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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년. 면포에 유채. 개인소장
문화재청에서는 50년 이상 된 유물은 등록문화재 심사 대상에 올리고, 100년 이상 된 유물 중에서 보물•사적 등을 지정하며 그중 뛰어난 것을 국보로 승격시키고 있다. 회화 중에서 현재 국보로 지정된 그림의 주인공은 공재 윤두서, 겸재 정선, 혜원 신윤복, 추사 김정희 다섯 명 뿐이다. 그렇다면 20세기 화가로는 누가 그런 대접을 받아 마땅할까?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를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다. 박수근과 이중섭은 서양화라는 새로운 조형어법을 한국적으로 토착화시킨 화가이고, 김환기는 모더니즘을 구현한 화가이다.
2013년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1913~1974) 탄신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였다. 이를 계기로 갤러리 현대에서는 2012년에 그 서막을 여는 대규모 김환기 전을 열었다. 이 전시회에서는 이벤트로 관객과 전문가에게 그의 대표작 두 점을 고르라는 인기투표가 있었다. 나는 <항아리와 매화가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 한 표씩 던졌다. 두 점 모두 미래의 국보라고 생각하면서,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도 섬마을에서 태어난 김환기는 서울로 올라와 중동학교를 마친 뒤 니혼(日本)대학 미술학부에 유학하면서 화가의 길을 걸었다. 처음에 추구한 것은 추상미술이었다. 훗날 그는 대상을 어떻게 그려도 관계없다는 것을 보여준 파카소가 고마웠다고 했다.
8•15해방이 되고 얼마 안 되어 6•25전쟁이 일어나는 혼란 속에서도 김환기는 <피난 열차>같은 아담한 작품을 남겼다. 전쟁이 끝나고 몇 해 지난 1956년에는 파리로 건너가 현대미술의 현장을 체험하고 돌아와서는 유영국, 장욱진 등과 함께 ‘신사실파(新寫實派)’라는 이름의 동인전을 열면서 한국적 서정을 바탕으로 한 세련된 모더니즘을 추구하였다. 이 무렵에 그린 작품이 <항아리와 매화가지>이다.
이때까지 김환기가 추구한 예술 세계는 한국적인 서정을 모더니즘 어법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가 마음속으로 포착한 한국적 이미지는 매화와 백자 달항아리 등이었다. 고미술을 보는 안목이 높았던 그는 당시 백자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에 깊이 매료되어 많은 달항아리를 수집하여 아틀리에를 장식했다. 백자 달항아리를 한국미의 아이콘으로 부각시킨 것은 사실상 김환기와 그의 절친한 벗인 최순우였다.
김환기가 미국으로 건너가 제2의 인생을 살면서 또 다른 예술 세계를 보여주게 된 계기는 1963년 제7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한국 작가로 출품하면서였다. 김환기는 그 전시회에서 대상을 받은 미국작가 아돌프 고틀리브에게 큰 감동을 받아 아예 미국으로 건너가 버렸다. 50세의 나이에 예술원 회원,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장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뉴욕으로 건너간 것이다. 그는 당시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뉴욕에 나가자, 나가서 싸우자.(1963년 10월 13일)
뉴욕에서 김환기는 조형적 실험과 고민을 거듭하였다. 1968년 일기에는 이렇게 적었다.
1월 2일 : 점인가? 선인가? 선보다 점이 개성적인 것 같다.
1월 23일 : 날으는 점, 점들이 모여 형태를 상징하는 그런 것들을 시도하다. 이런 걸 계속해 보자.
이때부터 김환기의 점 그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즐겨 그리던 대상들을 점으로 환원시켜갔고, 고향 땅 신안의 섬마을, 뻐꾸기 소리를 생각하며 점을 찍었다. 그는 일기에서 ‘서울의 오만 가지’를 생각하며 점을 찍었다고 했다. 점으로 “새로운 창을 하나 열었다.”고 했다.
김환기가 그렇게 도달한 점의 세계는 1970년 한국일보사 주최 <한국미술대상전>에 출품하여 대상을 받았다. 이때 출품한 작품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이다. 이 작품은 절친한 선배이기도 한 김광섭의 시 <저녁에>에 붙인 그림이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그 별, 고향의 별을 생각하며 찍은 무수한 점이다. 김환기의 점에는 이처럼 서정이 들어 있어 서구 모더니스트들의 냉랭하고 물질뿐인 올 오버 페인팅, 색면파 추상, 미니멀 아트와는 다른 따뜻함이 서려 있다. 수화가 가깝게 지낸 예술철학자 조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쉴러는 <소박(素朴)의 시와 감상(感傷)의 시>에서 자연을 대하는 시인(예술가)의 태도에는 ‘자연적’으로 느끼는 시인과 ‘자연적인 것’을 느끼는 시인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전자는 자연을 소유하지만, 후자는 자연을 탐색한다고 규정하였는데, 수화의 예술은 뉴욕 체류 이전과 이후를 ‘자연을 소유했던 시기’와 ‘자연을 탐색했던 시기’로 나누어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
김환기의 점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그는 모든 작품마다 에스키스로 구도를 잡았고, 점 하나를 찍는 데 여섯 번의 붓질을 가했다. 그래서 그의 대작 <10만 개의 점> 앞에선 절로 뭉클한 감동이 일어난다. 2013년은 그의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백 년의 세월 속에 수화 김환기 같은 화가를 갖고 있다는 것은 우리 근대 미술의 큰 자랑이자 위안이다. 유홍준 <명작순례> P.190~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