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시체를 묻어라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김연우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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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작 『냉혹한 이야기』를 읽지 않았다면 소용이 없을 듯하다. 분명히 그때 올리비에는 살인죄를 선고받은 뒤 복역하고 있었으나 가마슈가 새삼 그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 때문이다. 『네 시체를 묻어라』는 새로운 사건과 함께 그 올리비에 사건을 재수사하는 이야기가 중첩되어 있다. 차갑고 새하얀 이미지의 퀘벡과, 그와 비슷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폐쇄적 기운이 감도는 문예역사협회. 바로 거기서 사람이 죽는다. 퀘벡, 나아가 캐나다를 기초한 인물로 알려진 샹플랭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괴짜 하나가 죽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야기ㅡ 루이즈 페니의 소설들은 원주민과 이주민이라는 사회배경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그리고 가마슈의 부하 보부아르가 과거 사건이 벌어졌던 마을을 다시 찾는 장면이 이따금 간섭하고 있다. 루이즈 페니의 작품을 몇 권 읽어나가고, 또 이 『네 시체를 묻어라』까지 오게 되니 코지 미스터리란 수식어는 이제 떼어버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런' 느낌의, 그러니까 따뜻하게 데운 우유와 샌드위치처럼 차분히 가라앉은 고요한 분위기는 유지되고 있지만 조금씩 조금씩 가마슈의 발길이 넓어지고 있는 기분이다. 특히 샹플랭을 찾는 여정과 더불어 진행되는 올리비에 사건(『냉혹한 이야기』에서 완벽하게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서의 반전에 이은 반전, 계속해서 가마슈의 머릿속을 맴도는 과어 어느 날의 실수와 악몽, 이 모든 것을 두고 이미 늙수그레한 가마슈의 성장담이라고 해도 좋다. 개인적으로 루이즈 페니의 서술에 박력이 부족한 것을 안타까워하고는 있으나ㅡ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재미있으며, 작가 스스로도 뭔가 생각을 달리한 부분이 있는 것인지 작품이 더해질수록 이전 소설들보다 한 걸음은 더 나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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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쓰러지다 - 르포, 한 해 2000명이 일하다 죽는 사회를 기록하다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7
희정 지음 / 오월의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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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이다. 유리컵을 깨뜨리는 바람에 손이 다쳤다. 일을 못하는 일주일 치 시급은 날아갈 테지만 병원비는 내 지갑에서 지불되지 않았다. 병원에 가서 손을 세 바늘 꿰맨 뒤 카드를 하나 받았는데 뒷면에 '勞'라는 도장이 찍혀 있다. 노동자 재해보상 보험. 한국의 산재보험에 해당하리라. 그 후로 약 일주일간을 매일같이 병원에 드나들며 소독하고 붕대를 새로 감아 나왔다. 오륙 년 전쯤 일본에 있을 때 벌어진 일이다. 부러운 건 솔직히 부럽다고 말해야겠다. 당시 손에서 피가 나자 동료들이 밴드를 가져와 붙여주었고 그래도 멈추지 않자 지배인은 병원을 수배한 뒤 스스로 택시를 잡아 나를 태웠었다. 『노동자, 쓰러지다』를 읽으면 딴 나라이자 별세계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무대는 한국이다. 뉴스와 신문에서 단신으로 처리되곤 하는 산재 말이다. 페인트칠을 하다 코가 헐고 콧속에 혹이 생기며 진상 손님을 응대하고는 마음을 다친다. 시간이 없어 쓰레기 수거차에 매달려 아슬아슬하게 이동하는가하면 실제로 어딘가 부상을 입어도 산재라는 단어를 입밖에 꺼내기가 힘들다. 산재보험이란 일단 개인비용으로 치료비를 부담한 뒤 신청하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며, 산재로 인정받기 힘든 까닭에 그마저도 신청해 볼 엄두를 못 낸다. 산재보험이 아닌 건강보험으로 때운다. 그리고 상처 난 몸에는 파스가 덕지덕지 붙는다. 오늘날 전태일의 바보회는 없는 한국이다. 10만 원짜리 안전펜스가 없어 용광로 쇳물에 빠져 죽고, 감시원 하나가 없어 선로 보수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열차에 치인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리고 타이어 공장의 벤젠에 중독되어 사람이 쓰러진다. 2012년 조선소에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46명. 1년에 광고비로 10조를 넘게 쓰는 대기업의 안전관리 비용은 천 억 안팎. OECD의 최저임금 권고는 평균임금의 50퍼센트인데 비해 한국은 35퍼센트 수준. 한 해 평균 80만 명이 일하다 다친다는 독일에 비해 한국은 8만 명 정도에 그친다. 그러나 OECD 가입국 중 한국의 산재사망률은 1위다. 왜? 한국의 노동자들은 '덜 다치지만 많이 죽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사람이 죽는 것은 감출 수 없다 해도 부상을 입은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감출 수 있다. 건강보험은 적자를 면치 못하지만 산재보험은 5조 이상의 흑자를 기록하는 나라이므로. 더군다나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이렇다 할 호소를 하기도 어렵다. 그들의 고용구조가 하청에 하청 또 하청인 탓에 그렇다. 산재처리를 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는 순간 다음 계약은 없을지도 모르며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변모하는 것 또한 요원하다. 2013년 2월, 알바연대는 소위 '알바 오적'을 선정했다. GS25, 파리바게트, 카페베네, 롯데리아, 고용노동부. 「해당 기업들은 매출 규모가 급성장해 당기순이익이 수백억에서 수천억에 달하는데 알바들은 여전히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 영세 가맹점을 양산해 알바들의 노동조건을 취약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p.334, 이 오적에 고용노동부를 넣은 것이 눈에 띈다) 책을 펼치자마자 나오는 추천사와 서문만으로도 머릿속이 뜨거워져 열이 뻗친다. 학교에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배우지만 학교를 벗어나자마자 그 논리는 박살이 나며 실제로 계급사회 밑에 있는 노동자의 이야기는 잘 들려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알지만 모르며(모른 척하며) 모르고 있지만(모르는 척하지만)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숨기거나 눈을 돌리고 귀를 막는다. 내 이야기가 아니니까.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내 아버지도 노동자이며 할아버지도 노동자였고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또한 노동자였을 것이다. 나 또한 노동자가 될 수 있으며(아니면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나보다 어린 사람들도 근미래에는 노동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며 당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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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버리스트 모중석 스릴러 클럽 37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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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버리스트』는 스토리의 재미보다는 제프리 디버의 기술적 도전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독자는 일단 읽어나가면서 앞의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를 수시로 체크해야 한다. 소설의 시작과 끝이 반대로 서술되어 있는 까닭이다. 챕터 36부터 1까지 거꾸로. 따라서 역자 후기도 책의 앞에, 간기면도 출판사의 기존 편집 원칙에 반해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 서두에 독자에게 제공되는 정보는 여주인공의 딸이 납치된 후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것ㅡ 물론 이것이 가장 앞부분이지만 내용상으로는 끝이다. 페이지를 거듭해 넘기면 그 바로 앞의 상황이 펼쳐진다. 여자는 자신의 조력자와 함께 경찰에 쫓기고 있다. 그러기 전에는 사무실에 침입해 문서를 훔친다. 이런 식으로 소설은 끊임없이 끝에서 시작으로 자리를 옮긴다. 제프리 디버식 반전은 어디에 숨어있나? 마지막이다. 다시 말해 이야기의 시작에 이미 그것은 제시되어 있다. 이 역순 구성은 꽤나 위험하다. 독자로 하여금 인내심을 시험하려 들지 않고 계속해서 흥미의 끈을 잡아당겨야 하므로. 그러면서도 책의 서두(이야기의 끝)에서는 인물들의 정보를 최소한으로 두고, 뒤로 갈수록(이야기의 시작 부분으로 갈수록) 외려 그들의 모든 것을 제공해야만 한다. 디버는 성공적으로 이 매듭을 풀어냈다. 아니, 너무나도 팽팽하게 꼬아놓았다. 다만 이 기술(技術, 記述)적 요소에 매립된 나머지 이야기의 짜임새가 빛을 발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그의 탓이 아니다. 『옥토버리스트』는 충분히 스릴의 흥미를 가져다주고 있다. 다만 시종일관 이러한 구성에 주의하며 따라가다 보니 맥거핀이 클리셰가 되어버린 기분마저 든다. 디버의 노고를 모르는 바 아니나 소설의 재미를 충분히 이해하려면 앞에서 한 번, 뒤에서 한 번 읽어야 하는 수고가 따른다. 독자로서는 좀처럼 하기 어려운 행동일는지 모르겠다. 나는 영민한 편에 속하지는 않으므로 기꺼이 다시 한 번 이 괴상한 독서에 참여하기로 했고 이번에는 대성공이었다. 애초 내게 입력된 인물들의 정보가 재정립되며 그들을 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졌다. 악인이 선인이 되었다가 선인이 악인이 되었다가. 책 겉표지에는 '스릴을 원하는 그대, 지금 제프리 디버를 읽을 것'이라는 카피가 적혀 있다. 거기에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옥토버리스트』를 읽은 그대, 이번엔 뒤에서부터 읽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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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넓다 - 항구의 심장박동 소리와 산동네의 궁핍함을 끌어안은 도시
유승훈 지음 / 글항아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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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가 보기는커녕 은근슬쩍 영남권 언저리를 지나친 적도 없다. 군 시절 선임 중 하나가 부산 출신이라는 사실을 안 뒤 '난 부산 사람과는 안 맞아' 하며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진 적은 있으나 기본적으로 나는 부산이라는 도시에 대해 어떤 고정관념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자가 괴팍하고 좀스런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순간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도 든 것이었으니 말이다. 윤전기에서 쭉쭉 뽑아낸 듯한 사진으로 보는 지형지물의 생김생김과 대하서사와 같은 부산의 역사는 부산 시민이 아니더라도 읽어봄 직하다. 깔깔 유머집스러운 곳은 찾아볼 수 없으나 실제로 부산에서 태어난 사람들 사이에서마저 그들보다 더 부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세세하고 철저하다ㅡ 다만 보수동의 책방 골목 이야기도 나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던 것은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내가 원체 책 한 권을 두고 몇 날 며칠 읽지 못하는 자발스러움 충만한 인간임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부산은 넓다』와 같은 책을 만만디(慢慢的), 만만디 하며 읽을쏜가. 소파와 합체되어 책장을 넘기지 않을 수 없다. 『부산은 넓다』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시작해 저 옛날 왜관(倭館)의 역사, 영도 할매를 거쳐 김동리의 단편 「밀다원 시대」의 다방 이야기와 산동네, 해운대까지 훑는다. 특히 도개교였던 영도다리에 그 많은 사람들이 빠졌다는 것은 나로서는 처음 접하는 이야기였다. 직장을 잃은 뒤 룸펜이 되는가하면 도기회사 직공으로 근무하다 왼손을 잃는 사고를 당한 청년, 로맨스 소설에서처럼 연인과의 깨진 맹세에 투신한 사람들. 특히 피란민을 덮친 공포, 가족과의 이별, 전쟁의 상흔은 부산으로 쫓겨나다시피 한 사람들을 경제적 빈곤과 심리적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심지어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직후인 60년대의 자살을 바라보는 시각은 정부나 언론이나 매한가지였다. 제 몸을 해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정신 이상자로 몰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그 와중에 영도다리에서 투신한 사람들을 구해낸 용감한 이도 있었다. 당시 영도대교 검문소에 근무했던 박을룡이라는 경사는 250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산 채로 끌어올렸다. 시대상으로 보건대 영도다리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은 간단한 조사만으로도 나올 법하지만 거기에서 사람들을 구해낸 용감한 경찰 이야기를 발견했다는 건 저자의 세심한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부산 태생 사람들이 '나보다 부산에 대해 더 잘 아는 것 같다'라고 한 것에는 그만한 연유가 있는 법이구나. 하지만 뭐, 이것만 있겠나. 책은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탓에 가라오케에서 노래방의 발흥으로 이어지는 과정과 우암동 밀면, 영도 할매 전설과 동해안 별신굿까지 다루고 있다. 또 문성재의 「부산 갈매기」로 시작한 롯데 자이언츠와 영화 《해운대》까지. 그야말로 부산의 근현대를 꿰뚫는다. 『부산은 넓다』는 그저 야매 킬링타임으로 볼 게 아니다. 고마 눈 까뒤집는 것 맹키로 단디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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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읽다, 호주 세계를 읽다
일사 샤프 지음, 김은지 옮김 / 가지출판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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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스크림》(1996)의 시드니(sidney)는 호주의 수도가 캔버라가 아니라 시드니(sydney)라고 알고 있던 내 정신을 정도 이상으로 흩뜨려놓는 데 한몫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나라, 투표가 의무이며 기권하면 벌금을 부과하는 나라, 마디그라 축제, 휴 잭맨과 히스 레저 그리고 카일리 미노그와 줄리언 어샌지가 태어난 나라. 내가 알고 있는 호주는 이런 정도이다. 아, 코알라도 있었네. 책을 읽어 보니 코알라라는 이름은 '마시지 않는 자'라는 뜻의 고대어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코알라는 나뭇잎에서 필요한 수분을 얻기 때문에 물을 거의 마시지 않는단다……. 하여간에 호주는 남반구에 있어 남쪽으로 갈수록 추워져서 12월엔 여름, 7월에는 한겨울이다. 호주 대륙에서 남쪽으로 2천 킬로미터쯤 내려가면 남극인데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이름도 남쪽을 뜻하는 라틴어 아우스트랄리스(australis)에서 생겨났다고. 시리즈 첫 번째 『세계를 읽다: 터키』에서 맛본 그들의 매력과는 또 다른 뭔가가 있다. 일단 영어를 쓰긴 하지만 그것에서부터 희한한 문제가 생긴다. 과거 원주민들의 땅을 빼앗은 백인들의 문제로 불거진 애버리진(aborigine), '도둑맞은 세대'와 더불어 초기 호주 땅에 건너온 죄수와 이주민들에 의해 호주 영어는 영국과 미국의 그것과는 약간 다르다는 말이다. 특히 줄임말이 재미있다. 우편배달원(postman)을 postie, 바비큐(barbecue)를 barbie, 크리스마스(christmas)를 chrissie로. 학자들이 이런 집착에 가까운 증세를 hypocorism이라 부른다는데 심지어 그들은 이마저도 hypo라고 부른다는군. 대도시에서 대문을 걸어 잠그거나 자동차 문을 잠그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나라, 꽤 최근까지도 은행에서 '미키마우스'라는 이름으로 계좌 설립이 가능했던 나라,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실수로 여권을 놓고 와도 별도의 확인절차 없이 우편으로 돌려받을 수 있었던 나라. 책에서 시종일관 묘사하고 있는 순진하고 관대하며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가득한 나라, 호주. 한 가지 부러움의 시선으로 보았던 것은 소위 리더라는 것에 대한 반응이다. 민주주의와 평등 정신이 바탕에 깔린 호주 사람들은 '사람 위에 사람 없다'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정치인이란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고 국민을 대신해 일을 처리하는 나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정치인이 해야 할 의무를 저버리고 왕이나 지도자처럼 굴기 시작하는 순간 당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당연한 이런 사고방식이 호주인들의 '특징'이라고 하니 한국에 빗대어보건대 어느 쪽이 더 타당한 것인지 의문이 갈 지경이다. 그런데 웬걸, 이렇게 실컷 독자로 하여금 달뜬 마음을 갖게 하더니 이제는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을 늘어놓는다. 호주를 대표하는 유칼립투스는 불이 쉽게 붙어 집 가까이에는 절대 심어서는 안 되며, 정원이나 집 안에서 심심찮게 발견되는 거미들은 대부분 엄청난 독성이 있는 존재들이란다. 그러고서 덧붙이는 말은 아주 심플하다. 「물렸다면 즉시 해독제를 먹어라.」 거기다 파리마저도 7천여 종이나 있다고 하니, 태어나 죽을 때까지 온갖 종류의 파리를 접해본다 한들 내 이마와 팔뚝을 거쳐 간 파리가 어떤 종인지 구분하기도 힘들다. 그들이 직장생활에 대해 갖는 인식도 흥미롭다. 우리처럼 조직이란 딱딱한 상하관계가 아니다. 호주에서 윗사람 행세를 하려 한다거나 지나치게 격식을 차리는 것은 적대감과 비협조적인 태도를 초래할 수 있다. 비서는 상사의 업무를 도와주는 사람이지 시중을 드는 하인이 아니며 너무 열심히 일하는 티를 내는 것은 자칫 오만해 보이거나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호주라는 나라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읽다 보면 책 말미에 재미있는 퀴즈가 기다리고 있다. 그중 하나를 옮겨 보겠다.





Q. 당신이 일하고 있는 호주 회사에서 프랑스어로 된 문서에 문제가 생겨 번역이 필요하다. 당신은 대학에서 프랑스 언어와 문학을 전공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A) 프랑스어를 전공한 사실을 큰 목소리로 명확하게 말한 후 번역을 시작한다.
B) 누군가 당신에게 "프랑스어를 좀 한다고 하지 않았어?" 라고 말한 후 부탁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린다.
C) 망설이며 "내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검토해볼게요." 라고 말한 후에 번역을 시작한다. 일부러 천천히 시간을 끌고, 상사가 뿌듯함을 느끼도록 군데군데 찾기 쉬운 실수를 넣는다.




세 가지 선택 중 C가 가장 호주인다운 행동이다. 호주 사람들은 잘난 체하는 사람들에게 강한 거부감을 느끼므로 이 문제의 핵심은 너무 티 나게 나서지 않는 것이다.(p.255) 내가 가장 멋지다고 느꼈던 것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그들의 태도다. '느긋하게, 대화를 합시다.' 물론 이러한 방식이 달갑지 않을지도 모른다. 동네 가게에서 앞사람과 수다를 떠는 직원 때문에 한참이나 기다려야 할 수도 있고 음식점에서 주문을 했더니 '어머, 죄송합니다. 재료가 지난밤/지난주/지난달에 다 떨어졌어요.'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보라. 텔레비전 뉴스에서 리포터가 외무부 장관을 앉혀놓고 '잘난 체하는 멍청이'라고 부르는 상황도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을. 1989년 호주로 이민을 떠난 저자에 의하면, 매사에 직설적이고 솔직한 호주 사람들은 종종 유치할 정도로 단순하며 처음 본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느긋한 태도로 이야기를 즐긴다. 특히 한번 사귄 친구는 영원한 친구로 삼는데 '우정(mateship)'이라는 단어와 의미를 호주 헌법에 추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거론되기도 했을 정도라니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느끼기에 따라, 특히 다른 문화권인 우리의 눈으로 보기에 따라서는 뜨악할지 모르는 부분도 있긴 하다. 직원이 실수를 하면 책임을 묻거나 질책하지 않고 어지간하면 용서하고 넘어간다는 것은 본받을 만하다. 그로 인해 밝은 직장생활이 가능하니까. 하지만 반대로 무슨 일이든 대충 해도 된다는 나태한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어떨까……. 어딜 가나 다 사람 사는 곳이고 생김새 비슷한 자들이 도처에 널렸다고는 하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죄다 다른 것투성이다. 어디든지 말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각본에 참여한 래리 맥머티도 그의 소설에서 말했잖은가. 「어디에 뭐가 있을지 알 수 없다.」 <세계를 읽다> 시리즈 다음 편은 홍세화가 불을 지폈던 프랑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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