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 서거정 시선 한국의 한시 21
허경진 / 평민사 / 199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秋日(가을날)

                               서거정(徐居正. 1420~1488)

 

茅齋連竹逕 (모재연죽경)   띳집은 대숲 길로 이어지고

 

秋日艶晴暉 (추일염청휘)  가을의 맑은 햇살은 곱기도 하다.

 

果熟擎枝重 (과숙경지중)  열매가 익어서 축 늘어진 가지

 

果寒着蔓稀 (과한착만희)  참외도 열리지 않는 끝물의 덩굴

 

遊蜂飛不定 (유봉비부정)  벌들은 어지럽게 날아다니고

 

閒鴨睡相依 (한압수상의)  한가로운 오리들은 서로 기대어 조네.

 

頗識身心靜 (파식신심정)  몸과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을 이제야 알겠으니

 

棲遲願不違 (서지원불위)  유유자적하며 살자던 소원 어긋나지 않았네.

 

 

나이 든 사람들은 이런 시가 편안하게 느껴지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인생의 가을에 접어든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게 된다. 작열하는 태양과도 같이 사방으로 젊음을 발산하던 계절을 거쳐 가을의 문턱이거나, 늦가을의 길목에서 겨울을 맞는 황혼에 접어든 사람들은 여생이 이 시처럼 편안하기를 바랄 것이다. 적어도 이 시에서 느껴지는 여유와 삶의 관조를 우리네 남은 인생에서 찾을 수만 있다면 그 동안 살아온 날들이 그리 헛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명의 이기(利器)에 휩싸여 살면서 그래도 예전이 부러울 때가 많다. 10년 전, 20년 전, 40년 전이 그립기도 하고, 우리가 살지 않았던 때이기는 하지만 조선조가 그립기도 하다. 특히나 이런 시를 읽고 나면 더욱 그러하다. 어지럽고, 분주하고, 소란스러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이 시에 나오는 그런 곳에서 일주일만이라도 지내다 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기껏해야 3~4일, 많아야 일주일이 주어지는 우리네 휴가에서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마저도 인파에 휩쓸리는 해안이나 산자락에서 고생 고생하다가 돌아오는 것이 휴가 아닌 휴가 아닌가. 일주일만이라도 사람의 그림자, TV와 라디오, 스마트폰, 신문, 뉴스, 자동차가 없는 곳에서 뒹굴뒹굴하다 오면 얼마나 좋을까. 좁은 땅덩어리에 태어난 것이 못내 아쉽고 섭섭할 때가 바로 이런 때가 아닌가 싶다. 멀리 가고 싶은데 갈 수 없고, 멀리 왔다 싶은데 주위를 둘러보면 그 얼굴이 그 얼굴일 때, 떠나온 곳이 내가 살던 곳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느낄 때, 삼천리금수강산이 얼마나 허망한 말인지 알게 된다.

 

이와 분위기가 비슷한 시로,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의 ‘가을날’이 아닐까 싶다. 그 시는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하였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에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로 시작된다. ‘가을날’은 작은 행복, 소박한 기쁨, 삶의 여유, 푸근함이 절로 느껴지는 소품이다. 크고, 대단한 것만 찾고 추구하는 세상에서 이렇듯 작고 소박한 여유를 지니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식구들이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된장찌개와 보리밥과 반찬 몇 가지가 차려진 식탁을 앞에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의 풍경, 이것이야말로 작은 행복이 묻어나는 소중한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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