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 지승호가 묻고 강신주가 답하다
강신주.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수영을 들고나왔을 때보다 강신주는 이쪽이 좋다. 『김수영을 위하여』도 괜찮았지만 사사건건 김수영에 옭아 드는 느낌이었다. 여기서도 장(章) 하나를 통째로 할애해 그를 끄집어내고는 있지만 차라리 이편이 나은 점은 그만큼 김수영에 구애되는 비중이 적어졌다는 것. 그러므로 조금 더 거시적이 되고 조금 더 '맨얼굴'이 된 셈이다. 궁극적으로 인문/인문학이 당당해지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고 인문학을 하는 이들이 많아져야 한다. 모이고, 묻고, 답하고, 토론하고, 촉구하는 논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인문학은 달큼한 사탕 껍질을 벗어던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인문/인문학이 감당해야 할 용기는 일순 약해졌다가 다시 제힘을 되찾고 건강한 인문학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을 보면 말발과 글발이 고르지 못한 이들이 인기를 얻는 것만 같다. 고르지 못하다는 건 쉽게 변질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쉽게 변질되면 그것은 더 이상 당당하지 못하게 되고, 사람들은 간지러운 곳을 긁어 주는 것 같은 펜대에 현혹되어서는 제 할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편승만 하게 된다.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되니까, 저 사람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주니까. 그렇다면 여전히 사탕 껍질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안경을 삐딱하게 쓰고서 내가 밟고 있는 땅이 기울어졌다고 말한다. 스스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해서는 누군가가 와서 내 머리를 난타했다고 말한다. 말을 쉬 하지 못하고 언제나 차렷하고만 있으면 언제나 타인에게서 답을 구하게 된다. 묻고 답하는 것은 외따로 있어서는 안 된다ㅡ 그럴 바에야 균형을 버리고 어느 한쪽을 편드는 것이 낫다, 적어도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는 자각은 하지 못할 테니.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 유불리를 따지지 않겠다? 지도자는 항상 옳은 말만을 한다? 누군가를 가리켜 지도자라 한다면 자신은 추종자에 불과해진다. 그리고 그 지도자라는 것은 지배자와 다른 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이 모든 논의가 성립하려면 사회과학이 살아나야 할 것이다. 그럴듯한 인문학은 사회과학을 죽여 왔고 번지르르한 말들은 커리큘럼 없는 유행이 되었다. '그럴듯한' 것이 아니라 '응당 그래야 하는' 것들이 판을 쳐야 하지 않겠나. 당당한 인문학이 되자고? 역설적이게도 사회과학을 죽인 허튼 인문학은 죽었다 깨도 당당할 수 없다. 진열장 노릇을 하지 않으려면 사회과학이건 인문학이건 언죽번죽한 치렛말에서 벗어나 맨얼굴을 보여야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산의 부장들 - 개정 증보판 남산의 부장들
김충식 지음 / 폴리티쿠스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적이든 무엇이든 간에 이 빌어먹을 양반들, 한국을 좀먹는 부장들은 아직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권력 어딘가에 촉수를 들이밀어 끈덕지게 들러붙어서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아니면 그/그들을 부리는 자들이 부장들의 필요성에 의심을 품지 못하고 있거나……. 과거의 중앙정보부 부장들은 남산에 있었다. 저자는 그것을 일컬어 양산박(梁山泊)이라 했다. 양산박은 중국 산둥성 서부에 있는 늪인데, 지형이 험준해서 예로부터 도적이나 모반군의 근거지로 사용되었다. 양산박이건 복마전이건 확실히 남산은 한국 정치에 있어 어떤 의미로든 빼놓을 수 없는 곳임에 틀림없다ㅡ '남산에 간다'는 것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남산은 중앙정보부의 별칭으로 남산 중턱의 1호 터널 북측에 그 본부가 존재한 데서 비롯되었다. 숱한 가혹행위와 정치 공작의 산실이다. 심지어 국회의원도 수십 명씩 잡혀 가 얻어맞거나 고문을 당하지 않았나. 김지하가 「오적(五賊)」을 썼을 때도 매한가지였고. 그때나 지금이나 사실상 국가원수모독죄가 존재하는 현실이다. 시국 선언을 하거나 그림 한 장을 그려도 조사를 받거나 고발 당하기 일쑤다. (비록 이 책이 박정희 시대만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박정희의 5.16 쿠데타 이후로 2014년 현재까지 이어져 온 한국 사회의 전통이다. 달라진 것이 없다ㅡ 세간에서 '박통 시즌 2'라고 부르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다른 것을 보아도 그렇다. 이후락이 떡을 만지는 사람 손에 떡고물이 묻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듯 어느 면을 보나 과거의 한국과 현재의 한국은 별반 다르지 않다.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김두한이 국회에 분뇨를 뿌렸을 때가 새삼 정겹게만 느껴지는 연유는 바로 이런 모습들에서 기인한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탈락하고 귀국한 축구 대표팀 선수들에게 엿을 던질 일이 아니다. 차라리 국회에 던지라. 엿이 아깝다……. 돌아보면 한국 정치 혹은 한국 사회에서는 참으로 다종다양하고 다이내믹한 일들이 많이도 일어났다. 군부의 쿠데타 이후 국회의원의 초산 테러, 의문의 여인 정인숙 피살, 말로만 듣던 채홍사의 실체, 여야 가릴 것 없는 남산의 공작, 개헌, 유신, 부정 선거, 국회의원 납치와 살인미수, 망명, 비자금, 평양 밀행, 대통령과 영부인 피살, 또 다른 쿠데타…… 이 외에도 규모가 작아 '해프닝'으로 불릴 수밖에 없었던 일들도 부지기수다. 누군가는 지금, 박정희를 연구해야 한다고 한다. 한국 정치사에서 박정희를 제외시킬 수는 없다고 말이다. 물론 그를 빼놓고는 한국 정치는 재미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민주주의 하의 시민들의 집회에서 최루액과 물대포가 등장하는 마당에 박정희 연구라니. 과연 그런 논의가 있어야 할까 싶다. 이렇게도 하루가 다르게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다이내믹한 한국 사회'에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알라딘 MD님의 트위터 계정에서, ˝과장 없이 말해 내 팔로워나 RT의 8할은 알라딘 공식 계정의 RT 때문인데.. 궁금하기는 하다. 그게 없었으면 어느 정도였을까 나는. 지금이랑 어떻게 다르게 트잉여질 하고 있을까.˝ 라는 멘션을 보았음. 궁금해하지 마시고 더욱 정진해주시길. 겉으로만 사적 계정으로 포장되어 있을 뿐 실은 알라딘 계정이나 다름없다, 라는 말씀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제가 보기엔 충분히 개인적이거든요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블루게이트 - 불법 사찰 증거인멸에 휘말린 장진수의 최후 고백
장진수 지음 / 오마이북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 고발자를 다룬 영화 《인사이더(The Insider)》에서는 담배 회사의 비도덕적인 면을 폭로하는 제프리 위갠드(러셀 크로우 분)가 등장한다. 『블루게이트』도 다르지 않다. 장진수는 인사이동을 하자마자 힘의 논리를 터득했다. 동료들의 축하 인사를 받으면서도 그곳에서 불법적인 일을 하게 되는 동시에 자신 또한 증거인멸에 가담하게 될 줄은 알지 못했으며, ‘암행감찰반’으로 불리는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발령이 난 뒤 윗선에 상납을 하는 등 황당한 지휘체계를 지닌 자신의 조직을 의아히 여길 수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훗날 그는, 자기 스스로마저 고발하는 고통을 안게 되었다. 그의 기록을 읽어 내려가면 흡사 과거 중앙정보부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역시 용기 있는 기록이었던 『남산의 부장들』(김충식, 폴리티쿠스, 2012)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은― 최근 몇 년에 이르기까지 사라지지 않았고, 지금도 있을지 모르며, 앞으로도 영원히 불사의 존재로 남을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은행에서 돈을 받았더라고.」
「예? ○○은행이 돈을 왜요? 얼마를요?」
「200만 원. ○○은행 좀 잘 봐달라고 준 거지 (...) 함께 밥 먹다가 부행장이 돈 봉투를 주니까 냅다 받아 온 거예요. 감사를 하러 나간 사람이…….」




장진수의 기록에는 이런 식의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어진 김종익 사건. 개인 블로그에 정부 비판 동영상을 올렸다는 이유로 민간기업인인 김종익 씨를 사찰하는 일이 벌어지고 이 사건이 텔레비전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방영이 되었다.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을 삭제하고, 관련 문건을 파쇄하고, 검사들은 그런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 더군다나 법정에 선 장진수의 상관은 자료 삭제를 지시한 적이 없다는 변명을 한다. 음해에 관해서는 어떤가? 그의 상관은 ‘지원관실에 쏟아지는 비난의 여론을 김종익에게 돌려서 사건을 무마해야 한다’며 문건을 작성해 여당 의원에게 전달했고 ― 장진수는 왜 갑작스레 여당 의원이 등장하는지에 의구심을 품는데, 그 의원이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실의 행정관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의문이 해소되었다’고 씁쓸히 덧붙이고 있다 ― 자료를 건네받은 해당 의원은 국회에서 김종익 씨를 음해하는 공세를 펴며 그를 검찰에 고발하기에 이른다. 국회의원이란 무엇인가? 국회의원이란 수많은 사람이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우므로 국민들을 대리하는 책임이 지워진 사람인데, 이것은 개인적으로 일전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대의 민주주의 하에서 국민의 정치적 의사와 권리를 대리하게 되는 국회의원은, 바로 우리를 대신해 정치판에서 싸우는 용병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 그런 임무를 지닌 자가,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아닌 민간인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 상황이다. 이래저래 한국 정치와 한국 사회가 배를 타고 산을 향한다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질 않나.




불법사찰 사건에는 이 시대의 암울한 분위기가 반영되어 있다. 방식만 바뀌었을 뿐 군사정권 시절의 자기검열 시대로 회귀했다. 실제로 지금 정부를 비판하면 선동한다고 하지 않나. 그 발단이 바로 불법사찰 사건이다.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 등도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 한국일보 장진수 인터뷰(2014. 5. 25)




허울뿐인 압수수색과 증거인멸이라는 범죄, 여론몰이, 꼬리 자르기, 그리고 ‘말 한마디 잘못한’ 장진수의 양심선언. 물론 그 역시 범죄에 가담한 셈이었지만 내부 고발이 가져온 후폭풍은 그에게 ‘독박’을 안겨주었다. 그 심난하고 지난했던 과정이 이 『블루게이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허두에 언급한 《인사이더》로 돌아가 보자. 알 파치노가 연기한 로웰 버그만은 제프리와 더불어 ‘진실이기 때문에, 너무 진실해서 오히려 손해를 본다’는 조직에 철퇴를 가하고 언론인의 사명을 지키려 했다. 장진수는 용기 있는 고백을 시작한 후 공직에서 물러났지만 적어도 부끄러운 인간이 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그가 말한 건강한 에너지일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나타나듯 알량한 회유라는 파란색 알약을 버리고서 빨간색의 것을 취한 것은 단순히 선택의 고민과 방황에만은 그치지 않는다. 갈림길에 서서 한번 선택을 하게 되면, 그것이 최선의 길일는지 아니면 최후의 운명을 맞게 될는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값진 양심 앞에서의 힘든 머뭇거림은 그만큼 우리에게 장진수를 기억해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를 던져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자 밟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개의 일기(日記). 어느 쪽이라도 거짓이 아니며 어느 쪽이든 간에 진실을 위장한 거짓이거나 거짓인 체하는 진실이다. 흔쾌히 뒤통수를 내어주는 남편과 기꺼이 다리 오므리기를 뿌리치는 아내의 우울한 줄다리기는, 그날그날의 일기라는 티트라그푸타의 기록으로 현현된다. 티트라그푸타는 힌두교 신화에 나오는 지옥의 왕 야마의 기록관이다. 그에게는 인간의 행위를 기록한 장부를 보관하는 역할이 주어져 있는데, 인간이 죽어 야마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 바로 이 티트라그푸타가 작성한 장부를 토대로 죽은 자의 생전 행동들을 읽어 내려가고 그에 따라 재판을 받는다. 이야기 속 아이린은 스스로 티트라그푸타가 되어 자신의 일기를 기록하고, 그러므로 이것은 이미 시작부터 기분 좋은 소설이 아니게 된다― 동시에 조심해야 한다, 이 부부의 삶은 특기할만한 경우가 아니라 도처에 널린 피해자들의 진술이므로. 사랑은 후다닥 지나가고 불신은 곪을 대로 곪아서 애정이라는 전제를 먹어 삼킨다(이들은 이미 같은 종족이 아니다). 친밀의 제스처를 취해도 이미 오래전 교류는 끝난 셈이고 원만함은 최초부터 휘발성에 가까운 성질이었으며 둘은 꽤나 촉박하게 서로의 해설자 역할에서 손을 떼어버린다. 아이린과 길이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 만났더라도 그들은 애정이라는 구렁에 한쪽 발을 넣은 채 잔뜩 경계를 했을 것이 틀림없다. 누군가와 헤어지면서, 혹은 섹스를 하고 나서 ‘끝’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그녀는 남편을 향해 어떻게 자신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그는 구조대의 황홀한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아내에게 머리끄덩이를 잡힌 채 들려 나온다. 끝없는 드잡이는 서로를 지치게 할뿐이건만 그들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림자가 아닌 그들 인간 형상의 선명했던 색조는 예전부터 바래고 바랬는데도 말이다. 섬뜩한 은유. 치열한 탐침. 여러 종류의 악순환. 정밀하지 않은 해독(解毒). 어느 쪽이 됐건 진실의 위장과 거짓의 은폐는 모든 것을 종료시키고 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