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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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럼 보기 힘든 뭔가를 가지고서 뚝딱뚝딱 만들어낸다. 그러면 그것은 우리가 너무나도 가까이 두고 사용하는 물건이 된다. 오늘날에는 'made in'이나  'manufactured in' 'OEM' 따위의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이해할 수 있지만 과거엔 그렇지 않았다. 산업혁명 이후 줄기차게 공돌이, 공순이로 불리던 아버지세대의 차별적 언어습관은 지금껏 이어져오고 있는 것 같지만. 『메이드 인 공장』은 신문 연재 당시부터 꽤나 재미있게 읽었던 글이라서 (어쩌면 당연하게도)책으로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물론 이 책도 책을 제작하는 '공장'에서 만들었겠지. 나무를 잘라 종이로 가공하고 거기에다가 잉크로 인쇄를 한 뒤 책등에 본드를 발라 겉표지를 붙여서는……. 맙소사, 더군다나 간장 공장 공장장을 찾아간 건 기막힌 기획이었다(철창살 만드는 곳을 탐방하지 않은 건 왜일까?). 그나저나 브래지어 공장을 다녀온 뒤 토막으로 붙인 팬티에 대한 이야기에서 지금도 하얀색 팬티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약간 놀랐다. 나는 군 시절 피복류를 담당하던 서무계 보급병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군인들에게 보급되는 하얀색 팬티가 있었다. 심지어 간부도 군용으로 만들어진 하얀색 삼각팬티를 구입했으니까. 그게 10년쯤 전인데 지금도 오줌 자국이 남을 우려가 있는 새하얀 팬티가 만들어지고 있다니. 놀랄 노 자다ㅡ 게다가 당시에는 쫀쫀한 박서가 아니라 트렁크라고 불렀던 펑퍼짐한 것과 삼각 형태의 두 가지 종류밖에는 없었다. 공장 관계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당연히 우리가 몰랐던 이런저런 저간의 사정들을 알게 된다. 이를테면 지구본 공장. 소련이 해체됐을 때, 남수단이 독립했을 때 등등 그들은 지구본 데이터를 수시로 바꿔야만 했고 앞으로도 그 일은 반복될 것이다. 콘돔 공장은? 관계자는 동양인들이 선호하는 콘돔 사이즈를 언급하는데 그렇게나 세밀할 수가 없을 정도다. 그리고 그 달착지근한 향. 딸기, 살구, 포도, 오렌지. 불량품을 확인하는 검수조사에서는 도자기 굽는 도공과 마찬가지로 처리한다. 물론 그들처럼 집어던져 깨뜨리지는 않지만(그럴 수도 없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 그러니까 실질적인 형태를 가진 어떤 물질(물체)을 제조하는 과정은 상당히 흥미로운 과정을 지니고 있다. 일견 상상하는 것처럼 단순하지도 않다. 엄청나게 복잡다단한 메커니즘과 더불어 입체적 히스토리가 숨어있다. 우리가 모르는 곳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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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만들다 -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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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공화국. 「속담 따라 살기」라는 글에서 에코가 만들어낸 유토피아다. 행복 공화국 사람들은 제목처럼 속담에 따라 행동하며 살았는데 의외로 무척 불행하게 살았다. '배가 익으면 스스로 떨어진다'고 했기에 농업에 위기가 왔다. '일을 급히 서두르면 망친다'는 속담에 따라 모든 차량이 금지되었다. 또 '뜨거운 물에 덴 사람은 찬물도 두려워하므로' 위생 개념이 희박해지기에 이르렀고 '흘러 지나간 물은 이미 소용없다'는 이유로 재활용 시스템이 금지되었다……. 에코는 이를테면 지난 수십 년간 진정한 적이 없던 모국 이탈리아를 불행하다고 적었다. 뉴욕에서 만난 파키스탄 택시 기사와의 대화에서 출발한 그는 키케로와 바그너, 초서, 보카치오까지 이야기를 몰고 간다. 『적을 만들다』의 부제는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인데 사실 책을 펼치면 온갖 '잡학다식'에 넣을 만한 이야깃거리들이 즐비하다. 그러니까 이 학회에서 발표하고 저 잡지에 실은 글들을 모아 한데 묶은 거다. 그렇다고 여든 넘어 노년에 접어든 이 남자를 무시할쏘냐. 처음부터 목차 순서대로 뚝딱 읽긴 했지만, 책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토를 달기보다는 차라리 문단마다 주석을 하나씩 달아두는 게 나을 것이다. 물론 브라이언 윌슨 말마따나 나는 이런 순간을 원한 게 아니지만(「I just wasn't made for these times」). 즉 『가재걸음』이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을 읽었을 때처럼 이 대륙 저 대륙으로 뻗어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가 「절대와 상대」에서 언급한 것처럼ㅡ 물은 언제나 섭씨 100도에 끓는다는 사실을 두고, 섭씨라는 걸 먼저 만들고 난 뒤 100이라는 상징성이 큰 숫자에 물이 끓는 것을 맞추기 위해 그렇게 정해 놓았다고 생각해도 좋을는지 모른다. 그 때문에 우리는 섭씨 30도 정도가 되면 덥다고 옷을 벗고 섭씨 10도 안팎이 되면 춥다며 옷을 껴입는 거라고 말이다. 물이 끓는 온도가 섭씨 100도가 아니었다면 영하 10도가 되어도 우리가 추위 따위를 전혀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요컨대 이것은 비단 『적을 만들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며 어느 책을 읽어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비틀어보다가 또 저렇게 꼬아보는 것. 왜 그런가? 그 스스로도 그런 방식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에코의 글은 우리 나름대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럴 여지가 충분하다. '눈 뜨면 코를 베이니'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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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과 창조의 시간 밀리언셀러 클럽 135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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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셔 매거가 탐정을 찾았듯 이번엔 매튜가 범인을 갈구한다. 일단 친구인지 적인지 아리송한 자블런이 죽어버렸다. 금요일마다 전화를 걸어 자신의 생사를 알렸던 자블런. 그런데 전화가 끊겼다. 그는 살아있을 때 매튜에게 단단히 봉한 마닐라 봉투를 건넸고 그 안에는 자신을 위협할지도 모르는 세 명의 인물이 적혀 있었다. 자블런은 이를테면 협잡꾼으로 이 사람 저 사람의 약점을 잡아 돈을 갈취하던 사내. 전직 경찰인 매튜 스커더는 흔쾌히,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봉투를 열고 만다. 별 믿음도 없이 십일조를 하며 커피에 버번을 타 마시는 남자는 이런 일에 구미가 당기는가 보다. 자블런의 요청은 무엇이었는가. 밑도 끝도 없는 복수다. 그것 하나면 되었다. 어차피 죽어버린 자가 뭘 알겠나. 매튜는 자블런의 복수라기보다 그저 자블런을 죽게 만든 자의 낯짝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의뢰비도 두둑하고 시간은 많다. 이혼한 전처에게 선심 쓰듯 송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경찰의 끄나풀에 불과한 자블런의 죽음에 관심을 두는 것은 매튜를 제외하곤 없는 것만 같다. 하긴, 그를 죽게 만든 장본인이 아니고서야 귀 밝고 말 많은 공갈범에게 누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각성제를 먹은 상태에서 뺑소니친 여자의 부자 아버지. 포르노를 찍고 이런저런 사고를 여럿 저지른 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여자. 그리고 어린 남자애들에게 성애를 느끼며 주지사가 되려는 남자. 매튜는 이 중에서 자블런을 죽인 범인을 찾아야 한다. 그가 남긴 의뢰비 3천 달러를 들고. 하지만 무면허 탐정 매튜는 어쩐지 안간힘을 쓰는 것 같지는 않다. 전 동료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받는다는 자부심에서는 아니다. 그렇다고 사명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뻔질나게 암스트롱에 들러 술과 시간을 축낼 뿐. 자블런의 복수를 하겠다는 의지는 있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해 둔 것도 없다. 친구가 죽었으니까. 부탁을 받았으니까. 거기에 돈과 시간이 있으니까. 필요조건이 충분조건으로 됨 직한 명제다. 그거면 됐다. 소설은 아무것도 없다. 매튜도 별말을 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고. 사례를 받았으니 문제를 해결한다, 최소한 그러려고 해 본다, 이것이 그의 사고방식이자 생활방식. 조금의 군더더기도 없이 시작해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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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맨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6
오리하라 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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뜩 발기된 고층건물인 아파트의 현재성은 어디에서나 똑같다. 한국에서의 아파트는 일본의 '맨션'이라는 개념인데, 건물을 높이 올린 좁은 땅덩어리에 수십 수백 명이 다닥다닥 모여 사는 건 명칭만 다를 뿐 형태나 성격을 보아도 매한가지라 할 수 있겠다. 최대한 가까이 붙어있으면서도 누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몰인식의 집합체. 『그랜드맨션』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초점이 다소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지만 결국 그것은 앞서 말한 맨션의 부조화에서 기인한다. 나와 똑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분명 옆방에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ㅡ 그 방을 나와 마주보기 전까지는, 서로의 생김새를 묘사해낼 수 없는 감옥의 죄수들같이ㅡ 그네들은 주차장의 덮개 씐 자동차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며 엘리베이터에 함께 올라탄 사람이 같은 층수를 눌러도 본체만체한다. 소설은 여러 개의 단편이 모여 하나의 큰 얼개를 이루는데, 일견 부조리극의 하위범주(란 게 있다면)에 넣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202호의 실직자는 소음에 시달리고 105호에 거주하는 노인은 보이스피싱에 속아 넘어간다. 303호 여자는 스토커가 있는 것 같은 불안감에 고민하며 203호 남자는 형편이 궁하던 차에 옆집 할머니의 '장롱예금' 이야기를 엿듣는다. 그런가하면 치매를 앓는 노인과 연금을 부정으로 수급하려는 사람도 있다. 다종다양한 인간들이 모인 이 성냥갑 같은 네모반듯한 건물을, 조정래는 아파트를 처음 본 상경한 이의 시선으로 표현한 바 있다. 「……1, 2층도 아닌 5층이나 6층의 높은 건물에 층층이 사람이 산다는 것이었다 (...) 머리 위에서 불을 때고 그 머리 위에서 또 불을 때고, 오줌똥을 싸고, 그 아래에서 밥을 먹고, 그러면서 자식을 키우고 또 자식을 낳고, 사람이 사람 위에 포개지고 그 위에 또 얹혀서 살림을 하고…….」 그러나 이러한 경이로운 모습이 낳은 것은 건물의 구획 정리와 그에 따른 단절이다. 이제 맨션(아파트)은 성냥갑이 아닌 '토끼장'이다. 서술 시점의 재빠르고 복잡한 변화로, 그랜드맨션의 토끼장에서 등장인물들은 조금씩 이웃을 알아가고 그들 저간의 사정을 이해하려 하기도 한다. 『그랜드맨션』은 다분히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성격을 띠지만, 몰랐던(관심도 없던) 옆집의 정체(라기보다는 사정이라고 하자)를 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저 우스꽝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건 바로 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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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평민열전 - 평민의 눈으로 바라본 또다른 조선
허경진 지음 / 알마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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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질서의 편재로 피지배계급에 속했던 평민은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부각되었을 것이다. 집권층의 무능력으로 시작된 당파 싸움과 몰락하는 양반의 바람 속에서, 그들은 여러 분야에 걸쳐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서로 글자를 가르치거나 한시를 짓는가하면 그림 하나만으로 임금의 눈에 띄기도 했다. 지금과 비교해보면 계급이 더욱 뚜렷한 것을 제외하고는 외려 능력 있는 인물이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던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최근 방영되었던 드라마에서 말[馬]을 고치는 인물로 등장한 백광현, 영화로도 만들어진 장승업의 이야기, 또 제주 태생 김만덕 등이 바로 그들이다. 『조선평민열전』은 이러한 19세기 평민들의 삶을 직업에 따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절반씩 소개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의 일화뿐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표현력 또한 들 수 있는데, 이옥(李鈺)은 문집 『문무자문초(文無子文鈔)』에서 바둑을 잘 두었던 정운창(鄭運昌)이란 자의 바둑돌 내려놓는 것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포위하는 것은 성채 같고 끊는 것은 창끝 같았으며 세우는 것은 지팡이를 짚은 것 같고 합치는 것은 바느질한 것 같았다 (...) 함정에 빠뜨리는 것은 도끼 구멍에 끼우는 것 같고 변화하는 것은 용 같았으며 모이는 것은 벌 같았다.」 바둑 한 수 두는 것을 이렇게까지 거창하게 말할 것 있나 싶기도 하지만, 당시 사람들의 모습과 더불어 그것을 설명하고 묘사하는 쪽의 시선 또한 이채롭다. 또 책을 파는 중개상(요즘으로 치면 헌책방이랄까?)인 조신선(曺神仙)이란 자 ㅡ 이름이 '신선(神仙)'이라는 것은 후에 스스로가 지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글을 읽으면 그의 괴짜 같은 면모를 볼 수 있으므로 ㅡ 는 이런 말을 했다 한다. 「세상에 책이 없어진다면 나도 달리지 않을 테고, 세상 사람이 책을 사지 않는다면 나도 날마다 마시고 취할 수 없을 거요. 이는 하늘이 세상의 책으로 내게 명한 것이니, 내 생애를 책으로 마치려오.」 이 얼마나 기세등등한 모습인가. 조신선은 일종의 유통망에 속해 있는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직업 정신 내지는 자부심이 지금의 사람들보다 몇 배는 강했던 것만 같다.



아, 물론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있다. 평민은 양반과의 물리적, 생리적 부딪힘에서 비로소 자신들의 이름을 알릴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지배계급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도 위에서 누르거나 인정하지 않으면, 대략적인 기록은커녕 목숨마저 잃을 지경이었을 테니 말이다. 또 피지배계급과 패자의 역사가 언제고 숨어버리고 마는 현상이 비단 저 옛날 사람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질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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