에 대해 맹렬한 비난을 퍼부은 것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시도한 은밀한 것들을 들춰내는 방식은 썩은 환부를 도려내지는 못할지언정 각성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려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때로 『더블린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공격은 으레 결말의 증발이라는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어차피 모든 단편의 귀착점이 특정한 하나의 점(그것을 지향했더라도)을 향해 있지는 않겠다는 견지를 취했으므로 그것이 아무리 모호하든 비난의 대상은 되지 못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우리가 『더블린 사람들』에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묘사 외에 (거의)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늘 따라다니는 '에피퍼니'라는 수식어의 의미 또한 명백하지 않다. 나는 우스꽝스럽게도 『더블린 사람들』이 갖는 의미를, 『율리시스』 읽기를 두려워하기에 앞서 도전할 만한 과제라고 여기고 있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단편 「죽은 사람들」이야말로 조이스의 멋진 시작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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