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의 힘 - 반복되는 행동이 만드는 극적인 변화
찰스 두히그 지음, 강주헌 옮김 / 갤리온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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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킨스는 말년에 순회강연을 다녔다. ‘과학적 광고의 법칙을 주제로 한 그의 강연은 항상 수천 명이 모여들 만큼 인기가 있었다. 강단에서 그는 자신을 토머스 에디슨과 조지 워싱턴에 비교하며, 미래에 대한 예측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중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가장 눈에 띈다.) 그러나 열망이나 습관의 고리를 형성하는 신경학적 근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결국 그로부터 70년에 지난 후에야 MIT과학자들과 볼프람 슐츠의 실험을 통해 열망이 습관 고리의 필수 요소라는 것이 밝혀졌다.  

 

홉킨스는 열망이라는 개념을 몰랐는데도 어떻게 양치질 습관을 미국 국민들에게 심어줄 수 있었을까? 홉킨스는 몇 십 년 뒤에야 MIT와 슐츠의 실험실에서 확인된 원칙을 이미 사용하고 있었다. 홉킨스는 자서전에서 펩소던트에 관련된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치태에서 기막힌 신호를 찾아냈다고 떠벌렸고, 자기가 소비자들에게 아름다운 치아라는 분명한 보상을 제공한 최초의 광고인이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홉킨스보다 먼저 그런 전술을 생각해 낸 사람들이 많았다. 홉킨스가 펩소던트의 존재를 알기도 전에 잡지와 신문을 채운 다른 치약의 광고들이 그 증거다.

    

펩소던트보다 먼저 시판된 셰필드 박사의 크렘 덴티프리스의 광고를 보자.

이 제품에 함유된 성분은 잇몸 주변에 축적되는 치석을 예방해 줍니다. 지저분한 치석을 깨끗하게 제거하세요!” 홉킨스가 치의학 교과서를 뒤적이고 있을 때 등장한 광고도 있었다. “당신의 하얀 치아가 필름에 덮여 있습니다. 새니톨 치약이 필름을 제거하여 원래의 하얀 치아를 되찾아 줄 겁니다.” 또 다른 광고도 있었다. “아름다운 미소는 아름다운 치아에 달려 있어요. 아름다운 그녀의 비밀은 매끄럽고 하얀 치아. 에스에스 화이트 치약을 써 보세요!” 홉킨스가 치약 광고에 뛰어들기 수년 전부터 많은 광고인이 펩소던트와 똑같은 식으로 광고했다. 모든 광고가 치태 제거를 약속했고, 아름답고 하얀 치아를 보상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어떤 광고도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그러나 홉킨스의 광고가 나가자마자 펩소던트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펩소던트는 어떤 점에서 달랐던 것일까? 원숭이 홀리오가 손잡이를 당기고, 주부들이 침대를 정리한 후에 페브리즈를 뿌리도록 유인했던 것과 같은 요인들이 홉킨스의 광고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펩소던트는 바로 열망을 만들었던 것이다.

   

홉킨스는 자서전 어디에서도 펩소던트의 성분에 언급하지 않았지만, 특허 출원서에 언급된 제조법과 회사 기록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당시의 다른 치약들과 달리, 펩소던트에는 구연산과 박하유를 비롯한 여러 화학 물질이 함유되어 있었다. 펩소던트 발명가는 이런 성분들을 이용해 치약 맛을 산뜻하게 만들었는데, 그 성분들이 혀와 잇몸에 시원하면서도 얼얼한 느낌이 들게 했다.. 이 효과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다른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

   

펩소던트가 시장을 석권하기 시작하자 경쟁 회사 연구원들이 그 이유를 알아내려고 펩소던트를 분석했다. 그들이 알아낸 결과에 따르면 펩소던트를 사용하는 걸 깜빡 잊으면 입안에 시원하고 얼얼한 느낌이 없어서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든다고 대답하는 소비자들이 많았다. 소비자들은 그 약간의 자극을 기대하고 열망했던 것이다. 그런 자극을 받지 않으면 입이 깨끗해지지 않은 기분이었던 것이다.

   

클로드 홉킨스는 아름다운 치아를 판 것이 아니었다. 그는 감각을 팔았다. 사람들은 시원하고 얼얼한 느낌을 열망하게 되었고 그런 느낌을 청결과 동일시하면서 양치질이 습관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홉킨스가 실제로 판 것이 무엇인지 파악한 다른 회사들도 펩소던트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수십 년 후에는 거의 모든 치약에 입안에 얼얼한 느낌을 주는 다양한 화학 물질이 첨가되었다. 그러자 펩소던트의 판매 곡선은 하락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치약에는 양치질 후 입안에 얼얼한 느낌을 주는 첨가물이 함유되어 있다.

   

P&G에서 오랄비 칫솔과 크레스트 어린이 치약의 브랜드 매니저를 지낸 트레이시 싱클레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소비자에게는 그 제품이 효과가 있다는 어떤 신호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치약 맛을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습니다. 블랙베리 맛이 나게 할 수도 있고 녹차 맛이 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어떤 맛이 나든지, 반드시 시원하고 얼얼한 느낌을 줘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느낌이 나야 입이 깨끗해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얼얼한 느낌이 치약의 효능을 더 좋게 해 주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양치질을 한 후에는 그런 느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공식을 사용하면 누구나 새로운 습관을 형성할 수 있다. 운동을 더 하고 싶은가? 눈을 뜨자마자 체육관으로 직행하는 등의 신호와, 운동을 끝낸 후에 마시는 스무디 같은 보상을 선택하라. 그리고 스무디에 대해서, 혹은 운동을 끝낸 후에 밀려오는 엔도르핀에 대해서 생각하라. 그런 보상을 기대하라. 결국에는 그 열망이 당신을 매일 체육관으로 끌어갈 테니까.

  

새로운 식습관을 형성하고 싶은가? 미국 체중조절 연구회와 관련된 연구자들이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의 식습관을 조사해 보니 대상자의 78%가 매일 아침을 먹었다. 아침이 그들에게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신호를 제공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은 거의 전부가 다이어트를 충실히 따랐을 때 얻은 특별한 보상을 머릿속에 그렸다. 물론, 그 보상은 그들이 신중하게 선택한 것이었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었다. 유혹이 있을 때는 보상에 대한 열망에 집중하고, 그 열망을 가벼운 집착으로까지 승화시켰다. 그 보상에 대한 열망 덕분에 그들은 다이어트를 망쳐 버릴 유혹을 떨쳐 낼 수 있었다. 요컨대 열망이 습관 고리를 지배했던 것이다.

   

기업이 사람들의 열망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가 매일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일상적인 행위 중에 습관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예컨대 우리는 음식을 조금 덜 짜게 먹고 물을 더 많이 마셔야 한다. 채소 섭취를 늘리고 지방 섭취는 줄여야 한다. 비타민을 복용하고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야 한다. 매일 아침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걸 습관화하면 피부암 발병 가능성을 현저하게 낮출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아침에 이를 닦지만, 매일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사람은 10%가 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자외선 차단제를 일상적 습관으로 삼겠다는 열망이 없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이 자외선 차단제에 얼얼한 느낌 혹은 피부에 뭔가를 발랐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을 첨가함으로써 자외선 차단제를 습관화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얼얼한 느낌에 대한 열망이 이를 닦아야겠다는 생각을 일깨워 주듯이 자외선 차단제가 그와 똑같은 기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기업들이 이미 수많은 제품에서 비슷한 전술을 사용해 왔다.

   

트레이시 싱클레어는 이렇게 말했다.

거품은 엄청난 보상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샴푸에는 거품이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거품을 만드는 화학 물질을 첨가한 이유는 사람들이 머리를 감을 때마다 거품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세탁용 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치약도 똑같습니다. 요즘 보든 회사가 치약을 만들 때 거품을 잘 나게 하려고 소듐 라우레스 설페이트라는 계면 활성제를 첨가합니다. 청결 효과는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입 주면에 거품이 있으면 사람들이 더 좋아하거든요. 소비자가 그런 거품을 기대하는 순간부터 습관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열망은 습관을 만드는 원동력이다. 열망을 자극하는 방법을 알아내면 새로운 습관을 더 쉽게 형성할 수 있다. 이런 점은 1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매일 밤, 무수한 사람들이 얼얼한 느낌을 얻고 싶어 이를 북북 문지른다. 매일 아침 수많은 사람들이 엔도르핀 분비를 느끼고 싶어 운동화를 신는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설거지를 끝낸 후에, 혹은 침실을 깔끔하게 정돈한 후에 페브리즈를 뿌린다. P.9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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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시 - 증보
김희보 엮음 / 가람기획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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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밤에

 

           김용호(1912~1973)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콩기름 불

실고추처럼

가늘게 피어나던 밤

    

파묻은 불씨를 헤쳐

잎담배 피우며

고놈, 눈동자가 초롱 같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

바깥엔 연방 눈이 내리고,

오늘 밤처럼 눈이 내리고,

   

다만 이제 나 홀로

눈을 밟으며 간다.

 

오우버 자락에

구수한 할머니의 옛 얘기를 싸고,

어린 시절의 그 눈을 밟으며 간다.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누구나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 하나쯤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간다. 세상살이가 겨울 찬바람처럼 매몰차고 시릴지라도 혈육의 한없는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자란 소싯적 추억 때문에 험난한 세파도 거뜬히 이겨내고,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대물림 사랑을 이어간다.

    

어릴 적 추억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인생의 튼실한 밀알이다. 이제 너무나 변해버린 세상 탓에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지만, 가끔씩 옛날의 추억을 회상하며 빙그레 웃음 짓는다. 세파에 조금도 물들지 않았던 티없이 맑은 시절, 먹을 게 귀해 늘 고구마, 밤을 군것질 삼아 잿불에 구워먹었어도 세상에 부러울 게 없었다.

  

요즘 같이 매섭게 추운 날이면, 몽실하게 군불 지핀 아랫목에서 올망졸망 할머니의 얘기를 들으며 몸을 녹였다. 시간에 쫓겨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의 한켠에서 종종 푸근하고 여유롭던 옛 시절이 그립다. 그래서 이 시를 읽을 때면 근심 걱정 없이 마냥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희열에 빠져든다. 눈이 내리고 찬바람이 쌩쌩 부는 날이면 시인이 느꼈던 할머니의 온정처럼, 나도 타임머신을 타고 잠시 그 시절로 돌아가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을 알알이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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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강설 사서삼경강설 시리즈 5
이기동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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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三(구삼)君子終日乾乾 (군자종일건건)하여 夕惕若(석척약)이면 ()하나 无咎(무구)하리라. 象曰終日乾乾(상왈종일건건)反復道也(반복도야). 文言曰九三曰君子終日乾乾夕惕若厲无咎(문언왈구삼왈군자종일건건석척약려무구)何謂也(하위야). 子曰君子(자왈군자)進德修業(진덕수업)하나니 忠信(충신이)所以進德也(소이진덕야). 修辭立其誠(수사입기성)所以居業也(소이거업야).

 

知至至之(지지지지)可與幾也(가여기야)知終終之(지종종지)可與存義也(가여존의야)是故(시고)居上位而不驕(거상위이불교)하며 在下位而不憂(재하위이불우)하나니 ()乾乾(건건)하여 因其時而惕(인기시이척)하면 雖危(수위)无咎矣(무구의)리라. 終日乾乾(종일건건)行事也(행사야). 終日乾乾(종일건건)與時偕行(여시해행)이라. 九三(구삼)重剛而不中(중강이부중)하여 上不在天(상부재천)하며 下不在田(하부재전)이라. ()乾乾(건건)하여 因其時而惕(인기시이척)하면 雖危(수위)无咎矣(무구의)리라.   

 

<국역>

구삼(九三)은 군자가 종일토록 노력하여 저녁때까지 애태우면 뼈를 깎는 아픔이 있지만 허물이 없을 것이다. 상에서 말했다. “종일토록 노력하는 것이 할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문언에서 말했다. “구삼(九三)에서 말하기를, ‘군자가 종일토록 노력하여 저녁때까지 애태우면 뼈를 깍는 아픔은 있지만 허물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덕()을 진전시키고 업()을 닦는다. 충과 신은 덕을 진전시키는 수단이 되고, 말을 가다듬고 그 정성스러운 마음을 간직하는 것은 수업을 하는 방법이 된다.

 

나아가야 함을 알아서 나아가면 조짐을 보고 처신할 수 있고, 마쳐야 함을 알아서 마치면 마땅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윗자리에 있으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아랫자리에 있으면서도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직 끙끙거리며 애쓸 따름이니, 그 처해 있는 상황으로 인하여 애태우면 비록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다.’ 종일 노력한다는 것은 일을 하는 것이다. 종일 노력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함께 행한다는 것이다. 구삼(九三)은 거듭 거듭 꿋꿋하면서 중심에 있지 않고, 또 위로는 하늘에 있지 않으며 아래로는 밭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노력하여 상황에 따라 끙끙거리면서 상황으로 인하여 애태우면 비록 위태롭지만 허물이 없을 것이다

  

<강설>

구삼(九三)은 인생에서는 30대에, 학교에서는 졸업반 학생에, 회사에서는 평사원의 말기에 해당한다. 이 경우에는 하층부의 마지막으로서 상층부로 진입해야 하는 시기이다. 물에 잠겨 있던 용이 물 밖으로 나와 하늘로 날아오르기 직전의 상태에 있는 것이고, 활주로로 달리기 시작한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오르기 직전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 시기는 상층부로 진입하는가 못하는가의 기로에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축적해온 힘을 총동원하여 전력으로 질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지쳐서 이때 좌절하고 만다. 그러한 사람들은 소인이다.

   

이 경우는 하늘을 날아야 하는 용이고, 왕이 되어야 할 왕자이므로 소인이어서는 안 된다. 전력을 다해 날아오르는 군자여야 한다. 이 고비를 넘어서 순조롭게 날아오르면, 그 다음에는 순조로운 길이 이어진다. 하늘로 이륙하는 비행기는 매우 힘들지만, 구만리 상공으로 날아오르고 난 뒤에는 평탄하게 운행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마라톤 선수가 경기를 할 때도 중간 지점 가까이에서 고비를 맞이한다고 한다. 죽을힘을 다해 달려서 이 고비를 넘기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달릴 수 있다고 한다. 구삼(九三)이 바로 이 고비를 만나는 때다. 그래서 군자가 종일토록 노력하여 저녁때까지 애태우면 뼈를 깎는 아픔이 있지만 허물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상에서 하던 일을 반복한다.’고 한 것은 상층부로 진입하기 위하여 계속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문언에서는 구삼(九三)이 처한 상황을 군자가 진덕수업해야 하는 상황으로 보았다. 진리를 터득하는 방법에는 대체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진리를 직접 실천하는 실천적 수양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먼저 그 진리를 인식하는 방법이다. 전자는 진덕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수업이다. 진덕의 방법은 일마다 진실하게 하고 미덥게 하는 것이 그 핵심이므로 충()과 신()을 수단으로 들었다. 또 수업은 진리를 인식하는 것인데, 그것은 마음속에 있는 성()을 인식하는 것이고 천명(天命)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은 마음속에 있으므로 성()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알아야 하고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말을 알아야 한다. 마음이 밖으로 표현되는 것이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을 가다듬고 그 성실한 마음을 간직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말을 가다듬어서 마음을 알고 성()을 알면 그 성()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에 성()을 발휘할 수 있다. ()이 발현되는 것이 성()이고 천명이 발현되는 것이 성()이기 때문이다.

 

구삼(九三)은 하늘로 올라가야 하고 지상의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조짐을 보아 하늘로 올라가야 하고, 올바른 도리로 땅의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구삼(九三)은 상층부로 진입하는 바쁜 시점에 서 있기 때문에 아랫사람들에게 교만하거나 뽐낼 시간적 여유가 없다. 또 하층부에 있는 것을 걱정할 여유도 없다. 오직 자기가 처한 상황을 알고 부지런히 노력해야 상층부로 올라갈 수 있다. P.8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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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회 추억
신영복 지음, 조병은 영역, 김세현 그림 / 돌베개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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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선생과 얼마 전에 작고하신 신영복 선생은 닮은 점이 많다. 200년의 시간차를 두고 태어났지만 살아온 과정은 다산의 전철을 밟는 것처럼 거의 같은 길을 걸어 왔다.

  

다산은 1801년에 유배의 길에 들어서 1818년 해배(解配)될 때까지 약 18년간 유배생활을 했고, 신영복 선생은 1968년에 감옥에 들어가 1988년 출소 때까지 20년간 옥중생활을 하게 된다 다산은 정조가 승하하고 노론 벽파가 정권을 잡으면서 당쟁의 희생양이 되어 유배를 가게 됐고, 신영복 선생도 반공주의 체제하에서 진보적인 사상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다 공산주의 사상을 주입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갇히게 된다.

 

또한 출세배경도 많이 닮았다. 다산은 성균관을 거쳐 과거에 장원급제함으로써 20대의 젊은 나이에 출세가도를 달렸고, 신영복 선생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20대에 육관사관학교 교관으로 경제학을 가르쳤다.

   

다산은 천주교에 잠시 입문했다가 신유박해(1801)때 모함을 받아 사형을 받을 뻔 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유배가는 것으로 감형되었고, 신영복 선생 또한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 받고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기도 했다.

    

다산은 1762년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절명한 임오화변(壬午禍變)이 일어났던 해에 태어났고, 신영복 선생은 1941년 그러니까 정확히 179년 뒤인 1941년 신사년(辛巳年)에 태어났다. 60갑자로 보면 신사년이 임오년보다 한해 앞선다. 지나친 억측일지 몰라도 예전에 호적상 1~2년이 허술하게 기록되던 것을 감안하면 갑자(甲子)가 같은 해에 태어났을 수도 있겠다 싶다.

   

공통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산은 조선시대 수명으로는 비교적 긴 삶인 75세의 수명을 누렸고, 신영복 선생 또한 1941~2016년까지, 음력으로 계산하면 아직 2015년이니, 75세의 삶을 누리고 영면했다. 다산이 조선의 선비로서 시서화(詩書畵)에 뛰어났던 만큼 신영복 선생도 시서화에서 손꼽히는 실력자다. 그리고 다산이 유배기간 동안 다산초당에서 11년간 후학을 양성하고 제자를 가르치는 일에 매진했다면, 신영복 선생도 출소하던 1988년에 성공회대 교수로 임용되어 2015년까지 약 27년간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매진했다. 또한 사후, 생전에 모두 사면복권 된 점도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겠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나 신영복 선생 모두 생전에 고통스럽고, 힘든 삶을 살았다.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들의 당연한 책무일 수도 있겠으나 개인적인 삶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돌아가시고 많은 이들의 추앙을 받으니 그게 위로라면 위로가 아닐까?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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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의 실태 및 의식에 관한 연구
한국형사정책연구원 / 한국형사정책연구원 / 199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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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26일 우리나라 법률사에 남을만한 획기적인 선고가 있었다. 지난 1953년에 제정된 형법의 간통죄가 무려 62년 만에 폐지되는 순간이었다. 간통죄 위헌소송의 역사를 살펴보면 1990년부터 2008년까지 네 차례의 선고가 있었지만 모두 합헌결정으로 마무리 되었다. 아직 간통죄의 존치를 바라는 유교적 시각이 사회적으로 강하게 남아있어서인지 폐지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간통죄는 살아남게 되었다.

  

드디어 간통죄 위헌소송의 다섯 번째 선고가 있던 작년 226, 표결에 참여했던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중에 찬성7, 반대2명의 압도적인 표 차이로 간통죄는 그 효력이 정지되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구 사회의 악습으로 치부되던 간통죄의 폐지를 바라는 여론이 몇 십 년 전부터 비등했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인 여성(아내)을 보호하기 위해 비록 개인적인 영역이라 하더라도 법률로 강제하는 것이 우리의 실정에 적합하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중론이었다.

    

그러면 간통죄를 규정하고 있던 구. 형법 241조를 살펴보자.

형법 241 (간통) 배우자 있는 자가 간통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그와 상간한 자도 같다. 전항의 죄는 배우자의 고소가 있어야 논한다. 단 배우자가 간통을 종용 또는 유서(사후용서)한때에는 고소할 수 없다.

   

오랜 유교주의 문화권에서 살아온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남성들의 외도에 관용적이고 한두 번쯤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치부하면서도, 여성의 외도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 된다. 그래서 중국이나 조선에서 열녀를 국가시책으로 강요했고, 그런 집안에 큰 상을 내리고, 비석을 세워주면서 마을 사람들을 계몽하기도 했다. 여성의 외도는 단 한 번으로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많은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남성위주의 전통 때문인지 간통죄의 폐지는 1953년 제정된 이래 사회적 약자인 여성(아내)을 비호한다는 명목 아래 쉽게 폐지되지 않았다. 현재 주변국의 일본이나 중국(군인 간통죄 처벌조항은 아직 존치하고 있음)에서도 진즉에 간통죄는 폐지되었고 동유럽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도 간통죄는 이미 폐지되었다. 현재 아시아 국가에서 대만과 이슬람국가 정도만 간통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간통죄를 폐지를 바라는 여론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바, 간통죄에 대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폐지되고 있는 추세에 있다는 점이 지난번 위헌 결정에 영향을 준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간통죄가 유지되던 근래 몇 년간은 실제로 우리가 생각했던 만큼 간통죄의 위하력(威嚇力 : 잠재적 범죄인인 일반인에 대한 위협을 통하여 범죄를 예방하려는 힘)이 그리 크지 않았다. 2008년부터 최근까지 우리나라에서 간통죄로 구속 기소된 사람은 22명에 불과했고, 실제로 간통죄로 처벌받는 경우도 징역형 1~6개월에 집행유예를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 간통죄 자체에 대한 법은 있지만 현실적으로 처벌받는 사례가 극히 적어서 그 동안 우리나라의 간통죄는 사형제도처럼 사문화되었다는 얘기들이 많이 있었다.

   

간통죄가 존치하고 있다고 해도 간통죄로 배우자를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간통죄는 당사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이고, 간통죄는 이혼을 전제로 하여 간통을 범한 배우자에게 이혼소송을 제기한 후에야 간통죄로 고소할 수 있는 등 까다로운 절차와 외도를 증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증거를 잡기 위해 흥신소를 동원하는 등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사회적 부작용도 심심찮게 있어왔다.

   

민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이혼사유에는 아래의 여섯 가지가 있다.

민법 제840(재판상 이혼 원인) 부부의 일방은 다음 각 호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가정법원에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 [개정 90·1·13]

1. 배우자에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2.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

3.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4.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5.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아니한 때

6.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그런데 840조 제6호에서는 이혼사유를 낱낱이 열거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그 사유를 개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에서는 이혼사유를 좁게 해석하는 유책주의를 따르고,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혼사유를 조문에 열거한 것 외에 즉, 6호를 넓게 해석하는 파탄주의를 따르고 있다. 유책주의(有責主義)란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 제도를 말한다. 19659월 대법원은 혼인생활을 파탄 낸 책임이 있는 남편은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데, 이는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 유책주의를 채택한 최초 판례다. 이 판례 이후 우리 법원은 유책주의 입장을 유지해 왔는데, 시대가 변하면서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지를 떠나 현실적으로 혼인 생활을 이어갈 수 없다면 이혼을 인정해야 한다는 파탄주의(破綻主義)를 적용하자는 움직임이 계속돼 왔다. 이에 대법원은 유책주의 원칙 하에서 예외적으로 파탄주의 적용 범위를 점차 늘려왔다.

 

한편, 대법원은 2015915바람을 피우는 등 결혼 생활을 깬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 청구를 할 수 없다.’며 유책주의에 대한 기존 판례를 유지했다. 하지만 대법관 13명 가운데 6명은 결혼 생활이 이미 파탄 났다면 실체 없는 혼인관계를 해소하는 게 맞다는 반대 의견을 내어, 앞으로도 유책주의와 파탄주의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간통죄 폐지를 기화로 민법상 이혼사유도 유책주의에서 파탄주의로 옮겨가는 듯한데, 문제는 이혼이 쉬워지면서 한쪽 배우자의 생존권이 위협받는데 있다. 우리나라 이혼사유의 80%는 민법 제8406호에 해당되며 그 외 제1~5호의 사유로 이혼하는 비율은 20%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러니까 당사자의 행복추구권이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싫은 사람과 억지로 얽매여 살지 않겠다는 추세가 요즘의 현실이다. 이미 마음이 떠난 사람을 법으로 강제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인 것 같고 개인적으로도 파탄주의의 흐름에 따르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이혼을 하면 우리나라 관행상 여성 배우자가 일방적으로 더 큰 피해를 보았다. 경제적 능력이 남성에 비해 열악한데다 노후 준비도 안 되어 있고 대부분 남편의 수입에 의존해 살다가 갑자기 갈라서는 경우에 허허벌판 버려진 고립무원의 신세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혼에 따른 부부별산제 원칙에 따라 재산을 나누기는 하겠지만 서민들의 재산이 많아 보아야 노후를 보장받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남편(아내)이 이혼 전에 미리 나눌 재산을 몰래 타인의 명의로 빼돌리거나 매각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왔다.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남성 중심의 호적을 유지하여 왔고, 집 계약에 있어서도 부부 공동명의보다는 남편 명의로 등재하는 게 관행이어서 이혼 시 여성 배우자의 생존권이 더 위협받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요즘은 이러한 실정을 감안하여 여성 배우자를 더욱 폭넓게 보호하려는 판결로 나아가고 있다. 가령 황혼이혼의 재산분할에 있어 남편의 공무원연금청구권의 공동분할을 인정하는 경우 등이다.

 

그나마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유책 배우자와 그 상대방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이다. 통상 상한선이 거의 정해져있어서 예전에는 3천만원이 최대였고 지금은 4~5천만원으로 올랐다고 하는데, 이 금액으로는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사람 사는 것이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도 이혼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돈으로 계량화되고 돈으로 재단된다. 앞으로 간통죄가 폐지되고 나면 더욱 이러한 풍토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생각된다. 바람을 피운 유책 배우자라 할지라도 신체상 구속을 받지 않기 때문에 돈이면 거의 해결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나쁘게 생각하면 돈 많은 사람은 얼마든지 바람을 피워도 법적으로 제재할 수단이 없고, 돈으로 무마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이를 막을 뚜렷한 대안도 없는 실정이다. 경제가 위축되고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이혼이 더욱 늘어가는 추세이지만 아직 그 당사자를 보호할 뚜렷한 대책은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법원에서는 이혼에 따른 피해 구제책을 세심히 강구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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