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메시스 - 복수의 여신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4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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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라는 건 모름지기 옆에 쌓아둔 채 ㅡ 처음부터 끝까지, 죄다 앉은자리에서 ㅡ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한 권씩 출간될 때마다 읽는 맛이 더 좋다는 사람들의 말은 이따금씩 이해가 안 되는 순간이 있다. 이것은 (내가 조바심 그득한 놈팡이임에는 틀림없지만) 통독의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인물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에 영 재주가 없기 때문이다. 할보르센이 누구였지? 묄레르는? 엘렌은? 볼레르는? 이런 식으로 자문하면서 다시 한 번 전작들의 내용을 꿰어 맞추어야 한다(물론 해리는 제외시켜도 상관없지만 나로서는 그리 쉽지 않은 작업이다). 다행히 전작에서 시작된 하나의 사건이 이 『네메시스』를 거쳐 후속편에서 마무리될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했고, 더 다행스러운 것은 그 사건이 언급되는 비중이 적어 최소한 바로 앞의 『레드브레스트』를 들추어야만 하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여기서는 두 가지, 아니면 세 가지의 사건이 일어난다. 우선 은행 강도. 복면을 쓰고, 불필요한 복장도 최소화시켰으며, 성문 분석을 피하기 위해 은행원을 대변인으로 내세우기까지 한 이자의 이야기를 반추하는 해리의 모습으로 소설은 시작한다ㅡ 그리고 제프리 디버의 캐트린 댄스처럼 특출한 재능을 지닌 베아테 뢴. 또 하나의 이야기는 해리의 옛 애인인 안나의 죽음인데, 비로소 소설의 제목이 갖는 의미가 이 시점부터 발화되고 있다. 더군다나 주된 내용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①해리의 누명, ②과거 엘렌의 사건. (얼마 전 해리 홀레 시리즈의 첫 작품인 『박쥐』를 읽고 나서인지 주인공의 우울함이 급작스럽게 느껴질 법도 하건만, 이것이 본래 그의 모습이라는 생각 때문에 안정감마저 든다) 상당히 복잡다단한 구성이다. 한 번 본 사람의 얼굴은 절대 잊지 않는 베아테의 능력은 은행에 뛰어든 자를 분석하고, 그녀의 추리는ㅡ 사투리나 억양을 들키지 않기 위해 노르웨이어가 아닌 영어를 썼고, 섬유가 떨어져 단서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표면이 매끈한 옷을 입었으며, 경찰 인력이 다른 곳으로 움직이게끔 폭탄 테러를 경고하는 익명의 전화를 걸었다는 등의 대답을 이끌어낸다. 당연한 말이지만 은행 강도의 정체는 소설이 끝날 때가 되어서야 드러난다. 뒤이어 발생한 안나의 죽음은, 최초에는 의외의 전개라 생각했다, 상당히 돌고 돌아 결론으로 향하는데 여기서 자칫 길을 잃거나 이야기의 주객전도 현상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네메시스(복수의 여신)'라는 단어를 가지고 노는 그들의 모습 또한 흥미롭고. 오슬로 경찰대학 심리학 교수인 에우네는 이것을 종교와 연관 짓기도 하는데 ㅡ 「기독교의 윤리는 복수하지 말라고 가르치지.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기독교인들이 숭배하는 하느님은 그들 모두를 대변해서 복수해주는 위대한 존재야.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영원히 지옥 불에 타게 되리라. 그거야말로 일반 범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완전한 복수 행위지.」 ㅡ 당돌한 베아테의 입에서 나온 간단명료한 두 단어 '사랑'과 '미움'이 그의 관점을 뭉개버린다(그리고 집시, 집시의 피). 맹목적 정의. 차가운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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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얼마나 공정한가 - 세계 50개 기업에 대한 윤리 보고서
프랑크 비베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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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가 이야기한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로 시작하련다. 이해 당사자들이 자신과 상대방의 신분, 소득, 직업, 재능 등 어떠한 사회적 조건도 알지 못하는 가상의 상황ㅡ 즉 자신이 최대 수혜자가 될지 어떨지를 알 수 없으므로 이익의 극대화보다는 피해의 최소화를 지향하려는 성향이 나타나고, 결과적으로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 이익이 되는 쪽으로 결정을 이끌어 공정한 사회 계약이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주장이다. 기업과 윤리라는, 일견 상충되게만 보이는 이 두 가지 개념에 CSR ㅡ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 ㅡ 이라는 윤리적 문제가 간섭하여 현대사회에서의 중요한 화두가 된 지 오래다.



그러나 글쎄, 윤리와 시장이라는 것이 얼마나 조화로이 어깨를 같이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 앞에서는 언제나 대답하기 힘든 것이 틀림없다. 책은 2부에서 50개 기업의 윤리 프로필이랄까 일종의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데(책 전체의 80% 분량이다), 놀라운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의 평점에 별 다섯 개를 주었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이크로소프트는 넷스케이프(Netscape)나 선 마이크로시스템스(Sun Microsystems), 또한 유럽연합과의 갈등으로 꽤 높은 유명세를 얻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ㅡ 결국 그들은 윈도우즈와 자동으로 결합되던 인터넷 브라우저 익스플로러를 포기하고 고객들의 편의대로 제품을 고르게 해주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빌 게이츠가 설립한 재단을 제외하면 MS는 별점 두 개 정도의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는 덧붙임에는 다소 씁쓸해지기도 한다(동시에 인정하는 바이다). 심지어 비베는 글의 끝에서 한 번 더 '확인사살'을 시도한다.



게이츠가 천재적인 사업적 재능뿐 아니라 경쟁 업체들에 대한 무자비한 정책 때문에 그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다. 이로써 우리는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기업 자체의 문제에 이르렀다. 사실 재단을 제외하면 이 기업은 별점 두 개 정도의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 다시 말하지만 별점 다섯 개는 기업 자체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재단에 대한 평가이다.
ㅡ 본문 p.138~140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보았을 기업들에 대한 윤리적 고찰을 읽다 보면 굉장히 흥미로운데, 여기에는 한국 기업 삼성도 포함되어 있다. 삼성은 별점 다섯 개 만점에서 세 개를 받았다. 분명 삼성은 세계에서 성공적인 기업의 모범처럼 보인다. 비베는 이런 삼성을 가리켜 종종 '요새'로 표현되기도 하는 삼성의 경우 이런 성공의 그늘을 말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특히 일가가 그룹을 운영하는 재벌 기업의 전형, 불법 정치 자금 제공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곧 특별 사면된 이건희 회장, 최근 영화화되기도 한 산재에 대한 언급 등은 다시 한 번 혀를 차게 만들지 않던가. 비베는 삼성이 대체적으로 국제적 기준을 지키려는 인상을 주고 있고 공개적으로 알려진 비난 또한 제한적이라는 점을 들어 별점 세 개를 주었다고 적고 있다. 한국인으로서 보기에 삼성은 외려 국제적으로 비치는 인상보다는 국내 쪽에서 더욱 '악명'이 높은 것만 같다. 그저 이윤을 추구하는 대기업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일까. 최근 어렵사리 개봉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보자. 삼성의 캐치프레이즈인 '또 하나의 가족'을 비꼬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영화의 백미는 단연 '멍게'가 될 것이다. 멍게는 자라나 일정한 거처를 정하면 스스로의 뇌를 자양분 삼아(소화시켜버리고는) 식물이 된다고 한다. 조엘 바칸이 『기업의 경제학』에서 신랄하게 비판한 기업의 상술이란 것에 도취되어, 언젠가부터 우리 역시 생각하지 않는 소비자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기업에게 도덕을 떠맡겨버린 소비자의 책임(=권리)은 전혀 없는 것일까?



하청 업체에 대한 철저한 관리 감독, 그들과 본사와의 긴밀한 협력, 고객과 투자자들에 대한 윤리적 문제, 어린 청소년들의 노동, 기업의 영업 활동이 초래하는 환경 문제. 언제나 그렇듯 기업과 이윤은 머릿속에서 잘 연결되는 반면, 이윤 대신 윤리라는 관점이 들어서게 되면 다소 갸우뚱거리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독성 화학 물질을 그대로 방출하는가하면 비인간적인 조건에서 일하는 근로자에 대한 배려 없는 자세들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경험해왔다. 비베가 지적하듯, 기업의 도덕성은 단순히 그 안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도덕적 자질의 총합이 아니라 해당 기업이 실제로 돌아가는 방식과 분위기를 연관 지어야 한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님과 동시에 지켜지기 어려운 약속과도 같다. 하지만 이러한 측면을 무시해서는 기업 윤리의 문제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현실에서의 기업이란 독립적 인격체로 취급되고 있는 까닭이다. 물론 영리보다 사회적 목적을 우선시하는 기업들도 존재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위험하게도 보인다.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것을 차치하더라도 기업의 기본적 존재 이유는 이윤 추구에 있질 않나.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일단 많은 문제들에 성실히 대답부터 해야 한다. 그것도 문제들이 제기되기 전에 미리 답하는 것이 가장 좋다. 자기 책임 하에 행동해야 하는 소비자와 투자자의 출발점도 바로 이런 대답이다. 그들은 기업이 명확하고 충실한 정보를 자발적으로 제공할 때에만 책임 있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이 내세운 약속을 실제로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ㅡ 본문 p.26



비베는 말한다. 합리적인 행동은 우리가 결정한다고. 그러면서도 윤리 문제에 관한 공공의 논쟁은 합리와 거리가 멀다고도 했다. 그는 윤리를 말하기란 쉽지만 그러한 윤리를 실천하는 일은 비록 뜻이 있어도 매우 어렵다고 덧붙이고 있다. 더군다나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기업의 사업 모델과 다른 기업들과의 관계가 복잡할수록 문제는 더 어려워지는 까닭이다. 그러면서 그는 윤리 문제를 감독 통제하는 부서를 따로 둘 것을 역설하고 있는데, 일견 위반 사례가 단 하나도 적발되지 않았다면 이것은 과연 좋은 결과에 해당할까? 비베에 따르면 그것은 감독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위반 사례를 알리고 그에 대한 대응책을 제시하는 기업들이 외려 훨씬 신뢰할 만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논의에는 반드시 소비자가 '간섭'할 필요가 있다. 집요할 정도로 말이다. 소비자 한 사람의 구매 태도가 어떠한 현상을 바꿀 수는 없을지라도 그들이 뭉치게 되면 거대한 경제 권력이 될 수 있다는 말은 그래서 합당하다(「그것은 민주주의와 비슷하다」). 그러므로 이 책의 목적은 세계적 기업에 대한 정보와 평가에 그치지 않고 또한 기업을 바라보는 소비자의 관심을 일깨우는 데 있는 것이다. 『애플은 얼마나 공정한가』에 제시된 세계 50개 기업에 대한 윤리보고서를 읽고 있노라면 페이스북을 평가한 단 한마디만이 머릿속에 남는다. 그것은 이 책을 관통하는 예리한 날붙이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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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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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시리즈물의 첫 작품을 건드린다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어딘지 모르게 제어하기가 힘들어 보이는 인물들, 다소 다듬어지지 못한 호흡, 복잡함을 택하기보다는 과감히 밀고 나가는 거친 박력. 확실히 『박쥐』에서의 해리는 지금까지 출간된 『스노우맨』이나 『레오파드』에서와는 달리 작가 스스로가 말하듯 통제 불가능한 느낌에 가깝다. 그가 처음 본 여자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꾀는 모습은 후속작들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것이고(그녀들을 낙담하게 만드는 짓거리 역시) 더군다나 낯선 자들과 금세 말을 터 친구처럼 지내는 모양새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조금 더 어리고, 상처를 덜 받고, 무언가를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젊은이들은 다 이런 모양이지ㅡ 물론 상관의 명령에 토를 달고 반박하는 것만은 언제나 불변이다. 여기 『박쥐』에는 제목처럼(!) 애버리진(aborigine; australian origin의 줄임말)이 등장한다. 과거 영국에서 건너온 백인들이 원주민들의 땅을 빼앗은 이래, 20세기 중반 원주민 동화정책을 펴던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그네의 아이들을 강탈해 고아원에 방치하거나 농장의 일꾼으로 보내는가하면 백인 가정에 입양시킨 바 있다. 성장한 이들이 바로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다. 이에 (뒤늦게) 정부로 인해 1998년부터 5월 26일을 기점으로 <National Sorry Day>라는 연례행사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훗날 그들이 정부로부터 집과 돈을 받았다고는 해도, 애버리진의 실업률이 80퍼센트에 육박할 정도라고 하니 교육 쪽으로는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한 것만 같다(게다가 평균수명도 20년 가까이 짧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란다). 원주민도 그렇다고 백인도 아닌 박쥐와 같은 사회적 대우는 그들이 원해서가 아니었다. 그러던 차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성화를 밝힌 점화자가 과거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2연패를 이룬 캐시 프리먼이었던 것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는 육상 선수일 뿐만 아니라 애버리진을 대표하는 인권운동가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과거 멕시코 올림픽에서 보여주었던 블랙 파워 살루트가 '대우받지 못하는 것들에 저항'하는 것이었다면 프리먼의 경우는 비로소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던 경우라 하겠다(물론 시기적으로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 요 네스뵈가 오스트레일리아에 두 발을 딛자마자 다소 이채로울 수밖에 없는 애버리진 문화에 관심을 가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비록 해리라는 주인공이 불완전한 미완의 캐릭터 냄새를 풍기긴 하지만 외려 애버리지 출신인 동료 경찰 앤드류를 거의 전면에 내세우다시피 하고 있으므로. 역자가 후기에 남겼듯 오스트레일리아판 불가촉천민이라는 말은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박쥐』를 잘 설명해준다고 하겠다. 이 소설은 추리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긴 하나 그럼에도 애버리진 사회의 문화를 접목시켰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그럼 대체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어떻게 해결되는가. 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해리 홀레 시리즈를 이미 접했다면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집어 들어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이 『박쥐』를 시작점으로 삼는 것이 제격이다. 탕아에 가까운 주인공의 위대한 탄생이 그려져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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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랜드
스티븐 킹 지음, 나동하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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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하나의 어린 애새끼가 겪은 여름날의 추억인지 아니면 살인 사건을 다룬 스릴러인지 갸우뚱하게 되지만 나는 전자의 손을 들어준다. 그렇게 하고 싶다. 킹의 작품을 많이 읽어 본 것은 아니지만 『조이랜드』는 은근히, 손에 쥐었다고 설명하기 힘든 흐릿한 서사로도 독자의 집중력을 끌어올리고 있는데, 이 소설은 이렇게만 끝을 맺어서는 말이 되질 않는다. 이시다 이라의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시리즈>를 읽은 사람이라면 『조이랜드』가 풍기는 냄새를 어림짐작할 수 있을까. 좀 알려주길 바란다. 서지정보에 의하면 어쩐지 비스름한 느낌일 것 같으니. 즐거움을 판다는 다소 키치한 슬로건으로 무장한 놀이공원 조이랜드에서 파트타임을 시작한 데빈 존스는, 흔히 '성장소설'의 ㅡ 나는 『조이랜드』를 성장소설로 보지 않지만 적어도 몇 편을 이어 더 쓴다면 그렇게 말해줄 용의가 있다 ㅡ 주인공이라 불릴 법도 하건만 그렇기엔 너무나도 짧은 편이다(그러니 킹이여, 더 쓰라!). 갓 스물을 넘긴 남자애가 파트타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어디 있겠나. 내가 보기엔 막노동을 하지 않는 이상 서비스업에 치중되기 십상이지만 반대로 이야깃거리가 풍부해서 좀처럼 바닥을 드러낼 기미가 없다. 그만큼 사람과 사람이 만나기 쉬운 까닭이다. 내가 도일(渡日)해 초밥가게에서 일하던 때ㅡ 게살을 빼어 먹으려 안간힘을 쓰는 아이에게 스테인리스로 제작된 기다란 도구를 건네자 그의 부모가 흐뭇하게 바라보던 일, 멀리 시골에서 놀러 온 커플에게 하나 둘 셋을 외치며 기념사진을 찍어 준 일, 한국에서 쓰는 통화라며 5백 원짜리 동전을 카운터 옆 게시판에 붙여놓았던 일, 스태프 전용 흡연실에서 같은 층 편의점 아가씨와 눈인사를 주고받던 일, 근무 마지막 날이 되었을 때 일요일마다 들르는 단골로부터 캔 맥주 한 봉지를 건네받던 일, 함께 일하던 중국 여자애의 옆구리를 건들며 되지도 않는 농을 치던 일…… 그리고 폼 좀 잡아 보겠다는 선배로부터 「차차 알게 될 거야」라는 말 따위를 들었던 일까지. 정식 사원으로 근무하지 않는 이상 이십대 어린 청맹과니들에게 조이랜드와 같은 곳에서의 한때는 정말이지 소중한 경험이 된다. 물론 킹은 여기에 살인 사건이란 간섭 물질을 넣어버렸다. 개인적으로는 엄청나게 긴 연작이 될 수 있었다는 생각에 참으로 아쉬움을 느낀다. 그럼에도 공포의 집과 유령 이야기는 좋았다고 여겨진다. 사실을 써냈다고 해도 그것이 지역적이고 극히 개인적인 일이라면 독자는 호응하기보다는 남의 일로 판단해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느낄 테지만, 놀이공원과 공포의 집 그리고 유령을 덧붙임으로써 자연스레 관용어구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소설의 시작부터 찬찬히, 꼼꼼하고 자상하게 위로 떠오른다. 「자신 있으면 들어와 봐.」 조이랜드에서 자랑하는 어둠의 놀이 시설에 내걸린 문구이지만 이 소설은 공포의 예상보다는 즐거움의 세계로 가득 차 있다.



덧) 킹 아저씨의 입담의 원천은 얇은 윗입술이기라도 한 걸까. 바라건대 『조이랜드』 후속편도 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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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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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나 미라빌리스, 기적의 저수지. 도시 한 블록 정도의 길이에 반 블록 정도의 폭을 지닌, 낮고 평평한 지붕의 붉은 벽돌 건물로 연녹색의 담쟁이덩굴이 덮인 거대한 지하 저수조.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렇기 때문에야말로) 언제나 부패에 노출되어 있는 수로교는 ― 살베 루크룸! 루크룸 가우디움!(수익이여, 어서 오라! 수익은 기쁨이다!): 이는 「토할 때까지 먹고 먹을 수 있을 때까지 토하자」는 세네카의 말과 궤를 같이하는가? ― 다종다양한 군상을 탄생시키며 폼페이를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렸다. 아니, 실로 후자의 경우는 자연이 내린 메시지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은 짧은 생이다. 감각이 둔해지고, 팔다리가 마비되고 시력, 청력, 걸음걸이는 물론 치아까지, 우리 몸의 영양기관들은 우리보다 먼저 죽어버리지만, 그러한 시기까지 인생의 일부로 간주해야 한다.(p.113)



리좀 같은 수도관들이 복잡다단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에 비해 인간의 모양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임자의 부정부패, 몰지각한 졸부, 전세가 역전된 주인과 노예. 그리고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수도기사 아틸리우스가 있다. 그가 수도관에서 유황 냄새를 맡은 것은 폼페이가 소멸되기 바로 이틀 전이다. 해리스가 본문에 인용한 화산학 연구 자료에 의하면, 마그마의 움직임은 해당 지역의 지하수면을 막을 수 있으며 그럴 경우 지하수의 흐름 및 온도의 변화가 감지될 것이라 했다. 말 그대로 폼페이를 집어삼킨 것은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이지만, 여기에는 산에 올라 이상 현상을 추적하려는 아틸리우스와 그를 구워삶거나 훼방을 놓으려는 자들이 간섭한다. 바로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만 같던 ‘물’로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 ― 그 중심에 있는 것이 폼페이의 관료 포피디우스 그리고 그의 노예였다가 귀족으로 변모한 암플리아투스다. 암플리아투스는 과거 지진 피해를 입은 마을의 주인을 잃은 집들을 이용해 사업을 벌여 부를 축적한 전력을 지녔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닥칠지도 모르는 재난에 이번에는 포피디우스도 한몫하여 부패 관리의 전형을 보여준다. 불[火]의 신 불카누스는 이들의 더러운 기대에 분노로 대답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서기 79년 8월 24일, 화산 쇄설물 등에 의해 폼페이는 뜨거운 가스 구름에 휩싸이고 만다. 파괴된 건물과 압사하거나 질식사한 사람들, 화산암 더미에 파묻힌 거대한 도시. 무엇보다 『폼페이』가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그날의 재앙만을 다룬 것이 아닌 까닭이다. 앞서 언급했듯 욕심 많고 가련한 업자 암플리아투스는, 화산 폭발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물이 나와야 한다며 물만 끌어올 수 있다면 당장에라도 장사를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을 지껄인다 ― 더군다나 아틸리우스에게 사업 제안을 하기까지 한다. 사람 사는 곳에 없어지지 않고 늘 있는 것이 폭력의 무리라던 원술의 말처럼(《공공의 적 1-1 강철중》),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과 불가피하게 보이는 그 무엇은 늘 인간의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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