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재 - 그리고 그들은 누군가의 책이 되었다
한정원 지음, 전영건 사진 / 행성B(행성비)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내 서재는 바깥세상하고 상관이 없어. 서재가 그냥 마을이고 숲 속이고 자연이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지. 여기는 깊은 숲 속이고 놀이터야. 편안한 곳이지.”

 

나무가 울창한 숲에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면 나무는 태양을 받아 녹색 빛을 뿜어낸다. 나뭇잎에 반사된 빛은 숲을 더욱 환하게 만들고 새들의 이정표가 되어준다. 김용택 시인의 서재는 그런 녹색 빛으로 가득하다.

 

이곳 전주집 서재에 있는 책들은 1990년 이후의 책이 대부분이다. 그 이전의 책들은 모두 섬진강 시골집에 보관되어 있다. 양쪽 집으로 나누었는데도 그의 책들은 방 세 곳에 빽빽하게 들어찼다. 하지만 분류가 되어 있지는 않다. 딱히 책을 분류할 이유가 없다. 다시 보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여러 번 봤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그가 특별히 아끼는 책들은 서재 책상 위에서 그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시인과 함께 오랜 세월을 견뎌왔기에 그 깊이가 더 느껴지는 책들이다. 김수영 작가의 <퓨리턴의 초상>부터 21인 신작 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 17인 신작 시집 등 창비 시선에서 나온 여러 시집들이다. 그가 눈앞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또 손이 갈 때마다 꺼내 읽는 그의 보물들이다.

 

“책을 읽으면 정신이 부자가 되어서 세상을 마음대로 살 수 있어. 정신이 가난한 건 정말 불쌍한 거야. 아무리 좋은 차를 타고 돈이 많이 벌어도 정신이 풍요롭지 못하면 초라해 보이고 허약한 삶을 살게 되는 거지. 책을 읽어야 영혼이 풍족해 질 수 있어. 차근차근 조금씩 넓고 깊은 정신의 세계와 땅을 갖게 되는 거야. 그래서 난 또 부자야.”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카르트는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과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물질적인 충족에서 오는 만족은 일시적이지만 훌륭한 사람들과의 대화는 평생토록 마음을 부자로 만들어준다.

 

“책을 읽어야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게 되는 거야. 인류와 사회가 어디로 가는지 알려면 책을 봐야 해. 문학적 감성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세계를 제대로 보게 해 주는 힘이 되는 거야. 책을 안 읽는다는 건 우리가 사는 세계를 모른다는 거지. 그래서 책을 안 읽는 사람과 만나보면 지루하고 고루하고 답답하고 형식적이고 삶의 맛을 느끼지 못해. 캄캄해. 그냥.”

 

독서는 그의 일상이다. 책은 그 삶이 되었고, 그렇게 살다 보니 삶이 책이 되었다. 그는 삶을 공부라 했다. 그는 그렇게 책 속에서 삶의 진리를 발견하고 삶의 여러 모습을 글로 담아냈다.

 

그가 책장에서 항 뭉치의 습작노트를 꺼내 보여준다. 종이는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머금어 누런 황금빛이다. 그의 감성을 쏟아낸 시와 일기, 장르를 초월한 글들이 깨알같이 박혀 있다. 나는 거기에서 청춘 시절의 김용택을 만났다.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글들을, 시들을 주체할 길이 없어 종이 위에 쏟아낸 그 절실함의 흔적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웠다.

 

그는 그렇게 폭포처럼 글을 쓰고 또 책을 읽었다. 특히 시는 한 글자 한 글자 빼놓지 않고 꼼꼼하게 읽는다. 그는 글을 읽으며 눈에 새기고 가슴에 새긴다.

“책을 읽는다는 건 밥을 먹는 것과 같고 숨 쉬는 것과 같고 바람 같고 햇살 같은 거야. 시골집 책하고 여기 전주집 책하고 모아서 큰방에 정리하고 싶어. 나는 서재에 있으면 전 세계를, 우주를 다 돌아다니는 거야. 시인은 행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거든. 욕망이 큰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를 못해. 그런 사람들은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서재를 창조하지 못하거든.” 그에게 서재는 세상을 담은 그릇이며 자연이다. 그는 자연의 숲에서 책을 통해 세상을 본다.

 

“자연은 늘 완성되어 있어. 꽃이 피든 낙엽이 지든 열매를 맺든 매 순간이 완성된 상태인 거야. 그걸 볼 줄 알아야 해. 그래야 삶이 행복해. 자기가 하는 일만 알면 좁아져. 책을 봐야 무궁무진한 세상을 볼 수 있는 거야.” 그는 숲 속에 사는 행복한 시인이다. p.9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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