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소치 우상적, 사제 관계를 묻다.

사람은 극한 상황에 놓일 때, 비로소 지인들의 진짜 마음을 알게 된다. 내게 기쁜 일이 생겼을 때 질투함 없이 자신의 일인 양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지, 내게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진심으로 고민해 주고 위로해 주는지, 그 됨됨이를 알게 된다.

 

내게 좋은 일이 생기면 수시로 연락하다가 힘든 일이 생기면 모른 척하는 지인을 보는 것도, 반대로 내가 매우 힘들 때 걱정하는 척하며 나의 아픈 상처를 자꾸만 들추는 지인을 보는 것도 씁쓸하다. 나 또한 내 이익의 가능성에 맞추어, 조건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게 된다.

  

사람 관계가 더 삭막해지는 요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제자에게 그려 보낸 <세한도(歲寒圖)>를 통해 진정한 사제 관계를 묻고자 한다.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수면 위로 떠 오른 것은 김정희가 55세이던 1840, 남쪽의 섬 제주도에 유배되면서부터다. 김정희는 유배생활 4년을 맞던 어느 날, 중국에서 도착한 책 꾸러미를 풀어 본다. 책을 보낸 사람은 제자인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이었다. 제자가 일전에는 <만학집><대운산방문고>를 보냈고, 이번에는 <우경문편>을 보내 준 것이다.

  

이 책들은 모두 스승이 평소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던 분야의 책들로 당시 중국에서도 구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제자는 중국 지인들의 인맥을 동원해서 책을 구해 스승이 계신 먼 제주도까지 보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귀양살이하는 노선비는 상대에 대한 진실한 마음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선물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가슴이 젖었다. 또한 당시에는 유배 중인 중죄인에게 책을 보내는 행위는 자칫하면 정치적으로 연루되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제자는 한 치의 망설임이나 두려움 없이, 스승의 유배 생활에 늘 마음을 쓰고 있었다.

  

조선 사회에서는 관직에 있다 보면 유배당하는 일이 흔했고 곧 풀려나기도 했지만, 제주도에 유배되었다는 것은 김정희의 죄목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려 준다. 제주도는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곳인 데다가 바다에 갇힌 섬이어서, 절도안치(絶島安置 :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 가두는 형벌)에 처할 만큼 중죄를 지은 왕족이나 고위 관리를 보내는 곳이었다. 제자 이상적은 이런 스승을 위해 기회가 되는 대로 중국에서 좋은 책을 수소문했다. 그는 역관으로 남다른 언어적 감각을 가지고 있어 통역을 위해 중국을 여러 차례 다녀왔고, 임금이 그 공로를 인정하여 상을 하사한 인물이다.

  

김정희는 제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심하던 차에, 중국 송나라 때 소동파가 먼 유배지까지 찾아와 준 아들에게 그림을 그려 선물했다는 것을 생각해 내었다. 그리고 붓을 들어 <세한도>를 그렸다. <세한도>의 전체 크기는 세로 23cm, 가로 14m로 매우 길며, 화면의 전체 구성은 오른쪽부터 화제, 그림, 발문으로 되어 있다. 가로가 14m까지 길어진 이유는, 이 작품을 감상한 당시 청나라와 조선 지식인들 20여 명이 글을 지어 붙였기 때문이다.

 

화면의 오른쪽 위로는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는 뜻의 화제 세한도(歲寒圖)’가 보이고, 그 옆에는 우선(이상적의 호)은 감상하시게, 완당(김정희의 호)’이라는 뜻의 우선시상 완당(藕船是賞 阮堂)’이 세로로 쓰여 있다. 화면 왼쪽에 있는 발문을 보면, <세한도><논어>의 말씀을 그림으로 옮긴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내용을 번역해 옮겨 본다.

 

지난해에는 <만학집><대운산방문고>, 두 책을 부쳐 주었고, 금년에도 <우경문편>을 부쳐 주었소. 이 책들은 모두 세상에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니, 머나먼 천 리 만 리 밖에서 여러 해에 걸쳐 모은 것이지 한순간에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더구나 세상의 흐름은 오직 권세와 이익만을 좇는데, 그대는 이와 같이 마음을 쓰고 힘을 들여서 구한 이 책들을 권세가나 재력가에게 주지 않고, 결국 외딴 섬에서 초췌하게 몰락한 사람에게 주기를 마치 세상 사람들이 권세가나 재력가를 좇듯이 했소.

  

태사공 사마천이 이렇게 말했소. “권력이나 이익으로 어울리는 자들은 권세나 이익이 다 떨어지면 그 관계도 소홀해진다.” 그대도 세상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인데, 초연하게 스스로 권력이나 이익에서 벗어나서 나를 권세나 이익을 가지고 보지 않는 것이지요. 태사공 사마천의 말이 잘못된 것이오?

  

공자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소. “추운 시절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알게 된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계절에 상관없이 시들지 않는 나무들이오. 추워지기 전에도 소나무와 잣나무이고 추워진 뒤에도 똑같은 소나무와 잣나무인데, 성인께서는 특히 추워진 뒤에 그들을 칭찬하셨다오. 지금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이 이전에도 더함이 없고, 이후에도 덜함이 없소.

-늙은 완당 쓰다.

  

그림에는 동그란 문으로 들어가는 집이 있고 그 집 옆에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두 그루씩 묘사되어 있다. 집에는 울타리가 없어 열린 문이 바로 보인다. 제주도는 도둑과 거지가 없는 섬으로 유명하니 크게 염려될 것은 없지만 많다던 돌은 다 어디에 있는지, 낮은 돌담조차 없는 집은 썰렁해 보인다. 오로지 제주의 차가운 바람만이 가득한 곳에서 집과 나무는 미동도 없이 꼿꼿하게 서 있는데, 메마른 붓으로 그린 묵선은 긴 세월이라도 표현하려는지 끊어질 듯 절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

  

<세한도>는 내적인 정신이나 의지를 표현하는 문인화의 정수로, 화가 정신의 뼛속까지 치고 들어갔으면서도 절제된 화법을 유지하여 감상자의 뼛속까지 울림을 준다. 단정한 글씨로 쓴 화제는 김정희가 제자들에게 그토록 주장했던 문자향(文字香 : 문자의 향기), 서권기(書卷氣 : 서책의 기운)를 경험하기에 충분하다. 김정희의 <세한도>는 조선 시대의 사제관계를 엿볼 수 있고, 서화 일치를 추구했던 조선 문인화의 정수를 느낄 수 있으며, 또 청나라와 조선 지식인들의 글씨를 함께 볼 수 있는 여러모로 귀한 그림이다.

  

세월이 흘러 1856년에 스승이 세상을 떠나자, 이상적은 애통한 마음을 담아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덥고 쓸쓸한 남쪽에서 10여 년 귀양살이하고 돌아오시더니 북쪽 바닷가 바람을 맞으며 더욱 쇠약해지시고, 원한을 씻지 못한 말년에는 마음이 타고 남은 재 같았다. 스승의 은혜를 갚지 못함을 통곡한다. 명망이 높으면 하늘이 시기하고 재주가 크면 세상에 용인되지 않는다. 평생지기인 먹 자취만 남았으니 소심란(素心蘭)’세한송(歲寒松)’이다.

이일수. <옛 그림에도 사람이 살고 있네> p.96~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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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 면포에 유채. 개인소장

  

 

문화재청에서는 50년 이상 된 유물은 등록문화재 심사 대상에 올리고, 100년 이상 된 유물 중에서 보물사적 등을 지정하며 그중 뛰어난 것을 국보로 승격시키고 있다. 회화 중에서 현재 국보로 지정된 그림의 주인공은 공재 윤두서, 겸재 정선, 혜원 신윤복, 추사 김정희 다섯 명 뿐이다. 그렇다면 20세기 화가로는 누가 그런 대접을 받아 마땅할까?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를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다. 박수근과 이중섭은 서양화라는 새로운 조형어법을 한국적으로 토착화시킨 화가이고, 김환기는 모더니즘을 구현한 화가이다.

    

2013년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1913~1974) 탄신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였다. 이를 계기로 갤러리 현대에서는 2012년에 그 서막을 여는 대규모 김환기 전을 열었다. 이 전시회에서는 이벤트로 관객과 전문가에게 그의 대표작 두 점을 고르라는 인기투표가 있었다. 나는 <항아리와 매화가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 한 표씩 던졌다. 두 점 모두 미래의 국보라고 생각하면서,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도 섬마을에서 태어난 김환기는 서울로 올라와 중동학교를 마친 뒤 니혼(日本)대학 미술학부에 유학하면서 화가의 길을 걸었다. 처음에 추구한 것은 추상미술이었다. 훗날 그는 대상을 어떻게 그려도 관계없다는 것을 보여준 파카소가 고마웠다고 했다.

   

815해방이 되고 얼마 안 되어 625전쟁이 일어나는 혼란 속에서도 김환기는 <피난 열차>같은 아담한 작품을 남겼다. 전쟁이 끝나고 몇 해 지난 1956년에는 파리로 건너가 현대미술의 현장을 체험하고 돌아와서는 유영국, 장욱진 등과 함께 신사실파(新寫實派)’라는 이름의 동인전을 열면서 한국적 서정을 바탕으로 한 세련된 모더니즘을 추구하였다. 이 무렵에 그린 작품이 <항아리와 매화가지>이다.

    

이때까지 김환기가 추구한 예술 세계는 한국적인 서정을 모더니즘 어법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가 마음속으로 포착한 한국적 이미지는 매화와 백자 달항아리 등이었다. 고미술을 보는 안목이 높았던 그는 당시 백자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에 깊이 매료되어 많은 달항아리를 수집하여 아틀리에를 장식했다. 백자 달항아리를 한국미의 아이콘으로 부각시킨 것은 사실상 김환기와 그의 절친한 벗인 최순우였다.

   

김환기가 미국으로 건너가 제2의 인생을 살면서 또 다른 예술 세계를 보여주게 된 계기는 1963년 제7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한국 작가로 출품하면서였다. 김환기는 그 전시회에서 대상을 받은 미국작가 아돌프 고틀리브에게 큰 감동을 받아 아예 미국으로 건너가 버렸다. 50세의 나이에 예술원 회원,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장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뉴욕으로 건너간 것이다. 그는 당시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뉴욕에 나가자, 나가서 싸우자.(19631013)

 

뉴욕에서 김환기는 조형적 실험과 고민을 거듭하였다. 1968년 일기에는 이렇게 적었다.

12: 점인가? 선인가? 선보다 점이 개성적인 것 같다.

123: 날으는 점, 점들이 모여 형태를 상징하는 그런 것들을 시도하다. 이런 걸 계속해 보자.

    

이때부터 김환기의 점 그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즐겨 그리던 대상들을 점으로 환원시켜갔고, 고향 땅 신안의 섬마을, 뻐꾸기 소리를 생각하며 점을 찍었다. 그는 일기에서 서울의 오만 가지를 생각하며 점을 찍었다고 했다. 점으로 새로운 창을 하나 열었다.”고 했다.

   

김환기가 그렇게 도달한 점의 세계는 1970년 한국일보사 주최 <한국미술대상전>에 출품하여 대상을 받았다. 이때 출품한 작품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이다. 이 작품은 절친한 선배이기도 한 김광섭의 시 <저녁에>에 붙인 그림이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그 별, 고향의 별을 생각하며 찍은 무수한 점이다. 김환기의 점에는 이처럼 서정이 들어 있어 서구 모더니스트들의 냉랭하고 물질뿐인 올 오버 페인팅, 색면파 추상, 미니멀 아트와는 다른 따뜻함이 서려 있다. 수화가 가깝게 지낸 예술철학자 조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쉴러는 <소박(素朴)의 시와 감상(感傷)의 시>에서 자연을 대하는 시인(예술가)의 태도에는 자연적으로 느끼는 시인과 자연적인 것을 느끼는 시인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전자는 자연을 소유하지만, 후자는 자연을 탐색한다고 규정하였는데, 수화의 예술은 뉴욕 체류 이전과 이후를 자연을 소유했던 시기자연을 탐색했던 시기로 나누어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

 

김환기의 점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그는 모든 작품마다 에스키스로 구도를 잡았고, 점 하나를 찍는 데 여섯 번의 붓질을 가했다. 그래서 그의 대작 <10만 개의 점> 앞에선 절로 뭉클한 감동이 일어난다. 2013년은 그의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백 년의 세월 속에 수화 김환기 같은 화가를 갖고 있다는 것은 우리 근대 미술의 큰 자랑이자 위안이다. 유홍준 <명작순례>  P.190~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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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
이시카와 이쓰코 지음, 손지연 옮김 / 삼천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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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정서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 아닐까 싶다.

백의민족답게 역사적으로 남의 나라를 거의 침범한 적이 없었고, 부끄러울 수도 있는 일이지만 주로 외침(外侵)을 당하면서 살아온 민족이기에 이 우리민족의 정서로 각인된 듯하다. 고전문학에 있어서도 여성들의 작품들은 대부분 정한(情恨)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숱한 전쟁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가족을 잃고, 성리학의 울타리에 갇혀 자기표현을 못하고 살았기에 가슴에 한이 응어리져 있을까 생각해보니 착잡하기 그지없다.

 

일제 강점기 시절의 위안부(慰安婦)’라는 명칭도 곰곰이 살펴보면 역사적 상흔이 고스란히 어려 있다. 나라가 망하여 백성을 지켜줄 수 없는 지경에 처한 참혹한 시대에 여성들의 삶인들 오죽했을까? 예부터 우리 땅에 사는 여인들의 수난은 수없이 되풀이 됐었다. 몽골이 침입하여 우리 강토를 짓밟았던 고려시대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고, 명분론에 휩싸여 당파싸움으로 국력을 낭비한 조선시대에도 청나라의 침략으로 수많은 여인들이 치욕을 당했다.

    

몽골이 오랜 전쟁 끝에 고려를 복속한 이후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공녀(貢女)로 보내졌던가? 아마 몽골 지배기간 약 100여 년 동안 수만 명의 여인들이 동토의 땅으로 보내졌을 것이라 추정된다. 대갓집 규수부터 하층의 노비까지 반반한 여인들은 닥치는 대로 거두어 갔으니, 열에 아홉은 불행한 삶을 살았고, 가는 도중에 목숨을 끊는 여인들도 상당수를 차지했다. 간혹 원나라에 바친 공녀 중에 기황후라는 불리는 특이한 케이스의 여인도 있었지만 대부분 한 많은 삶을 살았다.

    

조선조 병자호란 때의 상황은 어떤가? 지금 상황에서 돌이켜 보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지배층의 명분론에 집착한 나머지 막을 수 있었던 불필요한 전쟁을 초래했고, 권력층의 판단 착오는 자신들의 고난은 물론 무고한 백성들을 죽음의 도가니로 몰아가는 어리석은 행위였다. 물론 성리학이 지배하던 시절에는 그 카테고리를 갇혀 명분론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쓸데없는 대의명분에 집착하다 무고한 백성들을 숱한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1만 명이 넘는 여인들을 공녀로 보내졌는데, 유교의 영향에 따라 고려보다 정조관념이 철저했던 조선조 여인들은 자살자가 더 많았다. 끌려간 여인들 중에 간혹 그곳에 정착하는 여인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심한 멸시와 차별을 받으며 살았다. 말도 안 통하는 낯선 곳에서 청나라인의 성노리개로 전락한 여인들의 삶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아 맞아 죽는 여인들도 많았다. 이런 지옥의 땅에서 벗어 나기위해 많은 이들이 몸부림쳤다.

  

청나라에 머물면서 조선의 상인을 통해 조선으로 가는 길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고, 또 학대를 견디다 못해 탈출한 여인들은 물어 물어서 무작정 조선 땅으로 귀향하는 이도 많았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그 유명한 환향녀(還鄕女)’였다. ‘고국()으로 돌아온 여인이란 단순한 뜻이 나쁜 뜻으로 변질된 것도 이때였다. 고향으로 돌아온 수많은 여인들이 케케묵은 성리학의 악습에 얽매여 몸을 더럽힌 여인이라 오명을 둘러쓴 채 박대를 받으며 집안에서 쫓겨났다. 그들이 택할 곳은 오직 죽음 밖에 없었다. 구사일생의 위기에서 벗어나 그나마 혈육의 땅을 간신히 찾아왔건만 동네 사람들의 비난이 두려워 가족조차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 얼마나 억울하고 비통한 삶인가!

    

조선 조정에서는 청나라를 탈출하거나 마른 담배 잎과 바꾸어 교환해 온 환향녀(還鄕女)’들이 고향에 정착하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례가 속출하자 한 가지 대안을 내놓았다. 인조는 각 고을에 홍제탕을 만들어 이곳에서 몸을 씻은 환향녀는 죄를 없애주겠다는 것이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조선 여인들의 목숨을과 정절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무능한 조정이 죄라면 죄지 나라 잃은 백성들이 당한 능욕이 어찌 죄가 될 수 있겠는가? 일제 강점기나 병자호란 때나 이러한 현실은 오십 보 백 보란 생각이 든다.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1941~1945)때 군인들의 성노리개로 아무런 연유도 모르고 끌려간 조선 여인들을 일컬어 위안부(慰安婦)’라 부른다. 난 사실 위안부란 명칭조차도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위안을 받을 사람이 누군데, 일본을 위해 충성을 맹세한 군인들의 성노예로 희생된 여인을 위안부라 무르는 것이 마뜩찮다. 우리 스스로 젊음을 송두리째 빼앗긴 할머니들을 한 번 더 죽이는 꼴이다. 그런데 여태껏 마땅한 명칭조차 짓지 못했다.

   

불과 며칠 전에 오랫동안 밀고 당기기를 해오던 일본과의 위안부협상이 타결되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 때 군 위안부 동원 사실을 공식 인정하고 위로금으로 우리 돈 100억 원을 내놓겠다는 것이 요지였다. 위안부 동원사실을 부인하는 일본에 항의하는 천 번이 넘는 수요 집회와 수많은 나날 동안 싸워 온 그동안의 노력이 허탈하게 느껴질 정도로 협상은 비밀리에, 단번에 이루어졌다. 1965년 한일협정 때와 마찬가지로 내용은 사전에 전혀 몰랐고 철저히 정부 주도로 진행되어 위안부 할머니조차 내막을 알 수 없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일제강점기 역사적 피해자로서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와 돈으로 배상이 안 되겠지만 그래도 사죄에 상당하는 충분한 배상금이 따르기를 바랐다. 독일의 경우에서 보듯이 유대인 학살에 독일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총리가 직접 찾아가서 사죄를 한 것처럼 아베 총리가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직접 사과하길 바랐지만, 아니 수위를 좀 낮춰 공식적인 방송을 통해 일제강점기 한국에 큰 죄를 죄었다고 세계만방에 죄를 고하는 사과방송이라도 했으면 그나마 마음에 위로라도 되었을 것이다.

    

고작 돈 100억에 우리의 뼈아픈 역사를 팔아버린 느낌이다. 이제 미안하다고 인정했고 100억을 배상했으니 두 번 다시 위안부 얘기는 꺼내지 말라는 협박조의 협상이다. 우리가 뭐가 그리 급해서 빨리 협상을 종결지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일본입장에서도 우익들의 반발과 일본의 체면을 생각하면 한국이 바라는 만큼의 굴욕적인 협상에 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일본과의 민감한 역사적 협상을 명쾌하게 해결해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현 실정에서 보면 어떤 협상도 국민들의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 협상 결과는 많이 아쉬운 생각이 든다. 위안부 당사자는 물론 국민들의 60%가 잘못된 협상이라는 결과만 보아도 너무 성급하게 협상 결론이 이르지 않았나 싶다. 일본은 더 이상 위안부에 대한 거론을 거부할 것이며, 심지어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위안부의 상징인 소녀상 철거도 주장할 개연성이 높다. 앞으로 위안부의 상흔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나라간의 약속인 협상타결이 세계만방에 알려진 지금, 타결된 협상을 다시 무를 수는 없겠지만, 일제에 강제 동원된 위안부에 대한 보다 철저한 역사교육과 소녀상 유지 및 확대 설치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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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찬윤 2016-02-09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시골향기님의 블로그에서 위안부에 관한 유익한 내용을 잘보고 갑니다. 연로하신 위안부 할머님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집니다. 그런점에서 님의 위안부에 관한 포스팅 내용이 풍부하고 감동적입니다. 가슴에 와닿는 내용들이어서 감사합니다. 예쁜 사진들도 너무 인상적입니다. 전반적으로 님의 블로그에서 유익하고 좋은 내용, 예쁜 사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신선하고 유익한 님의 블로그 내용에 감동하였습니다. 자주 들려서 스크랩해 가렵니다. 감사합니다.

일본 동경 일대에 2029 - 2031년 경에 진도 10 이상의 초 강력한 지진 발생
지금까지 역사에 없었던 초 강력한 지진으로 수백만명이 사망하고 일본은 엄청난 재앙에 직면할 것이다 . 일본은 아수라장이 됭 것이다. 지진피해를 당하거나 부상당한 일본인들은 지옥이 따로 없다고 하늘을 원망하고 가슴을 치며 통탄할 것이다. 지진으로 화상을 입은 일본 사람들은 고통이 너무 심하고 참기 어려워서

˝하늘아 차라리 내 가슴에 무너져 내려다오˝ 하고 통곡하며 울부짖을 것이다. 일본의 경제는 마비되고 사회는 공포와 지진 트라우마로 생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중상자만도 수백만명에 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평신도가 쓴 신간을 반디앤 루니스 인터넷 서점에 우연히 들렸다가 구입해서 읽었는데 유익했습니다. 참고로 알려드립니다.
신간 도서명: 예금통장을 불타는 아궁이에 던져 버려라. (저자 문석호 MJ 미디어 출판사 393쪽)


주요내용: 하느님 자비에 관한 내용, 김 수환 추기경님을 시복해야 한다, 성경에 관한 내용들, 우리나라도 교황을 배출해야 한다, 찬송가에 관한 내용, 서울대교구를 분할해야 한다, 사회교리를 쉽게 풀이하면서 교회의 개혁, 결혼을 잘 준비하는 방법, 이혼을 방지하는 방법, 자살 방지 방안,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로 유학을 간 우리나라 초, 중고생들이 현지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쉽게 좌절하는 이유와 대책, 그 밖에 청년 실업 해소 방안,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희망의 메시지, 우리나라가 미래에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서울에서 뉴욕에 2시간반만에 도착하는 초우량 여객기를 생산할 것이다, 황혼 이혼을 방지하는 방안 등, 우리나라 동포(교포) 3세가 2052년에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 일본 동경 일대에 2029 - 2031년 경에 진도 10 이상의 초 강력한 지진 발생할 것이다. 지금까지 역사에 없었던 초 강력한 지진으로 수백만명이 사망하고 일본은 엄청난 재앙에 직면할 것이다 . 일본은 아수라장이 됭 것이다. 지진피해를 당하거나 부상당한 일본인들은 지옥이 따로 없다고 하늘을 원망하고 가슴을 치며 통탄할 것이다. 지진으로 화상을 입은 일본 사람들은 고통이 너무 심하고 참기 어려워서 ˝하늘아 차라리 내 가슴에 무너져 내려다오˝ 하고 통곡하며 울부짖을 것이다. 일본의 경제는 마비되고 사회는 공포와 지진 트라우마로 생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중상자만도 수백만명에 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성모님의 은총으로 파티마에 성모님이 발현하신지 100주년이 되는 2017년에 우리나라 통일의 기운이 최고조에 달할 것이다. 저자는 서울 반포성당의 전례분과장, 성경 백주간 봉사자, 구역장, 독서단장, 꾸르실료 단원, 레지오 단장, 성체분배자 등으로 봉사하였으며, 현재 청담성당에서 1년 365일 새벽 4시 반에 집을 나서 아침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 조배를 한다고 합니다. 뉴욕에 근무할 때는 데마레스트 한인 성당에 다녔고 워싱턴에 근무할 때는 알링턴의 루르드 성당에 다녔다고 합니다. 저자는 성모님의 은총으로 2017년 통일을 단정적으로 내비치고 있었습니다. 성모님의 은총을 굳게 믿고 있답니다. 교회도 사랑의 통일 비용을 적립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자 문석호 MJ 미디어 출판사 393쪽)

시골향기 2016-04-10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찬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답장이 늦어서 죄송하고, 좋은 책 추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 - 연암 박지원 문학 선집
박지원 지음, 김명호 편역 / 돌베개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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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암억선형(燕巖憶先兄 : 연암에서 돌아가신 형님 생각하며)

                                           박지원(朴趾源 : 1737~1805)

 

我兄顔髮曾誰似 (아형안발증수사)  우리 형님 그 모습은 누구를 닮았는가.

每憶先君看我兄 (매억선군간아형)  아버님 떠오를 때마다 형님 얼굴 뵙곤 했지.

今日思兄何處見 (금일사형하처견)  이제 형님이 그리우면 어디 가서 뵈올까?

自將巾袂映溪行 (자장건몌영계행옷매무새 바로 하고 시냇물에 비춰보네.

  

세월이 흘러 세상은 변해도 가족간의 애정은 여전히 도탑다. 특히 서양보다는 동양의 문화에서 두드러지게 가족 간의 우의를 중요시했는데 유교주의 문화의 산물이 아닐까 싶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격언처럼 가족은 어디서 살든 혈육의 정을 잊지 못하고 고향을 그리워하고 못 만나서 애통해 한다

 

삼십여 년 전 이산가족 찾기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는 똑똑히 지켜 보았다. 6.25전쟁으로 남북으로 뿔뿔이 흩어진 형제, 남매, 자매간에 혈육을 찾겠노라고 생업을 뒤로 하고 여의도광장을 누비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생생하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보았듯이, 혈육을 확인한 순간 터트리는 통절한 울음은 실로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고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연암도 마지막 남은 형님을 떠나보내면서 천륜으로 맺어진 혈육의 깊은 정을 뼈에 마무치게 느꼈을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 아버지를 일찍 여읜 내 감정이 이입되어선지 연암의 안타까운 심정이 그대로 마음에 와닿는다. 돌아가신 지 반세기가 가까워 오는 지금, 변변한 사진조차 남아있지 않아 아버지의 얼굴조차 떠오르지 않지만 가끔씩 나이 많은 형님의 얼굴을 보면서 아버지의 모습을 연상해 보기도 한다.

   

연암은 아버지가 그리울 때 형님의 얼굴을 뵈었는데 이제 아버지 얼굴을 그려볼 형님조차 안 계시니, '형님이 그리우면 내 얼굴을 시냇물에 비춰 본다'는 구절에서 연암의 처연하고 애절한 마음이 절절이 느껴진다 먹고 살기에 바빠  평상시에는 혈육의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하다가 막상 가족 중에 누군가가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들으면 그때서야 후회한다. 아뿔사! 살았을 때 좀 더 잘하고, 좀 더 자주 만날 걸... 

이 시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고 혈육의 소중함을 느껴보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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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 - 하버드대 인생학 명강의
쑤린 지음, 원녕경 옮김 / 다연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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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매사를 대하는 것이 곧 인생의 의미이자 즐거움의 원천이다.”

 

평소 당신은 불평불만이 잦은 사람인가?

일이 조금만 내 맘 같지 않게 돌아가면 투덜이로 변신해 잔뜩 불평을 늘어놓고, 다른 사람이 내뜻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자신과 대립하고 있다는 생각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아마도 삶이 힘들어진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고 싶지 않아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것이겠지만,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불평불만은 우리를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 뿐,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자아실현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다는 것이다.

  

이 말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먼저 이 이야기를 들어보라.

재능 넘치는 젊은 시인이 있었다. 그에게는 마음씨 따뜻하고 아름다운 아내와 명랑하고 귀여운 아들, 그리고 스스럼없이 지내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젊은 시인은 왠지 항상 수심에 잠겨 한숨을 쉬기 일쑤였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한 천사가 시인에게 그 이유를 물었고, 그는 대답했다.

  

내 아내는 마음씨가 따뜻하고 아름답지만, 나와는 공통된 이야깃거리가 없어요. 아들은 너무 말썽꾸러기라 종일 내 혼을 쏙 빼놓고요. 친구들은 한 술 더 뜨죠. 툭하면 집으로 몰려와 나를 방해한다니까요.” 아내와 아들, 친구들 모두 시인을 즐겁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침울하게 하다니, 천사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다시 그에게 말했다.

 

그렇군요. 그럼 제가 당신의 불만을 해결해드리죠.”

그런 다음 천사는 시인 주변의 모든 사람을 데리고 가버렸다. 처음에 시인은 혼자만의 생활이 매우 즐겁고 자유로웠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을 살뜰히 챙겨주는 아내와, 말썽꾸러기 아들 그리고 자신을 찾아와주는 친구들이 없는 삶이 얼마나 처량한 지를 깨닫게 되었다. 창작의욕마저 잃게 된 그는 그제야 자신이 원래 누리던 생활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뼈저리게 느끼며 후회를 금치 못했다.

  

왜 우리는 무엇인가를 잃은 후에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걸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불평 불만이 습관이 되고 받는 것에만 익숙해져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은혜에 대한 표현이자 긍정의 마인드이다. 이는 하버드대에서도 매우 중요시하는 부분으로, 많은 학생을 행복과 자아 실현의 길로 이끈 요소이기도 하다.

  

하버드대에서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에 관해 전해지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어느 날, 루스벨트의 집에 도둑이 들어 많은 물건이 사라졌다. 이 소식을 들은 한 친구는 루스벨트에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는 위로의 말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이에 루스벨트는 이렇게 답장을 썼다.

친애하는 친구에게. 위로 고마워.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아. 오히려 도둑에게 감사하는 걸. 왜냐고? 첫째, 도둑이 내 목숨이 아니라 내 물건을 훔쳐갔으니까. 둘째, 내 물건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 훔쳐갔으니까. 그리고 셋째! 무엇보다 가장 다행인 건 도둑이 된 게 내가 아니라는 사실일세.’

 

그 누구라도 도둑맞으면 원망을 늘어놓을 테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이 감사해야 하는 이유 세 가지를 찾아냈다. 이처럼 주변의 모든 사람과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수많은 불행을 없애고 긍정적으로 매 순간을 적극적이고 진취적이게, 활기차게 살 수 있다.

  

스티븐스는 취업을 위해 한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다. 그는 사전에 많은 준비를 했음에도 워낙 경쟁이 치열했던 탓에 불합격의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그는 면접 경험을 통해 자신이 얻은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면접 중에 받은 날카로운 질문들에 눈과 귀가 번쩍 뜨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회사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썼다. 그 후 조금씩 이 일을 잊어갈 무렵 그가 면접을 봤던 회사에서 예쁜 연하장을 보내왔다. 회사에서 개최하는 기념 파티에 스티븐스를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사실은 회사의 한 부서에 결원이 생겨 그를 채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후 10여 년 동안 그는 뛰어난 업무실적으로 회사의 부사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이 회사는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였다.

 

스티븐스의 경험이 말해주듯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삶이 선사하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이를 끊엄없는 원동력으로 만들고 끝내 성공을 이룬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만물을 신이 내린 선물로 여긴다. 우리 마음속에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할 때 세상은 비로소 아름다워지고 고난도 달콤해진다.”라는 하버드대 출신들의 말처럼 말이다.

  

이에 혹자는 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냐고 말할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도와줬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고, 삶도 딱히 나에게 관대하지 않은 것 같으니, 오늘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스스로 일구어 낸 마땅히 가져야 할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가진 것이 정말로 그렇게 당연한 것인지 생각해보자.

  

낳아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의 은혜는 마땅히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학교에서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의 은혜는 어떤가? 이 역시 감사해야 마땅한 일이 아닌가? 또한 내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기꺼이 시간을 내주고, 곁에서 인내심 있게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며 조언도 아끼지 않은 친구에게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눈부신 햇살과 신선한 공기를 제공해주는 대자연은 또 어떤가?

  

우리가 이처럼 많은 은혜를 받았고 또 우리 곁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면 과연 삶이 우리에게 관대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비록 일과 생활에 치여 피곤하더라도 지금에 감사하라. 어쨌든 지금의 경험들이 당신의 성장과 발전에 밑거름이 되어 주고,당신의 앞날에 소중한 자산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라. 살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과 일에 감사하라. 그들이 있기에 우리의 인생은 비로소 무미건조함에서 벗어나 온갖 경험을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감사할 줄 알아야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삶의 아름다운을 느끼고 매 순간을 활기넘치게 살 수 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감사함을 표현했을 때 또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감사함을 표현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떠올려보자. 누군가 진심을 다해 당신의 도움에 감사 인사를 할 때, 그 사람이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람이더라도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고, 그 속에서 유쾌함과 만족감을 얻어 상대에게 더 많은 호의를 베풀고 기쁨의 보답을 하게 되지는 않았는가? 이렇듯 감사하는 마음은 선순환을 형성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감사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을까? 시도해볼 만한 몇 가지 방법을 추천하겠다.

o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항상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o 매일매일 당신의 마음을 움직인 일들을 꾸준히 적어보자.

o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할 때, 당신은 그 사람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P.236~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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