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평전 박스 세트 - 전2권
수징난 지음, 김태완 옮김 / 역사비평사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사서(四書)를 집대성한 주자는 조선 성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중국 고대 경전의 체계화에 일등공신의 역할을 하신 분이다. 주희의 일생을 낱낱이 파헤쳐 일생일대의 저작을 완성한 저자 수징난의 공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번역한 김태완 역자의 노고에 위로를 전한다. 대작을 꼭 읽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두고 국정화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결국 국정화하기로 결론이 났는데, 찬반 논란이 뜨겁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반대 여론이 조금 우세한 가운데 집권 여당에서 국정화를 밀어붙이고 야당에서는 적극 반대하고 있는 형세다. 왜 정치권(현 집권당)에서는 국정화를 추진하는가? 그들의 말대로 우리 역사가 너무 좌파적이고 진보적으로 기술되어 그런가. 아니면 자라나는 중,고생이 검정화된 역사교과서로 배우면 패배의식에 빠지고, 주체의식이 결여되기 때문인가. 갈수록 다원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역사에 대한 인식을 획일화하여 가르치는 것은 세계화의 추세에도 역행하는 것 같다. 어떻게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오직 한 가지로 고착하려 드는지 의문스럽다. 

  

우리 반만 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사실 고려시대 이전의 역사는 역사적인 사실을 뒷받침할 자료가 너무도 빈약하다. 900여회의 외침(外侵) 속에서 그 많던 자료가 모두 불타 버렸는지, 아니면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식민사관에 의한 조선사를 편찬하면서 어용학자들이 우리의 고대 역사자료를 모두 불태우거나 일본의 밀실 창고로 빼돌렸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을 살펴 보아도 우리 고대 역사만큼 사료가 부실한 민족도 드물 것이다. 그러니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하려면 사료가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단군신화를 비롯한 고대사 부문의 기술은 이를 입증할 자료가 없어 거의 신화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부 학자들을 중심으로 주체사관을 정립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조선 중기 안정복의 동사강목, 유득공의 발해고, 말기 신채호의 조선 상고사나 이암의 환단고기, 박은식의 한국통사처럼 우리 고대 역사를 자주적 사관으로 역사를 해석하려는 소장파가 있지만 아직 기존의 사관을 뒤엎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역사는 랑케가 주장한 사실로서의 역사와 카가 주장한 기록으로서의 역사로 구분하는데,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의 결정적 차이는 '가치 부여'입니다. 어떤 가치나 평가를 내리지 않고 무미건조하게 사실만을 나열한다면 그것은 사실로서의 역사이며, 반대로 어떤 가치나 평가를 내려 규범적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기록으로서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왕조시대 사관들이 역사를 기록할 때에는 사실로서의 역사보다는 기록으로서의 역사에 무게를 둔 것 같습니다(조선왕조실록은 예외).  역사의 기술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역사적 사실로서의 기록보다는 집권층을 대변하는 사관의 입맛에 맞게 기술하였던 것입니다. 조선시대 문종때 쓰여진 고려사는 조선의 입장에서 역성혁명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쓰여진 기록으로서의 역사에 가까운 사서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처럼 역사서는 당대의 집권층의 의도에 맞게 기술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새삼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문제도 이런 역사적 사실에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똑같은 역사적 사실을 두고 집권층이 바뀔 때마다 시각이 다른 것은 그들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겠지요. 새누리당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적 정통성과 친일문제 때문에 중,고교 역사교과서를 그들의 기호에 맞게 윤색하려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러한 사례는 과거의 역사를 돌이켜 보아도 비일비재했던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역사를 기술하되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태어난 우리나라, 우리 민족에 대해 좋게 쓰는 게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고대 역사에 있어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식민사관처럼 주변국의 역사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서로 조화를 이뤄서 기술될 때 역사에 대한 '가치 부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작금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문제도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자신들의 입지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는 어리석음이 범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염려가 됩니다. 핍박과 고통으로 점철된 우리의 역사라 할지라도 그것이 진실된 우리의 역사입니다. 유대인이 2000여 년간의 온갖 핍박과 고통 속에서 꿋꿋이 재기하여 세계에 우뚝 섰듯이 우리 민족도 과거 변방에 지나지 않았을망정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면 됩니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거울삼아 재기의 발판으로 삼으면 그보다 좋은 교훈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를 왜곡하여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잘못된 역사교육을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입니다. 유시민의 한국현대사 읽기도 기존 시각과는 다른, 사실로서의 역사 위에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잘 가미된 훌륭한 역사서라 생각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 여기 깨어있기
법륜 지음 / 정토출판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들의 생각이나 의견, 의지는 각자의 경험과 자란 환경 등에 의해 형성됩니다. 어떤 환경에서 보고 듣고 자랐느냐에 따라서 일본말도 하고 한국말도 하고 중국말도 하고 몽골말도 하듯이, 어떻게 글자를 익혔느냐에 따라서 한글도 쓰고 영어도 쓰고 일본어도 쓰지요. 어떤 음식을 먹고 자랐느냐에 따라서 마늘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단무지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것은 흰 종이에 어떤 물감을 들이느냐와 같은 문제입니다. 어떤 색깔이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자연에는 한 가지 종류, 한 가지 빛깔, 한 가지 모양의 꽃만 있는 게 아닙니다. 수만 가지 종류, 수만 가지 색깔, 수만 가지 모양의 꽃이 있듯이 인류는 이렇게 이 세상에 각양각색의 풍성한 문화를 만들어왔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자연의 원리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삶의 모습을 보면 몇 가지 종만 지구상에 남기고 나머지 종은 다 없애려는 것 같습니다. 특정한 종류의 색깔과 모양을 가진 꽃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없애려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는 한 가지 문화, 한 가지 종교, 한 가지 언어 등 한 가지를 중심에 놓고 나머지는 다 열등하고 나쁜 것처럼 생각합니다.

  

인류가 수십만 년에 걸쳐 축적해온 수만 가지 문화와 언어와 종교와 민족이, 마치 자연계에서 생물종이 사라지듯, 지금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생물종을 보호하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이런 갖가지 소수민족, 소수종교, 소수문화들을 보호하는 것은 우리 인류에게 아주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런데 자연에 대한 보호, 생물종에 대한 보호에는 눈을 뜨면서 인류의 다양한 문화를 보호하는 데는 아직 눈 뜨지 못한 걸 보면 우리는 아직도 정신문화 수준이 낮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는 개개인 저마다의 생각과 습관, 느낌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지요. 남은커녕 자신의 아내나 남편처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취향조차 존중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의 생각, 자기의 습관, 자기의 이념, 이것을 중심으로 놓고 다른 것을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에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상대가 미워지고 원망이 듭니다. 우리가 괴롭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자기만이 옳다는 뜻입니다. 자기 것만 고집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그것만 내려놓으면 화날 일도 없고 짜증날 일도 없고 미워할 사람도 없습니다.

  

다 자기 취향이고 생긴대로 사는 것이니 무조건 그냥 놓아두고 살자는 말이 아닙니다. 자연에 수만 가지 꽃이 있고 수만 가지 식물이 있지만 내가 사는 내 뜰에는 내가 좋아하는 꽃을 심을 수 있는 자유 또한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내 삶에 있어서는 내 생각을 중심으로 해 놓고 살 수가 있습니다. 자기 생각과 맞는 사람하고 살 수도 있고 뜻이 맞는 사람끼리 살 수도 있어요. 다만 자기의 뜻과 맞지 않는다고 남을 미워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말입니다. 저 사람의 얼굴이 내 뜻에 맞지만 생각은 내 뜻에 안 맞는다고 하면 꽃 색깔은 마음에 드는데 모양은 마음에 안든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꽃은 그 종에 그 모양에 그 색깔인 존재입니다. 그걸 받아들이면 통째로 받아들이고, 싫으면 통째로 심지 않으면 되는데 개중 빛깔만 가져오려 들거나 모양만 가져오려 들면 괴로움이 생깁니다.

  

그러니 우리가 사람을 만나 함께할 때는 우선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어떤 꽃을 선택할 것인지는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꽃의 모양과 빛깔 중에 어느 하나만 좋고 어느 하나는 싫다 하면 그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에요. 그러니 한두 가지가 좋아서 받아들였다면 그 나머지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결혼할 때도 그런 몇 가지 선택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으면 혼자 사는 게 낫습니다. 마음대로 하고 싶으면서 같이 살고 싶다면 갈등이 생겨요. 가고 싶으면 가고, 오고 싶으면 오고, 저처럼 어떤 목표를 두고 함께하는 일 외의 개인적인 문제에서는 별로 구애를 받고 싶지 않다면 혼자 살아야 해요. 그런데 결혼을 하려면 자기 지향에만 딱 맞게 사는 게 아니라 상대의 요구에도 맞춰줘야 합니다. 휴일에 남편과 카페에서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꿈이라는 여자와 결혼했다면, 남편은 무슨 일을 하러 다니든 일주일에 한 번쯤은 아내의 요구를 들어줘야 해요. 그걸 해 주지 않으면 불평이 생깁니다. 그런 소망을 가진 사람이 잘못인 건 아닙니다. 그런 소망을 가진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할 때는 자기의 삶 속에서 그걸 들어줄 시간을 내야 하지요. 그런데 그런 것을 들어줄 시간을 내고 싶지 않다면 그런 사람과 결혼하지 말았어야지요. “당신은 일이 중요해, 내가 중요해?” 결혼하면 남편들은 부인에게 이런 소리를 많이 듣게 됩니다. 그러니 선택을 해야 됩니다. 사랑이 중요한 지 종교가 중요한 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게 어찌보면 우스운 것 같지만 그게 인간 심리입니다. 인간은 다 자기가 귀하게 여기는 상대가 자기 역시도 귀하게 여겨 주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커피를 마실 때는 커피가 중요하지 누구와 마시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커피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마시느냐가 중요한 사람들도 있어요. 그럴 때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들은 그렇게 조건을 내거는 사람을 한심하게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건 우리 생각일 뿐입니다. 그냥 그 사람은 그런 특징을 갖고 있는 거예요. p.241~2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식인의 서재 - 그리고 그들은 누군가의 책이 되었다
한정원 지음, 전영건 사진 / 행성B(행성비)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내 서재는 바깥세상하고 상관이 없어. 서재가 그냥 마을이고 숲 속이고 자연이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지. 여기는 깊은 숲 속이고 놀이터야. 편안한 곳이지.”

 

나무가 울창한 숲에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면 나무는 태양을 받아 녹색 빛을 뿜어낸다. 나뭇잎에 반사된 빛은 숲을 더욱 환하게 만들고 새들의 이정표가 되어준다. 김용택 시인의 서재는 그런 녹색 빛으로 가득하다.

 

이곳 전주집 서재에 있는 책들은 1990년 이후의 책이 대부분이다. 그 이전의 책들은 모두 섬진강 시골집에 보관되어 있다. 양쪽 집으로 나누었는데도 그의 책들은 방 세 곳에 빽빽하게 들어찼다. 하지만 분류가 되어 있지는 않다. 딱히 책을 분류할 이유가 없다. 다시 보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여러 번 봤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그가 특별히 아끼는 책들은 서재 책상 위에서 그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시인과 함께 오랜 세월을 견뎌왔기에 그 깊이가 더 느껴지는 책들이다. 김수영 작가의 <퓨리턴의 초상>부터 21인 신작 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 17인 신작 시집 등 창비 시선에서 나온 여러 시집들이다. 그가 눈앞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또 손이 갈 때마다 꺼내 읽는 그의 보물들이다.

 

“책을 읽으면 정신이 부자가 되어서 세상을 마음대로 살 수 있어. 정신이 가난한 건 정말 불쌍한 거야. 아무리 좋은 차를 타고 돈이 많이 벌어도 정신이 풍요롭지 못하면 초라해 보이고 허약한 삶을 살게 되는 거지. 책을 읽어야 영혼이 풍족해 질 수 있어. 차근차근 조금씩 넓고 깊은 정신의 세계와 땅을 갖게 되는 거야. 그래서 난 또 부자야.”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카르트는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과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물질적인 충족에서 오는 만족은 일시적이지만 훌륭한 사람들과의 대화는 평생토록 마음을 부자로 만들어준다.

 

“책을 읽어야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게 되는 거야. 인류와 사회가 어디로 가는지 알려면 책을 봐야 해. 문학적 감성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세계를 제대로 보게 해 주는 힘이 되는 거야. 책을 안 읽는다는 건 우리가 사는 세계를 모른다는 거지. 그래서 책을 안 읽는 사람과 만나보면 지루하고 고루하고 답답하고 형식적이고 삶의 맛을 느끼지 못해. 캄캄해. 그냥.”

 

독서는 그의 일상이다. 책은 그 삶이 되었고, 그렇게 살다 보니 삶이 책이 되었다. 그는 삶을 공부라 했다. 그는 그렇게 책 속에서 삶의 진리를 발견하고 삶의 여러 모습을 글로 담아냈다.

 

그가 책장에서 항 뭉치의 습작노트를 꺼내 보여준다. 종이는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머금어 누런 황금빛이다. 그의 감성을 쏟아낸 시와 일기, 장르를 초월한 글들이 깨알같이 박혀 있다. 나는 거기에서 청춘 시절의 김용택을 만났다.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글들을, 시들을 주체할 길이 없어 종이 위에 쏟아낸 그 절실함의 흔적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웠다.

 

그는 그렇게 폭포처럼 글을 쓰고 또 책을 읽었다. 특히 시는 한 글자 한 글자 빼놓지 않고 꼼꼼하게 읽는다. 그는 글을 읽으며 눈에 새기고 가슴에 새긴다.

“책을 읽는다는 건 밥을 먹는 것과 같고 숨 쉬는 것과 같고 바람 같고 햇살 같은 거야. 시골집 책하고 여기 전주집 책하고 모아서 큰방에 정리하고 싶어. 나는 서재에 있으면 전 세계를, 우주를 다 돌아다니는 거야. 시인은 행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거든. 욕망이 큰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를 못해. 그런 사람들은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서재를 창조하지 못하거든.” 그에게 서재는 세상을 담은 그릇이며 자연이다. 그는 자연의 숲에서 책을 통해 세상을 본다.

 

“자연은 늘 완성되어 있어. 꽃이 피든 낙엽이 지든 열매를 맺든 매 순간이 완성된 상태인 거야. 그걸 볼 줄 알아야 해. 그래야 삶이 행복해. 자기가 하는 일만 알면 좁아져. 책을 봐야 무궁무진한 세상을 볼 수 있는 거야.” 그는 숲 속에 사는 행복한 시인이다. p.94~9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 - 이덕무 선집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9
이덕무 지음, 강국주 편역 / 돌베개 / 200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밖에 모르는 바보

 

남산 아래 어리석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말도 느릿느릿 어눌하게 하고, 천성이 게으르며 성격마저 고루하니 꽉 막혔을 뿐만 아니라, 바둑이나 장기는 말할 것도 없고 생계(生計)에 대한 일이라면 도통 알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남들이 욕을 해도 변명하지 않았고, 칭찬을 해도 기뻐하거나 즐거워하지 않았다. 오직 책 읽는 일만 즐겨, 책을 읽기만 하면 추위나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배가 고픈지도 모른 채 책만 읽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스물한 살이 된 지금까지 하루도 옛 책을 놓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기거하는 방도 무척 작았다. 하지만 동쪽과 서쪽과 남쪽에 각각 창(窓)이 있어 해가 드는 방향에 따라 자리를 옮겨 가며 책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자기가 아직 보지 못했던 책을 구해 읽게 되면, 그 즉시 만면에 웃음을 띠곤 했다. 집 사람들은 그가 만면에 웃음을 띠며 기뻐하면 필시 기이한 책을 구한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는 특히 두보(杜甫)의 오언 율시(五言律詩)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 시를 읊느라 앓는 사람처럼 웅얼거리기를 예사로 하였고, 시구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 심오한 뜻을 깨치게 되면 그만 기뻐서 벌떡 일어나 방 안팎을 서성이기도 했는데, 그럴 땐 마치 까마귀가 우짖는 소리를 내곤 했다. 어떨 땐 조용히 아무 소리도 없이 눈을 크게 뜨고 멀거니 보기도 하고, 혹은 꿈꾸는 사람처럼 혼자서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책밖에 모르는 바보’라 해도 그냥 씩 웃고는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아무도 그의 전기(傳記)를 써 주는 사람이 없기에 내 붓을 들어 그의 일을 써서 ‘책밖에 모르는 바보 이야기’를 짓는다. 그의 이름은 기록하지 않는다.

 

‘책밖에 모르는 바보’라는 말이 꼭 맞는, 이십대 젊은 시절 이덕무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간결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주는 문예 산문으로, 일종의 자화상인 셈이다. 이처럼 스스로에 대해 전기 형태로 기록한 글을 ‘자전(自傳)’이라 하는데, 이 글은 조선후기 자전을 대표하는 글로 종종 언급된다. P.117~118.

-------------------

 

먹을 게 없어서 책을 팔았구려

 

내 집에 있는 좋은 물건이라고 해 봐야 <맹자(孟子)>라는 책 하나가 고작인데, 오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돈 2백 푼에 팔고 말았소이다.

 

그 돈으로 배부르게 밥을 지어 먹고는 희희낙락하며 영재(泠齋 : 유득공의 호)에게 달려가 내 처신이 어떠냐고 한바탕 자랑했더랬지요. 영재 역시 오래토록 굶주림에 시달린 터라, 내 말을 듣고는 그 즉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팔아 버리고선 그 남은 돈으로 술을 사와 내게 대접하더이다. 그러니 맹자(孟子)가 친히 밥을 지어 내게 먹이고 좌구명(左丘明 : 춘추좌씨전의 저자)이 손수 술을 따라 내게 권한 것과 다를 게 무어 있겠습니까?

 

그날 영재와 나는 “우리가 이 책들을 팔지 않고 읽기만 했더라면 어찌 조금이나마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겠나?”라고 하면서, 맹씨(孟氏)와 좌씨(左氏)를 칭송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때 문득, 진실로 글을 읽어 부귀를 구하는 것이 요행을 바라는 얄팍한 술책일 뿐이요, 책을 팔아 잠시나마 배부르게 먹고 술이라도 사 마시는 게 도리어 솔직하고 가식 없는 행동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 참으로 서글픈 일이외다. 족하(足下 : 상대를 높여 부르는 말인데 ‘이서구’를 가리킴)는 어떻게 생각하실는지요?

 

가난한 선비의 삶이 짧은 편지 속에 가식 없이 드러나 있다. 시종 유머러스하게 써 내려갔지만, ‘부귀를 얻기 위해 글을 읽기보다는 차라리 책을 팔아 끼니라도 잇는 게 낫다.’라는 마지막 대목이 이르면, 단순히 해학적인 글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그 속에 서글프면서도 불우한 심정이 짙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P.156~1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