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 (보급판) - 사기 130권을 관통하는 인간통찰 15
김영수 지음 / 왕의서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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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최고의 태평성세는....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만약 이를 목표로 삼아 요즘 풍속을 옛날로 돌이키려하거나 백성의 눈과 귀를 틀어막으려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눈과 귀는 아름다운 소리나 좋은 모습을 보고 들으려 하고, 입은 맛있는 고기 따위를 먹고 싶어 한다. 몸은 편하고 즐거운 것을 추구하고, 마음은 권세와 유능하다는 영예를 자랑하고 싶어 한다. 이런 풍속이 백성들의 마음속까지 파고든 지는 벌써 오래다. 그러므로 묘한 이론을 가지고 집집을 교화시키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다.

  

사람마다 자신의 일에 힘쓰고 각자 일에 즐거워하면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밤낮 멈추는 때가 없다.

 

세간에 천금을 가진 부잣집 자식이 길거리에서 죽는 법이 없다.’고 하는데 빈말이 아니다. 천하 사람들이 왁자지껄 모여드는 것도 이익 때문이고, 소란을 떨며 흩어지는 것도 이익 때문이다. 1,000승의 마차를 가진 왕, 1만 호를 가진 제후, 100채의 집을 가진 갑부들도 가난을 걱정하는데 하물며 호적에 간신히 이름이나 올라 있는 백성들이야 말해서 무엇 하랴!

 

물자를 축적하는 이치는 물건을 온전하게 보존하고 힘쓰는 데 있으니 자금이 (흐르지 않고) 막히게 해서는 안 된다.

 

재물과 자금은 물이 흐르듯 원활하게 유통시켜야 한다.

 

무릇 공자의 이름이 천하에 두루 알려지게 된 까닭은 (부유한) 자공이 공자를 앞뒤로 모시고 도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세력을 얻으면 세상에 더욱 드러난다는 말이 아닌가?

 

그들(상인들)1만 승()의 제왕과 대등한 예를 나누고 명성을 천하에 드러냈으니 이 어찌 그들의 재력 때문이 아니리요?

 

관중 지역 땅은 천하의 3분의 1이고 인구는 10분의 3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부를 계산해보면 천하의 10분의 6을 차지하고 있었다.

 

현자가 조정에 들어가 일을 깊게 도모하고 정사를 토론하고 믿음과 절개를 지키며 죽는 것이나, 선비가 동굴에 숨어 명성을 드러내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결국은 부귀를 위한 것이다.

 

()는 인간의 본성이라 배우지 않아도 모두들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속담에 '100리 먼 곳에 나가 땔나무를 팔지 말고, 1,000리 먼 곳에 나가 곡식을 팔지 말라.‘고 했다. 1년을 살려거든 곡식을 심고, 10년을 살려거든 나무를 심고, 100년을 살려거든 덕을 베풀어야 한다.

 

오늘날 관에서 주는 녹봉도 없고 작위나 토지에 따른 수입도 없는데, 마치 이런 것을 가진 사람들처럼 즐겁게 사는 사람이 있으니 이들을 일러 소봉(素封)’이라 한다. 이들은 조세수입(오늘날 이자수입)으로 사는 것이다.

 

재산이 없는 사람은 힘써 생활하고, 조금 있는 사람은 지혜를 써서 더 불리고, 많은 사람은 시기를 노려가며 이익을 더 얻으려 한다. 이것이 삶의 진리다.

 

생활을 꾸려나가는 데 몸을 위태롭게 하지 않고서 돈 버는 것은 현명한 자들이 힘쓰는 바다. 따라서 가장 기본이 되는 농업으로 부를 얻는 것이 최상이고, 말류인 장사로 치부하는 것이 그 다음이며, 간악한 수단으로 부자가 되는 것이 최하책이다. 반면에 세상을 등지고 깊은 산에 사는 것도 아니면서 벼슬하지 않으려는 이상한 사람들의 행동이나, 오랫동안 궁색하게 살아오면서 말로만 인의(仁義) 어쩌구 하는 자들 역시 부끄러운 일이다.

 

무릇 보통사람들은 자기보다 열 배 부자에 대해서는 헐뜯고, 백 배가 되면 두려워하고, 천 배가 되면 그 사람의 일을 해주고, 만 배가 되면 그의 노예가 된다. 이것이 사물의 이치다.

 

근검절약하고 부지런히 일하는 것은 부자가 되는 바른 길이다.

 

부자가 되는 것에 정해진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재물에 주인이 정해진 것도 아니다. 재능이 있는 자에게 재물이 모이고, 못난 사람에게는 기왓장 흩어지듯 재물이 흩어진다. 천금의 부자는 한 도시의 군주와 맞먹고, 수만금을 모은 자는 왕처럼 즐겼다. 이것이 소봉(素封)’이다.

 

어떤가? 이 정도면 오늘날의 전문적이고 설득력 있는 경제론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뿐더러 어떤 면에서는 한 걸음 앞서 있지 않은가? 특히 정치와 경제를 연계시키면서, 가장 못난 정치를 백성들과 더불어 부()를 다투는 것으로 본 대목에 이르러서는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그 밖에 천금을 가진 부잣집 자식(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재벌가 자녀)이 저잣거리에서 죽는 법이 없다.’는 말이나, ‘재산이 자기보다 열 배 이상이면 헐뜯고, 백 배 이상이면 두려워하고천 배 이상이면 그 사람 일을 해주고, 만 배 이상이면 노예가 된다.’는 대목 등은 지금 현실과도 너무 딱 맞아 떨어지는 말들이어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p.51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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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 (보급판) - 사기 130권을 관통하는 인간통찰 15
김영수 지음 / 왕의서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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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친구>라는 영화는 우정의 변질을 통해 인간관계의 덧없음을 잘 보여주었으나, 오히려 우정의 참뜻을 제대로 모르는 철딱서니들은 깡패들의 싸구려 우정과 의리에 환호를 보냈다. 어떤 종류가 되었건 인간관계라는 것이 복잡하고 미묘한 것임을 잘 보여준다.

   

사마천은 인상여와 염파의 문경지교를 아름답게 그리고 난 다음 또 한 쌍의 문경지교를 소개하는데, 이번에는 인상여와 염파의 우정과는 사뭇 다른 경우이다. 사마천의 문경지교로 맺어진 인간관계가 변질되고 끝에 가서는 서로 원수가 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착잡하게 만들 뿐 아니라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회의까지 느끼게 한다. 얄미우리만치 진솔한 <사기>의 매력이 바로 이런 대목에서 번득이는데, <사기>는 인간과 세상이 그러하듯 종종 두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와서 선택과 사색을 다그치곤 한다.

   

대량(大梁 : 지금의 하남성 개봉시)출신의 장이(張耳. 기원전?~기원전202)와 진여(陳餘. 기원전?~204)는 모두 전국시대라는 약육강식의 시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이었다. 나이가 약간 위인 장이는 위나라 현령으로 있으면서 진여를 지극 정성으로 돌봐주었고, 진여도 그런 장이를 친형 이상으로 존경하며 따랐다. 그야말로 두 사람은 문경지교를 나누는 사이였다. 두 사람의 우정은 점차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위나라의 숨은 인재들이란 명성을 얻으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기원전 225년 위나라가 진나라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멸망했다. 그로부터 몇 년 동안 진나라는 차례차례 초제나라 등을 멸망시켜 마침내 천하 통일에 성공했다. 그 때가 기원전 221년이었다. 진나라는 위나라의 인재로 명성이 높았던 장이와 진여에 대한 체포령을 내렸고, 두 사람은 함께 진(: 하남성 회양현)으로 도망쳐 신분과 명성을 숨긴 채 성문을 지키는 일을 하며 지냈다. 두 사람은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위기를 피하고 난관을 헤쳐 나갔다. 이렇게 10여 년 인고의 세월을 보내는 사이 진시황이 갑자기 쓰러졌고, 천하는 다시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었다.

   

기원전 209년 평범한 고용 농민 출신인 진승이 진의 타도를 외치며 농민들을 모아 들불처럼 천하를 휩쓸었다. 이때 장이와 진여는 진승 밑에 들어가 교위(장군의 보좌관) 벼슬을 받고 조나라 땅을 공격했다. 그런데 얼마 뒤 장이가 진나라 군대의 협격을 받아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목숨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을 친구진여는 이 위급한 상황을 알고서도 제때에 구원병을 보내주지 않았고, 이 일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는 틈이 생기고 말았다.

   

이윽고 초패왕 항우가 진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관중지방을 압박함으로써 장이는 사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항우는 진나라에 대항해 일어난 군소 세력들에 대한 논공행상을 벌였는데, 장이가 상산왕에 임명된 데 비해 진여는 세 개의 현을 관할하는 작은 자리에 머무르는데 그쳤다. 진여는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었고,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분함과 억울함을 견디지 못한 진여는 제나라왕 전영을 부추겨 장이를 공격하게 하였다.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장이는 도망쳤다. 이렇게 해서 조나라 전체가 진여의 수중으로 들어갔으며, 진여에게 패해 각지를 전전하던 장이는 한왕 유방에게 투신했다. 이제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기원전 205, 항우에게 선전포고를 결행한 유방은 초나라로 진격하기에 앞서 사신을 보내 조나라의 협조를 구했다. 그러자 진여는 교환조건으로 장이의 목을 요구했다. 장이를 죽일 수 없었던 유방은 장이와 닮은 사람을 찾아 그 목을 베어 진여에게 보냈고, 진여는 약속대로 군사를 파견하여 유방을 도왔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 머리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진여는 군대를 바로 철수시켰고, 그 결과 유방과 등을 지게 되었다.

   

이듬해인 기원전 204, 유방은 한신과 장이를 보내 조나라를 공격했다. 이 전투에서 조나라는 크게 패했고, 진여 또한 전사했다. 그리고 장이는 조왕에 임명되었다. 이로써 우여곡절이 많았던 두 사람의 관계가 끝을 맺었다. 서로를 위해 목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았던 우정이 서로의 목을 원하는 원수관계로 변질되고서야 막을 내렸던 것이다. 이합집산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난세의 인간관계는 죽음으로 맺어진 문경지교조차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고, 같은 하늘 밑에서는 함께 살 수 없는 원수지간으로 만든다. 인간관계를 이렇게 비정하게 변질시키는 요인은 무엇일까? 사마천이 <장이진여열전>의 마지막 대목에 남긴 논평이 아쉬운 대로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장이와 진여는 세상에서 괜찮은 사람이라는 칭찬이 자자하던 자들이었다. 그들의 식객은 물론 마부에 이르기까지 천하의 준걸이 아닌 사람이 없었으며. 그들이 머물던 나라에서 경이나 재상이 되지 않은 자들이 없었다. 그러나 장이와 진여는 당초 가난하고 보잘것없었을 때 목숨을 걸고 서로 믿기로 맹세하였으니, 서로 돌아보고 의심하는 일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나라에 몸을 맡겨 권력을 다투게 되자, 마침내 서로가 서로를 없애려 했다. 처음에는 서로 사모하고 믿는 마음이 그리도 진실하더니 뒤에는 어찌 그리도 심하게 서로 배반하게 되었는가? 그들이 권세와 이익으로 사귀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비록 그들의 명성이 높고 빈객이 많았다고는 하나, 그들이 걸어온 길은(나라를 서로 사양하면서 개인적 이익을 초월했던) 오나라의 태백이나 연릉(延陵)의 계자(季子)와는 엄연히 달랐다.

   

사마천은 이 열전에서 진나라 말기에는 진에 대항했고 그 뒤 초한 전쟁의 격전지가 되었던 조나라의 상황과 이곳에서 일어나 활약한 장이와 진여의 시대적 역할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당시 숱한 영웅들의 반열에 올라 천하를 울렸던 장이와 진여의 진한 우정과 그 뒤 생사존망의 다급한 상황에서 오해로 인해 우정을 끊고 대립하다 결국은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과정을 안타까운 어조로 묘사했다. 이렇게 사마천은 두 사람의 결별을 대세에 따른 이해관계로 파악하고 있으나, 이 대목을 읽다 보면 이보다는 인간관계의 비정함에 울적함 속으로 빠져들곤 한다. 살아가면서 우리도 비정한 인간관계에 상처받고 때로는 거기에 동조하곤 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란, 인간의 마음이란 주변 환경에 따라 이해관계에 따라 쉽게 변질된다. 그렇기 때문에 삶과 죽음을 뛰어넘고, 빈부를 뛰어넘고, 신분을 뛰어넘어 진정한 우정을 쌓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 아닐까?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살아 있으면 우정의 진심을 알게 되고, 한 사람은 가난하고 한 사람은 부유하면 우정의 태도를 알게 되고, 한 사람은 출세하고 한 사람은 천하면 우정의 진정성이 나타난다.”[<급정열전> 중 적공(翟公)의 말]는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변질된 우정만큼 악취 나는 인간관계도 없다. 변질은 늘 애당초의 진의마저 의심하게 만들고, 나아가서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회의까지 일게 한다. 인간관계가 참으로 어려운 까닭도 변질되어버린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늘 당혹스럽기 때문이다. P.206~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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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의 힘 - 반복되는 행동이 만드는 극적인 변화
찰스 두히그 지음, 강주헌 옮김 / 갤리온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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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킨스는 말년에 순회강연을 다녔다. ‘과학적 광고의 법칙을 주제로 한 그의 강연은 항상 수천 명이 모여들 만큼 인기가 있었다. 강단에서 그는 자신을 토머스 에디슨과 조지 워싱턴에 비교하며, 미래에 대한 예측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중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가장 눈에 띈다.) 그러나 열망이나 습관의 고리를 형성하는 신경학적 근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결국 그로부터 70년에 지난 후에야 MIT과학자들과 볼프람 슐츠의 실험을 통해 열망이 습관 고리의 필수 요소라는 것이 밝혀졌다.  

 

홉킨스는 열망이라는 개념을 몰랐는데도 어떻게 양치질 습관을 미국 국민들에게 심어줄 수 있었을까? 홉킨스는 몇 십 년 뒤에야 MIT와 슐츠의 실험실에서 확인된 원칙을 이미 사용하고 있었다. 홉킨스는 자서전에서 펩소던트에 관련된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치태에서 기막힌 신호를 찾아냈다고 떠벌렸고, 자기가 소비자들에게 아름다운 치아라는 분명한 보상을 제공한 최초의 광고인이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홉킨스보다 먼저 그런 전술을 생각해 낸 사람들이 많았다. 홉킨스가 펩소던트의 존재를 알기도 전에 잡지와 신문을 채운 다른 치약의 광고들이 그 증거다.

    

펩소던트보다 먼저 시판된 셰필드 박사의 크렘 덴티프리스의 광고를 보자.

이 제품에 함유된 성분은 잇몸 주변에 축적되는 치석을 예방해 줍니다. 지저분한 치석을 깨끗하게 제거하세요!” 홉킨스가 치의학 교과서를 뒤적이고 있을 때 등장한 광고도 있었다. “당신의 하얀 치아가 필름에 덮여 있습니다. 새니톨 치약이 필름을 제거하여 원래의 하얀 치아를 되찾아 줄 겁니다.” 또 다른 광고도 있었다. “아름다운 미소는 아름다운 치아에 달려 있어요. 아름다운 그녀의 비밀은 매끄럽고 하얀 치아. 에스에스 화이트 치약을 써 보세요!” 홉킨스가 치약 광고에 뛰어들기 수년 전부터 많은 광고인이 펩소던트와 똑같은 식으로 광고했다. 모든 광고가 치태 제거를 약속했고, 아름답고 하얀 치아를 보상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어떤 광고도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그러나 홉킨스의 광고가 나가자마자 펩소던트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펩소던트는 어떤 점에서 달랐던 것일까? 원숭이 홀리오가 손잡이를 당기고, 주부들이 침대를 정리한 후에 페브리즈를 뿌리도록 유인했던 것과 같은 요인들이 홉킨스의 광고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펩소던트는 바로 열망을 만들었던 것이다.

   

홉킨스는 자서전 어디에서도 펩소던트의 성분에 언급하지 않았지만, 특허 출원서에 언급된 제조법과 회사 기록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당시의 다른 치약들과 달리, 펩소던트에는 구연산과 박하유를 비롯한 여러 화학 물질이 함유되어 있었다. 펩소던트 발명가는 이런 성분들을 이용해 치약 맛을 산뜻하게 만들었는데, 그 성분들이 혀와 잇몸에 시원하면서도 얼얼한 느낌이 들게 했다.. 이 효과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다른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

   

펩소던트가 시장을 석권하기 시작하자 경쟁 회사 연구원들이 그 이유를 알아내려고 펩소던트를 분석했다. 그들이 알아낸 결과에 따르면 펩소던트를 사용하는 걸 깜빡 잊으면 입안에 시원하고 얼얼한 느낌이 없어서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든다고 대답하는 소비자들이 많았다. 소비자들은 그 약간의 자극을 기대하고 열망했던 것이다. 그런 자극을 받지 않으면 입이 깨끗해지지 않은 기분이었던 것이다.

   

클로드 홉킨스는 아름다운 치아를 판 것이 아니었다. 그는 감각을 팔았다. 사람들은 시원하고 얼얼한 느낌을 열망하게 되었고 그런 느낌을 청결과 동일시하면서 양치질이 습관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홉킨스가 실제로 판 것이 무엇인지 파악한 다른 회사들도 펩소던트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수십 년 후에는 거의 모든 치약에 입안에 얼얼한 느낌을 주는 다양한 화학 물질이 첨가되었다. 그러자 펩소던트의 판매 곡선은 하락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치약에는 양치질 후 입안에 얼얼한 느낌을 주는 첨가물이 함유되어 있다.

   

P&G에서 오랄비 칫솔과 크레스트 어린이 치약의 브랜드 매니저를 지낸 트레이시 싱클레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소비자에게는 그 제품이 효과가 있다는 어떤 신호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치약 맛을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습니다. 블랙베리 맛이 나게 할 수도 있고 녹차 맛이 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어떤 맛이 나든지, 반드시 시원하고 얼얼한 느낌을 줘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느낌이 나야 입이 깨끗해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얼얼한 느낌이 치약의 효능을 더 좋게 해 주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양치질을 한 후에는 그런 느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공식을 사용하면 누구나 새로운 습관을 형성할 수 있다. 운동을 더 하고 싶은가? 눈을 뜨자마자 체육관으로 직행하는 등의 신호와, 운동을 끝낸 후에 마시는 스무디 같은 보상을 선택하라. 그리고 스무디에 대해서, 혹은 운동을 끝낸 후에 밀려오는 엔도르핀에 대해서 생각하라. 그런 보상을 기대하라. 결국에는 그 열망이 당신을 매일 체육관으로 끌어갈 테니까.

  

새로운 식습관을 형성하고 싶은가? 미국 체중조절 연구회와 관련된 연구자들이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의 식습관을 조사해 보니 대상자의 78%가 매일 아침을 먹었다. 아침이 그들에게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신호를 제공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은 거의 전부가 다이어트를 충실히 따랐을 때 얻은 특별한 보상을 머릿속에 그렸다. 물론, 그 보상은 그들이 신중하게 선택한 것이었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었다. 유혹이 있을 때는 보상에 대한 열망에 집중하고, 그 열망을 가벼운 집착으로까지 승화시켰다. 그 보상에 대한 열망 덕분에 그들은 다이어트를 망쳐 버릴 유혹을 떨쳐 낼 수 있었다. 요컨대 열망이 습관 고리를 지배했던 것이다.

   

기업이 사람들의 열망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가 매일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일상적인 행위 중에 습관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예컨대 우리는 음식을 조금 덜 짜게 먹고 물을 더 많이 마셔야 한다. 채소 섭취를 늘리고 지방 섭취는 줄여야 한다. 비타민을 복용하고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야 한다. 매일 아침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걸 습관화하면 피부암 발병 가능성을 현저하게 낮출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아침에 이를 닦지만, 매일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사람은 10%가 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자외선 차단제를 일상적 습관으로 삼겠다는 열망이 없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이 자외선 차단제에 얼얼한 느낌 혹은 피부에 뭔가를 발랐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을 첨가함으로써 자외선 차단제를 습관화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얼얼한 느낌에 대한 열망이 이를 닦아야겠다는 생각을 일깨워 주듯이 자외선 차단제가 그와 똑같은 기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기업들이 이미 수많은 제품에서 비슷한 전술을 사용해 왔다.

   

트레이시 싱클레어는 이렇게 말했다.

거품은 엄청난 보상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샴푸에는 거품이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거품을 만드는 화학 물질을 첨가한 이유는 사람들이 머리를 감을 때마다 거품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세탁용 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치약도 똑같습니다. 요즘 보든 회사가 치약을 만들 때 거품을 잘 나게 하려고 소듐 라우레스 설페이트라는 계면 활성제를 첨가합니다. 청결 효과는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입 주면에 거품이 있으면 사람들이 더 좋아하거든요. 소비자가 그런 거품을 기대하는 순간부터 습관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열망은 습관을 만드는 원동력이다. 열망을 자극하는 방법을 알아내면 새로운 습관을 더 쉽게 형성할 수 있다. 이런 점은 1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매일 밤, 무수한 사람들이 얼얼한 느낌을 얻고 싶어 이를 북북 문지른다. 매일 아침 수많은 사람들이 엔도르핀 분비를 느끼고 싶어 운동화를 신는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설거지를 끝낸 후에, 혹은 침실을 깔끔하게 정돈한 후에 페브리즈를 뿌린다. P.9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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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시 - 증보
김희보 엮음 / 가람기획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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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밤에

 

           김용호(1912~1973)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콩기름 불

실고추처럼

가늘게 피어나던 밤

    

파묻은 불씨를 헤쳐

잎담배 피우며

고놈, 눈동자가 초롱 같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

바깥엔 연방 눈이 내리고,

오늘 밤처럼 눈이 내리고,

   

다만 이제 나 홀로

눈을 밟으며 간다.

 

오우버 자락에

구수한 할머니의 옛 얘기를 싸고,

어린 시절의 그 눈을 밟으며 간다.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누구나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 하나쯤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간다. 세상살이가 겨울 찬바람처럼 매몰차고 시릴지라도 혈육의 한없는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자란 소싯적 추억 때문에 험난한 세파도 거뜬히 이겨내고,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대물림 사랑을 이어간다.

    

어릴 적 추억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인생의 튼실한 밀알이다. 이제 너무나 변해버린 세상 탓에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지만, 가끔씩 옛날의 추억을 회상하며 빙그레 웃음 짓는다. 세파에 조금도 물들지 않았던 티없이 맑은 시절, 먹을 게 귀해 늘 고구마, 밤을 군것질 삼아 잿불에 구워먹었어도 세상에 부러울 게 없었다.

  

요즘 같이 매섭게 추운 날이면, 몽실하게 군불 지핀 아랫목에서 올망졸망 할머니의 얘기를 들으며 몸을 녹였다. 시간에 쫓겨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의 한켠에서 종종 푸근하고 여유롭던 옛 시절이 그립다. 그래서 이 시를 읽을 때면 근심 걱정 없이 마냥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희열에 빠져든다. 눈이 내리고 찬바람이 쌩쌩 부는 날이면 시인이 느꼈던 할머니의 온정처럼, 나도 타임머신을 타고 잠시 그 시절로 돌아가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을 알알이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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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강설 사서삼경강설 시리즈 5
이기동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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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三(구삼)君子終日乾乾 (군자종일건건)하여 夕惕若(석척약)이면 ()하나 无咎(무구)하리라. 象曰終日乾乾(상왈종일건건)反復道也(반복도야). 文言曰九三曰君子終日乾乾夕惕若厲无咎(문언왈구삼왈군자종일건건석척약려무구)何謂也(하위야). 子曰君子(자왈군자)進德修業(진덕수업)하나니 忠信(충신이)所以進德也(소이진덕야). 修辭立其誠(수사입기성)所以居業也(소이거업야).

 

知至至之(지지지지)可與幾也(가여기야)知終終之(지종종지)可與存義也(가여존의야)是故(시고)居上位而不驕(거상위이불교)하며 在下位而不憂(재하위이불우)하나니 ()乾乾(건건)하여 因其時而惕(인기시이척)하면 雖危(수위)无咎矣(무구의)리라. 終日乾乾(종일건건)行事也(행사야). 終日乾乾(종일건건)與時偕行(여시해행)이라. 九三(구삼)重剛而不中(중강이부중)하여 上不在天(상부재천)하며 下不在田(하부재전)이라. ()乾乾(건건)하여 因其時而惕(인기시이척)하면 雖危(수위)无咎矣(무구의)리라.   

 

<국역>

구삼(九三)은 군자가 종일토록 노력하여 저녁때까지 애태우면 뼈를 깎는 아픔이 있지만 허물이 없을 것이다. 상에서 말했다. “종일토록 노력하는 것이 할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문언에서 말했다. “구삼(九三)에서 말하기를, ‘군자가 종일토록 노력하여 저녁때까지 애태우면 뼈를 깍는 아픔은 있지만 허물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덕()을 진전시키고 업()을 닦는다. 충과 신은 덕을 진전시키는 수단이 되고, 말을 가다듬고 그 정성스러운 마음을 간직하는 것은 수업을 하는 방법이 된다.

 

나아가야 함을 알아서 나아가면 조짐을 보고 처신할 수 있고, 마쳐야 함을 알아서 마치면 마땅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윗자리에 있으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아랫자리에 있으면서도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직 끙끙거리며 애쓸 따름이니, 그 처해 있는 상황으로 인하여 애태우면 비록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다.’ 종일 노력한다는 것은 일을 하는 것이다. 종일 노력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함께 행한다는 것이다. 구삼(九三)은 거듭 거듭 꿋꿋하면서 중심에 있지 않고, 또 위로는 하늘에 있지 않으며 아래로는 밭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노력하여 상황에 따라 끙끙거리면서 상황으로 인하여 애태우면 비록 위태롭지만 허물이 없을 것이다

  

<강설>

구삼(九三)은 인생에서는 30대에, 학교에서는 졸업반 학생에, 회사에서는 평사원의 말기에 해당한다. 이 경우에는 하층부의 마지막으로서 상층부로 진입해야 하는 시기이다. 물에 잠겨 있던 용이 물 밖으로 나와 하늘로 날아오르기 직전의 상태에 있는 것이고, 활주로로 달리기 시작한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오르기 직전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 시기는 상층부로 진입하는가 못하는가의 기로에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축적해온 힘을 총동원하여 전력으로 질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지쳐서 이때 좌절하고 만다. 그러한 사람들은 소인이다.

   

이 경우는 하늘을 날아야 하는 용이고, 왕이 되어야 할 왕자이므로 소인이어서는 안 된다. 전력을 다해 날아오르는 군자여야 한다. 이 고비를 넘어서 순조롭게 날아오르면, 그 다음에는 순조로운 길이 이어진다. 하늘로 이륙하는 비행기는 매우 힘들지만, 구만리 상공으로 날아오르고 난 뒤에는 평탄하게 운행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마라톤 선수가 경기를 할 때도 중간 지점 가까이에서 고비를 맞이한다고 한다. 죽을힘을 다해 달려서 이 고비를 넘기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달릴 수 있다고 한다. 구삼(九三)이 바로 이 고비를 만나는 때다. 그래서 군자가 종일토록 노력하여 저녁때까지 애태우면 뼈를 깎는 아픔이 있지만 허물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상에서 하던 일을 반복한다.’고 한 것은 상층부로 진입하기 위하여 계속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문언에서는 구삼(九三)이 처한 상황을 군자가 진덕수업해야 하는 상황으로 보았다. 진리를 터득하는 방법에는 대체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진리를 직접 실천하는 실천적 수양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먼저 그 진리를 인식하는 방법이다. 전자는 진덕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수업이다. 진덕의 방법은 일마다 진실하게 하고 미덥게 하는 것이 그 핵심이므로 충()과 신()을 수단으로 들었다. 또 수업은 진리를 인식하는 것인데, 그것은 마음속에 있는 성()을 인식하는 것이고 천명(天命)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은 마음속에 있으므로 성()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알아야 하고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말을 알아야 한다. 마음이 밖으로 표현되는 것이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을 가다듬고 그 성실한 마음을 간직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말을 가다듬어서 마음을 알고 성()을 알면 그 성()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에 성()을 발휘할 수 있다. ()이 발현되는 것이 성()이고 천명이 발현되는 것이 성()이기 때문이다.

 

구삼(九三)은 하늘로 올라가야 하고 지상의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조짐을 보아 하늘로 올라가야 하고, 올바른 도리로 땅의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구삼(九三)은 상층부로 진입하는 바쁜 시점에 서 있기 때문에 아랫사람들에게 교만하거나 뽐낼 시간적 여유가 없다. 또 하층부에 있는 것을 걱정할 여유도 없다. 오직 자기가 처한 상황을 알고 부지런히 노력해야 상층부로 올라갈 수 있다. P.8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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