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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 - 이덕무 선집 ㅣ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9
이덕무 지음, 강국주 편역 / 돌베개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밖에 모르는 바보
남산 아래 어리석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말도 느릿느릿 어눌하게 하고, 천성이 게으르며 성격마저 고루하니 꽉 막혔을 뿐만 아니라, 바둑이나 장기는 말할 것도 없고 생계(生計)에 대한 일이라면 도통 알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남들이 욕을 해도 변명하지 않았고, 칭찬을 해도 기뻐하거나 즐거워하지 않았다. 오직 책 읽는 일만 즐겨, 책을 읽기만 하면 추위나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배가 고픈지도 모른 채 책만 읽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스물한 살이 된 지금까지 하루도 옛 책을 놓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기거하는 방도 무척 작았다. 하지만 동쪽과 서쪽과 남쪽에 각각 창(窓)이 있어 해가 드는 방향에 따라 자리를 옮겨 가며 책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자기가 아직 보지 못했던 책을 구해 읽게 되면, 그 즉시 만면에 웃음을 띠곤 했다. 집 사람들은 그가 만면에 웃음을 띠며 기뻐하면 필시 기이한 책을 구한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는 특히 두보(杜甫)의 오언 율시(五言律詩)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 시를 읊느라 앓는 사람처럼 웅얼거리기를 예사로 하였고, 시구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 심오한 뜻을 깨치게 되면 그만 기뻐서 벌떡 일어나 방 안팎을 서성이기도 했는데, 그럴 땐 마치 까마귀가 우짖는 소리를 내곤 했다. 어떨 땐 조용히 아무 소리도 없이 눈을 크게 뜨고 멀거니 보기도 하고, 혹은 꿈꾸는 사람처럼 혼자서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책밖에 모르는 바보’라 해도 그냥 씩 웃고는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아무도 그의 전기(傳記)를 써 주는 사람이 없기에 내 붓을 들어 그의 일을 써서 ‘책밖에 모르는 바보 이야기’를 짓는다. 그의 이름은 기록하지 않는다.
‘책밖에 모르는 바보’라는 말이 꼭 맞는, 이십대 젊은 시절 이덕무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간결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주는 문예 산문으로, 일종의 자화상인 셈이다. 이처럼 스스로에 대해 전기 형태로 기록한 글을 ‘자전(自傳)’이라 하는데, 이 글은 조선후기 자전을 대표하는 글로 종종 언급된다. P.11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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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게 없어서 책을 팔았구려
내 집에 있는 좋은 물건이라고 해 봐야 <맹자(孟子)>라는 책 하나가 고작인데, 오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돈 2백 푼에 팔고 말았소이다.
그 돈으로 배부르게 밥을 지어 먹고는 희희낙락하며 영재(泠齋 : 유득공의 호)에게 달려가 내 처신이 어떠냐고 한바탕 자랑했더랬지요. 영재 역시 오래토록 굶주림에 시달린 터라, 내 말을 듣고는 그 즉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팔아 버리고선 그 남은 돈으로 술을 사와 내게 대접하더이다. 그러니 맹자(孟子)가 친히 밥을 지어 내게 먹이고 좌구명(左丘明 : 춘추좌씨전의 저자)이 손수 술을 따라 내게 권한 것과 다를 게 무어 있겠습니까?
그날 영재와 나는 “우리가 이 책들을 팔지 않고 읽기만 했더라면 어찌 조금이나마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겠나?”라고 하면서, 맹씨(孟氏)와 좌씨(左氏)를 칭송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때 문득, 진실로 글을 읽어 부귀를 구하는 것이 요행을 바라는 얄팍한 술책일 뿐이요, 책을 팔아 잠시나마 배부르게 먹고 술이라도 사 마시는 게 도리어 솔직하고 가식 없는 행동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 참으로 서글픈 일이외다. 족하(足下 : 상대를 높여 부르는 말인데 ‘이서구’를 가리킴)는 어떻게 생각하실는지요?
가난한 선비의 삶이 짧은 편지 속에 가식 없이 드러나 있다. 시종 유머러스하게 써 내려갔지만, ‘부귀를 얻기 위해 글을 읽기보다는 차라리 책을 팔아 끼니라도 잇는 게 낫다.’라는 마지막 대목이 이르면, 단순히 해학적인 글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그 속에 서글프면서도 불우한 심정이 짙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P.156~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