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으로 읽는 인문학 클래식 - 당당하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
이현성 지음 / 스타북스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안지추는 꽤 긴 분량을 할애하여 그 나름 학문의 권장을 서술했다. 안지추가 말한 학문은 단순히 학문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현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자못 실천적인 면이 짙다. 책을 읽는 목적은 정확한 판단력을 기르고 인간사에 이바지하는 점에 있다고 그는 말한다.

 

“속담에도 ‘산처럼 쌓인 재산보다도 하찮은 기예가 자신을 돕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기예 가운데서도 익히기 쉬우면서 쓸모가 있는 것은 독서밖에는 없다. 확실히 세상 사람들은 뛰어난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많이 알려고 하긴 하지만, 그 앎을 독서로 채우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배가 고픈데도 음식을 요리하려 들지 않는 것과 같지 않은가? 독서란 먼 옛날부터 이 지구상에 어떤 인물이 나타났고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남김없이 가르쳐 주는 것이다. 또 인간이란 어떤 실패를 범해 왔는가, 어떤 일을 즐겨 해 왔는가 등도 독서로써 알 수 있다.“

 

“공부해서 지식을 몸에 익히면 일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 세상에는 책을 읽어도 말만 늘고 실행은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특히 효행이나 인의(仁義)같은 덕을 몸에 지니고 있지도 않은 듯하다. 게다가 별로 복잡하지 않은 재판을 맡겨 보아도 명쾌한 판결을 내리지 못한다. 그리 크지 않는 현(縣)을 다스리게 해 보아도 만족스레 다스리지 못한다. 평소에 어중간한 공부를 해 온 탓으로 필요한 때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안지추(531~591)가 생존했던 시대는 이미 말한 것처럼 난세였다. 실제로 자기가 섬기던 왕조가 붕괴하는 모습을 몇 번이나 목격한 그였다. 여차하면 조직 따위는 의지할 것이 못 된다. 의지할 것은 오직 자신뿐이다. 그 사실을 안지추는 체험을 통해 알았을 것이다.

 

그 같은 난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개인도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안지추의 경우 출신 가계가 귀족으로서 학문과 교양을 가지고 버티어 온 집안이었기 때문에, 이 방면으로 정진하는 것 외에는 살아남을 길이 없었다. 따라서 안지추에게 있어서 학문과 교양은 자연히 현실적인 일이나 생활에 유용한 것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른바 살기 위한 학문이었다.

 

“가령 상대가 농민이든 상인이든 혹은 하인이든 노예이든 간에 자기보다 인생의 선배라면 그들을 선생으로 받들고 배워야 한다. 직업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자기 인생에 이바지될 것이다.”

 

평소부터 이러한 식의 공부를 거듭해 나간다면 어떠한 역경에 처할지라도 생계나 처세를 위해 반드시 유익한 결과를 구할 수 있다. 이것이 안지추가 학문을 권장하는 요지이다. 그러나 책을 읽고 공부하는 습관은 일조일석(一朝一夕)에 몸에 붙지 않는다. 따라서 일찍부터 이에 익숙해지도록 해야 좋다. 안지추는 학습의 문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인간이란 어렸을 때는 마음이 집중되어 있으나, 어른이 되면 마음이 산만해지기 쉽다. 그래서 가급적 빨리 교육에 착수할 필요가 있다. 나는 7세 때에 외운 문장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지만 20세 이후에 익힌 문장은 1개월만 지나도 벌써 잊어버리고 만다.” 이 같은 지적은 누구나 경험을 통해서 느끼는 바로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한편 안지추는 학문의 권장을 설파함에 있어 나이가 많다고 공부를 단념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세상 사람들은 어른이 된 후에 학문을 시작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물론 소년 시절에 하는 공부는 대낮에 밝은 햇빛 속을 전진하는 것과 같아서 진보가 빠르다. 이에 비해 나이가 들어서 공부하는 일은 초롱불을 들고 캄캄한 밤길을 가는 것처럼 바로 앞도 분간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눈을 감은 채 아무것도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가정 내의 사정이나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젊은 시절에 부득이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 버리면 ‘이젠 때가 늦었다’하고 공부를 체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세상에는 만학으로도 성공한 예가 적지 않다. 뜻만 있다면 나이는 문제되지 않는다.

 

삼국시대 오나라의 장군 여몽(呂蒙 : 178~219)도 어렸을 때 집이 가난하여 공부할 여유가 없었다. 뛰어난 전투 실력으로 장군의 자리에 올랐으나 안타깝게도 학문과 교양이 부족한 여몽을 본 손권은 직접 그에게 읽을 책 목록을 쥐어 주며 공부를 독려했다.

 

여몽이 군무가 바빠 독서할 시간이 없다며 조언을 물리치려 하자 손권은 그의 손을 잡고 “자네가 아무리 바쁘다 한들 나보다 더하겠는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가까이 하고 왕이 된 뒤로도 역사서와 병법서를 읽으며 많은 가르침을 받았네. 그러니 자네도 도망칠 궁리를 하지 말고 꼭 읽도록 하게”라며 여몽을 챙겨 주었다.

 

그런데 ‘만학의 권장’이 통감되는 시대는 오히려 현대사회가 아닐까? 기술혁신이 눈부시게 일진월보(日進月步)하기 때문에 젊었을 때 배운 학문에만 매달리다가는 영락없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이 안지추는 학문이나 공부의 필요성을 얼마쯤 역설한 다음 끝으로 한 가지 주문을 하고 있다.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그 일을 자랑하고 뽐내지는 말라는 것이다.

 

“공부하는 목적은 자기를 향상시키려는 데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책을 좀 읽었다고 그것을 크게 내세워 선배를 경멸하거나 동료를 깔보는 자가 있다. 이래서는 도리어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거나 혐오를 받을 것이 뻔하다. 엉터리 학문을 해서 이런 부류로 전락되기보다는 차라리 처음부터 학문을 하지 않는 쪽이 훨씬 나을 것이다.” p.338~3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