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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1 : 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 ㅣ 노자, 도덕경 시리즈 1
차경남 지음 / 글라이더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차 있는데도 더욱 채우려는 것은
그만 두느니만 못하고,
날카로운 것을 날카롭게 벼리는 것은
오래 보전하기가 어렵다.
금과 옥이 방 안에 가득하면
이를 능히 지킬 수가 없고,
부귀하여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게 되나니,
공을 이루었으면 몸은 물러가는 것,
그것이 하늘의 도이다.
持而盈之 不如其已
揣而銳之 不可長保
金玉滿堂 莫之能守
富貴而驕 自遺其咎
功遂身退 天地道
이 세상에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다. 달도 차면 기울고, 꽃도 피었다 떨어지고, 산의 정상도 올랐으면 내려와야 한다. 한 번 밝았으면 한 번 어두워지고, 한 번 펼쳤으면 한 번 오므라드는 것, 그것이 자연이고 도이다. 천하의 만물은 다 이 이치를 알고 순응하는데, 하늘 아래 제일 똑똑하다는 우리 인간만은 이 이치를 알지 못한다. 한 번 찾아든 부귀와 권세를 고맙게 여기고 절도를 지킬 줄 알아야 하는데, 분수를 모르고 더 많은 부귀와 영화를 탐하다가 스스로 재앙을 초래한다.
행운은 언제 왔다 언제 갈지 아무도 모른다. 행운은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물러주지 않는다. 원래 행운이란 변덕이 심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 동양인들만 했던 것이 아니다. 합리적이기로 유명한 그리스인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행운의 여신은 ‘눈이 먼’ 맹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눈이 먼 행운의 여신이 하늘을 날아다니다 누구 집 지붕 위에 떨어질 줄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당신의 집일 수도 있고, 당신의 옆집일 수도 있다. 그것은 무작위다. 알고 내려온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또 눈이 먼 여신은 며칠이 지나면 하던 버릇대로 그곳을 훌쩍 떠나 다시 넓은 하늘 위를 배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의미를 통찰하는 자는 행운이 왔다고 해서 크게 좋아하지도 않고, 행운이 갔다고 해서 크게 낙담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헛된 욕심을 줄이고 스스로를 절제할 뿐이다. 그리하여 다만 몸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현자들의 삶의 방식이다.
그릇에 물을 채울 때 너무 가득 부으면 물이 넘쳐흐르게 된다. 그러니 욕심을 부리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멈추는 것이 좋다. 또 칼을 갈 때도 마찬가지다. 날이 이미 날카로운데도 욕심을 부려 그 끝을 더 날카롭게 벼리다가 어느 일정한 도를 넘어서면 도리어 칼날이 무디어진다. 노자는 지금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례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예사롭지 않은 인생의 교훈들을 들려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그릇에 물을 채울 때 너무 가득 붓지 말라는 교훈은 사람들에게 꽤 인기 있는 교훈이었던 것 같다. 이 교훈을 구체화한 물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옛날에 술꾼들이면 꼭 하나씩 소지하고 있었다는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이다. 말 그대로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하는 술잔이다. 일명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하는데,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특별 제작된 물건이다. 어느 한도까지 술이 차면 새어 나가도록 옆에 구멍이 나 있다고 한다.
여기서 노자가 ‘차 있는데도 더욱 채우려한다.’는 것은 비단 술잔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고, ‘날카로운 것을 더욱 날카롭게 벼리는 것’은 비단 칼날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노자를 심도 있게 읽어 온 독자라면 이미 감지했겠지만, 가득 찬다는 의미의 찰 ‘영(盈)’자와 예리하다는 의미의 ‘예(銳)’자는 이미 앞에서 한두 번 나왔던 글자로서, 노자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글자들이다.
우리는 항상 물질적으로는 가득 채우고(盈) 싶어 하고, 정신적으로는 예리해지고(銳) 싶어 하는데, 노자는 어찌된 영문인지 이것들을 싫어하며 반대한다. 노자는 참 이상한 사람이다. 도대체 이걸 싫어하면 세상을 무슨 재미로 살 것이며, 또 이 세상은 어떻게 굴러갈 것인가! 정말 좋은 것 중에 좋은 것이 ‘盈’자와 銳‘자인데, 이 양반은 왜 사사건건 우리가 좋아하는 것에 쌍지팡이를 짚고 나서는 걸까?
노자는 도가 지닌 덕 중의 하나를 설명하면서 ‘날카로움을 꺾고 얽힌 것을 푼다(挫其銳 解其紛).’고 하지 않았던가. 또 도라는 것은 텅 비어 무한히 큰 까닭에 ‘아무리 써도 다 차는 일이 없다.(用之不盈)’고 하지 않았던가. 노자에 의하면 도의 성질은 날카로운 것이나 가득찬 것과는 어딘가 반대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날카로운 것이나 가득 찬 것은 일단 어딘가 여유로움이 없고 각박해 보인다. 그것 앞에 서면 왠지 사람이 찔릴 것 같고, 편히 쉬지 못할 것 같다. 요컨대, 한 인간으로서 ‘여백의 미’가 없어 보인다. 이런 인물에게는 그가 아무리 똑똑하고 영특해도 사람이 모여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옆에는 남이 앉을만한 빈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p.130~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