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 내려놓기
법륜스님 지음 / 정토출판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들은 뭐든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고 싶어 합니다. 원하는 대로 안 되면 괴로워합니다. 그래서 자기 힘으로 안 되면 남의 힘을 빌리고, 사람 힘으로 안 되면 신의 힘을 빌려서라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 신이라는 존재는 전지전능해야 됩니다. 전지전능하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줄 수 없으니 말입니다. 매우 답답할 때에는 신을 믿고 용기를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일시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수행은 그런 게 아닙니다. 수행은 세상만사가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게 꼭 좋은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진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럼 그곳이 천국일까요? 그런 세상은 순식간에 지옥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를 다른 여자도 좋아해요. 이럴 때 두 사람 다 원하는 대로 되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이 다 부자가 되고 싶지만 일은 하기 싫고, 좋은 대학에 가고 싶지만 공부는 하기 싫고, 이런 것들이 다 이루어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이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모두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게 세상이냐? 그런 뜻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원하는 것이 안 될 때가 더 많습니다.

 

세상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노력을 해야 됩니다.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노력해야 합니다. 노력했는데도 안 되면 어떡하느냐, 연구해서 다시 하면 됩니다. 또 안 되면 어떡하느냐, 또 다시 하면 됩니다. 그래도 안 되면 어떡하느냐, 포기하면 됩니다. 포기하기 싫으면 어떻게 하느냐, 다시 하면 됩니다. 이게 인생이에요.

 

내가 어떤 목표를 세워서 노력했는데 그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럼 기쁘겠지요. 하지만 그 일이 이루어졌다고 그때부터 아무 일도 안하고 그냥 있나요? 아니지요. 그때부터 또 무언가 다른 일을 합니다. 그런데 또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럼 어떡하나요? 또 다른 일을 해야지요.

 

A라는 일을 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아서 포기하고 B라는 일을 하나, A라는 일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B라는 일을 하나 똑같습니다. 어떤 일이 이루어졌는지 안 이루어졌는지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닙니다. 열심히 했는지가 중요합니다. 열심히 해서 그 결과로 이루어지면 다른 일을 하면 되고, 열심히 했는데도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 일을 계속할 건지 다른 일을 할 건지 선택하면 됩니다. 어떤 일이 이루어져서 다른 일을 하나, 실패해서 그 일은 버리고 다른 일을 하나 마찬가지입니다. 또 실패해서 그 일을 한 번 더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안 됐다고 괴로워하면 인생은 죽을 때까지 괴로워집니다. 원하는 대로 안 되니 늘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하고, 그 일을 되게 하기 위해 사람에게든 신에게든 매달려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일이 다 되겠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대학 시험에 떨어지고 재수하고 삼수하고 합니까. 서울대 안 가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렇다고 다 죽습니까? 다 잘 살아갑니다.

 

남편이 사업 때문에 힘들 때, ‘내가 남편 사업을 뭘 도와줘야 되나?’ 이런 생각은 하지 마세요. 남편이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어떻게 용기를 줄 건지를 생각하세요. 아이가 공부를 잘하도록 ’내가 어떻게 도와주지?‘라고 생각하는 건 욕심이에요. 시험에 떨어져도 ’아이를 어떻게 위로하고 용기를 줘야할까?‘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기 위해 수행 정진하라는 겁니다. 정진을 해도 잘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어요. 원하는 대로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거기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남편과 아이한테 도움이 됩니다. 가족이 힘들어 할 때 같이 힘들어 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게 용기를 주고 위로를 주는 큰사람이 됩니다. p.58~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양으로 읽는 인문학 클래식 - 당당하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
이현성 지음 / 스타북스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안지추는 꽤 긴 분량을 할애하여 그 나름 학문의 권장을 서술했다. 안지추가 말한 학문은 단순히 학문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현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자못 실천적인 면이 짙다. 책을 읽는 목적은 정확한 판단력을 기르고 인간사에 이바지하는 점에 있다고 그는 말한다.

 

“속담에도 ‘산처럼 쌓인 재산보다도 하찮은 기예가 자신을 돕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기예 가운데서도 익히기 쉬우면서 쓸모가 있는 것은 독서밖에는 없다. 확실히 세상 사람들은 뛰어난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많이 알려고 하긴 하지만, 그 앎을 독서로 채우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배가 고픈데도 음식을 요리하려 들지 않는 것과 같지 않은가? 독서란 먼 옛날부터 이 지구상에 어떤 인물이 나타났고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남김없이 가르쳐 주는 것이다. 또 인간이란 어떤 실패를 범해 왔는가, 어떤 일을 즐겨 해 왔는가 등도 독서로써 알 수 있다.“

 

“공부해서 지식을 몸에 익히면 일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 세상에는 책을 읽어도 말만 늘고 실행은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특히 효행이나 인의(仁義)같은 덕을 몸에 지니고 있지도 않은 듯하다. 게다가 별로 복잡하지 않은 재판을 맡겨 보아도 명쾌한 판결을 내리지 못한다. 그리 크지 않는 현(縣)을 다스리게 해 보아도 만족스레 다스리지 못한다. 평소에 어중간한 공부를 해 온 탓으로 필요한 때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안지추(531~591)가 생존했던 시대는 이미 말한 것처럼 난세였다. 실제로 자기가 섬기던 왕조가 붕괴하는 모습을 몇 번이나 목격한 그였다. 여차하면 조직 따위는 의지할 것이 못 된다. 의지할 것은 오직 자신뿐이다. 그 사실을 안지추는 체험을 통해 알았을 것이다.

 

그 같은 난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개인도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안지추의 경우 출신 가계가 귀족으로서 학문과 교양을 가지고 버티어 온 집안이었기 때문에, 이 방면으로 정진하는 것 외에는 살아남을 길이 없었다. 따라서 안지추에게 있어서 학문과 교양은 자연히 현실적인 일이나 생활에 유용한 것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른바 살기 위한 학문이었다.

 

“가령 상대가 농민이든 상인이든 혹은 하인이든 노예이든 간에 자기보다 인생의 선배라면 그들을 선생으로 받들고 배워야 한다. 직업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자기 인생에 이바지될 것이다.”

 

평소부터 이러한 식의 공부를 거듭해 나간다면 어떠한 역경에 처할지라도 생계나 처세를 위해 반드시 유익한 결과를 구할 수 있다. 이것이 안지추가 학문을 권장하는 요지이다. 그러나 책을 읽고 공부하는 습관은 일조일석(一朝一夕)에 몸에 붙지 않는다. 따라서 일찍부터 이에 익숙해지도록 해야 좋다. 안지추는 학습의 문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인간이란 어렸을 때는 마음이 집중되어 있으나, 어른이 되면 마음이 산만해지기 쉽다. 그래서 가급적 빨리 교육에 착수할 필요가 있다. 나는 7세 때에 외운 문장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지만 20세 이후에 익힌 문장은 1개월만 지나도 벌써 잊어버리고 만다.” 이 같은 지적은 누구나 경험을 통해서 느끼는 바로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한편 안지추는 학문의 권장을 설파함에 있어 나이가 많다고 공부를 단념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세상 사람들은 어른이 된 후에 학문을 시작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물론 소년 시절에 하는 공부는 대낮에 밝은 햇빛 속을 전진하는 것과 같아서 진보가 빠르다. 이에 비해 나이가 들어서 공부하는 일은 초롱불을 들고 캄캄한 밤길을 가는 것처럼 바로 앞도 분간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눈을 감은 채 아무것도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가정 내의 사정이나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젊은 시절에 부득이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 버리면 ‘이젠 때가 늦었다’하고 공부를 체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세상에는 만학으로도 성공한 예가 적지 않다. 뜻만 있다면 나이는 문제되지 않는다.

 

삼국시대 오나라의 장군 여몽(呂蒙 : 178~219)도 어렸을 때 집이 가난하여 공부할 여유가 없었다. 뛰어난 전투 실력으로 장군의 자리에 올랐으나 안타깝게도 학문과 교양이 부족한 여몽을 본 손권은 직접 그에게 읽을 책 목록을 쥐어 주며 공부를 독려했다.

 

여몽이 군무가 바빠 독서할 시간이 없다며 조언을 물리치려 하자 손권은 그의 손을 잡고 “자네가 아무리 바쁘다 한들 나보다 더하겠는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가까이 하고 왕이 된 뒤로도 역사서와 병법서를 읽으며 많은 가르침을 받았네. 그러니 자네도 도망칠 궁리를 하지 말고 꼭 읽도록 하게”라며 여몽을 챙겨 주었다.

 

그런데 ‘만학의 권장’이 통감되는 시대는 오히려 현대사회가 아닐까? 기술혁신이 눈부시게 일진월보(日進月步)하기 때문에 젊었을 때 배운 학문에만 매달리다가는 영락없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이 안지추는 학문이나 공부의 필요성을 얼마쯤 역설한 다음 끝으로 한 가지 주문을 하고 있다.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그 일을 자랑하고 뽐내지는 말라는 것이다.

 

“공부하는 목적은 자기를 향상시키려는 데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책을 좀 읽었다고 그것을 크게 내세워 선배를 경멸하거나 동료를 깔보는 자가 있다. 이래서는 도리어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거나 혐오를 받을 것이 뻔하다. 엉터리 학문을 해서 이런 부류로 전락되기보다는 차라리 처음부터 학문을 하지 않는 쪽이 훨씬 나을 것이다.” p.338~3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혜산책 - 77권의 책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최종옥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문이나 텔레비전 등 매스컴의 기사를 보면 대체로 좋은 일을 애써 찾아 널리 알리고 칭찬하기보다는 불행하고 잘못된 일을 알리는 데 더 많은 지면과 시간을 할애하는 것 같아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움을 느낀다. 매스컴뿐만 아니라 우리들 역시 일상생활에서 칭찬에 인색하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상사들은 부하직원들을 칭찬하고 격려하기보다는 나무라고 꾸중하는 일이 더 많다. 한마디로 우리는 칭찬에 인색한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따듯한 격려와 칭찬을 원한다. 그리고 칭찬과 격려는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마법과도 같은 힘을 가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칭찬에 그토록 인색한 것일까. 이탈리아의 사회학자인 프란체스코 알베로니는 그의 저서 <성공한 사람들은 말의 절반이 칭찬이다>에서 성공이란 사람들로부터 “공개적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정(acknowledgement)"이란 무엇인가. 인정이란 어떤 사람이 어떤 공헌을 했는지 기억하고 그것을 명확히 언어로 표현해 주거나, 간단한 인사를 비롯해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모든 행위와 언어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칭찬 또한 이러한 인정의 적극적 표현이다.

 

우리 모두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 준 상대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응해주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칭찬에 인색한 것일까. 알베로니는 이 책에서 다양한 유형의 인간상을 나열하며 칭찬을 가로막는 요소들을 분석한 뒤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칭찬과 격려로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칭찬을 하기 위해서는 첫째, 타인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갖고 타인의 행복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둘째, 낙관주의적 사고를 지녀야 한다. 낙관적인 사람은 사람들을 신뢰하고 타인의 단점이나 약점보다는 장점이나 긍정적인 측면을 발견하여 이를 북돋아 주고 꽃 피울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셋째, 냉소적 태도를 버리고 열정을 가져야 한다. 냉소적인 사람은 인간이 위선적이며 탐욕스럽고 허영심 강하고 아첨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인간들의 이러한 약점과 야비함을 모조리 이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에 반해 열정적인 사람은 인간이 약하고 악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지만 결코 실망하지 않고 선한을 소중히 여기고 넓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나간다.

 

넷째, 질투심을 극복해야 한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르는 모차르트와 맞설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지독한 질투심으로 모차르트를 죽이고 싶어 했다. 성숙한 사회는 경쟁을 자극하듯이 성공을 인정하고 칭찬하도록 자극한다. 다섯째, 잘못은 먼지 속에, 칭찬은 대리석에 새겨라. 친구 사이든 부부 사이든 사람들은 대부분 상대편의 잘못만을 기억한다. 사소한 잘못에 분노하고 그것을 과장해 대리석에 새긴다. 잘못을 용서하고 기억 저편에 있는 긍정적인 부분을 되새기도록 노력하라. 여섯째, 인간이 직면할 수 있는 한계와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기대하고 이를 위해 전력투구한다. 그러나 우리는 업적을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고 실패에 직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겸손과 함께 성공한 상대를 향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은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를 성공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치열한 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상대를 짓밟아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상대를 인정하고 칭찬하기보다는 어떻게든 비방하고 깎아내리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잘못된 경쟁의식은 악순환을 초래하고 결국 우리 모두를 파멸로 이끌고 만다. 상대를 진정으로 배려하고 인정하며 그가 이루어 낸 성과에 대해 아낌없는 칭찬을 보낼 때 우리는 상대로부터도 똑같은 반응을 기대할 수 있고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하는 선순환의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할 때 일할 맛이 나고 창의성을 발휘하며 자신의 일에 열정을 쏟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자세는 결국 우리를 성공으로 이끈다.

 

오늘날 세상은 생각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급물살에서 살아남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개인이든 조직이든 변화의 흐름에 창의적 사고로 대응해야 한다. 창의적 사고는 억압과 비방의 문화 속에서는 결코 생겨날 수 없다. 인정과 칭찬, 격려를 통해 개개인 스스로가 창의적 사고를 위한 의욕으로 가득할 때 당면한 문제에 대한 창의적 해법과 멋진 해결책이 나온다. 칭찬은 1년에 한두 번 맛보는 것으로 행복해지는 고급 프랑스 요리가 아니다. 매일 섭취해야 하는 쌀이고, 단백질이고 물이다. 창의적 사고와 행동을 일으키고, 그것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인 것이다. 따라서 칭찬과 격려는 급속한 속도로 변화하는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시대적 요구이다. p.227~2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멈추어야 할 때 나아가야 할 때 돌아봐야 할 때
쑤쑤 지음, 김정자 옮김 / 다연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어느 날 부자 노인이 아들을 불러 자수성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들도 자기처럼 성공하기를 바랐다. 아버지 얘기에 감동한 아들은 홀로 보물을 찾아 나섰다. 그는 험난한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열대우림에서 마침내 희귀한 나무를 발견했다. 독특한 향기를 발산하는 나무는 다른 나무처럼 물에 뜨지 않고 가라앉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 나무가 무한한 가치를 지닌 보물임을 직감하고, 시장에 내다 팔기로 했다. 그런데 나무는 전혀 팔리지 않았다. 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 옆 가게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숯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향기 나는 나무를 숯으로 만들어 팔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그는 열대우림에서 어렵게 공수해온 나무를 전부 태워 숯으로 만들었다.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고 기분이 좋아진 아들은 즉시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알렸다. 이야기를 들은 노인은 눈물을 흘리며 어리석은 아들을 꾸짖었다. 아들이 태워버린 나무는 세계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침향나무였다. 나무 하나를 조각내서 팔기만 해도 숯 한 트럭과 맞먹을 정도였다!

 

사람들이 실수를 하는 이유는 인내력 있게 기다리지 못하고 너무 서두르기 때문이다. 주관적 억측에 기대거나 다른 사람들이 하는 방식을 그대로 모방하느라 많은 것을 놓친다. 또한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 사회에서는 반 박자만 느려도 곧장 무리에서 뒤처져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기에 사람들은 매 순간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며 살아간다.

 

정원이 딸린 집으로 이사를 간 친구가 있는데 이사를 하자마자 정원에 있던 잡초를 전부 뽑아버리고 새로 산 꽃을 심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전 집주인이 그곳을 지나다가 대문 안을 들여다보며 깜짝 놀라 친구에게 물었다.

“여기에 있던 모란은 어디로 갔나요? 정말 희귀한 종이거든요.”

친구는 그제야 모란을 잡초인 줄 알고 뽑아버린 일이 생각났다. 그로부터 몇 년 뒤, 그 친구는 다시 이사를 갔다. 이번에는 지저분해 보이는 정원에 전혀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었더니 겨울에는 잡초처럼 보이던 식물이 봄이 되어 예쁜 꽃을 피웠다. 또한 보잘것없어 보이던 풀 무더기는 여름이 되자 아름다운 꽃밭으로 변신했고, 가을에는 반년이 지나도록 앙상해 보이던 나무에 울긋불긋한 단풍이 장관을 이루었다. 그렇게 사계절이 지나고 나서야 잡초를 뽑기 시작한 친구는 완벽한 정원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언젠가 빈틈없고 칼 같은 성격의 관리자를 본 적이 있는데, 그는 직원들이 약속 시간에 조금 늦거나 작은 실수만 해도 가차 없이 해고했다. 그러다 보니 불확실한 억측, 유언비어, 전임자의 왜곡된 평가 때문에 억울하게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결국 그의 곁에는 ‘여우 짓’에 능한 직원들만 살아남았다. 훗날, 그가 자초지종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뒤였다.

 

무엇이 좋고 나쁜지 가려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여 알고 지낼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숨결과 분위기를 파악하여 살 만한 곳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요리를 할 때도 너무 서두르면 아무리 좋은 재료를 쓰더라도 망치게 마련이다. P.134~13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벌레와 메모광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저자가 1년 동안 하버드 옌칭연구소 방문학자로 있는 동안 옛 책과 나눈 사적인 대화의 기록이다. 일 당대 책을 좋아하는 지식인들, 책에 미쳐 손에서 책을 놓지 못했던 책벌레들의 이야기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메모도 즐겨한다. 옛 선비들은 주로 낭독하면서 필요할 때 책에 메모도 적고, 분량이 많을 때는 빽빽이 적은 메모지를 책에 붙이기도 하였다.

  

첫부분의 한중일의 장서인의 코너를 읽고 색다른 흥미를 느꼈다. 한,중,일의 지식인들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같이 살아왔지만 책의 소유권을 분명히 하기 위해 찍는 장서인(藏書印)의 풍습은 제각기 달랐다. 조선의 선비들은 책을 소유하면 먼저 찍혀있던 장서인을 도려내고 새 종이를 덧대서 자신이 책 주인이라는 장서인을 새로 찍었다.그만큼 책 소유욕이 강했다고 생각되고, 이 책은 내것이니 내 집안의 가보로서 천년 만년 같이 할 것이라는 관념이 지배적이었다.

  

일본인은 어떠했을까? 일본의 고서에서는 몇 사람의 장서인 어지러이 찍혀있다. 먼저 소유했던 장서인 위에 붉고 굵은 글씨로 ()’자를 덧찍어 옛주인의 소유권이 소멸했음을 분명히 하고 이제는 내것이 되었다고 선언한 것이다. 매사에 분명하고 깔끔한 셈법을 좋아하는 일본인다운 행동이지만 너무 매몰차고 잔정이 없다.

  

중국인은 어떨까? 역시 통이 크고 스케일이 크다. 주인이 바뀌어도 이전 주인의 장서인에 손을 대는 법이 없다. 길게 보면 책이란 돌고 도는 것이 당연하기에 장서인에 크게 연연해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장서인이 많이 찍혀 있을수록 파는 값도 사는 값도 올라간다. 그중에 유명한 장서인이 하나라도 찍혀 있으면 값이 몇 배로 뛴다. 한 권의 책에 어지러울 정도로 줄줄이 찍힌 중국 책의 장서인을 보고 있으면 그 책에 어떻게 전해왔는지 다 보인다.

  

책에 찍는 장서인만 보더라도 한,중,일 지식인들의 각기 다른 소유방식을 엿볼 수 있다. 책은 세월 따라 돌고 도는 법인데, 조선책 소유문화는 너무 배타적이고 옹색한 것 같다. 지식은 서로 나누고 공유해야 하는데, 조선 선비들은 가문의 위신이나 자신의 체통을 지키느라 쉽게 빌려주지도 않았고 본인의 장서인을 찍어 남에게 과시했던 것 같다. 일본 또한 개인의 소유욕이 대단했던 듯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책은 모름지기 중국인처럼 자연스럽게 유전되었으면 싶다. 장서인이 많이 찍힌 것이 자랑이고 가치를 더하듯, 몇 십명을 거쳐 온 이력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옛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고서야 말로 말그대로 보물이요 후손들이 고이 간직할 유물이다.

 

책을 펼쳐보면 조선조 한 시대를 풍미한 친근한 인물들이 여럿 등장한다. 연암 박지원,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 우암 송시열, 유득공, 이덕무, 박제가, 이서구, 홍석주 삼형제, 추사 김정희, 이상적, 그리고 추사연구의 대가인 일본인 후지쓰카 지카시, 이마니시 류, 중국학자 등등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지식인이 나오는데, 공통점은 모두 책 읽기를 좋아하는 독서가이자 장서인(藏書人)이었다.

 

그중에서 유독 이덕무와 정약용을 많이 언급하고 있는데, 그들이 이 책의 주인공인가 싶다

이덕무는 50여년의 삶을 살면서 오로지 독서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자나 깨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책을 읽고 싶은데 살돈이 없어서 지인들에게 사정하여 빌려서 책을 읽었다. 때론 귀한 책을 빌려서 밤을 새워가며 베껴 쓰고 아침에 돌려주기도 하였다. 출판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조선에서는 용서(傭書)’라는 직업이 있었는데, 남에게 사례를 받고 그를 위해 책을 베껴 써주는 일을 했다. 이덕무도 너무나 책을 좋아한 나머지 어려운 형편에 보탬이 될까 싶어 용서인(傭書人)’ 이 되어 세상을 전전하기도 하였다. 책을 베껴 써 주면서 내용을 외우기도 하고 필사를 통해 공부에 도움이 되기도 하였지만 글깨나 읽은 선비가 남의 품팔이나 해서 끼니를 해결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했을지 짐작이 간다. 이덕무는 평생 몇 천 권의 책을 베껴썼고, 그 밖에 둘둘 말아 제본하지 않은 채 옮겨 적은 것이 수십 아름, 규장각 검서관 시절 베껴 써서 내각에 보관된 것이 다시 그만큼 될 것이라고 한다. 이덕무가 자신의 편지에서 열 손가락이 모두 동상에 걸려 손가락 끝이 밤톨만하게 부어 올라 피가 터질 지경인데도 하루에 수천 자씩을 베껴 썼다고 한 것이 그 증거다. 이는 고금에도 드문 경우라 하겠다. 정조는 그를 초대 규장각 검서관으로 채용하여 500여 차례의 상을 내렸을 정도로 그를 아끼고 사랑했다.

 

다산은 책 읽기도 즐겨하였지만 메모광으로 더 유명하다. 18년간의 유배시절에 쓴 책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글쓰기를 즐겨했는지 알 수 있다. 500여 권의 책을 엮으면서 얼마나 많은 교정을 보고 메모를 했을지 짐작이 된다. 다산의 메모가 남아있는 대표적인 책이 <독례통고>이다. 독례통고는 예학에 관한 책인데, 워낙 방대한 자료를 망라한지라 예학을 중시하던 조선조 선비들이 이 책을 보고는 그만 기가 팍 질렀을 정도다. 다산은 이 책을 늘 곁에 두고 열심히 메모해가며 자신의 학설을 가다듬었다. 다산은 메모를 할 때마다 그저 내용만 적은 것이 아니라 메모한 날짜까지 적어 두었다. 어떤 날은 우중(雨中)’이라고 날씨를 적었고, 때로는 병중(病中)‘이라고 그날의 건강상태까지 메모해두었다. 여러 번 보이는 강진적중(康津謫中)‘은 강진의 유배지에서 썼다는 의미다. ’억무아(憶武兒)‘라고 조카 학무(學武)를 생각하며 적었다는 대목도 있다. 이런 메모 앞에서는 황량한 유배지에서 아픈 중에도 붓을 들고 책의 여백에 자신의 생각을 옮겨 적는 다산의 모습이 떠올라 뭉클해진다.

  

다산은 어디서든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을 놓치지 않고 기록해 두었다. 기발한 생각은 잠시 머무르다 흘러가는 구름처럼 떠오를 때 기록해 놓지 않으면 어느새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다산은 공부 방법에 있어서도 초록(베껴쓰기)를 강조했다. 건성으로 책을 수십 번 읽어서는 머리에 남는 게 없다. 정성들여 책 한 권을 베껴 쓰다 보면 책 속의 지식이 오롯이 내 것이 된다고 강조했다. 학연, 학유 두 아들에게도 유배지에서 수시로 초록을 권장하고 게을리 할 때에는 훈계하거나 유배지로 직접 불러서 가르치기도 했다. 그의 수많은 제자들을 판별하는 방법으로 초록하여 만든 책을 갖고 있느냐를 보면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진정한 다산의 제자들은 모두 초록한 책에 이름 붙여 자신만의 독특한 책을 남겼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