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 (한정판) - 사기 130권을 관통하는 인간통찰 15
김영수 지음 / 왕의서재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창업은 바늘로 흙을 옮기는 것 같고, 망하는 것은 파도가 모래를 쓸고 가는 것 같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힘들게 창업했어도 망하는 것은 한순간이란 뜻인데, 결국 기업을 지켜내는 수성守成의 어려움을 나타낸 격언일 것이다. 성공한 기업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사마천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상도(商道)’보다 차원 높은 ‘상덕(商德)‘을 그 비결로 제시한다.

 

사마천은 <평준서>에서 한나라의 정치와 경제가 어떻게 타락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는데, 이를 경제에 한정시켜놓고 보면 ‘상도’와 ‘상덕‘의 상실과정을 나타낸다. 정치적으로 지배층의 부패와 타락이 경제와 맞물리면서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을 낳고 있었고, 이에 사마천은 <평준서>와 <화식열전>을 통해 그 실상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나선 것이다.

 

한 무제 때(재위 BC141~BC87)의 정치와 경제를 보면, 무엇보다 자신의 직무는 팽개친 채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치부 관료들이 대거 출현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말하자면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정경유착 현상이 만연했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고발하고 있다.

 

당시 정부에 재물을 바치면 관리가 될 수 있고 죄를 면할 수도 있었다. 이 때문에 관리를 뽑는 제도가 유명무실해졌다. 염치는 내팽개친 채 힘 있는 자에게 빌붙어 등용되거나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에 법령 또한 갈수록 치밀하게 갖추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부터 치부하는 관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평준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과 금전만능 풍조가 만연했다. 황실의 공주나 제후들조차 돈 있는 자에게 머리를 숙이고 돈을 빌려야만 했다. 부패한 정치 덕분에 치부한 부자들은 돈만 모을줄 알았지 나라의 위급함에는 나 몰라라 눈을 감았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더욱 곤궁해졌다.

 

유통이 문란해지자 개인은 물론 관리까지 나서 죽음을 무릅쓰고 사사로이 돈을 만들어내는 불법이 자행되었다. 돈의 가치가 떨어져 고액의 특수화폐 내지 어음까지 등장했는데, 흰 사슴 가죽의 테두리에 색실로 자수를 놓아 만든 가죽 화폐는 한 장에 40만 전이나 나갔다.

 

관리가 되는 통로 또한 갈수록 난잡해져 결국은 대부분이 돈 많은 장사꾼 출신으로 채워졌고, 이로써 관리들의 투기와 치부는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다. 지방의 토착 세력들은 각종 사업을 독점하여 지역 경제를 왜곡시켰다. 온 나라가 돈 버는 데만 눈이 뒤집혔고, 정부는 정부대로 세금 거두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국가의 재정이 파탄나자 무제는 소금과 철을 전매사업으로 지정해서 상인 출신의 동곽함양과 공근이란 자에게 세금 징수를 맡기고, 재리에 밝은 낙양 상인 상홍양을 측근으로 기용하여 국가 재정을 맡겼는데 이들의 세금 징수는 ‘가을철 짐승들의 몸에 무수히 나는 가는 털까지도 헤아리듯’ 지독했다.

 

정치는 부패하고 경제 질서는 무너져 백성들의 삶은 더 고달파졌다. 군인들은 월급조차 받지 못했다. 새로운 조세 항목이 계속 추가되었고, 그럴수록 가진 자들의 배는 더욱 불러만 갔다. 돈과 권력을 가진 지배층은 경쟁이라도 하듯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에 탐닉했다. 집과 마차, 옷과 음식이 모두 분수를 넘어 끝 모를 지경이 되었다.

 

사마천은 주로 <평준서>를 통해 이런 상황을 고발하면서 그 사이에다 농사와 목축으로 치부하여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복식(卜式)의 이야기’를 삽입하여 당시의 문란했던 사회상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하남군에 살던 복식은 농사짓고 양을 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어린 동생이 성인이 되자 양 100마리만 남기고 전 재산을 동생에게 넘긴 채 산으로 들어갔다. 동생이 파산하자 여러 차례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주었다. 당시 무제는 흉노 공격에 열을 올리고 있었는데 복식은 자기 재산의 절반을 떼어 군비로 충당하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무제는 사람을 보내 행여 복식에게 다른 의도가 없는지를 물었다. 이에 복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흉노를 토벌함에 있어 능력 있는 자는 싸움터에서 절개를 지켜 죽어야 하고, 돈 있는 사람은 모아둔 재산을 바쳐야만 흉노가 소멸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승상으로 있던 공손홍은 본분을 지키지 않는 주제넘은 자라면서 복식의 요청을 거절할 것을 건의했고 무제는 이런 공손홍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1년 뒤 거듭되는 출병과 투항하는 흉노의 처리 비용 때문에 국가의 창고가 텅 비고, 밀려드는 빈민들에게 밥조차 먹일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복식은 하남 태수에게 20만전을 주어 빈민을 구제하게 했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지자 무제는 복식에게 12만 전에 해당하는 상을 내렸으나 복식은 이마저도 다시 헌납했다. 당시 부자들 대부분은 헌납은커녕 갖은 방법으로 긁어모은 재산을 숨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후 복식은 거의 반강제로 상림원의 양을 키우는 낭관 벼슬을 받게 되었다. 복식이 양을 잘 키워내자 무제가 그 비결을 물으며 칭찬했다. 그러자 복식은 양을 키우는 일과 백성을 다스리는 일이 같은 이치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시간에 맞추어 일어나게 하고 쉬게도 해야 합니다. 병든 양을 발견하면 즉시 없애서 남은 양들이 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복식을 범상치 않은 인불이라 여긴 무제는 구지라는 지역의 현령으로 발령을 내어 그를 시험했다. 복식은 가는 곳마다 남다른 실적을 냈고, 제나라에서는 태부를 거쳐 재상에 오르기까지 하였다. 그 뒤 남월이 반란을 일으키자 복식은 글을 올려 아들과 함께 배를 잘 다루는 사람들을 이끌고 종군하게 해달라는 청을 올렸다. 무제는 복식의 충정을 칭찬하면서 그의 행동을 천하에 알려 본받게 했으나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 중 누구 하나 나서는 자가 없었다.

 

복식은 농사와 목축으로 치부하여 그것을 나라에 돌려주고자 했다. 또 난이 일어났을 때는 전쟁에 나가겠다고 자원했다. 그는 그런 행동이 부자들이 해야 할 당연한 의무라고 여겼다. 어지러운 경제정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당시의 나쁜 풍조를 바로잡지는 못했지만, 실천을 통해 가진 자의 최소한의 의무라고 할 수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명제를 새삼 일깨워 주었다.

 

무제 때 병역 기피와 재산 은닉에 열을 올렸던 부자들의 모습과 지금 우리 부자들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복식이 당연하게 여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의미가 아주 무겁게 다가온다.

계연은 “물건 값이 비쌀 때는 오물을 버리듯 물건을 내다 팔고, 물건 값이 쌀 때는 보물을 취하듯 물건을 사들이라“고 했다. 이른바 ‘상덕’이란 이런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계연의 말과 반대가 아닌가? 물건 값이 싸면 더 내려갈 때까지 기다렸다 사들이지 않는가?  대부분의 상인들이 이런 식으로 돈을 벌지 않는가?  정말이지 계연의 ‘상덕’을 지키는 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계연의 말은 ‘상덕’마저 초월한 ‘상 철학’의 경지에 올라 있다.

 

공동체 속에서 다른 다수의 도움으로 치부하고 떵떵거리며 사는 부자와 권세가들의 최소한의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계연이 말하는 이런 차원의 철학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그에 앞서 우리 사회의 부자와 권력자들에게 이런 철학을 기대한다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길 기대하는 것과 같다는 절망감이 엄습해온다. 다만 사마천이 <평준서>와 <화식열전>에서 소개하고 있는, 정직하게 치부하고 나아가 솔선수범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이들에게서 일말의 희망과 위안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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