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 동양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 4
노태준 옮김 / 홍신문화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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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사람의 생각은 반드시 이해(利害)를 함께한다. ()를 참작하는 데 직분을 펼 수 있고, ()를 참작하는 데 근심을 풀 수 있다.

智者之慮必雜於害. 雜於利而務可信也. 雜於害而患可解也.

 

<풀이>

진정 지모(智謀)가 있는 사람의 계획에는 자기에게 유리한 조건만 내세우지 않고 다소 불리한 줄 알면서도 일을 꾀하므로 비로소 일에 폭이 나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불리한 조건에만 직면하였다 하더라도 적당히 유리한 조건을 가미하면 뜻밖에 재난이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불리한 것도 처지 여하에 따라서는 유리해진다.

 

<예화>

월왕(越王) 구천(句踐. 재위 BC496BC465)과 함께 오나라를 멸망시킨, 범려(范蠡. BC517~?)는 만년을 도(: 제나라의 요지)에서 보냈다. 이름을 바꿔 주공(朱公)이라 하고 농업·목축으로 많은 재산을 모았다. ()에서 출생한 주공의 막내아들이 장년이 되었을 때. 차남이 사람을 죽이고 초()나라에서 잡혔다.

 

주공은 처음에는 막내아들을 보내어 둘째 아들을 구하려고 하였으나 장남이 막내를 보내는 것은 내가 불초한 탓이다.’ 하고 자살을 꾀하였으므로, 할 수 없이 장남을 보내기로 하였다. 주공은 황금 1000(: 1일은 24)과 한 통의 편지를 준비하고 친교가 있었던 초나라의 장생(莊生)에게 전하도록 명하고 말하기를, “장생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고, 너는 보고만 있거라.” 하며 다짐을 시켰다.

 

장남은 초나라에 도착하자 장생을 찾아 편지와 황금을 전부 내놓았다. 그러나 장남은 너무 초라한 집에 살고 있는 장생을 믿을 수가 없어서 따로 초나라 권력자를 찾아가 숨겨온 돈을 주었다. 장생은 청렴하기로 이름 있는 사람으로서 초나라 왕조차 그를 스승으로 존경하는 터였다. 장생은 주공의 편지를 보고 나서 왕을 찾아뵙고 말하였다.

 

모성(某星)이 모()에 드새고 있습니다. 이것은 불길한 징조입니다.”

초왕은 덕을 닦을 셈으로 대사면을 하려고 하였다. 앞서 장남에게서 황금을 받은 권력자가 이 사실을 알고 장남에게 알렸다. 대사면이 내리면 동생은 살게 될 것이므로 장남은 장생에게 준 1000금이 아까워서 다시 장생을 찾아갔다.

동생은 조정회의 결과 자연히 용서받게 되었습니다.”

장생은 장남의 이 말을 듣자 곧 돈을 돌려주고 다시 왕에게 아뢰었다.

길가는 사람들이 모두 대사면의 원인은 주공이 왕의 좌우에 뇌물을 보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에 주공의 차남은 사형당하고, 이튿날 대사면령이 선포되었다. 주공이 장남을 보낼 때 이미 그렇게 될 줄을 알고 있었다.

 

장남은 나의 젊은 시절을 알고 있으므로 재물을 버리는 것을 중대하게 생각하고 있다. 막내는 태어나면서부터 내가 부유한 것을 보고 있었으므로 재물을 버리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막내를 초나라로 보내려고 한 것은 그가 서슴지 않고 재물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장남에게는 그렇게 할 재주가 없다. 그래서 그만 차남을 죽이고 말았구나.“ p.209~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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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씨춘추 - 제자백가의 위대한 종합 글항아리 동양고전 시리즈 5
여불위 지음, 김근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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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묵자, 영월(甯越) 등은 모두 벼슬이 없는 평민 출신의 선비들이었는데, 천하의 일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고는 어떠한 것도 선대 임금들의 방도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고 여기게 되었으므로 밤낮으로 이를 배웠다. 배움에 이로움이 있으면 어떠한 것도 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배움에 이롭지 않으면 어떠한 것도 하려 하지 않았다.

 

무릇 듣기로는 공자와 묵자는 낮에는 배워야 할 일들을 읽고 외웠으며, 밤에는 꿈속에서 문왕과 주공 단을 직접 만나서 그들에게 물었다고 한다. 마음 씀이 이와 같이 치밀하고 깊었으니 어떤 일이더라도 통달하지 않았겠으며, 무엇을 하더라도 이루지 않았겠는가?

 

그러므로 치밀하고 투철하게 익히면 귀신이 장차 일러준다.” 라고 말하는 것인데, 귀신이 일러주는 것이 아니라 치밀하고 투철하게 익힌 것이다. 이제 여기에 보검과 훌륭한 말()이 있으면, 이들을 갖고 놀아도 싫증나지 않고 두고두고 보아도 지겹지 않다. 그러나 보배로운 품행과 훌륭한 도리를 한번 해보고 다시는 더 하지 않으면서도 몸이 편안해지고 이름이 드러나기를 바라는 것은 역시 어렵지 않겠는가?

 

영월(甯越)은 중모(中牟) 출신의 시골 사람이었는데, 밭 갈고 농사짓는 일이 하도 괴로워서 그의 벗에게 일러 말하기를 어떻게 하면 이 괴로움을 면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더니, 그 벗이 어떠한 것도 배움보다 나은 것은 없다. 삼십 년을 배우면 가히 통달할 수 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영월이 말하기를 내 한번 십오 년만 해 보겠네. 남들이 쉬고자 할 때 나는 감히 쉬지 않을 것이고, 남들이 눕고자 할 때 나는 감히 눕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고는 십오 년을 배우더니 주() 위공(威公)이 그를 스승으로 삼았다.

 

화살이 빠르기는 하지만 불과 2리를 못 가서 멈추고, 걸음은 느리기는 하지만 삼천리를 가도 멈추지 않는다. 이제 영월의 재능에 오래도록 배우기를 멈추지 않았으니, 그가 제후의 스승이 되는 것이 어찌 마땅하지 않겠는가?

 

양유기(養由基)와 윤유(尹儒)는 모두 문채 나는 기예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초나라의 궁정 안에 일찍이 신기한 흰 원숭이가 나타난 적이 있었는데, 초나라에서 활을 좀 쏜다는 자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이를 능히 맞출 수 있는 자가 없었으므로 초나라 임금은 양유기를 불러 이를 쏘게 했다. 그러자 양유기가 활을 높이 들고 화살을 쥐고 갔는데, 화살을 쏘기 전에 정확한 조준으로 원숭이를 꼼짝 못하게 잡아놓더니, 화살을 쏘자 원숭이가 화살에 맞아서 떨어졌다. 그러므로 양유기는 먼저 첫 살로 기선을 잡고 나서 명중시키는 기예를 가진 사람이었다.

 

윤유는 삼 년간이나 수레 몰이를 배웠지만 이에 관하여 터득하지 못하자 이 때문에 몹시 마음 아파하던 중, 밤에 꿈속에서 자기 스승에게서 수레를 날듯이 모는 기예인 추가(秋駕) 몰이를 배우게 되었다. 다음 날 스승을 뵈러 갔더니 스승이 물끄러미 바라다보고는 그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수레 모는 기술을 아까워해서가 아니라 자네가 아직 따라올 수 없지나 않을까 걱정되었던 것뿐일세. 오늘은 자네에게 추가 몰이를 가르쳐 주겠네.”라고 했다.

 

그러자 윤유가 돌아서서 몇 걸음 물러나더니, 북쪽을 향하여 두 번 절하고 말하기를

어젯밤에 저는 꿈속에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먼저 스승에게 꿈꾼 일을 말씀드렸더니 그 내용이 다름 아닌 추가 몰이였다. 위의 두 선비는 배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고 가히 말할 수 있고, 또한 그들의 학업에, 해로움을 끼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할 수 있겠으니, 이것이 바로 그들이 후세 사람들에게 귀감을 보여준 방도였다.

p.732~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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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莊子) - 그림으로 쉽게 풀어쓴 지혜의 샘
장자 지음, 완샤 풀어쓴이, 심규호 옮김 / 일빛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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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자(본명 혜시. 장자의 친구)가 양나라의 혜왕의 재상으로 있을 때, 장자가 그를 만나려고 하였다. 그러자 어떤 이가 혜자에게 말했다. “장자가 당신 대신 재상이 되려고 한답니다.” 이에 혜자는 놀라 나라 안을 수소문하여 사흘 밤낮에 걸쳐 장자를 찾았다. 장자가 이 말을 듣고 그를 직접 찾아가 말했다. “남방에 원추(鵷鶵)라고 부르는 새가 있는데, 혹시 그 새를 아시오? 원추는 남해에서 출발하여 북해로 날아가는데, 오동나무가 아니면 머물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으며, 감로천(甘露泉)의 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소. 그런데 썩은 쥐를 잡은 올빼미 한 마리가 때마침 날아가는 원추를 보고는, 고개를 들어 헉하고 소리를 질렀다고 하오. 지금 당신도 양나라 벼슬자리 때문에 나를 보고 놀라는 것이오? <추수(秋水)>

 

사람들은 권력이야 말로 천하에서 가장 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자는 그것을 썩은 쥐와 같다고 여긴다. 죽은 쥐를 보면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 누가 죽은 쥐를 애써 찾아 헤매겠는가? 장자가 자기 자리를 빼앗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한 혜자는 결국 군자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소인배의 심리를 가졌을 따름이다. 모두들 권력을 숭배하는 이유는 권력이 가져다주는 부귀와 공명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권력이 얼마나 큰 피해를 가져다주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권력의 폐해 가운데 가장 극심한 것은 인성의 변화다. 일단 권력의 체계 안에 들어가면, 본성에 따라 생활하기보다는 권력이 요구하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권력의 기호로 존재할 뿐이다. 이로 인해 사람은 권력의 도구가 되고 권력을 위해 봉사하는 하수인이 되고 만다. 결국 내재적 본성도 질곡상태에 놓여 생기를 잃는다. 마치 하나의 기계처럼 되어 버리는 것이다.

 

권력은 모든 것을 잊게 한다. 끊임없이 자아를 확대하고 욕망을 부풀린다. 일단 권력의 길로 접어들면, 어쩔 수 없이 그 길만을 따라 끝없이 달려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만인지상 일인지하’ 라는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할지라도,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은 자리를 넘보는 것이다.

 

권력으로 사람은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다. 권력투쟁에는 단 두 가지 선택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죽느냐, 아니면 사느냐! 권력은 부모 자식이나 형제의 감정조차 잊게 한다. 그래서 전혀 주저하지 않고 가족을 향해 권력의 칼날을 휘두른다. 권력은 생사와 관련이 있다. 권력을 쥔 자는 타인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지만, 권력이 없는 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장자는 권력이 지닌 이런 성질을 간파했다. 그래서 차라리 빈한한 삶을 살망정, 고관이 되어 권력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남들이 보배처럼 여기는 권력을 썩은 쥐처럼 여겼다. 그의 말대로 만약 생명이 없다면, 제아무리 재물과 명예가 대단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진나라 말기 진승(陳勝. ?~BC208)은 폭정에 반기를 들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당시 고락을 같이하던, 봉기를 일으키기 전에는 평범한 농민이었던 동료들과 “아무리 부귀해져도 서로를 잊지 말자”고 다짐하곤 했다. 그러나 봉기에 성공하여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오르고 나서, 예전에 했던 맹세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때마침 가난한 시절의 형제들이 그가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초라한 옷차림에 촌티가 물씬 풍기는 그들은 왕실의 법도가 무엇인지 알 턱이 없었다. 예전처럼 진승의 이름을 부르며, 신하들 앞에서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 일로 체면이 깎인 진승은 격노하여 그들을 참형에 처하고 말았다. 이렇듯 권력은 인성을 바꾸어 버린다. 고귀한 지위에 오르면, 지난 날 평범했던 신분조차 인정할 수 없게 된다.

 

역사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이런 예를 흔히 볼 수 있다. 심각한 정도는 다르겠지만, 그 본질은 같다. 성격이 유순하고 단정한 친구나 동료도 일단 지위가 올라가면 언행이 변하여 관계가 불편해진다. 괜히 고관의 티를 내거나 거들먹거리기도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에게 가면을 씌우고, 인성까지 그 가면으로 덮어버리는 것이다. p.218~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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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 서거정 시선 한국의 한시 21
허경진 / 평민사 / 199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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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秋日(가을날)

                               서거정(徐居正. 1420~1488)

 

茅齋連竹逕 (모재연죽경)   띳집은 대숲 길로 이어지고

 

秋日艶晴暉 (추일염청휘)  가을의 맑은 햇살은 곱기도 하다.

 

果熟擎枝重 (과숙경지중)  열매가 익어서 축 늘어진 가지

 

果寒着蔓稀 (과한착만희)  참외도 열리지 않는 끝물의 덩굴

 

遊蜂飛不定 (유봉비부정)  벌들은 어지럽게 날아다니고

 

閒鴨睡相依 (한압수상의)  한가로운 오리들은 서로 기대어 조네.

 

頗識身心靜 (파식신심정)  몸과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을 이제야 알겠으니

 

棲遲願不違 (서지원불위)  유유자적하며 살자던 소원 어긋나지 않았네.

 

 

나이 든 사람들은 이런 시가 편안하게 느껴지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인생의 가을에 접어든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게 된다. 작열하는 태양과도 같이 사방으로 젊음을 발산하던 계절을 거쳐 가을의 문턱이거나, 늦가을의 길목에서 겨울을 맞는 황혼에 접어든 사람들은 여생이 이 시처럼 편안하기를 바랄 것이다. 적어도 이 시에서 느껴지는 여유와 삶의 관조를 우리네 남은 인생에서 찾을 수만 있다면 그 동안 살아온 날들이 그리 헛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명의 이기(利器)에 휩싸여 살면서 그래도 예전이 부러울 때가 많다. 10년 전, 20년 전, 40년 전이 그립기도 하고, 우리가 살지 않았던 때이기는 하지만 조선조가 그립기도 하다. 특히나 이런 시를 읽고 나면 더욱 그러하다. 어지럽고, 분주하고, 소란스러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이 시에 나오는 그런 곳에서 일주일만이라도 지내다 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기껏해야 3~4일, 많아야 일주일이 주어지는 우리네 휴가에서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마저도 인파에 휩쓸리는 해안이나 산자락에서 고생 고생하다가 돌아오는 것이 휴가 아닌 휴가 아닌가. 일주일만이라도 사람의 그림자, TV와 라디오, 스마트폰, 신문, 뉴스, 자동차가 없는 곳에서 뒹굴뒹굴하다 오면 얼마나 좋을까. 좁은 땅덩어리에 태어난 것이 못내 아쉽고 섭섭할 때가 바로 이런 때가 아닌가 싶다. 멀리 가고 싶은데 갈 수 없고, 멀리 왔다 싶은데 주위를 둘러보면 그 얼굴이 그 얼굴일 때, 떠나온 곳이 내가 살던 곳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느낄 때, 삼천리금수강산이 얼마나 허망한 말인지 알게 된다.

 

이와 분위기가 비슷한 시로,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의 ‘가을날’이 아닐까 싶다. 그 시는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하였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에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로 시작된다. ‘가을날’은 작은 행복, 소박한 기쁨, 삶의 여유, 푸근함이 절로 느껴지는 소품이다. 크고, 대단한 것만 찾고 추구하는 세상에서 이렇듯 작고 소박한 여유를 지니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식구들이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된장찌개와 보리밥과 반찬 몇 가지가 차려진 식탁을 앞에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의 풍경, 이것이야말로 작은 행복이 묻어나는 소중한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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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2 : 문 밖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 노자, 도덕경 시리즈 2
차경남 지음 / 글라이더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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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과 몸, 어느 것이 더 귀한가

몸과 재물, 어느 것이 더 중한가

득과 실, 어느 것이 더 근심스러운가.

 

고로, 심히 애착하면 반드시 큰 손실이 따르고

지나치게 쌓아두면 반드시 크게 잃는다.

족함을 알면 욕됨이 없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나니,

그래야 오래 갈 수 있다.

 

名與身孰親, 身與貨孰多, 得與亡孰病.

是故甚愛必大費, 多藏必厚亡.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부·명예·생명

 

인생을 살면서 부와 명예가 좀 따라주면 좋겠지만, 그것이 없다고 해서 너무 서운해 할 것은 없다. 그런 것에 과도하게 집착을 보이다가는 오히려 인생이 망가진다. 아무 탈 없이 잘살다가 갑자기 인생이 망가진 사람들을 보면 그 배후에는 반드시 과욕(過慾)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과욕이 어떤 사람에게는 ‘재물’의 추구로 나타나고 어떤 사람에게는 ‘명예’의 추구로 나타난다. 남자 나이 40이 넘어 누군가 갑자기 쿵 소리를 내고 무너졌다면, 그 사람은 필시 일확천금을 꿈꾸다가 그리 되었거나 아니면 허황된 명성을 좇다가 그리 되었거나 둘 중의 하나다.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화려하고 번쩍이는 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 욕구를 충족시켜 줄 무엇이 반드시 필요한 법인데, 그 무엇의 이름이 바로 부와 명예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그 재물이 막대하면 막대할수록, 그 명예가 크면 클수록 우리의 판단력은 마비가 되고 우리는 남들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고 환하게 타오르는 불빛을 향해 불나비처럼 맹렬히 돌진한다. 그리고 그 불속에서 온몸을 태우고 추락한다. 이 상황에서 노자는 지금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명성과 몸, 어느 것이 더 귀한가

몸과 재물, 어느 것이 더 중한가

득과 실, 어느 것이 더 근심스러운가.

 

명성과 재물과 내 몸 중에 당연히 내 몸이 더 중하지 않겠는가. 억만금을 얻고도 내 목숨을 잃으면 무엇에 쓰겠는가. 재물과 명예에 눈이 어두워 제 몸을 망치는 인사들은 동서고금에 다 있었던 모양이다. 예수도 이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 하리오.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마태복음 16:26>

 

장자(莊子)는 이것을 좀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한다.

소인은 이익을 위해 제 몸을 바치고

선비는 명예를 위해 제 몸을 바치고

대부는 가문을 위해 제 몸을 바치고

성인은 천하를 위해 제 몸을 바친다.

이 여러 사람들은 하는 일도 다르고 명칭도 다르지만, 그 본성을 해치고 자기 몸을 희생시킨다는

점에서는 똑같은 것이다.

 

멈출 줄 아는 공부, 내려놓을 줄 아는 공부, 이것이 노자가 가르치는 공부다.

 

"고로, 심히 애착하면 반드시 큰 손실이 따르고,

지나치게 쌓아두면 반드시 크게 잃는다."

 

족함을 알면 욕됨이 없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나니 

그래야 오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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