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자 : 난세를 이기는 지혜를 말하다 - 완역결정판
열자 지음 / 연암서가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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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죽은 오동나무 

어떤 사람에게 말라 죽은 오동나무가 있었는데, 그의 이웃 영감이 그에게 말라 죽은 오동나무는 상서롭지 못하다고 말해 주었다. 그 사람은 서둘러서 그 나무를 베어 버렸다. 그러자 이웃 영감이 땔나무로 하겠다고 달라고 했다. 그 사람은 곧 화를 내면서 말했다. “이웃 영감님은 공연히 땔나무가 욕심이 나서 나에게 그것을 베게 했다. 나의 이웃이 이처럼 음험하니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세상 사람들은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하는 말이면 잘못된 말이라도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일단 그 사람과 이해관계가 성립되면 아무리 그 사람이 올바른 소리를 하더라도 편견을 가지고 그의 말을 받아들이게 된다. 처음에 이웃 영감의 말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여 말라죽은 오동나무를 잘라버렸다. 그러나 이웃 영감이 그 오동나무를 땔나무로 쓰겠으니 달라고 하자 이해관계가 생겨 그 사람은 전과 다른 눈으로 이웃 영감을 보게 된 것이다.

 

 

사람들의 편견 

어느 사람이 도끼를 잃어버리고는 그의 이웃집 아들을 의심했다. 그의 걸음걸이로 보아도 도끼를 훔친 자 같고 안색을 보아도 도끼를 훔친 자 같고 말씨를 들어도 도끼를 훔친 자 같았다. 모든 동작과 태도 하나가 하나도 도끼를 훔친 자 같지 않은 것이 없었다. 얼마 뒤에 골짜기를 파다가 그 잃었던 도끼를 찾았다. 다음날 다시 이웃집 아들을 보니 동작과 태도가 도끼를 훔친 자 같지 않았다.

 

사람은 어떤 일에 집착하게 되면 곧 그와 관계되는 일종의 편견을 가지고 모든 일이나 사람을 대하게 된다. 도끼를 잃었던 사람이 이웃집 아들을 보는 눈도 자기 생각에 따라 그처럼 달라졌던 것이다.

 

 

욕심으로 눈이 먼 사람 

옛날 제齊나라에 금에 대해 욕심을 지닌 사람이 있었다. 이른 아침 옷을 입고 관을 쓰고 시장의 금을 파는 상점을 찾아가 그 곳의 금을 훔쳐 갔다. 관리가 그를 잡고 나서 그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모두 있었는데도 그대는 남의 금을 훔쳐 갔으니, 어째서 그랬는가?” 그가 대답했다. “금을 집어 갈 적에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금만 보였습니다.”

 

여기서도 사람이 어떤 일에 크게 집착하면 그 일에 관한 것만 보이고 다른 것은 눈에 뜨이지 않게 됨을 말하고 있다. p.419~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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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1 : 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 노자, 도덕경 시리즈 1
차경남 지음 / 글라이더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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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있는데도 더욱 채우려는 것은

그만 두느니만 못하고,

날카로운 것을 날카롭게 벼리는 것은

오래 보전하기가 어렵다.

 

금과 옥이 방 안에 가득하면

이를 능히 지킬 수가 없고,

부귀하여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게 되나니,

 

공을 이루었으면 몸은 물러가는 것,

그것이 하늘의 도이다.

 

持而盈之 不如其已

揣而銳之 不可長保

金玉滿堂 莫之能守

富貴而驕 自遺其咎

功遂身退 天地道

 

 

이 세상에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다. 달도 차면 기울고, 꽃도 피었다 떨어지고, 산의 정상도 올랐으면 내려와야 한다. 한 번 밝았으면 한 번 어두워지고, 한 번 펼쳤으면 한 번 오므라드는 것, 그것이 자연이고 도이다. 천하의 만물은 다 이 이치를 알고 순응하는데, 하늘 아래 제일 똑똑하다는 우리 인간만은 이 이치를 알지 못한다. 한 번 찾아든 부귀와 권세를 고맙게 여기고 절도를 지킬 줄 알아야 하는데, 분수를 모르고 더 많은 부귀와 영화를 탐하다가 스스로 재앙을 초래한다.

 

행운은 언제 왔다 언제 갈지 아무도 모른다. 행운은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물러주지 않는다. 원래 행운이란 변덕이 심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 동양인들만 했던 것이 아니다. 합리적이기로 유명한 그리스인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행운의 여신은 ‘눈이 먼’ 맹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눈이 먼 행운의 여신이 하늘을 날아다니다 누구 집 지붕 위에 떨어질 줄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당신의 집일 수도 있고, 당신의 옆집일 수도 있다. 그것은 무작위다. 알고 내려온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또 눈이 먼 여신은 며칠이 지나면 하던 버릇대로 그곳을 훌쩍 떠나 다시 넓은 하늘 위를 배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의미를 통찰하는 자는 행운이 왔다고 해서 크게 좋아하지도 않고, 행운이 갔다고 해서 크게 낙담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헛된 욕심을 줄이고 스스로를 절제할 뿐이다. 그리하여 다만 몸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현자들의 삶의 방식이다.

 

그릇에 물을 채울 때 너무 가득 부으면 물이 넘쳐흐르게 된다. 그러니 욕심을 부리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멈추는 것이 좋다. 또 칼을 갈 때도 마찬가지다. 날이 이미 날카로운데도 욕심을 부려 그 끝을 더 날카롭게 벼리다가 어느 일정한 도를 넘어서면 도리어 칼날이 무디어진다. 노자는 지금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례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예사롭지 않은 인생의 교훈들을 들려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그릇에 물을 채울 때 너무 가득 붓지 말라는 교훈은 사람들에게 꽤 인기 있는 교훈이었던 것 같다. 이 교훈을 구체화한 물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옛날에 술꾼들이면 꼭 하나씩 소지하고 있었다는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이다. 말 그대로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하는 술잔이다. 일명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하는데,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특별 제작된 물건이다. 어느 한도까지 술이 차면 새어 나가도록 옆에 구멍이 나 있다고 한다.

 

여기서 노자가 ‘차 있는데도 더욱 채우려한다.’는 것은 비단 술잔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고, ‘날카로운 것을 더욱 날카롭게 벼리는 것’은 비단 칼날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노자를 심도 있게 읽어 온 독자라면 이미 감지했겠지만, 가득 찬다는 의미의 찰 ‘영(盈)’자와 예리하다는 의미의 ‘예(銳)’자는 이미 앞에서 한두 번 나왔던 글자로서, 노자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글자들이다.

 

우리는 항상 물질적으로는 가득 채우고(盈) 싶어 하고, 정신적으로는 예리해지고(銳) 싶어 하는데, 노자는 어찌된 영문인지 이것들을 싫어하며 반대한다. 노자는 참 이상한 사람이다. 도대체 이걸 싫어하면 세상을 무슨 재미로 살 것이며, 또 이 세상은 어떻게 굴러갈 것인가! 정말 좋은 것 중에 좋은 것이 ‘盈’자와 銳‘자인데, 이 양반은 왜 사사건건 우리가 좋아하는 것에 쌍지팡이를 짚고 나서는 걸까?

 

노자는 도가 지닌 덕 중의 하나를 설명하면서 ‘날카로움을 꺾고 얽힌 것을 푼다(挫其銳 解其紛).’고 하지 않았던가. 또 도라는 것은 텅 비어 무한히 큰 까닭에 ‘아무리 써도 다 차는 일이 없다.(用之不盈)’고 하지 않았던가. 노자에 의하면 도의 성질은 날카로운 것이나 가득찬 것과는 어딘가 반대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날카로운 것이나 가득 찬 것은 일단 어딘가 여유로움이 없고 각박해 보인다. 그것 앞에 서면 왠지 사람이 찔릴 것 같고, 편히 쉬지 못할 것 같다. 요컨대, 한 인간으로서 ‘여백의 미’가 없어 보인다. 이런 인물에게는 그가 아무리 똑똑하고 영특해도 사람이 모여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옆에는 남이 앉을만한 빈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p.13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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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 (한정판) - 사기 130권을 관통하는 인간통찰 15
김영수 지음 / 왕의서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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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은 바늘로 흙을 옮기는 것 같고, 망하는 것은 파도가 모래를 쓸고 가는 것 같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힘들게 창업했어도 망하는 것은 한순간이란 뜻인데, 결국 기업을 지켜내는 수성守成의 어려움을 나타낸 격언일 것이다. 성공한 기업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사마천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상도(商道)’보다 차원 높은 ‘상덕(商德)‘을 그 비결로 제시한다.

 

사마천은 <평준서>에서 한나라의 정치와 경제가 어떻게 타락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는데, 이를 경제에 한정시켜놓고 보면 ‘상도’와 ‘상덕‘의 상실과정을 나타낸다. 정치적으로 지배층의 부패와 타락이 경제와 맞물리면서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을 낳고 있었고, 이에 사마천은 <평준서>와 <화식열전>을 통해 그 실상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나선 것이다.

 

한 무제 때(재위 BC141~BC87)의 정치와 경제를 보면, 무엇보다 자신의 직무는 팽개친 채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치부 관료들이 대거 출현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말하자면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정경유착 현상이 만연했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고발하고 있다.

 

당시 정부에 재물을 바치면 관리가 될 수 있고 죄를 면할 수도 있었다. 이 때문에 관리를 뽑는 제도가 유명무실해졌다. 염치는 내팽개친 채 힘 있는 자에게 빌붙어 등용되거나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에 법령 또한 갈수록 치밀하게 갖추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부터 치부하는 관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평준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과 금전만능 풍조가 만연했다. 황실의 공주나 제후들조차 돈 있는 자에게 머리를 숙이고 돈을 빌려야만 했다. 부패한 정치 덕분에 치부한 부자들은 돈만 모을줄 알았지 나라의 위급함에는 나 몰라라 눈을 감았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더욱 곤궁해졌다.

 

유통이 문란해지자 개인은 물론 관리까지 나서 죽음을 무릅쓰고 사사로이 돈을 만들어내는 불법이 자행되었다. 돈의 가치가 떨어져 고액의 특수화폐 내지 어음까지 등장했는데, 흰 사슴 가죽의 테두리에 색실로 자수를 놓아 만든 가죽 화폐는 한 장에 40만 전이나 나갔다.

 

관리가 되는 통로 또한 갈수록 난잡해져 결국은 대부분이 돈 많은 장사꾼 출신으로 채워졌고, 이로써 관리들의 투기와 치부는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다. 지방의 토착 세력들은 각종 사업을 독점하여 지역 경제를 왜곡시켰다. 온 나라가 돈 버는 데만 눈이 뒤집혔고, 정부는 정부대로 세금 거두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국가의 재정이 파탄나자 무제는 소금과 철을 전매사업으로 지정해서 상인 출신의 동곽함양과 공근이란 자에게 세금 징수를 맡기고, 재리에 밝은 낙양 상인 상홍양을 측근으로 기용하여 국가 재정을 맡겼는데 이들의 세금 징수는 ‘가을철 짐승들의 몸에 무수히 나는 가는 털까지도 헤아리듯’ 지독했다.

 

정치는 부패하고 경제 질서는 무너져 백성들의 삶은 더 고달파졌다. 군인들은 월급조차 받지 못했다. 새로운 조세 항목이 계속 추가되었고, 그럴수록 가진 자들의 배는 더욱 불러만 갔다. 돈과 권력을 가진 지배층은 경쟁이라도 하듯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에 탐닉했다. 집과 마차, 옷과 음식이 모두 분수를 넘어 끝 모를 지경이 되었다.

 

사마천은 주로 <평준서>를 통해 이런 상황을 고발하면서 그 사이에다 농사와 목축으로 치부하여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복식(卜式)의 이야기’를 삽입하여 당시의 문란했던 사회상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하남군에 살던 복식은 농사짓고 양을 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어린 동생이 성인이 되자 양 100마리만 남기고 전 재산을 동생에게 넘긴 채 산으로 들어갔다. 동생이 파산하자 여러 차례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주었다. 당시 무제는 흉노 공격에 열을 올리고 있었는데 복식은 자기 재산의 절반을 떼어 군비로 충당하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무제는 사람을 보내 행여 복식에게 다른 의도가 없는지를 물었다. 이에 복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흉노를 토벌함에 있어 능력 있는 자는 싸움터에서 절개를 지켜 죽어야 하고, 돈 있는 사람은 모아둔 재산을 바쳐야만 흉노가 소멸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승상으로 있던 공손홍은 본분을 지키지 않는 주제넘은 자라면서 복식의 요청을 거절할 것을 건의했고 무제는 이런 공손홍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1년 뒤 거듭되는 출병과 투항하는 흉노의 처리 비용 때문에 국가의 창고가 텅 비고, 밀려드는 빈민들에게 밥조차 먹일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복식은 하남 태수에게 20만전을 주어 빈민을 구제하게 했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지자 무제는 복식에게 12만 전에 해당하는 상을 내렸으나 복식은 이마저도 다시 헌납했다. 당시 부자들 대부분은 헌납은커녕 갖은 방법으로 긁어모은 재산을 숨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후 복식은 거의 반강제로 상림원의 양을 키우는 낭관 벼슬을 받게 되었다. 복식이 양을 잘 키워내자 무제가 그 비결을 물으며 칭찬했다. 그러자 복식은 양을 키우는 일과 백성을 다스리는 일이 같은 이치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시간에 맞추어 일어나게 하고 쉬게도 해야 합니다. 병든 양을 발견하면 즉시 없애서 남은 양들이 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복식을 범상치 않은 인불이라 여긴 무제는 구지라는 지역의 현령으로 발령을 내어 그를 시험했다. 복식은 가는 곳마다 남다른 실적을 냈고, 제나라에서는 태부를 거쳐 재상에 오르기까지 하였다. 그 뒤 남월이 반란을 일으키자 복식은 글을 올려 아들과 함께 배를 잘 다루는 사람들을 이끌고 종군하게 해달라는 청을 올렸다. 무제는 복식의 충정을 칭찬하면서 그의 행동을 천하에 알려 본받게 했으나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 중 누구 하나 나서는 자가 없었다.

 

복식은 농사와 목축으로 치부하여 그것을 나라에 돌려주고자 했다. 또 난이 일어났을 때는 전쟁에 나가겠다고 자원했다. 그는 그런 행동이 부자들이 해야 할 당연한 의무라고 여겼다. 어지러운 경제정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당시의 나쁜 풍조를 바로잡지는 못했지만, 실천을 통해 가진 자의 최소한의 의무라고 할 수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명제를 새삼 일깨워 주었다.

 

무제 때 병역 기피와 재산 은닉에 열을 올렸던 부자들의 모습과 지금 우리 부자들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복식이 당연하게 여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의미가 아주 무겁게 다가온다.

계연은 “물건 값이 비쌀 때는 오물을 버리듯 물건을 내다 팔고, 물건 값이 쌀 때는 보물을 취하듯 물건을 사들이라“고 했다. 이른바 ‘상덕’이란 이런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계연의 말과 반대가 아닌가? 물건 값이 싸면 더 내려갈 때까지 기다렸다 사들이지 않는가?  대부분의 상인들이 이런 식으로 돈을 벌지 않는가?  정말이지 계연의 ‘상덕’을 지키는 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계연의 말은 ‘상덕’마저 초월한 ‘상 철학’의 경지에 올라 있다.

 

공동체 속에서 다른 다수의 도움으로 치부하고 떵떵거리며 사는 부자와 권세가들의 최소한의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계연이 말하는 이런 차원의 철학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그에 앞서 우리 사회의 부자와 권력자들에게 이런 철학을 기대한다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길 기대하는 것과 같다는 절망감이 엄습해온다. 다만 사마천이 <평준서>와 <화식열전>에서 소개하고 있는, 정직하게 치부하고 나아가 솔선수범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이들에게서 일말의 희망과 위안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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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 용산 걸어본다 1
이광호 지음 / 난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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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의 역사를 감미롭고 친근하게 조곤조곤 들려준다. 과거의 아픈 상흔과 현대의 다문화 공간이 창출하는 용산의 변화를 보면서 폭넓은 사유와 아름다운 문장에 매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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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 (보급판) - 사기 130권을 관통하는 인간통찰 15
김영수 지음 / 왕의서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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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는 상대방에게 인정받는 것이다.이는 누구나 진심으로 바라는 바다. 이해는 피차간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기 때문에 일단 상대방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껴지면 관계는 그걸로 끝나기 십상이다.

 

오늘날의 산서성 지역에 기원전 11세기에 일어나 기원전 4세기에 망한 진(晉)이란 나라가 있었다. 춘추시대에는 그 땅이 지금의 하남성과 하북성 전체에 미쳐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춘추시대 말기로 접어들면서 기득권층인 경·대부들의 세력이 커지고 군주의 힘이 점점 약해지면서 마침내 하극상의 풍조가 퍼져버렸다.

 

진나라의 실권은 한,조,위,범씨,중행씨,지씨 등 여섯 세도 가문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졌고, 결국 이들 세력들 사이에 치열한 암투가 벌어졌다. 기원전 5세기 중엽, 범씨와 중행씨가 소멸되고 남은 세력들이 진나라 땅을 서로 나누어 차지하게 되었다.

 

남은 네 세력들 중에서 지백知柏이 가장 교만하고 비인간적이어서 불법적인 방법으로 남의 땅이나 재산을 빼앗는 등 만행이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에 한,위, 조가 연합하여 지백을 공격하여 죽여 버렸다. 특히 조양자趙襄子는 지백을 얼마나 증오했던지 그를 죽인 것으로도 모자라 해골에 옻칠을 하여 술그릇으로 사용할 정도였다.

 

우리의 이야기는 이 지백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사기> 권86 <자객열전>의 한 주인공 예양의 뒤를 따라가 보자.

처참하게 살해된 지백의 참모 가운데 예양이란 인물이 있었다. 예양은 일찍이 범씨와 중행씨를 도왔으나 제대로 기용되지 못하고 지백에게 흘러들어 갔다. 지백은 그를 높이 평가하여 큰일을 맡겼다. 지백이 죽자 가신들은 놀란 짐승이 도망치듯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예양도 산속으로 숨을 수밖에 없었다. 처량한 신세가 된 예양은 말없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이렇게 탄식했다.

 

“오호라! 뜻을 세운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기쁘게 해주는 사내를 위해 화장을 한다고 했다. 지백은 나를 알아주었으니, 그를 위해 죽음으로 복수하여 보답하는 것이 내 혼백에 부끄럽지 않으리!”

 

이후 예양은 성과 이름을 바꾸고 조양자의 궁궐에 몰래 숨어들어 변소를 청소하는 비천한 인물로 위장하고는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어느 날 조양자는 변소에 가려다 문득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호위 병사를 시켜 변소를 조사하게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비수를 감춘 채 변소에 숨어 있던 예양이 붙잡혀 나왔다. 호위 병사는 예양을 죽이려 했으나 조양자는 예양을 의리 있는 사람이라며 놓아주었다.

 

하지만 예양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온몸에 기름을 바르고 나환자처럼 가장한 뒤 뜨거운 숯을 삼켜 성대를 끊고는 거리에서 구걸을 하며 기회를 엿봤다. 예양의 얼굴은 그 아내조차 몰라볼 정도였다. 그로부터 얼마 뒤, 외출하던 조양자가 한 다리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말이 놀라 껑충 뛰어올랐다. 호위 병사가 즉각 다리 밑을 뒤져 조양자를 습격하려던 예양을 찾아냈다.

 

조양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예양에게 물었다.

“그대는 일찍이 범씨와 중행씨를 섬기지 않았던가? 지백이 그들을 멸망시켰을 때는 그들을 위해 복수하지 않고 오히려 지백의 부하가 되지 않았던가? 헌데 지금 지백은 죽고 없는데 어째서 그대 혼자 이토록 집요하게 지백을 위해 복수하려 든단 말인가?”

 

이에 예양은 이렇게 대답했다.

“신이 범씨와 중행씨를 섬긴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나를 그저 평범한 인물로 대우했고, 나 역시 평범한 인물로서 그들에게 보답했을 뿐이오. 허나 지백이 나를 국사國士로 대우했으니, 나 역시 국사로 그에게 보답하려는 것이오."

 

이에 조양자는 자신도 모르게 안타까운 탄성을 내지르며 이렇게 말했다.

“오, 예자여! 그대가 지백을 위해 하려는 일은 그 명분이 이미 이루어졌도다. 그리고 내가 그대를 놓아주는 일 또한 한계에 이르렀다. 이제 그대는 각오하라. 다시는 놓아줄 수 없으니!”

 

그러고는 호위 병사를 시켜 예양을 에워싸게 했다. 그러자 예양은 조양자에게 다음과 같이 간청했다. “신이 들으니 현명한 군주는 남의 아름다운 일을 감추지 않으며, 충신에게는 절개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의리가 있다고 합니다. 지난 번 군君이 신을 너그럽게 용서함으로써, 천하 사람들이 모두 군이 어질다고 칭찬합니다. 오늘의 일로 신은 마땅히 죽음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부디 군의 옷을 칼로 쳐서 원수를 갚고자 하는 신의 뜻을 이루게 해 주신다면 죽어 여한이 없겠습니다. 감히 그렇게 할 수 없겠지만 마음속에 있는 바람을 내보였을 뿐입니다.”

 

그의 말에 다시 한 번 탄복한 조양자는 주저하지 않고 옷을 벗어 예양에게 건네주었다. 예양은 칼을 휘둘러 조양자의 옷에 구멍을 몇 개 낸 다음 “이제 비로소 지백에게 보답할 수 있게 되었구나!” 라고 외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나라의 뜻있는 인물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모두 눈시울을 적셨다. 사마천은 이 말로 극적인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었다. 지백은 천하의 모든 사람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예양은 지백이 베푼 은혜와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목숨으로 자신을 알아준 지백에게 보답했다.

 

예양의 의리는 무모하고 명분도 약하다. 배신과 음모가 판을 치던 전국시대 막바지. 예양은 변화해가는 인간관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예양은 살벌했던 전국시대에 로맨틱한 인간관계의 마지막 잔상을 남겼으며, 그 진한 여운이 사마천에 의해 감지된 것이다.

 

인간관계는 단순한 물리적 관계가 아닌 복잡한 화학적 관계와 같다. 그래서 오묘하다고들 하는 모양이다. 군주와 신하 사이가 되었건, 고용주와 피고용주의 관계가 되었건, 깡패와 깡패의 관계가 되었건 그 사이에는 “신의(信義)‘라는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 예양의 의리는 우리에게 인간관계란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다는 것을 보여준다. 의리와 관계가 바른 방향으로 줄타기를 하면 세상을 밝게 하는 쪽으로 작용하지만, 그 반대가 되면 세상을 암울하게 만드는 쪽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이런 점에서 세상에 대해 진지하고 바른 뜻을 품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후원해주는 사람을 위해 신명을 다 바칠 수 있는 분위기와 통로가 조성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아 아쉬울 뿐이다. 뜻이 흔들리고 인내심이 바닥나면 그들은 자신이 타고 있던 줄의 반대쪽으로 몸을 기울일 것이기 때문이다. ‘알아준다는 것’,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철석같던 소신을 굽히게도 하고 때로는 목숨을 내던지게도 하니 말이다. p.185~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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