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십이국기 2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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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중요한 것은 천제의 뜻이다. 열두 나라의 이야기를 하나씩 돌아가며 그린다손 치더라도, 종국에는 일체를 아우르는 하늘의 뜻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마무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단 설정은 천제가 열세 나라를 만들어 그중 하나를 황해(黃海)와 봉산(蓬山)으로 삼아 여신(女神)과 여선(女仙)의 땅으로 만들고 남은 열두 나라에 각각의 왕을 내려 국가의 기틀을 이룬 것에서 출발하는데, 천제가 내린 궁극적인 뜻은 만민의 안녕이 곧 국가의 행복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오노 후유미가 불교학을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니 이 십이국기 시리즈는 일견 불교의 세계관과 닮아있다고 할 수 있을는지도. 그도 그럴 것이 소설 말미에 드러나는 십이국의 탄생에 앞서 천제가 염려하고 있던 것, 즉 천지의 섭리를 업신여기고 인도를 소홀히 하여 비탄에 잠긴 세상을 바로잡아 태곳적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함인 까닭이다. 이와 비슷한 불교의 존재 인식 역시 현세의 삶이 모두 고통이라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불유쾌한 세상을 다스리는 열두 나라의 왕은 선출직이 아닌, 기린(麒麟)이라는 순결무구의 존재에 의한 임명직이다. 기린의 입장에서 보면 왕은 용병이나 매한가지인 것이다. 언제나 왕 옆에서 그/그녀를 보좌하며 복종하지만 도를 벗어나면 직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왕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면 기린은 병들어 죽게 되고(실도, 失道) 기린이 죽으면 왕의 목숨도 함께 사라진다. 이를테면 국민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이 통치를 잘못하게 되면 국민이 병을 얻게 되고, 그렇게 되면 대통령 또한 시름시름 앓게 되는 것이다. 이는 현실에서라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이다. 최근 시리즈 첫 번째로 출간된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를 시작으로 느끼게 되듯, 이 십이국의 세계가 지금의 현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는 것일지 아니면 그럼에도 이런 세계라면 오늘날의 그것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호소와 더불어 대리만족을 느끼게 할 심산인 것인지가 조금씩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나 더, 이 십이국의 세계와 인간세계를 가로막는 것으로 허해(虛海)라는 바다가 설정되어 있는데 이는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잇는 일종의 웜 홀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딘지 모르게 현세와 내세 ㅡ 현실과 이상(더불어 이 둘의 괴리) ㅡ 를 끊임없이 연결하고자 하는 '유(有)의 부정'이라는 생각도 든다. 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바로 '아무것도 없음(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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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마니아 - 과거에 중독된 대중문화
사이먼 레이놀즈 지음, 최성민.함영준 옮김 / 작업실유령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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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없이 해와 달을 보며, 또 하늘의 색이 변하는 것을 보며 시간을 감지하던 아날로그 시절이 있었다.
그런 때가 있었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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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체를 묻어라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김연우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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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작 『냉혹한 이야기』를 읽지 않았다면 소용이 없을 듯하다. 분명히 그때 올리비에는 살인죄를 선고받은 뒤 복역하고 있었으나 가마슈가 새삼 그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 때문이다. 『네 시체를 묻어라』는 새로운 사건과 함께 그 올리비에 사건을 재수사하는 이야기가 중첩되어 있다. 차갑고 새하얀 이미지의 퀘벡과, 그와 비슷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폐쇄적 기운이 감도는 문예역사협회. 바로 거기서 사람이 죽는다. 퀘벡, 나아가 캐나다를 기초한 인물로 알려진 샹플랭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괴짜 하나가 죽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야기ㅡ 루이즈 페니의 소설들은 원주민과 이주민이라는 사회배경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그리고 가마슈의 부하 보부아르가 과거 사건이 벌어졌던 마을을 다시 찾는 장면이 이따금 간섭하고 있다. 루이즈 페니의 작품을 몇 권 읽어나가고, 또 이 『네 시체를 묻어라』까지 오게 되니 코지 미스터리란 수식어는 이제 떼어버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런' 느낌의, 그러니까 따뜻하게 데운 우유와 샌드위치처럼 차분히 가라앉은 고요한 분위기는 유지되고 있지만 조금씩 조금씩 가마슈의 발길이 넓어지고 있는 기분이다. 특히 샹플랭을 찾는 여정과 더불어 진행되는 올리비에 사건(『냉혹한 이야기』에서 완벽하게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서의 반전에 이은 반전, 계속해서 가마슈의 머릿속을 맴도는 과어 어느 날의 실수와 악몽, 이 모든 것을 두고 이미 늙수그레한 가마슈의 성장담이라고 해도 좋다. 개인적으로 루이즈 페니의 서술에 박력이 부족한 것을 안타까워하고는 있으나ㅡ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재미있으며, 작가 스스로도 뭔가 생각을 달리한 부분이 있는 것인지 작품이 더해질수록 이전 소설들보다 한 걸음은 더 나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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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쓰러지다 - 르포, 한 해 2000명이 일하다 죽는 사회를 기록하다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7
희정 지음 / 오월의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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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이다. 유리컵을 깨뜨리는 바람에 손이 다쳤다. 일을 못하는 일주일 치 시급은 날아갈 테지만 병원비는 내 지갑에서 지불되지 않았다. 병원에 가서 손을 세 바늘 꿰맨 뒤 카드를 하나 받았는데 뒷면에 '勞'라는 도장이 찍혀 있다. 노동자 재해보상 보험. 한국의 산재보험에 해당하리라. 그 후로 약 일주일간을 매일같이 병원에 드나들며 소독하고 붕대를 새로 감아 나왔다. 오륙 년 전쯤 일본에 있을 때 벌어진 일이다. 부러운 건 솔직히 부럽다고 말해야겠다. 당시 손에서 피가 나자 동료들이 밴드를 가져와 붙여주었고 그래도 멈추지 않자 지배인은 병원을 수배한 뒤 스스로 택시를 잡아 나를 태웠었다. 『노동자, 쓰러지다』를 읽으면 딴 나라이자 별세계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무대는 한국이다. 뉴스와 신문에서 단신으로 처리되곤 하는 산재 말이다. 페인트칠을 하다 코가 헐고 콧속에 혹이 생기며 진상 손님을 응대하고는 마음을 다친다. 시간이 없어 쓰레기 수거차에 매달려 아슬아슬하게 이동하는가하면 실제로 어딘가 부상을 입어도 산재라는 단어를 입밖에 꺼내기가 힘들다. 산재보험이란 일단 개인비용으로 치료비를 부담한 뒤 신청하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며, 산재로 인정받기 힘든 까닭에 그마저도 신청해 볼 엄두를 못 낸다. 산재보험이 아닌 건강보험으로 때운다. 그리고 상처 난 몸에는 파스가 덕지덕지 붙는다. 오늘날 전태일의 바보회는 없는 한국이다. 10만 원짜리 안전펜스가 없어 용광로 쇳물에 빠져 죽고, 감시원 하나가 없어 선로 보수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열차에 치인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리고 타이어 공장의 벤젠에 중독되어 사람이 쓰러진다. 2012년 조선소에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46명. 1년에 광고비로 10조를 넘게 쓰는 대기업의 안전관리 비용은 천 억 안팎. OECD의 최저임금 권고는 평균임금의 50퍼센트인데 비해 한국은 35퍼센트 수준. 한 해 평균 80만 명이 일하다 다친다는 독일에 비해 한국은 8만 명 정도에 그친다. 그러나 OECD 가입국 중 한국의 산재사망률은 1위다. 왜? 한국의 노동자들은 '덜 다치지만 많이 죽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사람이 죽는 것은 감출 수 없다 해도 부상을 입은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감출 수 있다. 건강보험은 적자를 면치 못하지만 산재보험은 5조 이상의 흑자를 기록하는 나라이므로. 더군다나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이렇다 할 호소를 하기도 어렵다. 그들의 고용구조가 하청에 하청 또 하청인 탓에 그렇다. 산재처리를 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는 순간 다음 계약은 없을지도 모르며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변모하는 것 또한 요원하다. 2013년 2월, 알바연대는 소위 '알바 오적'을 선정했다. GS25, 파리바게트, 카페베네, 롯데리아, 고용노동부. 「해당 기업들은 매출 규모가 급성장해 당기순이익이 수백억에서 수천억에 달하는데 알바들은 여전히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 영세 가맹점을 양산해 알바들의 노동조건을 취약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p.334, 이 오적에 고용노동부를 넣은 것이 눈에 띈다) 책을 펼치자마자 나오는 추천사와 서문만으로도 머릿속이 뜨거워져 열이 뻗친다. 학교에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배우지만 학교를 벗어나자마자 그 논리는 박살이 나며 실제로 계급사회 밑에 있는 노동자의 이야기는 잘 들려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알지만 모르며(모른 척하며) 모르고 있지만(모르는 척하지만)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숨기거나 눈을 돌리고 귀를 막는다. 내 이야기가 아니니까.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내 아버지도 노동자이며 할아버지도 노동자였고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또한 노동자였을 것이다. 나 또한 노동자가 될 수 있으며(아니면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나보다 어린 사람들도 근미래에는 노동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며 당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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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버리스트 모중석 스릴러 클럽 37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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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버리스트』는 스토리의 재미보다는 제프리 디버의 기술적 도전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독자는 일단 읽어나가면서 앞의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를 수시로 체크해야 한다. 소설의 시작과 끝이 반대로 서술되어 있는 까닭이다. 챕터 36부터 1까지 거꾸로. 따라서 역자 후기도 책의 앞에, 간기면도 출판사의 기존 편집 원칙에 반해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 서두에 독자에게 제공되는 정보는 여주인공의 딸이 납치된 후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것ㅡ 물론 이것이 가장 앞부분이지만 내용상으로는 끝이다. 페이지를 거듭해 넘기면 그 바로 앞의 상황이 펼쳐진다. 여자는 자신의 조력자와 함께 경찰에 쫓기고 있다. 그러기 전에는 사무실에 침입해 문서를 훔친다. 이런 식으로 소설은 끊임없이 끝에서 시작으로 자리를 옮긴다. 제프리 디버식 반전은 어디에 숨어있나? 마지막이다. 다시 말해 이야기의 시작에 이미 그것은 제시되어 있다. 이 역순 구성은 꽤나 위험하다. 독자로 하여금 인내심을 시험하려 들지 않고 계속해서 흥미의 끈을 잡아당겨야 하므로. 그러면서도 책의 서두(이야기의 끝)에서는 인물들의 정보를 최소한으로 두고, 뒤로 갈수록(이야기의 시작 부분으로 갈수록) 외려 그들의 모든 것을 제공해야만 한다. 디버는 성공적으로 이 매듭을 풀어냈다. 아니, 너무나도 팽팽하게 꼬아놓았다. 다만 이 기술(技術, 記述)적 요소에 매립된 나머지 이야기의 짜임새가 빛을 발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그의 탓이 아니다. 『옥토버리스트』는 충분히 스릴의 흥미를 가져다주고 있다. 다만 시종일관 이러한 구성에 주의하며 따라가다 보니 맥거핀이 클리셰가 되어버린 기분마저 든다. 디버의 노고를 모르는 바 아니나 소설의 재미를 충분히 이해하려면 앞에서 한 번, 뒤에서 한 번 읽어야 하는 수고가 따른다. 독자로서는 좀처럼 하기 어려운 행동일는지 모르겠다. 나는 영민한 편에 속하지는 않으므로 기꺼이 다시 한 번 이 괴상한 독서에 참여하기로 했고 이번에는 대성공이었다. 애초 내게 입력된 인물들의 정보가 재정립되며 그들을 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졌다. 악인이 선인이 되었다가 선인이 악인이 되었다가. 책 겉표지에는 '스릴을 원하는 그대, 지금 제프리 디버를 읽을 것'이라는 카피가 적혀 있다. 거기에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옥토버리스트』를 읽은 그대, 이번엔 뒤에서부터 읽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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