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깨어있기
법륜 지음 / 정토출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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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생각이나 의견, 의지는 각자의 경험과 자란 환경 등에 의해 형성됩니다. 어떤 환경에서 보고 듣고 자랐느냐에 따라서 일본말도 하고 한국말도 하고 중국말도 하고 몽골말도 하듯이, 어떻게 글자를 익혔느냐에 따라서 한글도 쓰고 영어도 쓰고 일본어도 쓰지요. 어떤 음식을 먹고 자랐느냐에 따라서 마늘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단무지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것은 흰 종이에 어떤 물감을 들이느냐와 같은 문제입니다. 어떤 색깔이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자연에는 한 가지 종류, 한 가지 빛깔, 한 가지 모양의 꽃만 있는 게 아닙니다. 수만 가지 종류, 수만 가지 색깔, 수만 가지 모양의 꽃이 있듯이 인류는 이렇게 이 세상에 각양각색의 풍성한 문화를 만들어왔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자연의 원리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삶의 모습을 보면 몇 가지 종만 지구상에 남기고 나머지 종은 다 없애려는 것 같습니다. 특정한 종류의 색깔과 모양을 가진 꽃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없애려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는 한 가지 문화, 한 가지 종교, 한 가지 언어 등 한 가지를 중심에 놓고 나머지는 다 열등하고 나쁜 것처럼 생각합니다.

  

인류가 수십만 년에 걸쳐 축적해온 수만 가지 문화와 언어와 종교와 민족이, 마치 자연계에서 생물종이 사라지듯, 지금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생물종을 보호하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이런 갖가지 소수민족, 소수종교, 소수문화들을 보호하는 것은 우리 인류에게 아주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런데 자연에 대한 보호, 생물종에 대한 보호에는 눈을 뜨면서 인류의 다양한 문화를 보호하는 데는 아직 눈 뜨지 못한 걸 보면 우리는 아직도 정신문화 수준이 낮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는 개개인 저마다의 생각과 습관, 느낌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지요. 남은커녕 자신의 아내나 남편처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취향조차 존중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의 생각, 자기의 습관, 자기의 이념, 이것을 중심으로 놓고 다른 것을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에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상대가 미워지고 원망이 듭니다. 우리가 괴롭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자기만이 옳다는 뜻입니다. 자기 것만 고집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그것만 내려놓으면 화날 일도 없고 짜증날 일도 없고 미워할 사람도 없습니다.

  

다 자기 취향이고 생긴대로 사는 것이니 무조건 그냥 놓아두고 살자는 말이 아닙니다. 자연에 수만 가지 꽃이 있고 수만 가지 식물이 있지만 내가 사는 내 뜰에는 내가 좋아하는 꽃을 심을 수 있는 자유 또한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내 삶에 있어서는 내 생각을 중심으로 해 놓고 살 수가 있습니다. 자기 생각과 맞는 사람하고 살 수도 있고 뜻이 맞는 사람끼리 살 수도 있어요. 다만 자기의 뜻과 맞지 않는다고 남을 미워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말입니다. 저 사람의 얼굴이 내 뜻에 맞지만 생각은 내 뜻에 안 맞는다고 하면 꽃 색깔은 마음에 드는데 모양은 마음에 안든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꽃은 그 종에 그 모양에 그 색깔인 존재입니다. 그걸 받아들이면 통째로 받아들이고, 싫으면 통째로 심지 않으면 되는데 개중 빛깔만 가져오려 들거나 모양만 가져오려 들면 괴로움이 생깁니다.

  

그러니 우리가 사람을 만나 함께할 때는 우선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어떤 꽃을 선택할 것인지는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꽃의 모양과 빛깔 중에 어느 하나만 좋고 어느 하나는 싫다 하면 그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에요. 그러니 한두 가지가 좋아서 받아들였다면 그 나머지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결혼할 때도 그런 몇 가지 선택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으면 혼자 사는 게 낫습니다. 마음대로 하고 싶으면서 같이 살고 싶다면 갈등이 생겨요. 가고 싶으면 가고, 오고 싶으면 오고, 저처럼 어떤 목표를 두고 함께하는 일 외의 개인적인 문제에서는 별로 구애를 받고 싶지 않다면 혼자 살아야 해요. 그런데 결혼을 하려면 자기 지향에만 딱 맞게 사는 게 아니라 상대의 요구에도 맞춰줘야 합니다. 휴일에 남편과 카페에서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꿈이라는 여자와 결혼했다면, 남편은 무슨 일을 하러 다니든 일주일에 한 번쯤은 아내의 요구를 들어줘야 해요. 그걸 해 주지 않으면 불평이 생깁니다. 그런 소망을 가진 사람이 잘못인 건 아닙니다. 그런 소망을 가진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할 때는 자기의 삶 속에서 그걸 들어줄 시간을 내야 하지요. 그런데 그런 것을 들어줄 시간을 내고 싶지 않다면 그런 사람과 결혼하지 말았어야지요. “당신은 일이 중요해, 내가 중요해?” 결혼하면 남편들은 부인에게 이런 소리를 많이 듣게 됩니다. 그러니 선택을 해야 됩니다. 사랑이 중요한 지 종교가 중요한 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게 어찌보면 우스운 것 같지만 그게 인간 심리입니다. 인간은 다 자기가 귀하게 여기는 상대가 자기 역시도 귀하게 여겨 주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커피를 마실 때는 커피가 중요하지 누구와 마시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커피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마시느냐가 중요한 사람들도 있어요. 그럴 때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들은 그렇게 조건을 내거는 사람을 한심하게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건 우리 생각일 뿐입니다. 그냥 그 사람은 그런 특징을 갖고 있는 거예요. p.24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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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서재 - 그리고 그들은 누군가의 책이 되었다
한정원 지음, 전영건 사진 / 행성B(행성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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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는 바깥세상하고 상관이 없어. 서재가 그냥 마을이고 숲 속이고 자연이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지. 여기는 깊은 숲 속이고 놀이터야. 편안한 곳이지.”

 

나무가 울창한 숲에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면 나무는 태양을 받아 녹색 빛을 뿜어낸다. 나뭇잎에 반사된 빛은 숲을 더욱 환하게 만들고 새들의 이정표가 되어준다. 김용택 시인의 서재는 그런 녹색 빛으로 가득하다.

 

이곳 전주집 서재에 있는 책들은 1990년 이후의 책이 대부분이다. 그 이전의 책들은 모두 섬진강 시골집에 보관되어 있다. 양쪽 집으로 나누었는데도 그의 책들은 방 세 곳에 빽빽하게 들어찼다. 하지만 분류가 되어 있지는 않다. 딱히 책을 분류할 이유가 없다. 다시 보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여러 번 봤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그가 특별히 아끼는 책들은 서재 책상 위에서 그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시인과 함께 오랜 세월을 견뎌왔기에 그 깊이가 더 느껴지는 책들이다. 김수영 작가의 <퓨리턴의 초상>부터 21인 신작 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 17인 신작 시집 등 창비 시선에서 나온 여러 시집들이다. 그가 눈앞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또 손이 갈 때마다 꺼내 읽는 그의 보물들이다.

 

“책을 읽으면 정신이 부자가 되어서 세상을 마음대로 살 수 있어. 정신이 가난한 건 정말 불쌍한 거야. 아무리 좋은 차를 타고 돈이 많이 벌어도 정신이 풍요롭지 못하면 초라해 보이고 허약한 삶을 살게 되는 거지. 책을 읽어야 영혼이 풍족해 질 수 있어. 차근차근 조금씩 넓고 깊은 정신의 세계와 땅을 갖게 되는 거야. 그래서 난 또 부자야.”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카르트는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과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물질적인 충족에서 오는 만족은 일시적이지만 훌륭한 사람들과의 대화는 평생토록 마음을 부자로 만들어준다.

 

“책을 읽어야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게 되는 거야. 인류와 사회가 어디로 가는지 알려면 책을 봐야 해. 문학적 감성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세계를 제대로 보게 해 주는 힘이 되는 거야. 책을 안 읽는다는 건 우리가 사는 세계를 모른다는 거지. 그래서 책을 안 읽는 사람과 만나보면 지루하고 고루하고 답답하고 형식적이고 삶의 맛을 느끼지 못해. 캄캄해. 그냥.”

 

독서는 그의 일상이다. 책은 그 삶이 되었고, 그렇게 살다 보니 삶이 책이 되었다. 그는 삶을 공부라 했다. 그는 그렇게 책 속에서 삶의 진리를 발견하고 삶의 여러 모습을 글로 담아냈다.

 

그가 책장에서 항 뭉치의 습작노트를 꺼내 보여준다. 종이는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머금어 누런 황금빛이다. 그의 감성을 쏟아낸 시와 일기, 장르를 초월한 글들이 깨알같이 박혀 있다. 나는 거기에서 청춘 시절의 김용택을 만났다.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글들을, 시들을 주체할 길이 없어 종이 위에 쏟아낸 그 절실함의 흔적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웠다.

 

그는 그렇게 폭포처럼 글을 쓰고 또 책을 읽었다. 특히 시는 한 글자 한 글자 빼놓지 않고 꼼꼼하게 읽는다. 그는 글을 읽으며 눈에 새기고 가슴에 새긴다.

“책을 읽는다는 건 밥을 먹는 것과 같고 숨 쉬는 것과 같고 바람 같고 햇살 같은 거야. 시골집 책하고 여기 전주집 책하고 모아서 큰방에 정리하고 싶어. 나는 서재에 있으면 전 세계를, 우주를 다 돌아다니는 거야. 시인은 행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거든. 욕망이 큰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를 못해. 그런 사람들은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서재를 창조하지 못하거든.” 그에게 서재는 세상을 담은 그릇이며 자연이다. 그는 자연의 숲에서 책을 통해 세상을 본다.

 

“자연은 늘 완성되어 있어. 꽃이 피든 낙엽이 지든 열매를 맺든 매 순간이 완성된 상태인 거야. 그걸 볼 줄 알아야 해. 그래야 삶이 행복해. 자기가 하는 일만 알면 좁아져. 책을 봐야 무궁무진한 세상을 볼 수 있는 거야.” 그는 숲 속에 사는 행복한 시인이다. p.9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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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 - 이덕무 선집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9
이덕무 지음, 강국주 편역 / 돌베개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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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밖에 모르는 바보

 

남산 아래 어리석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말도 느릿느릿 어눌하게 하고, 천성이 게으르며 성격마저 고루하니 꽉 막혔을 뿐만 아니라, 바둑이나 장기는 말할 것도 없고 생계(生計)에 대한 일이라면 도통 알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남들이 욕을 해도 변명하지 않았고, 칭찬을 해도 기뻐하거나 즐거워하지 않았다. 오직 책 읽는 일만 즐겨, 책을 읽기만 하면 추위나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배가 고픈지도 모른 채 책만 읽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스물한 살이 된 지금까지 하루도 옛 책을 놓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기거하는 방도 무척 작았다. 하지만 동쪽과 서쪽과 남쪽에 각각 창(窓)이 있어 해가 드는 방향에 따라 자리를 옮겨 가며 책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자기가 아직 보지 못했던 책을 구해 읽게 되면, 그 즉시 만면에 웃음을 띠곤 했다. 집 사람들은 그가 만면에 웃음을 띠며 기뻐하면 필시 기이한 책을 구한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는 특히 두보(杜甫)의 오언 율시(五言律詩)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 시를 읊느라 앓는 사람처럼 웅얼거리기를 예사로 하였고, 시구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 심오한 뜻을 깨치게 되면 그만 기뻐서 벌떡 일어나 방 안팎을 서성이기도 했는데, 그럴 땐 마치 까마귀가 우짖는 소리를 내곤 했다. 어떨 땐 조용히 아무 소리도 없이 눈을 크게 뜨고 멀거니 보기도 하고, 혹은 꿈꾸는 사람처럼 혼자서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책밖에 모르는 바보’라 해도 그냥 씩 웃고는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아무도 그의 전기(傳記)를 써 주는 사람이 없기에 내 붓을 들어 그의 일을 써서 ‘책밖에 모르는 바보 이야기’를 짓는다. 그의 이름은 기록하지 않는다.

 

‘책밖에 모르는 바보’라는 말이 꼭 맞는, 이십대 젊은 시절 이덕무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간결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주는 문예 산문으로, 일종의 자화상인 셈이다. 이처럼 스스로에 대해 전기 형태로 기록한 글을 ‘자전(自傳)’이라 하는데, 이 글은 조선후기 자전을 대표하는 글로 종종 언급된다. P.11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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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게 없어서 책을 팔았구려

 

내 집에 있는 좋은 물건이라고 해 봐야 <맹자(孟子)>라는 책 하나가 고작인데, 오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돈 2백 푼에 팔고 말았소이다.

 

그 돈으로 배부르게 밥을 지어 먹고는 희희낙락하며 영재(泠齋 : 유득공의 호)에게 달려가 내 처신이 어떠냐고 한바탕 자랑했더랬지요. 영재 역시 오래토록 굶주림에 시달린 터라, 내 말을 듣고는 그 즉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팔아 버리고선 그 남은 돈으로 술을 사와 내게 대접하더이다. 그러니 맹자(孟子)가 친히 밥을 지어 내게 먹이고 좌구명(左丘明 : 춘추좌씨전의 저자)이 손수 술을 따라 내게 권한 것과 다를 게 무어 있겠습니까?

 

그날 영재와 나는 “우리가 이 책들을 팔지 않고 읽기만 했더라면 어찌 조금이나마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겠나?”라고 하면서, 맹씨(孟氏)와 좌씨(左氏)를 칭송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때 문득, 진실로 글을 읽어 부귀를 구하는 것이 요행을 바라는 얄팍한 술책일 뿐이요, 책을 팔아 잠시나마 배부르게 먹고 술이라도 사 마시는 게 도리어 솔직하고 가식 없는 행동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 참으로 서글픈 일이외다. 족하(足下 : 상대를 높여 부르는 말인데 ‘이서구’를 가리킴)는 어떻게 생각하실는지요?

 

가난한 선비의 삶이 짧은 편지 속에 가식 없이 드러나 있다. 시종 유머러스하게 써 내려갔지만, ‘부귀를 얻기 위해 글을 읽기보다는 차라리 책을 팔아 끼니라도 잇는 게 낫다.’라는 마지막 대목이 이르면, 단순히 해학적인 글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그 속에 서글프면서도 불우한 심정이 짙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P.156~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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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의 탄생 - 명언으로 읽는 100명의 인생철학
김옥림 지음 / 팬덤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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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대감으로 널리 알려진 백사 이항복은 어린 시절부터 영민했을 뿐만 아니라 장난기가 넘쳤는데 그의 장난에는 해학이 넘쳤고, 지혜가 번뜩였다. 그는 임진왜란 때 도승지로서 선조를 의주까지 호위했으며, 전란 중에 병조판서가 되었다. 이후 이조판서에 올랐다가 정유재란이 일어나 병조판서를 맡았고 공을 인정받아 우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으며 오성군에 봉해졌다.

 

“스승의 말은 곧 스승이다. 반드시 스승의 말은 따라야 한다.”

이항복의 스승이 남긴 말인데, 이항복은 이 말을 항상 가슴에 새겨 두고 떠올렸다. 이 말에 얽힌 일화이다. 어느 날 이항복이 집에서 쉬고 있는데 하인이 소리치며 말했다.

“대감마님, 스승님께서 오셨습니다!”

“뭐라, 스승님께서 오셨다고?”

이항복은 자리에서 일어나 버선발로 뛰어나가 스승을 맞았다.

“스승님, 어서 오십시오.”

그의 스승은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항복은 허리를 굽히며 정중하게 스승을 방으로 모셨다.

 

“스승님, 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나는 잘 지내고 있소.”

“스승님, 말씀을 놓으십시오.”

이항복은 존대하는 스승 앞에서 몸 둘 바를 몰랐다.

“영의정인 정승에게 내 어찌 말을 놓겠소.”

그의 스승은 이렇게 말하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아니옵니다. 스승님. 스승님께서는 어린 시절 저의 무지를 깨우쳐 주신 분이 아니십니까. 그런데 어찌 제게 존대를 하시는지요?” 이항복은 이렇게 말하며 더욱 자세를 낮추었다.

“그때는 어린 개구쟁이였고, 지금은 정승이 아니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스승님의 제자일 뿐입니다.”

이항복은 이렇게 말하며 스승을 극진히 모셨다.

 

다음날 스승이 갈 차비를 하자 그는 면포 십여 단과 쌀 두 섬을 노자로 드렸다.

스승은 너무 많다며 받기를 주저하였다.

“스승님, 그냥 받아 주십시오.”

“아닐세. 이것은 내가 받기에 너무 많네. 이것도 다 나라의 재산이 아닌가.”

“아닙니다. 이것은 나라의 재산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그러신가? 그래도 나는 쌀만 가지고 가겠네.”

“스승님. 그냥 받아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제가 부끄럽습니다.”

“말로는 스승이라고 하면서 어찌 나의 뜻을 거역하려고 하시는가. 제자라면 내 말대로 하시게.”

이항복은 스승의 말에 더 이상 권할 수가 없었다.

청렴한 스승을 두었기에 이항복 또한 검소하게 생활하여 청백리로 존경을 받았다. 스승의 위엄이 땅에 떨어진 지금, 우리는 이항복을 통해 스승을 향한 공경의 태도를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p.270~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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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 - 중국 고전 시와 사의 아름다움과 애수
안이루 지음, 심규호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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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가행(怨歌行)

반첩여(班婕妤:첩여는 비빈의 품계칭호)를 이야기할라치면 <원가행(怨歌行)>부터 시작하고, 양귀비(楊貴妃)를 언급할라치면 <장한가(長恨歌)>를 꺼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겠지요. 청나라 초기 사(詞)로 이름을 날린 납란성덕(納蘭性德 : 1655~1685)의 시 한 구절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이 있고부터 모든 것에는 존재의 이유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깊은 밤 잠 못 이루며 <음수사(飮水詞)> 전편을 읽고 난 후 역시 이 구절만큼 빼어난 시구는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기실 이 시집은 평범하고 담담하지만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 이 한마디는 사람을 절로 아연케 만듭니다. 이는 마치 장승요가 용을 그릴 때의 ‘화룡점정’ 같은 점이고, 고룡의 <육소봉전기(陸小鳳傳記)>에 나오는 서문취설(西門吹雪)의 검이 정확하고 우아하게 소리 없이 당신의 목을 겨누는 것에 견줄만 합니다. 그 섬뜩한 검기를 느꼈을 즈음 이미 당신은 저 세상 사람이 되었겠지만 말입니다.

 

“어찌 가을바람은 화선을 슬프게 하는가(何事西風悲畵扇)?” 이는 한나라 성제(成帝.BC 52~BC 7) 의 비인 반첩여(BC 48~BC 2) 를 두고 이른 시구입니다. 역사서에 전하는 그 명문가 출신의 고결하고도 현덕한 여인 말입니다. 그녀는 성제 초년에 입궁하여 뛰어난 미모와 현명함으로 남다른 총애를 받았다고 합니다. 한번은 성제가 그녀를 불러 함께 수레에 올라 바깥나들이를 가자 했다지요. 이에 그녀는 “예부터 모든 성군은 훌륭한 신하를 곁에 두었으나, 하․상․주 삼대의 마지막 군주만이 폐녀(총애하는 여자)를 곁에 두었답니다.” 하고 말하며 감히 황제의 명을 받들지 않았답니다.

 

당시는 성제의 사랑이 무르익던 시절, 반첩여의 이러한 언행은 현명하다고 칭송 받았고, 후궁들 또한 그녀에게 아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일은 하나의 미담이 되어 그녀가 마치 초 장왕의 번희나 이세민의 장손현후인 것같이 여겨졌습니다. 그녀 역시 이에 큰 자부심을 가졌고, 황은을 깊이 받았다고 여겼으며, 또한 다함없는 가훈으로 삼아 서로 돋보이게 되었습니다. 허 황후는 우둔한 사람이었고, 반첩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나 총애가 육궁 가운데 으뜸이었으니, ‘장신(長信)‘이란 궁궐의 이름처럼 이런 좋은 나날이 영원히 계속되길 바랐겠지요. 그러나 어느 날 그녀가 왔습니다. 그녀뿐 아니라 그녀의 동생 합덕(合德)도 함께 입궁한 것입니다.

 

조비연(趙飛燕. BC 45~BC 1)이 궁궐에 들어오는 날로 반첩여의 외로움은 시작되었습니다. 예측불허, 모든 것은 말 그대로 의외였습니다. 그 깊은 사랑과 총애도 제비처럼 가볍게 춤을 추는 그녀가 궁에 들어오면서 깨끗이 사그라지고 말았습니다. 사랑의 맹세는 변함이 없건만 애정은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세상사라는 것은 맑은 하늘에 느닷없이 몰려드는 비구름처럼 변덕스럽기 마련입니다. 이는 마치 능가산인이 “매정한 임 까닭 없이 마음 바꾸며, 사랑은 원래 쉽게 변하는 것이라 말하네.(等閑變卻故人心, 卻道故人心易變)”라고 한 것이나 유우석(劉禹錫)이 <죽지사(竹枝詞)> 11수 중 제6수에서 “한스럽네! 사람의 마음은 강물만 못해 까닭 없이 평지에서도 파란을 일으키네.(長恨人心不如水, 等閑平地起波瀾)”라고 노래한 것과 같습니다. 그녀는 <원가행>, 일명<단선가(團扇歌)>를 지어 자신을 둥근 부채에 빗대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새로 자른 제나라 흰 비단, 서리나 눈처럼 선명하고 깨끗하여

재단하여 합환선을 만드니, 둥근 것이 보름달 같구나.

임의 소매 드나들며 흔들어 미풍을 일으켰지만

항시 두려운 것은 가을이 되어 차가운 바람이 더위를 앗아가면

대나무 상자 안에 버려져 임금의 사랑도 중도에 끊기게 됨이라.

 

新裂齊紈素(신열제환소), 皎潔如霜雪(교결여상설).

裁爲合歡扇(재위합환선), 團圓似明月(단원사명월).

出入君懷袖(출입군회수), 動搖微風發(동요미풍발).

常恐秋節至(상공추절지), 凉飇奪炎熱(양표탈염열).

棄捐篋笥中(기연협사중), 恩情中道絶(은정중도절).

 

이는 한낱 아녀자의 입장이기보다 지식인다운 그녀만의 마음 달래기였습니다. 그녀는 허 황후와는 달랐습니다. 비연이 한창 총애 받던 시절. 허 황후는 자신의 자리에서 결코 물러나지 않으려다가 끝내 버림을 받았습니다. 반첩여는 자신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태후 모시는 일을 자청하거나, 성제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성제의 능묘를 지키다가 외롭게 늙어 죽지는 않았을테지요.

 

그녀는 다만 예상치 못했을 뿐입니다. 맑고 고고하며 속세에 물들지 않은 자신이 훗날 궁원(宮怨, 궁궐내에서 이루어지는 사랑과 원망에 관한 이야기)의 대변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왕창령(王昌齡. 698~756)이라는 인물은 마치 <단선가>에 담긴 그녀의 아픔을 엿보기라도 한 듯, <장신추사(長信秋詞)> 5수를 지어 그녀의 삶을 애석해했습니다.

 

우물가 오동나무 가을 잎 누렇게 바래고,

걷지 않은 주렴에 밤새 서리 내렸네.

향로와 옥 베개는 빛을 잃었고,

자리에 누운 채 남궁의 긴 물시계 소리 듣고만 있네.

 

높은 궁전의 가을 다듬이 소리 한밤에 울려 퍼지고,

서리 짙어지니 어의 차가워질까 걱정되네.

푸른빛 자물쇠 잠긴 궁 등잔 아래에서 바느질 멈춤은

여전히 황금빛 성안의 영명하신 주상 보려 해서네.

 

이른 아침 빗자루로 청소하고 궁전 문 열어놓고,

이어서 단선 흔들며 잠시 이리저리 서성이네.

옥처럼 아름다운 얼굴 갈까마귀 빛깔만도 못함은,

소양전(성제가 머무르는 곳)이 해 그림자 여전히 가져와서 일세.

 

진정 박복한가 한참이나 생각하여,

꿈속에 군왕을 뵈었으나 깨고 나니 헛것이었네.

불빛 환한 서궁에선 연회가 한창인 듯

은총 받들던 시절 아직도 분명한데.

 

중추절 장신궁의 달은 밝기만 하고

소양전 아래 다듬이질 소리.

이슬 내린 집 안에 애기 풀 흔적 남아

붉은 비단 휘장 안에서 정을 이기지 못하네.

 

추측건대, 그녀는 결코 이렇게 외로운 신세가 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것입니다. 만약 알았더라면 비록 등불만 비추는 장신궁의 냉랭한 방 안의 고독일망정 견뎌냈을 것이며, 고운 이를 악물어가며 <원가행>을 지어 사람들의 웃음거리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우인불숙(遇人不淑. <시경> 왕풍(王風)에 나오는 ‘중곡유퇴(中谷有蓷)’에 나오는 말로 여자가 남자를 잘못 만남을 가리킴)이란 말이 딱 어울립니다. 그녀는 이를 데 없이 현숙한 여인이었으나 그녀의 부군은 ‘말 한마디로 천하를 떨게 할’ 패기가 없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그녀는 옛날 ‘번희’에 비길만하지만 그녀의 부군은 ‘초 장왕’ 에 비길 수 없었겠지요. 사실 그녀는 연약하지 않았고 미모와 재기를 두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예법에 얽매이고 엄격할 정도로 규정에 따르고자 한 것이 패인이었습니다. 그녀는 황실 주렴 사이를 에돌며 춤추는 조비연의 나긋나긋함이 없었고, 합덕처럼 함께 목욕을 하며 애교를 부리지도 못했습니다.

 

그녀는 지나치게 엄숙했고 예의를 갖추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예교를 따르려 했지만, 정작 자신은 첩여에 불과할 뿐 황후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입니다. 비의 자리에 올랐다 해도 영원히 첩에 불과했을 터. 천하의 여인이란 황궁에 있건 아니건 결국 똑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황제가 원하기만 하면 그녀들은 기녀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첩여와 무희는 본질적으로 같은 수준, 단지 명칭이 다를 뿐이었으니 무슨 의미가 더 있겠습니까? 황궁은 그저 금빛 찬란한 기루에 불과하며, 황제는 천하제일을 난봉꾼이었던 것입니다.

 

주성치가 주연한 <녹정기>를 혹 기억하실는지요. 위소보가 처음 천지회(天地會)에 가입했을 떼 진근남은 짐짓 정색을 하며 그를 밀실로 데려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반청복명(反淸復明)을 외치는 것은 사실 돈과 여자를 빼앗기 위함이다.” 위소보가 그렇다면 왜 얼토당토않는 반청복명 같은 소리를 하느냐고 묻자 진근남이 대답합니다. “똑똑한 사람은 오직 똑똑한 사람한테만 진실을 말하는 법, 저 밖에 있는 멍청한 무리들은 그저 헛된 이상 하나만 갖고도 요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에 큰 깨달음을 얻은 위소보는 진근남과 의기투합합니다. 밀실에서 나온 두 사람은 정색을 하고 밖에 있는 조무래기들을 향해 분기 어린 어조로 일장연설을 늘어놓습니다. 연설은 제대로 먹혔습니다.

 

나중에 누군가로부터 무엇을 타도하고 무엇을 되살려야 한다는 따위의 말을 듣게 되면, 바로 이 장면이 떠올라 씁쓸한 웃음을 물게 됩니다. 역시 영화 <녹정기>를 감독한 왕정의 단순명쾌함과 주성치의 예리함은 마음에 듭니다. 남자는 남자가 봐야 그 악독함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할까요? 사실 남자들이란, 황제든 누구든 결국 오입쟁이끼리의 투쟁을 치를 뿐입니다.

 

비연과 합덕, 이 두 자매는 경국지색이었고, 남자를 꾀는 데 타고난 재주가 있었습니다. 성제는 합덕의 온유향(溫柔鄕. 미인의 품 안)에서 늙어 죽고 싶다고 말했는데, 이 한마디가 그의 예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반첩여가 사랑한 남자가 마침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것도 다른 여자 합덕의 품에 안겨서 말이지요.

 

화려하고 아름다운 시절이 다하여 천자 또한 범인들과 마찬가지로 차가운 무덤에 눕게 되었을 때, 황제에게 버림받았던 여인, 냉대 속에서 버려졌던 반첩여는 아이러니하게도 평생토록 황제의 능원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반첩여 역시 눈을 감아야 했을 때, 혹시 처음 입궁하던 시절을 떠 올리진 않았을까요? 그 옛날 황제가 높은 황금수레에 앉아 미소 띤 얼굴로 손을 내밀 때, 차마 그 손을 잡을 수 없어 함께 수레에 오르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을까요? 궁금증은 거기에 미칩니다. 두 사람이 서로 다정히 기대고 있던 그 시절, 어쩌면 그때가 그들의 유일하고 또 가장 친밀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 너무 짧기만 한 시절.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  p.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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