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통의 실태 및 의식에 관한 연구
한국형사정책연구원 / 한국형사정책연구원 / 1991년 5월
평점 :
절판
2015년 2월 26일 우리나라 법률사에 남을만한 획기적인 선고가 있었다. 지난 1953년에 제정된 형법의 ‘간통죄’가 무려 62년 만에 폐지되는 순간이었다. 간통죄 위헌소송의 역사를 살펴보면 1990년부터 2008년까지 네 차례의 선고가 있었지만 모두 합헌결정으로 마무리 되었다. 아직 간통죄의 존치를 바라는 유교적 시각이 사회적으로 강하게 남아있어서인지 폐지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간통죄는 살아남게 되었다.
드디어 간통죄 위헌소송의 다섯 번째 선고가 있던 작년 2월 26일, 표결에 참여했던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중에 찬성7, 반대2명의 압도적인 표 차이로 간통죄는 그 효력이 정지되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구 사회의 악습으로 치부되던 간통죄의 폐지를 바라는 여론이 몇 십 년 전부터 비등했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인 여성(아내)을 보호하기 위해 비록 개인적인 영역이라 하더라도 법률로 강제하는 것이 우리의 실정에 적합하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중론이었다.
그러면 간통죄를 규정하고 있던 구. 형법 241조를 살펴보자.
형법 제241조 (간통) ① 배우자 있는 자가 간통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그와 상간한 자도 같다. ② 전항의 죄는 배우자의 고소가 있어야 논한다. 단 배우자가 간통을 종용 또는 유서(사후용서)한때에는 고소할 수 없다.
오랜 유교주의 문화권에서 살아온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남성들의 외도에 관용적이고 한두 번쯤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치부하면서도, 여성의 외도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 된다. 그래서 중국이나 조선에서 ‘열녀’를 국가시책으로 강요했고, 그런 집안에 큰 상을 내리고, 비석을 세워주면서 마을 사람들을 계몽하기도 했다. 여성의 외도는 단 한 번으로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많은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남성위주의 전통 때문인지 간통죄의 폐지는 1953년 제정된 이래 사회적 약자인 여성(아내)을 비호한다는 명목 아래 쉽게 폐지되지 않았다. 현재 주변국의 일본이나 중국(군인 간통죄 처벌조항은 아직 존치하고 있음)에서도 진즉에 간통죄는 폐지되었고 동유럽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도 간통죄는 이미 폐지되었다. 현재 아시아 국가에서 대만과 이슬람국가 정도만 간통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간통죄를 폐지를 바라는 여론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바, 간통죄에 대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폐지되고 있는 추세에 있다는 점이 지난번 위헌 결정에 영향을 준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간통죄가 유지되던 근래 몇 년간은 실제로 우리가 생각했던 만큼 간통죄의 위하력(威嚇力 : 잠재적 범죄인인 일반인에 대한 위협을 통하여 범죄를 예방하려는 힘)이 그리 크지 않았다. 2008년부터 최근까지 우리나라에서 간통죄로 구속 기소된 사람은 22명에 불과했고, 실제로 간통죄로 처벌받는 경우도 징역형 1년~6개월에 집행유예를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즉, 간통죄 자체에 대한 법은 있지만 현실적으로 처벌받는 사례가 극히 적어서 그 동안 우리나라의 간통죄는 사형제도처럼 사문화되었다는 얘기들이 많이 있었다.
간통죄가 존치하고 있다고 해도 간통죄로 배우자를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간통죄는 당사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이고, 간통죄는 이혼을 전제로 하여 간통을 범한 배우자에게 이혼소송을 제기한 후에야 간통죄로 고소할 수 있는 등 까다로운 절차와 외도를 증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증거를 잡기 위해 흥신소를 동원하는 등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사회적 부작용도 심심찮게 있어왔다.
민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이혼사유에는 아래의 여섯 가지가 있다.
민법 제840조 (재판상 이혼 원인) 부부의 일방은 다음 각 호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가정법원에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 [개정 90·1·13]
1. 배우자에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2.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
3.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4.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5.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아니한 때
6.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그런데 840조 제6호에서는 이혼사유를 낱낱이 열거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그 사유를 개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에서는 이혼사유를 좁게 해석하는 유책주의를 따르고,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혼사유를 조문에 열거한 것 외에 즉, 6호를 넓게 해석하는 파탄주의를 따르고 있다. 유책주의(有責主義)란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 제도를 말한다. 1965년 9월 대법원은 혼인생활을 파탄 낸 책임이 있는 남편은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데, 이는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 유책주의를 채택한 최초 판례다. 이 판례 이후 우리 법원은 유책주의 입장을 유지해 왔는데, 시대가 변하면서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지를 떠나 현실적으로 혼인 생활을 이어갈 수 없다면 이혼을 인정해야 한다는 파탄주의(破綻主義)를 적용하자는 움직임이 계속돼 왔다. 이에 대법원은 유책주의 원칙 하에서 예외적으로 파탄주의 적용 범위를 점차 늘려왔다.
한편, 대법원은 2015년 9월 15일 ‘바람을 피우는 등 결혼 생활을 깬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 청구를 할 수 없다.’며 유책주의에 대한 기존 판례를 유지했다. 하지만 대법관 13명 가운데 6명은 결혼 생활이 이미 파탄 났다면 실체 없는 혼인관계를 해소하는 게 맞다는 반대 의견을 내어, 앞으로도 유책주의와 파탄주의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간통죄 폐지를 기화로 민법상 이혼사유도 유책주의에서 파탄주의로 옮겨가는 듯한데, 문제는 이혼이 쉬워지면서 한쪽 배우자의 생존권이 위협받는데 있다. 우리나라 이혼사유의 80%는 민법 제840조 6호에 해당되며 그 외 제1호~5호의 사유로 이혼하는 비율은 20%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러니까 당사자의 행복추구권이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싫은 사람과 억지로 얽매여 살지 않겠다는 추세가 요즘의 현실이다. 이미 마음이 떠난 사람을 법으로 강제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인 것 같고 개인적으로도 파탄주의의 흐름에 따르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이혼을 하면 우리나라 관행상 여성 배우자가 일방적으로 더 큰 피해를 보았다. 경제적 능력이 남성에 비해 열악한데다 노후 준비도 안 되어 있고 대부분 남편의 수입에 의존해 살다가 갑자기 갈라서는 경우에 허허벌판 버려진 고립무원의 신세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혼에 따른 부부별산제 원칙에 따라 재산을 나누기는 하겠지만 서민들의 재산이 많아 보아야 노후를 보장받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남편(아내)이 이혼 전에 미리 나눌 재산을 몰래 타인의 명의로 빼돌리거나 매각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왔다.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남성 중심의 호적을 유지하여 왔고, 집 계약에 있어서도 부부 공동명의보다는 남편 명의로 등재하는 게 관행이어서 이혼 시 여성 배우자의 생존권이 더 위협받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요즘은 이러한 실정을 감안하여 여성 배우자를 더욱 폭넓게 보호하려는 판결로 나아가고 있다. 가령 황혼이혼의 재산분할에 있어 남편의 공무원연금청구권의 공동분할을 인정하는 경우 등이다.
그나마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유책 배우자와 그 상대방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이다. 통상 상한선이 거의 정해져있어서 예전에는 3천만원이 최대였고 지금은 4~5천만원으로 올랐다고 하는데, 이 금액으로는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사람 사는 것이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도 이혼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돈으로 계량화되고 돈으로 재단된다. 앞으로 간통죄가 폐지되고 나면 더욱 이러한 풍토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생각된다. 바람을 피운 유책 배우자라 할지라도 신체상 구속을 받지 않기 때문에 돈이면 거의 해결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나쁘게 생각하면 돈 많은 사람은 얼마든지 바람을 피워도 법적으로 제재할 수단이 없고, 돈으로 무마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이를 막을 뚜렷한 대안도 없는 실정이다. 경제가 위축되고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이혼이 더욱 늘어가는 추세이지만 아직 그 당사자를 보호할 뚜렷한 대책은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법원에서는 이혼에 따른 피해 구제책을 세심히 강구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